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3편

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서 쉬게 하십니다. 여호와는 나를 잔잔한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며
3 나에게 새 힘을 주십니다.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주님은 나를 의로운 길로 인도하십니다.
4 내가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가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겁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나를 든든하게 보호해 줍니다.
5 주님께서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식탁을 차려 주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내 머리 위에 향기로운 기름을 바르시며 내 잔이 넘치도록 가득 채워 주십니다.
6 여호와의 선하심과 사랑하심이 내가 죽는 날까지 나와 함께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제 나는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1 [A psalm of David] The LORD is my shepherd; I have all that I need.
2 He lets me rest in green meadows; he leads me beside peaceful streams.
3 He renews my strength. He guides me along right paths, bringing honor to his name.
4 Even when I walk through the darkest valley①, I will not be afraid, for you are close beside me. Your rod and your staff protect and comfort me. / ①Or the dark valley of death
5 You prepare a feast for me in the presence of my enemies. You honor me by anointing my head with oil. My cup overflows with blessings.
6 Surely your goodness and unfailing love will pursue me all the days of my life, and I will live in the house of the LORD forever.

미국의 어느 도시에서 성경 낭독 대회가 열렸습니다. 그 대회는 성경 시편 23편을 감동적으로 잘 읽어서 듣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사람을 선정하는 대회였습니다. 당연히 유명한 성우나 아나운서들이 많이 응모를 했고, 그 밖에 사회적으로 이름난 명사(名士)들이 많이 응모했습니다. 대회 날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대회의 결과를 예측했습니다. 이번 대회는 누가 제일 유리할 것이라는 말들이 돌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 사람 한 사람 차례로 올라가서 시편 23편을 읽는데 끝날 때마다 큰 박수가 나왔습니다. 정말 누가 잘 읽는지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습니다. 대회가 거의 끝날 무렵에 한 사람이 무대에 올라갔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우승자로 예상했던 사람들이 이미 순서를 마쳤기 때문에 대회장이 약간 어수선한 분위기였습니다. 사회자가 이 사람을 소개했는데도 어수선한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의 순서가 시작되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도다.” 이렇게 낭독을 하는데, 처음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장내가 조용해졌습니다. 이 사람이 낭독을 마치고 내려올 때는 예상 외로 박수가 많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가 우승할 것이라고 자기들마다 우승자를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심사위원장이 나와 심사평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상했던 대로 심사위원장은 우승자로 지목되던 사람들을 칭찬했습니다. 목소리가 너무 너무 아름다워서 이 시편을 읽기에 적합한 목소리였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무명의 사람에 대하여 심사평을 했습니다. “이 분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이 시편에 나오는 목자가 누구인지 알고 읽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다른 분들도 잘했지만, 우리 심사위원들은 이 분에게 1등을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사람이 그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고 합니다.
 
오늘 읽은 시편 23편은 그렇게 유명한 시편입니다. 수많은 화가들이 이 시편의 장면들을 상상하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음악가들이 이 시편을 가사로 해서 작곡을 했습니다. 그 중에 우리 한국 작곡가 나운영 씨가 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 찬양곡이 유명합니다. 여러분들도 대부분 여러 번 들어 봤을 정도로 유명한 곡입니다.
 
우리는 이 시편을 읽으면서 “참 아름다운 시편이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시편을 읽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시편의 말씀을 아름다운 캘리그라피 (calligraphy)로 써서 액자에 넣어 집을 장식합니다. 또 5절에 나오는 “My cup overflows with blessings (내 잔이 넘칩니다)!” 이 말씀은 머그 (mug)에 써 넣으면 참 어울릴 것 같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그냥 우리에게 위로와 평안을 주는 말씀 이상입니다. 이 시편을 쓴 다윗은 삶과 죽음, 생사(生死)를 넘나들면서 이 시편을 썼습니다. 우리는 다윗이 그 때 느꼈을 생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 그리고 그가 생사를 넘나들면서 느꼈을 ‘the fragility of life (생의 연약함)’ 그리고, 그를 향하여 시시각각 조여 오는 ‘gravity of life (생의 중압감)’를 공감(共感)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 시편 23편의 진가(眞價)가 드러납니다.
 
