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8/2018 | 열매 맺는 계절 3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 것이다! ( You Can Identify People By Their Fruit!)
김태환 목사
마태복음 7:15-20
15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 속은 굶주린 늑대이다.
16 그들의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 것이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딸 수 있느냐?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있느냐?
17 마찬가지로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19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모두 잘려서 불 속에 던져진다.
20 그러므로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 것이다.”
15 "Beware of false prophets who come disguised as harmless sheep but are really vicious wolves.
16 You can identify them by their fruit, that is, by the way they act. Can you pick grapes from thornbushes, or figs from thistles?
17 A good tree produces good fruit, and a bad tree produces bad fruit.
7:18 A good tree can't produce bad fruit, and a bad tree can't produce good fruit.
19 So every tree that does not produce good fruit is chopped down and thrown into the fire.
20 Yes, just as you can identify a tree by its fruit, so you can identify people by their actions.
영어에 ‘Sunday Christian (선데이 크리스천)’이라는 말이 있고, ‘churchgoer (교회 다니는 사람들)’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슷한 말로 요한 웨슬리는 ‘반쪽 크리스천 (Half Christian)’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선교학에서는 ‘Nominal Christian (명목상의 크리스천)’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 사람이 참된 크리스천인지 그저 크리스천이라는 이름만 가진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이 참된 예언자인지, 거짓 예언자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이 참된 목사인지, 거짓 목사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의 말만 들어봐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양의 옷을 입고 천사처럼 사람들에게 다가옵니다. 다들 그 사람이 천사일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굶주린 늑대가 들어 있습니다. 전에 늑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늑대처럼 탐욕스럽게 먹어 치우는 짐승이 없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잡아 먹습니다. 집에서 기르는 소도 잡아 먹고, 양도 잡아 먹고, 닭도 잡아 먹고, 닥치는 대로 잡아 먹습니다. 마을에 늑대가 나타나면 온 마을 사람들이 긴장합니다. 늑대는 혼자 행동하지 않고 꼭 3-4마리, 혹은 5-6마리가 같이 행동합니다. 그리고 얼마나 영리한지 잘 잡히지 않습니다.
그 속에 늑대가 들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양처럼 겉모습을 위장하기 때문에 도무지 양인지, 늑대인지 분별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열매를 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You can identify people by their fruit (그들의 열매를 보고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16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fruit (열매)’라는 말은 그 사람의 ‘행동’ 혹은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삶의 방식’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만일 그 사람이 가시나무라면 반드시 가시나무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엉겅퀴나무라면 엉겅퀴 열매를 맺게 되어 있지, 그 나무가 어떻게 무화과 열매나, 포도 열매를 맺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는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게 되고, 나쁜 나무는 반드시 나쁜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말이나, 그 사람의 겉모습을 보지 말고, 그 사람의 열매를 보고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읽는 우리들은 어떤 생각을 해야 하겠습니까?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으려고 애를 쓰고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나무가 되려고 해야 합니다. 좋은 나무가 되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좋은 열매를 맺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성경을 읽다가 깜짝 놀란 말씀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7:37에 나오는 말씀인데요. “사람들은 정말로 놀라워하며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은 모두 훌륭하다’라고 말했습니다.” “They were completely amazed and said again and again, ‘Everything he does is wonderful.’” 어떻게 보면 평범한 말씀같이 들리기 때문에 그냥 읽고 지나갈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저에게 감동을 준 이유는 그 말씀을 통해서 2,000년 전에 사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에게는 흠도 없고, 티도 없고, 죄가 없으신 어린양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한 속죄 제물로 부족함이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분이니까 그가 맺는 열매도 모두 훌륭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맺으신 열매는 단 하나도 나쁜 열매가 없었습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은 좋은 나무였던 것입니다. 