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2018 | 베드로전서 강해설교 8
크리스천의 삶의 방식IV (The Christian Way of Life)
김태환 목사
베드로전서 3:8-18
8 마지막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부탁합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한 형제처럼 사랑하며, 한 마음으로 서로 따뜻이 대하며, 겸손하십시오.
9 해를 입었다고 도로 보복하지 말며, 욕을 먹었다고 그 사람을 욕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삶을 축복해 주십시오. 이것은 여러분 자신이 축복받는 인생을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10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인생을 즐겁게 살기 원하는 사람은 악한 말과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11 악한 행동을 그치고 선한 일을 하며, 평화를 찾고 그것을 위해 힘써 일해야 합니다.
12 주님은 선한 사람을 찾으시고 그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지만, 악한 일을 하는 자는 멀리하십니다.”
13 만약 여러분이 늘 선한 일을 하고자 애쓴다면, 아무도 여러분을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14 때로는 옳은 일을 함으로 고난을 받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순간에 여러분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겁내지 마십시오.
15 마음속에 그리스도만 거룩한 주님으로 모시십시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소망에 관해 묻는 사람들에게 대답할 말을 준비해 두십시오.
16 그들에게 공손하고 친절한 태도로 그것을 설명해 주십시오. 늘 바르게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선하게 살아가는 여러분을 헐뜯는 사람들이 도리어 부끄러움을 느낄 것입니다.
17 악한 일보다 선한 일을 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선한 일을 하다 고난을 받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더 나은 것입니다.
18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죽으심으로 여러분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죄가 없는 분이시지만 죄인을 대신하여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 모두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8 Finally, all of you should be of one mind. Sympathize with each other. Love each other as brothers and sisters. Be tenderhearted, and keep a humble attitude.
9 Don't repay evil for evil. Don't retaliate with insults when people insult you. Instead, pay them back with a blessing. That is what God has called you to do, and he will bless you for it.
10 For the Scriptures say, "If you want to enjoy life and see many happy days, keep your tongue from speaking evil and your lips from telling lies.
11 Turn away from evil and do good. Search for peace, and work to maintain it.
12 The eyes of the Lord watch over those who do right, and his ears are open to their prayers. But the Lord turns his face against those who do evil."① / ①Ps 34.12-16
13 Now, who will want to harm you if you are eager to do good?
14 But even if you suffer for doing what is right, God will reward you for it. So don't worry or be afraid of their threats.
15 Instead, you must worship Christ as Lord of your life. And if someone asks about your Christian hope, always be ready to explain it.
16 But do this in a gentle and respectful way. Keep your conscience clear. Then if people speak against you, they will be ashamed when they see what a good life you live because you belong to Christ.
17 Remember, it is better to suffer for doing good, if that is what God wants, than to suffer for doing wrong!
18 Christ suffered① for our sins once for all time. He never sinned, but he died for sinners to bring you safely home to God. He suffered physical death, but he was raised to life in the Spirit.
오늘은 ‘크리스천의 삶의 방식’ 네 번째 설교입니다. 오늘 다룰 주제는 ‘고난을 대처하는 법’입니다. 고난은 우리 크리스천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주제입니다. ‘고난’과 비슷한 개념으로 사용되는 말은 ‘시련’ ‘시험’ ‘연단’ ‘환난’ ‘핍박’ 등입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누가복음 9:23)”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라는 말은 ‘any of you’ 입니다. ‘너희 중에 나를 따르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예외가 없이’ 이런 뜻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고, 진실한 크리스천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 길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진실한 크리스천이 된다는 말의 의미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천이 된다는 말을 그냥 거짓말 안 하고, 착하게 사는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거짓말도 하고, 때로는 부정도 저지릅니다. 그 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합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양보하고 쉽게 타협합니다.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런 일을 반복하면서 삽니다. 마음 속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성공을 부러워하고, 다른 사람들의 부(富)를 부러워하고, 명예를 부러워합니다. 마음 속에 끊임없이 자리잡고 있는 생각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남보다 더 여유 있게, 편안하게, 아무 문제 없이 살까?” 하는 생각입니다.