다윗은 날마다 위험 속에 노출되어 살았습니다. 사울이 그를 죽이려고 할 때는 군대에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땅 어디에도 그가 숨을 곳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노년이 되었을 때도 그는 평안한 삶을 살 수 없었습니다. 자기 아들이 자기에게 칼을 겨눕니다. 자기와 함께 평생을 함께 싸워온 부하 장군들이 언제 그를 배신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그가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그에게 하나님은 사람이 살기 위해서 숨을 쉬고, 산소를 공급받아야 하는 것처럼, 평생 위험 속에 노출되어 있었던 다윗에게 하나님은 호흡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의 고백을 한번 들어 보세요. 그가 쓴 시편 62편에 나오는 고백입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서만 참된 안식을 누립니다. 나를 구원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My soul finds rest in God alone; my salvation comes from him).” (1절) “그분 만이 나의 바위이시며 나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나의 성벽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He alone is my rock and my salvation, my fortress where I will not be shaken).” (6절) “사람들이여, 항상 하나님을 굳게 믿으십시오. 그분께 여러분의 마음을 다 털어 놓으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기 때문입니다 (O my people, trust in him at all times. Pour out your heart to him, for God is our refuge).” (8절)
 
이런 환경 속에서 그는 시편 23편을 썼습니다. 마치 화가가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듯이, 그는 펜을 들어 시를 썼습니다. 이 시 속에 그는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기르시는 한 마리 양이 되어 등장합니다. 이 시 속에 그가 의지하는 하나님은 양을 인도하는 목자 (shepherd)로 등장합니다. 양은 성격이 온순합니다. 양은 그리 똑똑한 동물이 아닙니다. 시력이 나빠 멀리서 자기를 노리는 사나운 짐승을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양은 공격 무기가 없습니다. 뿔이 있긴 하지만, 앞을 향하고 있지 않고 뒤쪽으로 말려 있어서 전혀 위협적이지 않습니다.
 
다윗은 분명히 이런 양의 모습 속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는 나라를 통일했지만, 그 힘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위협한 일이 없습니다. 자기 정적을 제거하기 위하여 그 힘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사람에 대한 미움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사울 왕에 대하여도 미움이 없었습니다. 그의 적들은 그의 생명을 위협했지만, 그는 그들을 위협하지 않았고, 그들을 향해 칼을 겨누지 않았습니다. 그의 성품은 온유했고 사람들과 다투지 않았습니다. 성경 열왕기상, 하는 역대 왕들에 대하여 기록한 성경입니다. 이 성경에 다윗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언제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했습니다. 다윗은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그의 평생에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열왕기상 15:5)
 
이런 다윗이 가장 불안했을 때, 자기 자신의 연약함을 가장 뼈저리게 느낄 때, 그리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도 적들로부터 중압감을 느끼고 있을 때, 그는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1절) 목자이신 하나님은 지금 당장 그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실 뿐만 아니라, 목자이신 그분 안에서 자기가 필요한 모든 것을 얻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가 처한 상황이 꼭 그렇습니다. ‘like defenseless sheep’ 처럼, 스스로 자신을 지킬 힘이 없는 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불안하고, 초초하고, 연약하고, 가진 것 없고, 스스로 나를 지킬 힘이 없는 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바로 다윗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똑 같았습니다. 다윗은 그가 연약할 때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의 힘이 강했을 때가 아니라 가장 약했을 때 하나님을 인격적(人格的)으로 (personally)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십니다” 이 고백은 다른 것 아닙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잘 들으세요.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왜 채플이 있습니까? 병원에 왜 채플린이 있습니까? 사람이 병이 들면 몸도 약해지고 마음도 약해집니다. 그가 의지했던 것들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을 찾으라고, 그 때 기도하라고 채플이 있습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라고 채플린이 있습니다. 여러분, 감옥에 왜 채플린이 있습니까?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마음이 약해집니다. 아무리 큰 소리치는 사람도 오랫동안 좁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 그 때 비로소 자신이 연약한 존재하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 때 도움을 받으라고 채플린이 있습니다.
 
