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5/2016 | 성령강림주일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 (The Church in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김태환 목사
사도행전 2:14-21
14 베드로가 열한 명의 사도와 함께 일어서서, 군중을 향해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유대 사람들, 그리고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주민 여러분, 이 일을 여러분께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15 지금은 아침 9시밖에 되지 않았으니, 이 사람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16 오늘 일어난 일은 바로 요엘 예언자가 예언했던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17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날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과 딸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요,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18 그 날에 내 남자 종들과 여자 종들에게까지 내 영을 부어 주겠다. 그러면 그들은 예언할 것이다.
19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이한 일을, 아래로 땅 위에서는 표적을 보여 줄 것이다. 피와 불과 짙은 연기가 일 것이다.
20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으로 변할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난 후에 크고 영광스런 주님의 날이 올 것이다.
21 그러나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쉬운성경)
흔히들 성령강림절을 교회의 기원(起源)이라고 말합니다. 성령 강림절을 오순절 (Pentecost)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penta’라는 말이 ‘5’이라는 뜻이잖아요? 헬라어 ‘pentekoste’는 ‘fiftieth (day)’라는 뜻입니다. 라틴어로 ‘pentecoste’ 역시 ‘50번째’라는 뜻입니다. 유대교 율법에 의하면 이 때가 ‘추수 감사절 (the feast of harvest)’입니다. 이 때는 보리를 거두어 드리는 절기입니다. 동시에 이 날은 유월절 둘째 날부터 계산해서 50번 째 되는 날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부터 계산해서 50번째 되는 날입니다. 크리스천들은 이 날을 성령강림절이라고 합니다. ‘Pente-cost Sunday’라고 하기도 하지만, ‘Whitsunday [hwit-suhn-dey]’라고 합니다.
성령강림절을 시작으로 해서 이 땅에 교회가 생겼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회와 성령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단순히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한 주일에 한 번씩 모여 예배 드리고 흩어지는 모임이 아니라, 성령께서 일하시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9:31에 초대교회의 모습을 가장 감동적으로 기록한 말씀이 나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있는 교회들이 평화를 되찾았으며, 터전을 든든하게 잡았습니다. 교회는 주님을 두려워하며 성령의 위로를 받아 믿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났습니다.” NIV 성경에 이 말씀이 “It was strengthened; and encouraged by the Holy Spirit”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교회는 성령께서 세우시고, 성령께서 위로하시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교회를 보는 관점은 아주 단순하고 아주 세상적인 것입니다. 그 교회가 큰 교회냐, 작은 교회냐 하는 관점을 가지고 봅니다. 그 교회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냐 하는 것으로 교회를 판단합니다. 정작 그 교회가 성령께서 일하시는 교회인지, 그 교회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교회인지, 그 교회가 본래의 목적에 충실한 교회인지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한국에 웬만한 교회에 다 영어 예배가 있습니다. 영어 예배가 교회에 왜 필요한가 하고 물으면 교인들이 원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회에 영어 열풍이 불어서 아이들을 어렸을 때부터 영어 교육을 시킵니다. 영어 예배에 나가면 한마디라도 영어를 더 배울 수 있지 않겠느냐 하고 말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 같은 이런 말들이 교회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교인들의 필요를 충족 시키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 시키는 곳입니다. 바로 이것이 교회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혀처럼 생긴 불꽃이 사람들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불꽃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그 곳에 모인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머물렀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다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리고는 성령께서 말하게 하시는 대로 자기들의 언어와 다른 외국어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2:3-4) 마침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세계 각국에서 모여 온 경건한 유대인들은 사도들이 하는 말을 ‘난 곳 방언(in their own native language)’으로 들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멀리서는 로마에서, 아라비아에서, 애굽에서, 메소포타미아에서, 바대에서, 메대에서, 엘람에서, 주로는 지금의 터키 땅에 해당하는 소아시아 지방에서 온 유대인 순례자들이었습니다. 사도들은 그 지방 말을 배운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The Holy Spirit gave them this ability to speak other languages(사도행전 2:4, NLT).”
