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2018 | 사순절 33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 (A Personal Message from God)
김태환 목사
이사야 53:10-12
10 그러나 그에게 상처를 입히고 고통을 준 것은 여호와의 뜻이었다. 여호와께서 그의 목숨을 죄를 씻는 제물인 속죄 제물로 삼으셨다. 그는 자기 자손을 볼 것이며, 오래오래 살 것이다. 여호와께서 바라시는 뜻을 그가 이룰 것이다.
11 “많은 고통을 겪은 뒤에 그는 고난의 결과를 보고 만족할 것이다. 내 의로운 종이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할 것이며, 그들의 죄를 짊어질 것이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를 위대한 사람으로 높여 주며, 강한 사람들과 함께 재물을 나누어 가지게 하겠다. 그는 기꺼이 자기 목숨을 죽음에 내놓았으며 죄인 취급을 받았다. 그는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졌고, 죄지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용서를 빌었다.”
10 But it was the Lord’s good plan to crush him and cause him grief. Yet when his life is made an offering for sin, he will have many descendants. He will enjoy a long life, and the Lord’s good plan will prosper in his hands.
11 When he sees all that is accomplished by his anguish, he will be satisfied. And because of his experience, my righteous servant will make it possible for many to be counted righteous, for he will bear all their sins.
12 I will give him the honors of a victorious soldier, because he exposed himself to death. He was counted among the rebels. He bore the sins of many and interceded for rebels.
여러분들은 개인적으로 십자가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기독교의 성스러운 심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고요.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무슨 신비한 능력이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고요. 또 목에 차고 다니면 위험한 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십자가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십자가에 대한 성경적인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먼저 있어야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저께 ‘찬송가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이작 와츠 (Issac Watts, 1674-1748, 영국)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가 쓴 찬송가가 (물론 찬송시를 말함) 우리 찬송가에 12개나 들어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 중에 ‘주 달려 죽은 십자가 (149장)’라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그 가사가 이렇습니다.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 (1절) “죽으신 구주 밖에는 자랑을 말게 하소서. 보혈의 공로 힘입어 교만한 맘을 버리네.” (2절) “못박힌 손발 보니 큰 자비 나타내셨네. 가시로 만든 면류관 우리를 위해 쓰셨네.” (3절) “온 세상 만물 가져도 주 은혜 못다 갚겠네. 놀라운 사랑 받은 나 몸으로 제물 드리네.” (4절)
와츠는 십자가를 바라 볼 때 세상에 속한 욕심을 버리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교만한 맘을 버리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볼 때 하나님의 자비를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와츠가 쓴 또 하나의 탁월한 찬송이 있습니다. 151장 ‘만 왕의 왕 내 주께서’입니다. 그 찬송시 후렴에서 “십자가를 바라볼 때 내가 가지고 있던 고통의 모두 사라진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아니면 더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회 분들과 함께 처음으로 남미 코스타 리카 (Costa Rica)로 단기선교를 갔습니다. 밖에 나가서 노방 전도도 했습니다. 국민의 95% 이상이 카톨릭을 믿습니다. 저는 그 때 까지만 해도 카톨릭도 예수님을 믿는 종교인데 95%가 예수를 믿는 나라에 무슨 단기 선교냐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가 보니까 전도를 해야 하겠더라고요. 집집마다 방문 해 보았더니, 말이 카톨릭이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성경을 읽지 않고, 선반 위에 무슨 부적을 모시듯이 올려 놨습니다. 그리고, 주일이 되어도 교회 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도둑이 많고, 미혼모가 많은 나라였습니다. 마침 어느 교회가 비가 많이 와서 무너져 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런데, 바닥이 흙입니다. 비가 오면 흙바닥에 앉기가 어려워요. 무너져 내린 벽은 자기들이 어떻게 손을 보겠는데, 벽을 손 볼 때 바닥에 시멘트를 깔았으면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단기선교 팀이 가서 바닥을 시멘트로 깔아줬습니다. 시멘트를 구입하는 비용을 우리 단기 선교팀이 부담했습니다. 현지에서 일하는 선교사님이 미리 그렇게 하기로 계획을 세워 놓은 것입니다. 시멘트를 물에 이기는 작업부터 우리 선교팀과 그 교회 교인들 몇 명이 같이 협력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선교 팀 사람들은 일을 많이 해 본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시멘트를 한 삽 뜨면 꽤 무겁습니다. 처음에는 힘이 많으니까 몇 번 해 볼만한데, 시간이 흐를수록 힘들어집니다. 그 때 제 마음 속에 찬송가 한 구절이 떠 올랐어요.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 나의 마음에 큰 고통 사라져” 이 찬송을 불렀어요. 그랬더니 우리 선교 팀이 따라 불렀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찬송을 현지 사람들이 알더라고요. 그래서 이 찬송을 모두 같이 불렀습니다. 이 찬송을 부르면서 바닥에 시멘트를 까는 힘든 작업을 마쳤습니다. 이 찬송가 부를 때마다 코스타 리카 교회 생각이 납니다.