이 평범한 말이 오늘 우리들에게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동안 좋은 나무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속속 나쁜 열매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양으로 알고 있었던 사람들 속에 탐욕스러운 늑대가 들어 있었다는 것을 뉴스나 신문 지상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좋은 나무가 되는데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순서가 바뀌면 안 됩니다. 절대로 좋은 열매를 맺으려는 노력을 먼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좋은 나무가 되는 일은 집의 기초 (foundation)를 닦는 일과 같습니다. 귀찮고, 뻔한 일처럼 보이고, 시간이 걸리고, 시간 낭비인 것처럼 보여도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는 기초를 견고하게 잘 닦아야 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집을 짓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꼭 탈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나무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좋은 나무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좋은 나무가 되는 길을 그렇게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을 보세요. “영접하는 사람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12) 여기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은 ‘좋은 나무’가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이 말씀에서도 ‘영생을 얻는 일’을 ‘좋은 나무가 되는 일’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들을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분을 위해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그 어떤 사람도 세상의 관점으로 알지 않겠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세상의 관점으로 알았으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창조입니다.” (고린도후서 5:15-17)
저는 바울서신에 나오는 말씀을 읽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바울은 신학적인 천재입니다. 단순히 머리가 좋다는 뜻이 아니라, 어려운 신학적인 개념을 쉬운 일상의 용어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일에 탁월하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한번 New Living Translation으로 읽어 보십시오. “He died for everyone so that those who receive his new life will no longer live for themselves. Instead, they will live for Christ, who died and was raised for them. So we have stopped evaluating others from a human point of view. At one time we thought of Christ merely from a human point of view. How differently we know him now! This means that anyone who belongs to Christ has become a new person. The old life is gone; a new life has begun!”
“He died for everyone so that they will live for Christ.” 이 말씀을 생각하다 보니 언젠가 한번 여러분에게 소개했던 일본의 우치무라 간조 (Uchimura Kanzō, 1861-1930) 목사님의 말이 생각납니다. “I for Japan; Japan for the World; The World for Christ; And All for God (나는 일본을 위해, 일본은 세계를 위해, 세계는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을 위해)!” 우찌무라 간조가 1884년 23살의 나이에 매사추세츠 서쪽에 있는 앰허스트 대학 (Amherst College)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그는 이렇게 자신의 뜻을 세웠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왜 지금 우리 세대에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자기 인생을 드리겠다고 뜻을 세우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느냐 하는 것입이다. 왜 지금은 우리 중에서 자신의 뜻을 세우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큰 뜻을 품고, 이를 실천해 나가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일본이 2차 세계 대전에서 패한 후, 새롭게 나라를 재건하는 일에 쓰임을 받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아십니까? 그들 중 상당 수가 우찌무라 간조 목사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우찌무라 간조 목사님은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함석헌, 김교신 등 걸출한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모두 우찌무라 간조 목사님에게서 배운 사람들입니다.
나는 지금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좋은 나무가 되어야 하는데, 좋은 나무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좋은 나무가 된다는 것은 수사적인 표현 (rhetoric expression)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알기 전에 자기 자신만 알던 사람의 삶의 가치와 삶의 방향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 좋은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가 된다는 것은 바울의 표현대로 하면 ‘새로운 창조 (New Creation)’ 혹은 ‘새로운 사람 (New Person)”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 알던 사람의 관점(觀點)이 ‘a human point of view (인간적인 관점 혹은 세상적인 관점)’에서 ‘하나님의 관점 (God’s point of view)’로 가치에 대한 관점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나무’가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 들어 있는 뜻입니다.
‘좋은 나무’를 만드는 일, ‘좋은 나무’를 만드는 사역이 바로 교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좋은 나무’가 되는 일은 공부를 많이 하거나, 교양을 많이 쌓아서 되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교회가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지금 교회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세상에는 겉모습은 양인데, 속에는 늑대가 들어 있는 크리스천들로 차고 넘치게 될 것입니다.
