(요한복음 강해설교 44)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The Truth Will Set You Free.

요한복음 8:31-38


31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의 가르침을 꼭 붙들고 있으면 진정 나의 제자이다.
32 그 때에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33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종이 되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당신은 우리가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까?”
3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죄를 짓는 사람마다 죄의 종이다.
35 종은 영원히 가족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아들은 영원히 가족의 한 사람이다.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참으로 자유로워질 것이다.
37 나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녀인 것을 안다.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없기 때문에 너희는 나를 죽이려 하고 있다.
38 나는 내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에 본 것을 너희에게 말하고, 너희는 너희의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행한다.” (쉬운 성경)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의 가르침대로 살면 진정한 나의 제자이다.” (31절) 개역 성경에는 이 말씀이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The New Living Translation Bible에는 “You are truly my disciples if you remain faithful to my teachings”라고 나와 있습니다. “remain”이라는 말은 “어떤 상태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다”는 뜻입니다. 비슷한 말로 “abide”라는 말이 있습니다. New King James 성경에는 “If you abide in My word, you are My disciples indeed”라고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key word는 “말씀 안에 거한다” “말씀 안에 머문다” “remain faithful to the Lord’s teachings”라는 말입니다. 쉬운 성경에는 이 말이 “너희가 나의 가르침을 꼭 붙들고 있으면”이라고 했습니다. New International Version에는 “If you hold to my teaching, you are really my disciples”이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이 주님께서 하신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요? 전 주 설교에서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저는 이 말씀이 말씀을 암송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말씀을 암송함으로써 오는 유익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에는 QT를 많이들 합니다. 하지만 과거보다는 QT 열풍이 덜한 것 같습니다. 말씀을 꼭 붙든다는 것, 말씀 안에 머문다는 것은 요즘 말로 “QT 생활을 잘 하라”는 뜻도 아니라고 봅니다. QT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는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을 책망하는 말씀이 가득 나와 있습니다. 단순히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하시면서 실랄하게 책망하셨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But woe to you, scribes and Pharisees, hypocrites!”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이들을 책망하신 이유는 그들의 위선적인 삶 때문이었습니다. 겉에서 볼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십일조 (tithe)를 예로 드셨습니다.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이 그 당시에도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작고, 사소한 것까지 10분의 1을 떼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개역 성경에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라고 나와 있는데, 쉬운 성경에는 박하와 향료와 나무 뿌리라고 나와 있습니다. 밭에서 나는 herb들입니다. 이 말씀이 뜻하는 것은 사소한 것들이라는 뜻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밭에서 나는 사소한 것들까지 십일조라고 10분의 1을 떼서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일인가요? 오히려 칭찬 받아야 할 일이 아닌가요? 그 당시의 보통 사람들은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의 이런 철저한 믿음생활에 감탄하고 그들의 믿음을 본 받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눈에는 이들의 이런 행동이 위선으로 보였습니다. 이들은 이런 사소한 것들은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면서 이것들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정의 (justice)와 자비(mercy)와 믿음 (faithfulness)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박하와 향료와 나무 뿌리의 십일조까지 드리면서, 정의, 자비, 믿음과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부분은 무시한다.” (마태복음 23:23) “but you ignore the more important aspects of the law- justice, mercy, and faithfulness”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약 성경을 “justice, mercy, faithfulness” 이 세 가지로 요약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가치(values)는 “justice, mercy, faithfulness” 이 세 가지로 본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무리 구약의 율법을 잘 지키는 것처럼 보여도 justice와 mercy와 faithfulness, 이 세 가지를 그 사람에게서 찾을 수 없다면 하나님의 율법을 올바로 지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 사람이 성경에 대해서 그렇게 깊은 지식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에게서 “justice, mercy, faithfulness”이 세 가지를 찾을 수 있다면 이 사람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이런 사람이 오히려 성경의 교훈을 따라서 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꼭 붙들고 산다는 것” “말씀 안에 머무는 삶을 산다는 것” “말씀 안에 거하는다는 것”은 성경 안에 나와 있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치들을 발견하고 그 가치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justice를 찾을 수 있습니까? 올바른 것을 기빠하고 불의한 일에 가담하지 않고, 불의한 일을  미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에서 mercy를 찾을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에서 faithfulness를 찾을 수 있습니까? faithfulness는 믿음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고, 성실함, 신실함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사랑이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성실과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때 이것이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 거하는 삶에 주어지는 3가지 은혜와 축복이 있습니다. 첫째는, 말씀 안에 거하는 사람은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됩니다(31절). 최근에 어떤 사람이 저에게 그래요. “목사님, 제가 30년 넘게 믿음생활 했는데, 저는 앞으로도 믿음 생활 잘 할 자신이 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믿습니다.” 제가 아무 말도 않했습니다. 전혀 아니거든요. 그 사람에게서 justice를 찾아 볼 수 없고, mercy를 찾아 볼 수 없고, faithfulness를 찾아 볼 수 없는데, 무슨 자신이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30년이라는 교회 생활 경력이 그 사람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제자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진실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보시지요. 무늬만 크리스천이 아니라 진실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보시지요. Justice와 mercy와 faithfulness를 여러분의 삶의 중요한 가치고 삼고 살아 보시지요.

