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2018 | 세계 성만찬 주일
기억과 축하, 그리고 실천 (Remembrance, Celebration And Action)
김태환 목사
고린도전서 11:23-26
23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은 주님께 받은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배반당하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24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나를 기억하면서 이것을 행하여라.”
25 똑같은 방법으로 식사 후에 잔을 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면서 이것을 행하여라.”
26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으심을 전하십시오.
23 For I pass on to you what I received from the Lord himself. On the night when he was betrayed, the Lord Jesus took some bread
24 and gave thanks to God for it. Then he broke it in pieces and said, "This is my body, which is given for you. Do this to remember me."
25 In the same way, he took the cup of wine after supper, saying, "This cup is the new covenant between God and his people?an agreement confirmed with my blood. Do this to remember me as often as you drink it."
26 For every time you eat this bread and drink this cup, you are announcing the Lord's death until he comes again.
복음서 중에 제일 먼저 기록된 책은 마가복음입니다. A.D. 7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고린도전서는 A.D. 56-57년경에 기록된 바울의 편지입니다. 신학자들은 오늘 읽은 고린도전서 말씀이 성만찬에 대한 말씀 중에서 가장 원형 (Original)에 가까운 말씀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제일 주목해서 봐야 할 말씀은 “나를 기억하면서 이것을 행하라 (24절)”고 하신 말씀입니다. 개역성경에는 ‘기억’이라는 말 대신 ‘기념’이라는 말로 나와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매년 5월 마지막 월요일을 ‘Memorial Day’로 지킵니다.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는 날’이라는 뜻인데, 원래는 남북전쟁에서 죽은 장병들을 기억하는 날로 지키다가 나중에는 미국을 위해 전쟁에 나가 전사한 모든 장병들을 기억하는 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매년 6월 6일에 지키는 ‘현충일’이라는 기념일이 있는데,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분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미국의 ‘Memorial Day’에 해당하는 기념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면서 빵을 나누어 주시고, 포도주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너희를 위한 나의 몸이다. 이것을 행하면서 나를 기억하라”고 하시면서 빵을 떼서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고, “이 잔은 내 피를 통해서 너희들과 맺는 새언약이다.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라”고 하시면서 포도주 잔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무슨 일을 기억을 하려면 지난 일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크리스천들은 자주 성만찬 예식을 행하면서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과거가 없는 오늘은 있을 수 없고, 오늘이 없는 미래는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은 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과거는 모두 예수님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설교 제목을 ‘기억, 축하, 그리고 실천’이라고 정했습니다. ‘기억’은 과거를 말하고, ‘축하’는 현재를 말하고, ‘실천’은 현재와 미래를 의미합니다.
미국 듀크 (Duke)대학에서 총장을 역임했던 제임스 클리브랜드(James Cleveland)는 13살 때 처음으로 자기 어머니와 함께 성만찬 예식에 참가했다고 합니다. 그 때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성만찬에 대한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어 졸업식 때마다 그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제임스야,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시면서, 이것을 먹고 나를 잊지 말라고 부탁하셨다. 제임스야, 엄마는 지금까지 주님의 제자로 살아왔다. 엄마는 결코 주님을 잊을 수가 없어. 그래서 지금까지 엄마는 한 번도 주님의 부탁을 잊지 않았고, 성만찬 예식에서 빵과 포도주를 받을 때마다 주님을 기억했다. 엄마는 너에게 부탁한다. 너도 부디 이 성만찬의 의미를 잊지 말고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어떤 환경 속에 있든지 늘 주님을 기억해야 한다. 성만찬은 주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야. 이 성만찬을 통해 너는 주님을 만나게 되고, 주님의 마음을 깨닫게 될 거야." 클리블랜드 총장은 어머니에게 들었던 이 이야기를 졸업생들에게 들려주면서, “여러분들이 졸업했다고 학교를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에 있든지 늘 학교를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학교 또한 여러분들과 늘 같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졸업생들에게 당부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어떤 것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까? 주님은 제자들에게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들은 크게 약속과 부탁의 말씀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 (요한복음 3: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이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영생을 얻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복음 중의 복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에 대한 기쁜 소식 (the Good News)이기 때문입니다.
또 주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누구든지 나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올 수 없다 (요한복음 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구원의 길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No one can come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구원의 길이지만, 주님이 말씀하신 이 길은 단 하나 밖에 없는 구원의 길입니다. 인간의 지식이 아무리 축적되고,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주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의 길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의 이 말씀의 의미를 자꾸 축소(縮小, reduction)하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reductionists’라고 합니다. “아니, 그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구원에 대하여 강조하다 보니까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사랑의 언어로 이해해야 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넌 나만 사랑해야 해.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난 죽고 말 거야.” 이렇게 말한 것과 같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주님은 단 하나의 구원의 길을 말씀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자꾸 다른 해석을 하려고 하지 말고, 주님의 말씀하신 것을 축소하려고 시도하는 ‘reductionists’가 되지 마십시오.