지금 이곳 보스턴에 와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은 보스턴에 던져진 한 마리 양과 같습니다. 여러분의 일생 중 지금이 가장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는 시기입니다. 학교에 가 보면 왜 그렇게 나보다 잘 난 사람들이 많습니까? 그들 틈에서 내가 그동안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 하나는, 자신이 꽤 잘 나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악기 연주를 하는 사람이었는데, 제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좀 도움을 줬습니다. 오디션 보는 데도 제가 따라갔습니다. 아주 자신 있게 연주를 잘 했습니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교수가 이 학생에게 또 한번 연주를 해 보라고 하면서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저는 잘 몰랐는데, 그 교수가 아주 유명한 교수였습니다. 이 학생은 한국에서부터 그 교수를 지도 교수로 하고 싶어서 마 왔습니다. 며칠을 기다려서 그 교수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난 이미 제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너를 제자로 받아 줄 수가 없으니 다른 교수를 만나보라”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때 당장에는 이 학생이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게 이 학생에게는 자신을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다윗이 “나에게 부족한 것이 없다”고 고백한 이유는, 그의 목자 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고, 하나님 안에서 그는 필요한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따라갔더니, 그곳에 그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있었습니다. 내 마음대로 인생을 살았을 때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나는 양이 되어 그를 따라 살았더니 내가 필요한 모든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가 연약할 때 하나님은 그의 ‘피난처 (refuge)’가 되시고, 때로는 강력한 ‘요새 (fortress)’가 되었습니다. 그의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할 때, 하나님은 그가 의지할 든든한 바위 (the rock)가 되었습니다. 적들의 공격이 빗발칠 때는 하나님은 적들의 공격을 막아 주는 ‘성벽 (shield)’이 되었습니다. 그의 영혼이 지치고 피곤할 때 그는 하나님 안에서 ‘안식 (rest)’을 얻었습니다. 그가 배고파 굶주릴 때 하나님은 그를 ‘푸른 초장 (green meadows)’으로 인도하시고, 그가 목마를 때는 ‘잔잔한 시냇가 (beside peaceful streams)’로 인도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다윗은 “주님께서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식탁을 차려 주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내 머리 위에 향기로운 기름을 바르시며 내 잔이 넘치도록 가득 채워 주십니다 (5절)”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My cup overflows with blessings.” ‘my cup’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자신의 존재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시적인 표현입니다. ‘내 잔’이 항상 비어 있는 ‘빈 컵’일 수도 있습니다. ‘빈 컵’을 가진 사람은 항상 모자라고, 부족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결핍된 것이 많은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나의 컵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으로 흘러 넘친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의 이 고백이 중요한 이유는, 그의 고백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이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컵’이 차고 넘쳐야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습니다. 나의 ‘컵’이 비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빈 컵’을 들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진 것이 없어도 그 사람의 ‘컵’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차고 넘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가진 것이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많이 베푸는 사람이 부자 아닙니까? 나의 ‘잔’이 흘러 넘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 문제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문제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과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 사람과 많은 대화가 필요합니다. 대화도 피상적인 대화가 아니라 마음을 터 놓고 대화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도 그런 방식으로 형성됩니다. 아까 인용했던 시편 62:8 말씀을 보십시오. “항상 하나님을 굳게 믿으십시오. 그분께 여러분의 마음을 다 털어 놓으십시오 (Trust in him at all times. Pour out your heart to him).” 이 말씀 속에 두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원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도 어떻게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원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일부터 시작하십시오. 둘째는, 하나님께 마음을 털어 놓는 것입니다. 마음 속에 숨기는 것 없이, 마음 속에 감추는 것 없이 하나님께 모두 ‘pour out’ 하는 것입니다.
 
유학생활과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wilderness)’은 참 많이 닮았습니다. ‘광야’는 특별한 곳입니다. ‘광야’는 모든 것이 부족한 곳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방식이 통하지 않는 곳입니다. 도무지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그리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어 불안한 곳이 ‘광야’입니다. 유학생활이 꼭 그렇지 않나요? 유학생활에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유학생활에서는 모든 일을 자기가 혼자 결정해야 합니다. 유학생활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떠나지 않는 생활입니다. 이렇게 광야생활과 유학생활이 많이 닮았지만,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도 유학생활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여러분을 인도해 오셨는데, 여기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의 마지막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여호와의 선하심과 사랑하심이 내가 죽는 날까지 나와 함께 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Surely your goodness and unfailing love will pursue me all the days of my life).”(6절) 하나님의 ‘goodness’ 그리고 하나님의 ‘unfailing love’ 이 두가지가 내 평생 나는 떠나지 않는다고, 나를 ‘pursue’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 안에 있었기에 다윗은 이 두가지가 평생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의 미래에 대하여 이렇게 확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