지금 새벽 기도에서 요한복음 말씀을 읽고 있습니다. 어저께 토요일 새벽 기도에서 읽은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종이 주인보다 크지 않다 (Slaves are not greater than their master).” 이 말씀이 요한복음에 두 번 나옵니다. 요한복음 13:16, 15:20 두 번 나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너희도 내가 본을 보여 준 대로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이 말씀을 하셨고, 또 한 번은 내가 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은 것처럼 너희도 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종이 주인보다 크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우리 믿음생활에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머리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몸으로, 행동으로, 삶으로 이 말씀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한 센텐스를 말하면 여러분은 “종이 주인보다 크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십시오. 한번 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섬기는 삶을 사셨기 때문에 우리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우리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도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욕을 먹고, 억울한 일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도 욕을 먹고 억울한 일을 당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른 새벽에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른 새벽에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해야 합니다.”
이 말씀만 잘 이해하면, 오늘 고난에 대한 말씀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와 후서는 베드로가 서기 65년경에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 (Diaspora Christians)’에게 쓴 편지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로마에 대화재가 난 것은 서기 64년 7월 18입니다. 화재의 원인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는 여러 설들이 있으니까 제가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당시 로마의 황제는 이 화재의 책임을 크리스천들에게 돌렸습니다. 네로 이전에는 로마의 ‘Pax Romana (로마의 평화)’ 정책 덕분에 크리스천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믿음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네로 이전에 크리스천들이 받았던 핍박은 주로 유대인들로부터 받은 핍박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로 피난을 갔던 크리스천들은 유대인들로부터 핍박을 받다가 나중에는 로마로부터 엄청난 핍박을 받았던 것입니다.
서기 65년이면, 크리스천들에 대한 로마의 박해가 극에 달했을 때입니다. 로마에 살고 있던 ‘크리스천 디아스포라들’만 아니라, 지중해 연안에 살던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도 엄청난 핍박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에게 편지를 썼을 당시의 상황이 이해가 됩니다. 크리스천들 사이에도 핍박을 견디다 못해 배교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동료 크리스천들을 고발하는 일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생명의 위기를 느끼며 전전긍긍하면서 하루 하루를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터키 ‘갑바도기아 (Cappadocia)’에 있는 ‘데린구유 카타콤 (Derinkuyou Catacomb)’에 가 보았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장소가 지하 5층에 있습니다. 지하가 완전히 좁은 미로(迷路)입니다. 길을 잃으면 찾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좁은 미로입니다. 로마의 군인들이 급습할 때를 대비해서 돌을 굴려 막을 수 있도록 고안한 것입니다. 그 좁은 미로에 손 때들이 묻어 있습니다. 핍박 속에서 믿음을 지켰던 당시의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 읽은 베드로전서 말씀은, 이런 시대적인 배경을 알고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베드로는 구약성경 시편 34:12-16 말씀을 인용합니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인생을 즐겁게 살기 원하는 사람은 악한 말과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악한 행동을 그치고 선한 일을 하며, 평화를 찾고 그것을 위해 힘써 일해야 합니다. 주님은 선한 사람을 찾으시고 그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지만, 악한 일을 하는 자는 멀리하십니다. 의로운 사람들이 부르짖을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모든 어려움으로부터 그들을 건지십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사람 곁에 계시고, 낙심한 사람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의로운 사람에게도 어려움이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모든 어려움에서 구해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뼈마디 하나도 꺾이지 않게 완전하게 지켜 주실 것입니다. 악한 자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악 때문에 죽을 것이고, 의로운 사람을 미워하는 자들은 반드시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다윗이 쓴 시편입니다. 사울에게 쫓기면서 생명의 위기를 느낀 다윗은 블레셋 진영으로 들어가 목숨을 보존합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적대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블레셋 진영으로 피신하면 사울의 추격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금방 다윗의 정체가 탄로납니다.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끌려간 다윗은 미친 척하고 연기를 한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합니다. 이 때 쓴 시편이 34편입니다. 이 시편 속에 나를 위기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있습니다. 또 사울 왕에 대한 미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시편 어디에도 사울 왕을 미워하는 구절은 없습니다. 오히려 공의(公義)의 하나님은 선한 사람을 찾으시고 그들의 기도를 들어 주시며, 그들을 어려움에서 건져 주시시만, 악한 사람은 하나님의 벌을 받게 된다고 하면서, 다윗은 모든 일을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판단에 맡깁니다.