스코트랜드의 한 교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주일 예배를 마친 후에 장로들이 목사님께 드릴 얘기가 있다고 해서 같이 모였습니다. 장로 대표가 하는 말이 우리 장로들은 목사님에게 사임을 권유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이 연세가 많고 또 교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 사임을 권하는 이유였습니다. 장로들은 자기들의 의견이 타당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데이터를 제시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목사님이 하신 일은 한 명에게 세례를 주신 일 밖에 없는데, 그 한 명도 어린 소년이라는 것입니다. 장로들이 돌아 간 후에 풀이 죽은 목사님은 교회 뜰을 이리저리 걷고 있었습니다. 그 때 누가 “목사님!” 하면서 목사님의 팔꿈치를 툭 쳤습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았더니 바로 그 목사님이 세례를 준 로버트라는 아이였습니다. “로버트야, 목사님이 뭘 도와줄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아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 목사님, 저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앞으로 선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제가 선교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래? 참 훌륭한 생각을 했구나. 목사님이 로버트를 위해서 기도하마!”
세월이 흘러 이 로버트라는 아이는 자기의 소원대로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아프리카 선교의 문을 연 로버트 모팻 (Robert Moffat, 1795-1883, 남아프리카 선교사)입니다. 유명한 데이빗 리빙스톤 (David Livingston, 1813-1873)의 장인입니다. 데이빗 리빙스톤은 장인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 목사님이 하신 일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 해 동안 한 일이 겨우 어린아이 한명에게 세례 준 일이 전부였느냐고 따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어린아이 하나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 받고, 크리스천이 되었기 때문에 아프리카 전체가 이 아이에게 복음의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교회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런 일입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가르쳐서 좋은 나무가 되도록 하는 일, 이 일이 바로 우리교회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All church leaders must be prepared for a good tree making ministry (모든 교회 리더들은 좋은 나무를 만드는 사역을 위해 준비되어야 합니다). 장로님들도, 권사님들도, 집사님들도, 가족장들도, 간사들도, 목사도, 전도사도 이 일을 위해 준비되어야 합니다.
이번 창립 4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교회 사진첩을 만들었습니다. 사진으로 지난 역사들을 정리하면서 2018년 사진들은 따로 섹션을 분리해서 실었습니다. 사진첩을 보고 있으면 지나간 과거가 한 눈에 보입니다. 이제 5년 후, 10년 후에는 우리교회의 어떤 사진들이 실릴지 궁금합니다. 교인들이 모여 기도하는 사진들, 찬양하는 사진들, 식사하는 사진들도 좋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진은 따로 있습니다. 좋은 나무를 만드는 사역에 동원된 사람들의 사진입니다.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들이 이 사진의 주인공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는 그것을 따르는 자들에 의해서 옳다는 것이 증명된다 (But wisdom is shown to be right by the lives of those who follow it①." / ①Or But wisdom is justified by all her children).” (누가복음 7:35) 우리가 좋은 나무가 되어서 좋은 열매를 맺으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맺지 않으면, 그것은 곧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틀렸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 됩니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좋은 나무가 되면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좋은 나무가 되려고 애써야 합니다. 교회는 좋은 나무 만드는 사역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 교회를 통해서 좋은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계속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교회가 좋은 교회라는 것이 증명됩니다.
가을은 열매 맺는 계절입니다. 여름철에 푸르렀던 잎들이 아름다운 단풍잎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모두 창조주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이 계절에 좋은 열매를 많이 맺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매년 이 때가 되면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듭니다. 가을이어서 감상적인 (sentimental)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열매가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그것이 우리 마음을 허전하게 합니다. 좋은 나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를 쓴 저자는 “우리가 언제까지 신앙의 기초를 닦는 일을 할 것입니까? 이제는 좀 성숙한 단계로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히브리서 5:12)?” 이렇게 말했습니다. 충분히 그렇게 말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 우리에게 신앙의 기초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일입니다. 복음의 핵심입니다. 복음은 쉽다고 생각하고 이 일을 심각하지 다루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심각하게 배우지 않고 대충 지나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주님으로 영접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배웠다면, 우리는 이미 좋은 나무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좋은 나무가 되어 있지 않거든요?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다시 기초로 돌아가야 합니다. 기초로 돌아가서 복음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비록 시간이 걸리고 답답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복음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좋은 나무가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