 

둘째로, 말씀 안에 거하는 사람은 진리가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32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Your word is truth).” 구약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며, 내 길의 빛입니다(Your word is a lamp to guide my feet and a light for my path).” (시편 119:105)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바로 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an come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요한복음 14:6)

 

진리라는 말은 상당히 철학적으로 들립니다. 그리고 철학이라는 말 자체가 보통 사람들에게는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철학이라는 말은 실제로 그렇게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삶의 근본과 이치를 생각하는 것이 철학입니다. 그러니까 조금만 자신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은 모두 철학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참 막막하다. 바른 길을 비춰주는 등불이 있고, 빛이 있으면 좋겠다. 그 빛이 어디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그 빛에 대하여 생각하고 그 빛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모두 훌륭한 철학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어둠을 밝혀 주는 등불과 같고, 한줄기 빛과 같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말씀 안에 거하는 사람들은 모두 말씀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진리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따라서 살아갑니다.

 

마지막으로, 말씀 안에 거하는 사람은 자유하게 됩니다(32절). 오늘 말씀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The truth will set you free)”고 했습니다. “자유하게 한다”는 말은 뒤집어서 말하면 우리가 많은 것들에게 얽매여 있다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많은 것들에게 얽매여 살고 있습니다. 얽매여 살고 있으니까 그 얽매여 있는 것의 노예가 됩니다. 돈에 얽매인 사람은 돈의 노예가 되고, 권력에 얽매인 사람들은 권력의 노예가 되고, 명예에 얽매인 사람은 명예의 노예가 됩니다. 오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자녀에게 얽매여 있는 사람은 자녀의 노예가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자녀는 얽매일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시편 127:3에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나오지 않습니까? 이 말씀이 The New Living Translation 성경에 뭐라고 나와 있는지 아세요? “Children are a gift from the Lord”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gift는 그것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주신 분에게 축복으로 여기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그런 것입니다. 자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니까 주신 하나님의 축복으로 알고, 주신 분에게 감사하고, 주님의 말씀과 교훈으로 그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크리스천 부모의 책임입니다.

 

예수님의 사역 초기에 자기 고향 나사렛의 회당에 가신 예수님은 이사야 61:1-2 말씀을 펴서 읽으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에 대한 긴 설명은 할 수 없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앞으로 예수님의 사역은 이 말씀을 따라서 전개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the oppressed will be set free)......” 이런 말씀이 눈에 들어옵니다.


말씀 안에 거하는 사람은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제자가 된 사람은 진리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된 사람은 자유롭게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을 얽매고 있는 모든 문제들로부터 자유롭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이 말씀도 잘못하면 오해하기 쉽습니다. 자유롭게 된다는 것이 무슨 한량처럼 사는 사람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자유로운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유로운 삶이란 말씀 안에서 참 진리를 발견하고 나니까 지금까지 자기를 얽매고 있던 것들이 절대적으로 보이지 않고 상대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전에는 돈이 전부인지 알았는데 돈이 전부가 아니구나!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구나!” 이렇게 돈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토마스 (Robert Jermaine Thomas, 1839-1866)라는 선교사를 아십니까? 최근에 토마스 선토마스 선교사.jpg 교사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진행 되어서 많은 사실들이 새로 알려졌습니다. 우리는 토마스 선교사가 미국 상선 제너널 셔먼호 (General Sherman)을 타고 대동강으로 들어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닙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1839년에 영국 웨일즈(Wales)에서 회중교회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런던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1863년 6월에 고향의 하노버 교회(Hanover United Reformed Church)에서 목사 안수를 받습니다, 1863년에 런던 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중국 상하이에 도착합니다. 1865년에 세관에서 통역으로 잠시 근무 하다가, 한국 천주교인 2명을 만나 한국어를 배우고, 1865년에 두 청년과 함께 조선인 어선을 타고 황해도 창린도에 도착합니다. 거기서 2달 반 동안 선교 활동을 한 후에 북경으로 돌아갔다가, 1866년 8월 9일에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들어와 배가 도착하는 곳마다 500여권의 성경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1866년 9월 2일에 그는 대동강 유역의 쑥섬 백사장에서 참수형을 당합니다. 그 때 나이가 27세였습니다.

 

평양에 있는 토마스 선교사 순교 기념예배당.jpg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하고 33년이 지난 1899년에 어떤 60대 노인이 평양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더 마펫 선교사(Samuel Austin Moffett)를 찾아와서 다짜고짜로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제가 토마스 목사를 죽인 박춘권입니다. 그때 그가 죽어가면서 제게 주었던 작은 보따리가 있었는데, 그 속에 성경책이 있었습니다. 그 성경을 읽고 제 마음이 찔려서 이렇게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있던 마펫 선교사는 깜짝 놀라서  "아니? 영감님, 영감님이 토마스 목사를 직접 보셨단 말입니까?" "보다마다요. 제가 토마스목사를 죽였다니까요?" "하나님께서는 토마스목사의 죽음을 통하여 영감님과 같은 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기를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으로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이제부터 영감님도 예수를 믿고 전하면 됩니다." "목사님, 정말 그럴까요? 그때 셔어먼호가 불타는 가운데 그가 사람들을 향하여 성경을 던지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그 중에는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어느 여관에 갔을 때 방안이 온통 성경으로 도배가 되어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여관주인을 불러서 연유를 알아보니 토마스목사가 500여 권의 성경을 배포할 때 박영식이라는 평양감청 경비가 사람들이 버리는 책을 주워다가 도배를 했답니다. 그 집을 여관 주인인 최치량이 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여관에 묵어가는 사람들 가운데 이 글을 읽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박춘권은 마펫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평양의 초대 교인이 됩니다. 그의 조카 중에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선교사를 도와 성경을 번역했던 이태영씨가 있습니다. 이태영씨는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자유하게 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 당시 한국의 전통과 인습에 젖어 있던 사람들을 이렇게 변화 시켰습니다. 여관의 방 벽에 벽지로 붙어 있는 성경 말씀이라도 그것을 읽는 사람들을 변화 시킵니다. 이것이 사람을 자유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