지금 이 편지를 읽은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은 이 편지를 어느 ‘카타콤’에서 읽었을지도 모릅니다.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사람들이 베드로가 쓴 이 편지를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았겠습니까? 성령의 위로하심이 그 자리에 모은 사람들의 마음을 채웠을 것입니다. 바울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디모데후서 3:16)”라고 기록했을 때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었을까요? 한 때는 신학자들 간에도 성경의 저자들이 하나님께서 불러 주신 대로 말씀을 기록했다는 식으로 이 말씀을 해석했습니다. 그것을 ‘축자영감설 (verbal inspiration)’이라고 합니다. 오늘 날에는 이 말씀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인간이 기록한 책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말씀에 하나님의 ‘숨 (breath)’을 불어넣으셨다고 이 말씀을 해석합니다. 베드로전서는 베드로가 쓴 편지입니다. 하지만, 그 편지 속에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살리는 말씀이 된 것입니다. 그날,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해 카타콤에 모였던 사람들에게 누가 대표로 베드로의 편지를 읽었을 것입니다. 이 편지를 듣는 사람들은 그 말씀 속에서 전해오는 성령의 위로하심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 ‘성령의 위로하심’으로 그들은 모든 불안과 공포와 염려와 근심을 이기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입니다.
베드로의 편지는 이렇게 계속됩니다. “여러분이 늘 선한 일을 하고자 애쓴다면, 아무도 여러분을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때로는 옳은 일을 함으로 고난을 받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순간에 여러분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겁내지 마십시오.” (13-14절)
맞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겪는 고난 중에 아무 이유 없이, 아무 잘못도 없는데, 오히려 선한 일을 하려고 애쓴 것 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고난 받는 일이 있습니다. 1세기에 살았던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에게 이런 고난이 있었습니다. 거짓말 한 일도 없고, 남을 해친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크리스천이라는 이유 때문에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이런 고난을 받았습니다. 성경 말씀을 보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며, 거짓을 말한 적도 없으십니다. 그는 모욕을 당해도 욕하지 않으시고, 고난을 받을 때도 위협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22-23)
문제는 우리에게도 이런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때 우리는 어떻게 이 고난에 대처해야 합니까?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무죄를 주장해야 합니까? 변호사를 사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해야 합니까? 이런 때 우리는 제일 먼저 예수님께서 이런 고난을 받으셨으니까 우리도 이런 고난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이런 고난을 참으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이 고난을 참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갚아 주심 (reward)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14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But even if you suffer for doing what is right, God will reward you for it. So don't worry or be afraid of their threats (옳은 일을 하다가 고난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갚아 주십니다. 염려하거나 그들의 위협을 겁내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고난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이 그런 고난이었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죽으심으로 여러분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죄가 없는 분이시지만 죄인을 대신하여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 모두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8절)
문제는, 이 예수님의 ‘대속의 고난’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또 어떻게 이 예수님의 ‘대속의 고난’을 우리의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대속의 고난’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마가복음 2장에 나오는 병든 사람의 친구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사람은 중풍병에 걸렸습니다. 들 것에 누운 채로 데리고 온 것을 봐서 증세가 아주 심했던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a paralyzed man’이라고 나옵니다. 이 사람에게 친구가 네 명 있었습니다. 이 친구들은 중풍병에 걸려 고생하는 친구의 병을 어떻게 하든지 낫게 해 주고 싶어서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가버나움의 어느 집에서 말씀을 하고 계셨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서 집 밖에까지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도저히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네 친구는 중풍병에 걸린 친구의 병을 낫게 해 주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네 친구는 그 집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뜯고, 친구를 들것에 누인 채로 끈으로 매달아 예수님 앞으로 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네 죄가 용서되었다. 일어나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마가복음 2:5, 11)
이 말씀은 예수님의 ‘대속의 고난’을 어떻게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이 정말 무궁무진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신 네 친구들의 믿음 속에 사랑과 긍휼과 희생과 섬김의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긍휼의 마음을 갖는 일은 예수님의 ‘대속의 고난’을 나의 삶 속에 실천하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섬기는 마음은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고난’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나의 마음을 쓰고, 나의 것을 나누어 주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고난’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일을 절대로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 설교를 마치면서 오늘 베드로의 편지 속에 나오는 한 구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부탁합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한 형제처럼 사랑하며, 한 마음으로 서로 따뜻이 대하며, 겸손하십시오. 해를 입었다고 도로 보복하지 말며, 욕을 먹었다고 그 사람을 욕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삶을 축복해 주십시오. 이것은 여러분 자신이 축복받는 인생을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8-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