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2018 | 사순절 새벽기도를 앞두고 2
경건의 훈련이 주는 유익 (The Profit of Godly Discipline)
김태환 목사
디모데전서 4:6-9
6 이 모든 것을 형제들에게 잘 말하십시오. 그러면 그대가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일꾼임을 모두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대가 따르는 믿음의 말씀과 선한 가르침을 통해 자신이 잘 양육되었음을 사람들에게 나타낼 수 있습니다.
7 하나님의 진리와는 다른 어리석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가르침에 솔깃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스스로를 훈련시키십시오.
8 육체의 훈련은 약간의 도움을 주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의 훈련은 모든 일에 유익합니다. 경건은 이 세상에서의 복뿐 아니라, 앞으로 올 세상에서의 복도 약속해 줍니다.
9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믿음을 가지고 받아들이십시오.
6 If you explain these things to the brothers and sisters, Timothy, you will be a worthy servant of Christ Jesus, one who is nourished by the message of faith and the good teaching you have followed.
7 Do not waste time arguing over godless ideas and old wives' tales. Instead, train yourself to be godly.
8 "Physical training is good, but training for godliness is much better, promising benefits in this life and in the life to come."
9 This is a trustworthy saying, and everyone should accept it.
성경에 ‘훈련(訓練)’이란 말이 많이 등장합니다. ‘훈련’은 말 그대로 ‘가르치고 익힌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discipline’이라고 합니다. 이 말에서 ‘disciple (제자)’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제자는 ‘배우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 간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 받았습니다. 모든 훈련이 그렇듯이 이스라엘 백성들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앞에 겸손을 배웠습니다. 광야에서 자신들의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백성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새벽마다 내려 주시는 ‘만나’를 먹으면서 “사람은 빵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신명기 8:3)” 는 귀한 교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의 앞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그들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민족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한 개인도 사용하시기 전에 먼저 훈련을 시키십니다. 하나님은 미디언 광야에서 40년 간 모세를 훈련을 시켰습니다. 40년은 모세가 ‘자기 의 (self-righteousness)’를 내려 놓고 ‘하나님의 의 (God’s righteousness)’를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기간이었습니다. 미디언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모세는 80세가 되어 자신의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잠언 17:3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도가니가 은을, 풀무가 금을 녹이듯, 여호와는 사람의 마음을 시험하신다 (Fire tests the purity of silver and gold, but the Lord tests the heart).”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test하신 다음에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test하시는 과정을 우리는 ‘훈련의 기간’이라고 합니다. 모든 훈련이 혹독하듯이,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혹독하게, 고난을 통해서 훈련하십니다. 이 훈련을 받으면서 잘 견디면 한층 성장한 모습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오늘 읽은 데모데전서 4:6-9 말씀은 사도 바울이 제자 디모데를 ‘멘토링’한, 제자 디모데를 훈련 시킨 말씀입니다. 여기에 ‘육체의 연습 (physical training)’이란 말이 나옵니다. 이런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그 당시에 ‘physical training’이 유행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강원도 평창에서 동계 올림픽이 열리고 있습니다. 올림픽의 역사를 살펴 보면, 이미 BC 776년에 최초의 스포츠 제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는 그리스가 도시 국가 형태를 가지고 있던 때였기 때문에, 도시 국가들이 출전하여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도시 국가들 간에 동맹관계를 더욱 굳게 하기 위해서 4년마다 스포츠 제전을 열었다고 합니다. 그 때는 남자들만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고요. 특이한 것은 모두 옷을 벗고 경기를 했다고 합니다. 경기 종목은, 처음에는 단거리 종목만 하다가 점차 중거리, 장거리 달리기도 포함 시키고, 복싱, 레슬링, 원반 던지기, 창 던지기, 전차 경기 등이 추가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스포츠 제전이 서기 393년까지, 293회까지 계속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로마에 의해서 중단되었다가, 쿠베르탱이 근대 올림픽을 설립해서 다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재미 있는 것은, 스포츠 제전이 시작된 BC 776년은 중국은 춘추 전국시대에 해당하고, 우리나라는 고조선 시대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활약하던 1세기는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던 때였습니다. 