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4:9-16

9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믿음을 가지고 받아들이십시오.
10 우리는 이것을 위해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를 구원하실 분이며, 특별히 믿는 자들에게 구원자가 되십니다.
11 그대는 이러한 사실들을 가르치고 명령하십시오.
12 그대가 젊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그대를 업신여기지 않게 하고, 믿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범을 보이십시오. 말과 행동, 사랑과 믿음, 그리고 순결하고 깨끗한 삶을 통해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13 내가 갈 때까지 열심히 성경을 읽고 사람들을 권면하며 잘 가르치십시오.
14 그대가 받은 은사를 잊지 말고 잘 사용하십시오. 그것은 교회의 장로들이 그대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할 때, 예언을 통해 그대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15 온 맘을 다해 충성하여, 그대가 발전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십시오.
16 그대는 그대의 삶과 가르침에 주의해서, 늘 올바르게 살고 가르치기에 힘쓰십시오. 그러면 그대 자신뿐 아니라 그대의 말에 귀기울이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9 This is a trustworthy saying, and everyone should accept it.
10 This is why we work hard and continue to struggle①, for our hope is in the living God, who is the Savior of all people and particularly of all believers. / ①Some manuscripts read continue to suffer
11 Teach these things and insist that everyone learn them.
12 Don't let anyone think less of you because you are young. Be an example to all believers in what you say, in the way you live, in your love, your faith, and your purity.
13 Until I get there, focus on reading the Scriptures to the church, encouraging the believers, and teaching them.
14 Do not neglect the spiritual gift you received through the prophecy spoken over you when the elders of the church laid their hands on you.
15 Give your complete attention to these matters. Throw yourself into your tasks so that everyone will see your progress.
16 Keep a close watch on how you live and on your teaching. Stay true to what is right for the sake of your own salvation and the salvation of those who hear you.

오늘 설교는 지난 주 설교의 속편(續編)입니다. 지난 주에는 ‘육체의 훈련’과 ‘경건의 훈련’이 어떻게 다른 지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에 집중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지금 이대로 계속되기는 쉽지만, 우리의 삶이 변화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건의 삶이 무엇입니까?” 하고 질문합니다. 에베소서 5:1에 보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십시오 (Therefore be imitators of God, as beloved children)”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경건의 삶’이란 정확하게 하나님을 본받는 삶입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godly life’입니다. ‘godly’라는 말은 하나님을 닮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잘 따라 사는 삶을 ‘경건의 삶’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건의 삶’을 겉으로 드러나는, 혹은 눈에 띄는 말이나 행동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제가 에베소서 5장 말씀을 읽다가 깜짝 놀란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사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시어, 하나님 앞에 향기나는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2절) ‘경건의 삶’이란 하나님을 닮는 삶인데, 그것은 구체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자기 자신을 내 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을 닮는다는 것은 곧 다른 사람을 위하여 우리 자신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사방에 났습니다. 시리아에도 예수님의 소문이 나서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리스에도 예수님의 소문이 났습니다. 아마도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이나 상인들 (caravans)을 통해서 예수님의 소문이 났을 것입니다. 그리스 사람 몇 명이 예수님께 왔습니다. 예수님은 대번에 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께 ‘지혜’를 들으러 온 것입니다. 그들은 ‘소피스트들 (sophists)’이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법이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히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요한복음 12:24-25)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예수님은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이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내가 이미 영화롭게 하였고, 또다시 영화롭게 할 것이다 (I have already brought glory to my name, and I will do so again).” 와! 정말 굉장한 말씀 아닌가요? 성경의 진리는 ‘소피스트들’이 찾아 다니는 말 장난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야,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 이야긴데?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어?” 성경의 진리는 그런 진리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리의 핵심은 한 알의 밀알처럼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진리입니다. 밀 알 하나가 땅에 심겨 죽으면 거기서 싹이 나고 줄기가 돋고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듯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내가 희생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이 진리를 실천하셨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너는 이미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였다. 그리고 네가 십자가를 질 때 내 이름이 다시 영광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경건의 삶’이란 우리의 겉 모습이 전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 아들을 희생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희생을 닮은 것이 성경이 말하는 ‘경건의 삶’입니다. 이 ‘경건의 삶’의 핵심을 모르고 자기 만족을 위해 ‘경건의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가 이만큼 성경 읽고, 내가 이만큼 기도한다는 자기 만족을 위해서 ‘경건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삶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교만해지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변할 뿐입니다.