사도들의 입에서 나오는 ‘난 곳 방언’을 들은 순례자들은 놀라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어리둥절 했습니다. “Amazed and perplexed, they asked one another, ‘What does this mean?’” (사도행전 2:12) 사람들 중에는 지금 이 사람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 앞에 베드로가 담대하게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유대 사람들, 그리고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주민 여러분, 이 일을 여러분께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지금은 아침 9시밖에 되지 않았으니, 이 사람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일어난 일은 바로 요엘 예언자가 예언했던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날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과 딸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요,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그 날에 내 남자 종들과 여자 종들에게 까지 내 영을 부어 주겠다. 그러면 그들은 예언할 것이다.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이한 일을, 아래로 땅 위에서는 표적을 보여 줄 것이다. 피와 불과 짙은 연기가 일 것이다.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으로 변할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난 후에 크고 영광스런 주님의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사도행전 2:14-21)
베드로의 설교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지금 여러분들이 보는 현상은 이상한 현상이 아니라 일찍이 하나님께서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대로 된 것이라는 것, 둘째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일에 동원이 될 것이라는 것, 셋째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 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선지자 요엘(Joel)이 살았던 시대는 학자마다 다른 견해가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기원전 8-9세기 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때는 요아스 (Jehoash)라는 왕이 유다 왕국을 다스리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는 7살 때 왕이 되어 처음에는 비교적 정치를 잘 했지만, 나중에는 우상숭배에 빠진 왕이었습니다. 요아스 왕이 죽고 얼마 되지 않아 나라가 바빌로니아에게 멸망합니다. 그 때가 BC 586년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짧게는 포로시대의 의미를 알려 주셨고, 길게는 앞으로 있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요엘 2:28). 이 말씀은 포로시대에 들어가서 에스겔을 통해서 다시 한번 주어집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새 영을 넣어 주겠다.” (에스겔 11:19)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의 영을 모든 사람들에게 부어주시는 이유는 사람들이 예언하도록, 사람들이 환상으로 보도록, 사람들이 꿈을 꾸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언, 환상, 꿈이라는 단어를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예언, 환상, 꿈은 모두 하나님께서 그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을 주실 때는 예언이고, 뭔가를 보여 주실 때는 환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꿈을 통해서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오늘 말씀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합니다. 예언이라는 말은 그 뒤에 나오는 “내 영을 부어 주겠다. 그러면 그들은 예언할 것이다”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환상이라는 말은 그 뒤에 나오는 “내가 표적을 보여 줄 것이다”라는 말씀과 연결되고, 꿈이라는 말은 그 위에 나오는 “크고 영광스러운 주님의 날이 올 것이다”라는 말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그의 영을 부어 주시는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들이 타락해서 우상숭배에 빠지면 백성 전체가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우상숭배에 빠지면 하나님과 소통이 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이러다가 멸망했고, 남왕국 유다도 그러다가 멸망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런 식으로 지도자들을 통해서 자기의 뜻을 말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 말씀을 잘 보십시오. “너희의 아들과 딸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요,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그 날에 내 남자 종들과 여자 종들에게 까지 내 영을 부어 주겠다.” (사도행전 2:17-18) 아들과 딸들, 젊은이와 늙은이들, 남종과 여종,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성령을 받습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누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각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 의존했던 과거의 시대가 아니라,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보아야 하는 때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는 책임이 우리 각자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 예언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환상을 보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꿈을 꾸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너희 아들과 딸들, 너희의 젊은이들, 너희의 늙은이들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입니다. 주일학교 아이들, 청년들, 그리고 장년들, 모두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도 제외 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에 동원이 됩니다. 누구도 제외되지 않고 모두가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영을 받아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민감하게 응답하고, 그 시대를 책임 있게 살아야 사람들로 부름을 받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에 민감하게 응답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적습니다.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은 가지고 있지만,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잘 먹고 잘 사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관심이 영적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 그리스도의 복음을 확장하는 일, 나에게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을 찾아 보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단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살아가는데 필요하니까 교회도 나오고, 필요하니까 기도도 하고, 성경도 보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까지 이기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믿음생활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구원을 얻은 후에는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Seek first his kingdom and his righteousness)”고 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내 삶의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2002년에 릭 워렌(Rick Warren)이 쓴 ‘목적이 이끄는 삶 (The Purpose Driven Life)’이 나왔을 때 대단했습니다. 교회마다 이 책을 가지고 설교를 하고, 세미나를 열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한 때의 유행처럼 지나가 버렸습니다.
우리 가운데 예언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환상을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꿈을 꾸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언을 하도록, 환상을 보도록, 꿈을 꾸도록, 우리에게 그의 영을 부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언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이 있어서 그 말씀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환상, 하나님께서 보연 주신 비전(vision)을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 성령강림절을 맞이해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리고자 하는 마지막 말씀은, 우리에게 경각심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알고 있다시피 벌써 잠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었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 밤이 거의 다 지나 낮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로마서 13:11-12) 오늘 말씀에도 때에 대한 경각심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날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사도행전 2:17) “In the last days, God says, ‘I will pour out my Spirit upon all people.’” (NLT)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시는 때는 ‘마지막 때’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때가 ‘마지막 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볼 때 지금은 어느 때입니까? 여러분이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이런 제목의 책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이 책이 모두 네 챕터 (chapter)로 되어 있다면,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의 마지막 챕터를 읽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챕터를 다 읽으면 역사의 끝이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배턴을 넘겨 줘야 한다는 의미에서 볼 때는 우리는 400m 계주의 3번 주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의 큰 그림에서 볼 때는 4번 주자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4번 주자들입니다. 우리 중의 누구도 제외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 4번 주자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야 합니다. 우리 아들과 딸들, 청년들과 장년들, 노년들, 남종과 여종들, 누구나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의 마지막 챕터를 책임 있게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