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2018 | 야외예배 설교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He Will Certainly Care For You.)
김태환 목사
마태복음 6:25-34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개역개정 성경)
25 "That is why I tell you not to worry about everyday life - whether you have enough food and drink, or enough clothes to wear. Isn't life more than food, and your body more than clothing?
26 Look at the birds. They don't plant or harvest or store food in barns, for your heavenly Father feeds them. And aren't you far more valuable to him than they are?
27 Can all your worries add a single moment to your life?
28 "And why worry about your clothing? Look at the lilies of the field and how they grow. They don't work or make their clothing,
29 yet Solomon in all his glory was not dressed as beautifully as they are.
30 And if God cares so wonderfully for wildflowers that are here today and thrown into the fire tomorrow, he will certainly care for you. Why do you have so little faith?
31 "So don't worry about these things, saying, `What will we eat? What will we drink? What will we wear?'
32 These things dominate the thoughts of unbelievers, but your heavenly Father already knows all your needs.
33 Seek the Kingdom of God above all else, and live righteously, and he will give you everything you need.
34 "So don't worry about tomorrow, for tomorrow will bring its own worries. Today's trouble is enough for today.
오늘 야외예배를 맞이해서 싱그러운 대자연 속에서 예배를 드리니까 기분이 새로운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왜 자연 속에 들어오면 기분이 설레고 상쾌해 질까?” 여러분은 이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① 일상적인 생활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② 나무들로부터 몸에 좋은 기운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③ 자연 속에 들어 옴으로 나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④ 그냥 기분이 좋으면 됐지 이유는 알아서 뭘 하나? ⑤ 정말 어려운 문제다. 여러분이 동의하든 안 하든 저의 대답은 ③번입니다. 한번 주변을 돌아 보십시오. 풀 한 포기, 이름 모를 들꽃, 그리고, 나무 한 그루까지, 5월을 맞이해서 제각기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연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 중에 어느 것 하나도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 없다고요. “왜 저 나무는 저기 서 있나? 전혀 어울리지 않는구만!” 이런 것이 없습니다. 어느 때는 죽은 나무도 있고, 넘어져 있는 나무도 있는데, 그런 것까지도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립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 읽은 마태복음 6장 말씀을 보시겠습니까?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딱 두가지입니다. 공중에 날아 다니는 새, 들에 피어 있는 백합 한 송이. 들풀 한포기, 누가복음에는 까마귀도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누가복음 12:24) “하나님께서 이런 것들도 먹이시고,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들일까 보냐! 얼마나 더 소중하게 여기시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너희’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지금 막 졸업식들이 끝났습니다만, 서부에 있는 어느 학교는 아직도 졸업식을 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왜 여러분의 부모님들은 그렇게 희생해 가시면서도 여러분을 후원하고 기르시는 것입니까? 자기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남의 자식을 위해서 그렇게 하라고 하면 아무도 안 할 것입니다. 자기 자식이니까 “나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고, 손 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니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양주동 선생이 가사를 쓰고, 이흥렬 선생이 곡을 붙인 노래입니다. 부모는 왜 자식을 위해서 그렇게 희생하시는 것입니까? 다른 이유 없습니다. 자기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고, 딸들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양자 (adoption)”가 되었다고 합니다 (로마서 8:15). “You received God's Spirit when he adopted you as his own children. Now you call him, ‘Abba, Father.’” (New Living Translation) 우리가 이런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를 해야 하는 이유는, 이 말씀의 우리의 정체성을 말해 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정체성 (identity)’이 무엇입니까?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 아닙니까? 미국에서는 드라이버스 라이선스가 증명서 (Identification Card)입니다. 드라이버스 라이선스가 내가 누구인지를 증명해 주는 증명서입니다. 그런데,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는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증명서는 아니지만, 우리에게 확실한 증명서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입니다. 우리는 원래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여차여차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우리가 양자가 되었다는 (We were adopted as God’s children) 말씀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 말씀의 중요성을 말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그만큼 이 말씀은 중요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운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실 것입니다. 마치 우리의 부모가 우리를 돌보듯이 말입니다. 우리의 부모들이 우리를 위해서 아까운 것이 없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그의 자녀들을 위해서 아무 것도 아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당신의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고 내주셨는데, 무엇인들 아깝다 하시겠습니까 (Since he did not spare even his own Son but gave him up for us all, won't he also give us everything else)?” (로마서 8:32)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 베드로가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큽니다.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들 (유대 지도자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자기들 마음대로 하지 못했던 이유는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그 때 많은 크리스천들이 지중해 연안으로 박해를 피해 이주했잖아요? 이 사람들을 우리는 ‘디아스포라 크리스천 (Diaspora Christians)’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유대 지도자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함부로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베드로의 영향력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베드로가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 편지가 베드로전서와 후서입니다. 그 편지에 무슨 내용이 담겼을 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낯선 외국 땅으로 피난 가서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에게 무엇보다도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들이 당면하고 있는 신앙의 문제에 대하여 충고한 내용들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그의 편지 중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베드로전서 5:7) 이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에게 얼마나 염려하는 일들이 많고, 걱정하는 일들이 많았겠습니까? 언제 로마 군인들이 들이닥칠 지 알 수 없는 극도의 불안감 속에서 그들은 하루 하루를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했던 위로와 충고의 말씀은 “Give all your worries and cares to God, for he cares about you” 이런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야,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 들었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그의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돌보시지 않으면 누가 돌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돌보십니다. 하나님께 여러분의 염려도, 걱정도, 불안도, 모두 맡기세요.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돌보십니다.” 베드로의 이 말이 베드로의 머리에서 나온 것입니까? 아닙니다. 모두 주님에게 배운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25-26, 30절)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He will certainly care for you)!” “아니, 하늘에 날아다니는 까마귀도, 들에 핀 백합화도,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는데, 너희는 나의 제자들이 아니냐?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니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를 얼마나 더 잘 보살피시겠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Why do you have so little faith)!” 이 마지막 말씀이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너무 근심과 걱정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시대의 불확실성 (the age of uncertainty)’이 우리에게 더 많은 걱정과 불안을 안겨 주는 것 같습니다. 어느 것 하나도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교회의 미래도 불확실합니다. 단순히 불확실한 것이 아니라 대단히 어둡습니다. 세상에 대한 교회의 영향력은 급속하게 감소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인구가 급감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는 때에 청년들은 다원주의 사상에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왜 교회를 꼭 나가야 하는지, 왜 꼭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 왜 꼭 성경을 읽어야 하는지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역설적으로, 이렇게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확실한 것을 붙잡는 것 아닌가요?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확실한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일 아닙니까? 그래서 그 은혜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의 딸이 되었다는 성경의 메시지 아닙니까? 여러분, 성경에 어떻게 나와 있습니까?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베드로전서 1:23-25)
이 ‘불활실성의 시대’에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돌보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앞으로 오는 시대에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야외예배를 맞아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부모들이 그렇듯이,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로 삼기 위하여 그의 외아들을 우리를 위해서 내 주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고 (care) 계십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한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존감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염려와 근심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 (gentiles)’이나 하는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방인’처럼 살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 가시기 바랍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3절)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실천하면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