많은 청년들은 운동경기에 나가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철학자 에픽테토스 (Epictetus, 55-135, 그리스)가 스포츠 선수로 입문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에게 선수들이 겪어야 할 고충을 열거하면서 신중히 생각하라고 조언했던 글이 남아 있습니다.“누구나 올림픽 경기에 나가 우승을 하고 올리브 관을 쓰고 싶을 것입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그렇다면 먼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다음 단계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따져 봐야 합니다. 그리고나서 행동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선 모든 것을 규칙에 따라 해야 합니다. 먹는 것도 엄격하게 가려야 하며, 때로는 맛있는 것도 못 본 척해야 합니다. 아무리 덥거나 추워도 지정된 시간에는 열심히 훈련하고, 찬물이나 포도주도 마음대로 마실 수 없습니다. 의사의 처방에 따르듯 트레이너의 말에 완전히 몸을 맡겨야 합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손을 다칠 수도 있고, 발을 삘 수도 있습니다. 흙먼지를 많이 마셔 기진맥진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혹독한 훈련을 받고서도 경기에서 질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난 후에도 여전히 경기에 나가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은 철없는 어린애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런 글을 읽어보면 그 당시의 상황이 머리에 그려지지 않습니까? 바울이 디모데에게 했던 말, “육체의 훈련은 약간의 도움을 주지만 (Physical training is good, but.....”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모든 청년들이 몸을 만드는 physical training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편지를 받아 읽는 디모데도 동시대의 청년들처럼 physical training에 열중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당시의 청년들은 미론 (Myron, BC 480-440, 그리스)의 ‘원반 던지는 사람’의 멋있는 몸을 생각하면서 physical training에 열중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런 physical training에는 약간의 유익이 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몸을 만들면 건강에 도움이 되겠지요? 저도 physical training에 열중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팔뚝이나 어깨 근육을 보면서 “보기 좋습니다” 이렇게 칭찬해 주면 왠지 자신감이 붙더라고요. 이런 것들이 physical training이 주는 유익입니다. 청년들 중에는 혹독한 physical training을 견디어 내고, 운동 선수가 되어 스포츠 제전에 나가 월계관을 받는 영예를 받는 사람들도 있었겠지요.
바울은 physical training도 좋지만, 정작 크리스천들이 힘써야 할 것은 ‘경건의 훈련’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도 ‘경건의 훈련’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합니다. ‘경건’이라는 말을 영어 성경에 보면 대부분 ‘godly’라는 형용사를 씁니다. 명사형으로 하면 ‘godliness’가 됩니다. 이 말은 ‘god (하나님)’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godly’라고 하면 ‘하나님을 닮는’ 이런 의미가 됩니다. 이것을 우리 말로 ‘경건’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하나님의 속성(屬性, attribute)을 닮는 것이 경건입니다. 예를 들면, 거룩하심, 사랑, 인자, 자비, 오래 참으심, 진실하심, 선하심, 순결하심, 의로우심, 이런 하나님의 성품들을 닮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건입니다.
바울은 ‘경건의 훈련’을 하면 여러가지도 유익한 것들이 많다고 합니다. 지금 당장에도 유익한 것들 것 많지만, ‘이 세상이 아니라 앞으로 오는 세상 (in this life and in the life to come)’을 위해서도 ‘경건의 훈련’은 매우 유익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경건의 훈련’을 꾸준히 해 나가면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잠깐만 생각해 봐도 몇가지 유익한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경건의 훈련’을 받음으로써 크리스천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지금 바울이 ‘육체의 훈련’과 ‘경건의 훈련’을 비교해서 말하고 있는 것을 주목해서 보십시오. 이 두가지 훈련이 매우 닮았습니다. 두 가지 훈련이 서로 다른 것 같지만, 매우 닮았습니다. ‘육체의 훈련 (physical training)’을 받음으로써 건강에 도움이 된다면, ‘경건의 훈련’은 영적으로 우리를 건강하게 만듭니다.
‘경건의 훈련’을 위해 바울이 디모데에게 충고하고 있는 말씀을 읽어 보십시오. “너는 젊다는 이유로 경건의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고, 믿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범을 보이도록 하라. 너의 말과 행동, 사랑과 믿음, 그리고 순결하고 깨끗한 삶을 통해 사람들에게 본을 보이도록 하라..... 온 맘을 다해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며, 그대가 크리스천으로서 발전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라. 너는 삶과 가르침에 주의해서, 늘 올바르게 살고 가르치기에 힘쓰라. 열심히 성경을 읽고 사람들을 권면하며 잘 가르치라.” (디모데전서 4:12-14, 15-16)
이 말씀 속에 ‘경건의 훈련’의 내용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말과 행동, 사랑과 믿음, 그리고 순결하고 깨끗한 삶,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는 삶의 자세, 계속 성장하는 삶, 가르침과 삶이 다르지 않도록 일치 시키는 노력, 성경읽기,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삶 등이 ‘경건의 삶’을 훈련하는 내용들입니다.