또한 우리는 주님이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말씀들을 기억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너희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겠다.” (마태복음 28:19-20) 이 말씀에서 강조해야 할 것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나의 말을 가르쳐 지키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민족’이라는 말을 정확하게 말한다면 ‘species’입니다. ‘species’라는 말은 원래 생물학에서 특성이 같은 것들끼리 분류하는 기본 단위입니다. 사람도 같은 언어나, 문화, 역사에 따라 비슷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끼리 분류할 수 있는데, 개역성경에는 ‘족속’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선교 단체 ‘위클리프’에서 번역한 Wycliffe Bible에 ‘folks’로 나와 있습니다. ‘folks’는 민족이라는 말보다 훨씬 더 세분화된 개념입니다. 현재 전 세계에 195 민족 (nations)이 있다고 합니다. ‘folks’로 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 ‘folks’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고 이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The Great Commission’이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대사명(大使命)’이라고 이름을 붙이면서도 이 말씀을 지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이 ‘Commission’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어떤 식이든 이 주님의 ‘대사명’을 실천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공부를 해도, 사업을 해도, 정치를 해도, 무엇을 하든지 주님께서 부탁하신 이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이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선교사로 나갔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는 선교의 개념이 과거보다 훨씬 더 넓어졌습니다. 내 삶의 영역이 바로 선교지라는 ‘통합적인 선교 개념 (the integrated concept of mission)’이 새롭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아주 바람직한 선교 개념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이번 2018년 ReNEW에서는 이 ‘통합적인 선교개념’에 대하여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주님을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이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이것을 ‘대속물 (ransom)’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속물’이 되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이 말씀이 Amplified Bible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But God clearly shows and proves His own love for us, by the fact that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그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처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었고,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습니다.” (이사야 53:5)
우리는 성만찬에 초대되어 빵과 포도주를 받을 때마다 주님의 이 약속과 부탁의 말씀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나의 구원을 축하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천의 삶은 ‘celebration (축하)’입니다. 바울은 이 축하의 삶을 이렇게 요약해서 그의 편지에 썼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내게 베푸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않았습니다 (But by the grace of God I am what I am, and his grace to me was not in vain).” (고린도전서 15:10)
지금의 나의 삶을 축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한 기쁨과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있는 사람은 지금 자신의 삶을 축하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지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모르거나, 감사가 없는 사람은 축하가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지 한번 성경 말씀에서 보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잘 아는 빌립보서 4:6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읽으면서도 이 말씀의 뜻을 잘 모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읽으면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만 읽습니다. 염려하지 말라고 한다고 해서 염려가 안 됩니까? 그게 아니잖아요? 이 말씀을 이해하는 열쇠는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구하라는 말입니다. 한번 보세요.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Don't worry about anything; instead, pray about everything. Tell God what you need, and thank him for all he has done.” 하나님께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말씀드릴 때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해 주신 일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해 주신 일들이 어떤 일들입니까? 가장 큰 일은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나를 구원하여 주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일입니다. 이 일보다 더 큰 일이 없고, 이 일보다 더 감사해야 할 일이 없습니다. 이렇게 감사가 있는 사람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보다 더 큰 일도 해결해 주셨는데, 이만한 일이야 또 해결해 주시겠지 하는 믿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만찬에 초대되어 빵과 포도주를 받을 때, 예수님을 기억해야 하고, 지금의 내 삶을 축하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들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바울은 성만찬에 초대된 사람들이 실천해야 하는 일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시는 사람들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으심을 전하십시오 (For every time you eat this bread and drink this cup, you are announcing the Lord's death until he comes again).” (26절)
저는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정말 큰 일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누가 십자가를 좋아합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도 십자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예수 믿는 사람들도 십자가를 좋아하지 않는데,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시대는 십자가를 싫어하고 십자가를 거부합니다. 지금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은 그 자신이 몸소 십자가를 지셨고, 그의 제자들에게는 “나를 따라 오려거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누가복음 9:23)”고 말씀하셨는데, 누구도 십자가를 지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selfish way (이기적인 길)’에서 돌아서라는 말씀입니다.
이게 정말 가능할까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방식이 모두 ‘selfish’한 일들인데, 이 길에서 돌아서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우리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이 로마서 12:2에서 “Don't copy the behavior and customs of this world (이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이 지금 보이고 있는 ‘행동 (behavior)’, 이 세상이 가지고 있는 ‘관습들 (customs)’은 어떤 것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selfish way (이기적인 길)’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대해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되든 나만 잘 되면 됩니다. 나만 잘 되면 되고, 우리 집만 괜찮으면 되고, 우리 교회만 잘 되면 상관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큰 일입니다. 왜 주님은 가장 어려운 때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이 십자가의 메시지를 맡기시는 지 정말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오늘 세계 성만찬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성만찬에 초대된 여러분들, 우리는 지금 매우 중요하고 심각한 시점에 서 있습니다. 청년 1부, 청년 2부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매우 중요한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잠에서 깰 때가 벌써 되었다 (로마서 13:11)”고 했는데, 맞습니다. 지금 우리는 대충대충 교회에 다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하게 구합시다. 성만찬 빵을 받고, 포도주 잔을 받으면서 예수님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예수님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음을 고백하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지금의 나의 삶을 축하합시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이 세상에 전파하는 도구로 나를 사용해 주시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길거리에 나뒹굴고 있는 돌멩이들을 가지고도 아브라함의 자손들로 만드실 수 있고 (마태복음 3:9),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다 (누가복음 19:40)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 지 잘 압니다. 주님은 이 시대를 우리에게, 우리 교회에게 맡기셨습니다. 세상에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먼저 저희로 하여금 우리들의 이기적인 길에서 돌아서는 결단을 하게 하옵소서.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음을 믿습니다. 손에 빵을 들고, 손에 포도주 잔을 들고, 주님을 기억하게 하시고,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게 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로 고백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