“십자가를 통해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먼저 성경 말씀이 보여 주는 십자가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십자가는 우리에게 두 가지 변경될 수 없는 확실한 진리를 보여 줍니다. 첫째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온 인류의 죄를 한 사람에게 지우셨습니다. 이 죄는 남의 것을 훔쳤다든지, 법을 어겼다든지 하는 죄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죄입니다. 이 죄는 하나님 없이 자기 멋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는 인간의 교만한 생각을 말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겠다는 생각이 무엇입니까? 자기 힘으로 충분히 살 수 있다는 생각 아닙니까? 성경에서는 이것을 ‘교만 (pride)’이라고 하고, 이 ‘교만’을 죄라고 합니다.
‘교만의 죄’를 가장 쉽게 잘 보여 주는 이야기가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 (The Parable of The Prodigal Son)’입니다. 이 탕자는 아버지의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이 아들의 꿈은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로 가서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가지고 먼 나라로 가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아버지 간섭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 본 결과는 참담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간섭이 없으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살아 본 결과는 파산이었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자기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어하는 ‘교만’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원죄 (The Original Sin)’라고 합니다.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들은 위선으로 이 ‘원죄’를 가리고, 어떤 사람들은 교양으로 자기 속에 있는 ‘원죄’를 가립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킬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들은 그들 속에 있는 ‘죄’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자기들 속에 있는 ‘죄’가 더욱 심각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이런 사실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철저하게 위장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모든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죄를 한 사람에게 지웠습니다. 그 한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외아들이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에게 그렇게 하셨는지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성경 요한복음 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 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처럼 사랑하셨는지 우리의 질문은 계속됩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대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God’s unconditional love)’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이런 말씀을 읽는 우리들은 어떤 생각을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보여 주셨으며, 그를 통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 사랑이야 말로 진실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 화목 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처럼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 역시 서로를 사랑해야만 합니다.” (요한일서 4:9-11) 이런 생각이 들어야 성경을 제대로 읽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가장 귀한 독생자를 우리의 죄를 용서하는 ‘화목제물 (ransom)’으로 내 주셨습니다. 이런 사랑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둘째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예를 들어 보여 주신 것입니다. 바울의 편지 중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The law of Moses was unable to save us because of the weakness of our sinful nature. So God did what the law could not do. He sent his own Son in a body like the bodies we sinners have. And in that body God declared an end to sin's control over us by giving his Son as a sacrifice for our sins.” (로마서 8:3) “우리의 인간성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할 수 없었던 것을 하나님은 하셨습니다. 우리와 똑 같은 몸을 가진 그의 아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아들을 우리의 죄를 위한 화목제물로 보내 주심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죄가 더 이상 우리를 컨트롤 할 수 없다고, 죄의 지배의 종말을 선언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은 십자가 위에서 보여 주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는 많은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는 많은 기적들이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는 가장 강력한 예 (example)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불가능한 것이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충분히 우리가 가진 문제들을 해결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베드로전서 5:7-9 말씀을 읽어 보십시오. “모든 걱정과 근심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돌보시고 계십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늘 주의하십시오. 원수 마귀가 배고파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마귀에게 지지 말고 믿음에 굳게 서 있기 바랍니다.” 베드로가 성도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쓸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한 승리를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5-6 말씀을 읽어 보십시오.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우셔서 모든 사람에게 나눠 주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할 때는 믿고 구해야 합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능력이 한이 없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능력이 십자가 위에서 나타났습니다. 그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산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에 대하여 승리할 수 있다고, 이제 죄가 우리를 지배하는 시대는 끝이 났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새벽에 우리에게 승리는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드리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하게 나가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