오늘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Physical training을 받지 않는 사람이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없듯이, ‘godly training’을 받지 않은 사람이 훌륭한 크리스천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제자 디모데에게 충고했듯이 누구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도 ‘경건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경건의 훈련’을 받음으로써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경기하는 사람이 규칙을 어기면 상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And athletes cannot win the prize unless they follow the rules).” (디모데후서 2:5) 이 말씀이 주는 implication이 무엇입니까? ‘physical training이 그렇듯이, ‘godly training’에도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는 것 아닙니까?
모든 훈련의 핵심은 ‘절제 (self-control)’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지 않고 참는 것입니다.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맨 먼저 1,500m에서 금메달을 딴 쇼트트랙 선수가 이 시간 이후에 무엇이 가장 하고 싶냐고 묻는 질문에 중에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이젠 햄버거 하나만 먹어도 되겠죠?”라고 했습니다. 또 남자 1,000m에서 동메달을 딴 선수는 뭐라고 했습니까? “오늘만큼은 라면에 밥을 말아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경건의 훈련’을 받으려면, ‘절제’하는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해 왔던 습관들을 바꾸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식은 대부분 ‘영적 훈련’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입니다. 이제는 그런 삶의 방식을 바꾸어서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마음을 하나님께 복종 시키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크리스천으로, 좋은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경건의 훈련’을 받아야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육체적인 건강만 가지고는 그 사명을 완수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자기에게 주신 사명을 완수한 후에 했던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고, 내가 달려가야 할 길도 끝냈으며, 믿음도 지켰습니다. 이제 내게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 면류관은 하나님과 함께하며 의롭게 살았다는 표시로 주시는 상입니다. 주님이 바로 정의의 재판관이시기 때문에 마지막 그 날에 주님은 내게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또한 나뿐만 아니라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7-8)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어디서 온 것입니까? 바울은 그 자신이 전도자로서 겪어야 했던 파란만장했던 고난의 삶을 ‘선한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I have fought the good fight”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방해했던 악한 세력들과 믿음을 지키면서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웠던 그의 저력(底力)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그가 꾸준하게 훈련했던 ‘godly training’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디모데에게 충고합니다. “그러나 그대는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고난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쓰며, 하나님의 종으로서 해야 할 일을 꿋꿋이 하십시오.” (디모데후서 4:5) 바울은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충고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경건의 훈련’을 통하여 전도자로서 겪는 모든 고난을 이겨냈습니다. 이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은 고난을 이겨낼 힘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경건의 훈련’을 잘 받은 사람은 ‘승리의 면류관 (winning prize)’을 받습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받는 것이 선수들의 최고의 영광이듯이, ‘경건의 훈련’을 잘 받은 사람에게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전 바울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정말 놀랍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면류관은) 나뿐만 아니라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8) 저와 여러분을 향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싫지만,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과는 다른 방식이어서 익숙하지 않지만, ‘경건의 훈련’이 좋은 것은 알지만, ‘경건의 훈련’에 집중하면 다른 일에 지장이 있을 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들지만, 우리는 ‘경건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학교에서 공부할 때 학점을 따는데, 선택 과목이 있고, 필수 과목이 있습니다. 선택 과목은 반드시 그 과목을 공부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과목 대신 다른 것을 들어도 됩니다. 하지만, 필수 과목은 반드시 학점을 따야 합니다. 그래야 학위 과정을 마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하는 ‘경건의 훈련’은 크리스천으로서 반드시 받아야 하는 필수 과목입니다. 이 과목을 하지 않으면 좋은 크리스천으로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성장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과목을 하지 않으면 많은 profit (유익함)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내일부터 사순절 새벽 기도가 시작됩니다. 매일 아침 새벽 5:35에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만날 것입니다. 이 시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영적으로 성장 시키려고 하시는 축복의 시간입니다. ‘육체의 훈련’이 주는 유익이 크지만, ‘경건의 훈련’이 주는 유익은 이보다 더 큽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은혜와 축복의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