이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 본문 말씀을 보려고 합니다. “그대가 젊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그대를 업신여기지 않게 하고, 믿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범을 보이십시오. 말과 행동, 사랑과 믿음, 그리고 순결하고 깨끗한 삶을 통해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12-13절) 이 말씀을 잘 보세요. 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나이가 젊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이가 많다는 것이 더 문제가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여러분은 믿은 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마땅히 선생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초를 누군가에게 다시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단단한 음식을 먹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아직도 젖을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You have been believers so long now that you ought to be teaching others. Instead, you need someone to teach you again the basic things about God's word. You are like babies who need milk and cannot eat solid food).” 히브리서 5:12에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은 지 오래 되신 분들은 모두 이 교회에서 ‘영적인 리더십 (a spiritual leadership)’을 가진 지도자들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한 사람의 믿음을 올바른 길로 잘 인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예수 믿은 지 오래된 사람들 중에 교회에서 ‘영적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좋은 ‘가이드 (guide)’를 만나는 것입니다. 좋은 ‘가이드’를 만나면 여행지에서 꼭 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 빠뜨리지 않고 모두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설명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이드’를 잘못 만나면 여행에서 꼭 봐야 할 곳을 빠뜨리게 됩니다. 제가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하면서도 못 가 본 곳이 두 군데가 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가 살았다는 ‘베다니 (Bethany)’ 마을을 못 가 봤습니다. 제가 ‘가이드’에게 가자고 했더니,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가 봐야 별 것 없다고 하면서 지금 이 시간에는 차가 많아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난색을 표했습니다. 또 에베소 (Ephesus)에서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살던 곳을 가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가이드’에게 마리아의 집에 가자고 했더니, 가 봐야 별 것 없다고 하면서 갈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영적 지도자’는 여행지의 ‘가이드’와 같습니다. 좋은 ‘영적 지도자’를 만나는 것은 공동체가 받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알고 있는 ‘영적 지도자들’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들이 누구입니까? 그들 대부분이 큰 교회의 목사들입니다. 모두 설교를 잘 하는 분들입니다. 말씀의 능력이 있다고 어디를 가든지 팬들을 몰고 다니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끝까지 존경받는 ‘영적 지도자’로 남아 있는 분들이 별로 없습니다. 모두 설교는 잘 하지만, 삶이 뒷받침이 되지 못했습니다. 교회의 ‘영적 지도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실패한 것입니다.

보세요. 지금 바울이 이런 이야기를 디모데에게 하고 있습니다. “네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그것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흠이 되어서는 안 된다. 네가 성경의 진리를 잘 깨우쳐서 크리스천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범이 되는 삶을 보여주기 바란다.” (12절) “Be an example to all believers in what you say, in the way you live, in your love, your faith, and your purity.” ‘in what you say (네가 하는 말에서)’ ‘in the way you live (네가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 ‘in your love (네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삶에서)’ ‘in your faith (네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in your purity (너의 깨끗한 삶에서)’ 다른 사람에게 모범이 되라고 합니다. 모범이 되라는 말은 말과, 삶의 방식과, 사랑과, 믿음과, 성결한 삶에서 얼마나 하나님을 닮고 있는지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영적 리더십’입니다. 이런 사람은 나이가 많거나 어리거나 상관없이 교회 안에서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Until I get there, focus on reading the Scriptures to the church, encouraging the believers, and teaching them.” (13절) 예전에는 개인용 성경이 없으니까 성경 두루마리 (scrolls)를 펴서 교인들 앞에서 읽었습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얼마나 좋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까? 이제 성경 찬송이 전화기 속에 들어 있습니다. 저도 심방 갈 때 꼭 성경 찬송을 들고 가지 않아도 전화기 속에서 찾아서 찬송도 부르고, 성경도 읽을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의 ‘경건생활’은 성경을 읽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읽음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닮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성경 읽는 분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는 분들은 성경을 읽는 목적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성경을 알려고 성경을 읽습니까? 성경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어서 성경을 읽습니까? 성경을 읽는 목적은 다른 것 없습니다. 하나님을 닮기 위해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이 말씀을 읽었으면 이 말씀에 나오는 하나님을 닮으려고 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의 독생자를 내 주시고, 희생하신 하나님을 닮으려고 해야 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의 삶이 변화되지 않겠습니까?

“Focus on encouraging the believers.” (13절) 주변의 크리스천들을 격려하는 데 집중하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0:24-25 말씀이 생각납니다. “서로 돌아보고 사랑을 베풀며 선한 행동을 하도록 격려합시다. 어떤 사람들처럼 교회의 모임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그 날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볼수록 함께 만나며 서로를 격려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격려하는 것이 ‘경건생활’의 한 방편입니다. 성경을 읽고 덮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고, 그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배우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위로가 필요한 사람, 격려가 필요한 사람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건생활’입니다.

사도 바울은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십시오. 서로 한 마음이 되십시오.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마십시오. 하찮아 보이는 사람들과도 기꺼이 사귀십시오 (로마서 12:15-16)”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사도 바울이라는 사람의 ‘경건생활’이 들여 다 볼 수 있습니다.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고, 하찮아 보이는 사람들을 귀하여 여기고” 무슨 말씀입니까? 이 말씀이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모습이고, 예수님의 모습 아닙니까? 바울은 이렇게 하나님을 닮는 ‘경건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닮는 우리의 경건생활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어디까지 발전하고 성장해야 하는지 목표가 있습니까? 성경에 ‘경건생활’의 목표가 있습니다.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모든 면에서 성장하여 그리스도를 닮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13-15)

이번 사순절이 나의 ‘경건생활’을 반성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경건생활’이 나의 만족을 위한 천박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지, 아니면, 정말 내가 하나님을 배우고, 닮고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이번 사순절이 나의 ‘경건생활’을 총체적으로 반성해 보고, 새로워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