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6/2019 | 성령강림절 후 첫째 주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In The Name Of Jesus Of Nazareth)
김태환 목사
사도행전 3:1-10
1 어느 날 오후 3시, 기도하는 시간이 되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2 성전 문에는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사람을 날마다 메고 와서 ‘아름다운 문’이라 부르는 성전 문에 앉혀 놓고,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게 하였습니다.
3 베드로와 요한이 막 성전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 걷지 못하는 사람은 그들에게 구걸을 하였습니다.
4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그 사람을 눈 여겨 본 후에, “우리를 보시오”라고 말했습니다.
5 그 걷지 못하는 사람은 무언가 얻을 것을 기대하면서 두 사람을 쳐다보았습니다.
6 그러나 베드로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7 이 말을 하면서 베드로는 그 사람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의 다리와 발목에 힘이 생겼습니다.
8 그 걷지 못하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두 사람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 걷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9 모든 사람이 걷지 못하던 사람이 걸어 다니는 것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10 사람들은 그가 전부터 성전의 ‘아름다운 문’에 앉아 구걸하던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서, 눈앞에서 벌어진 이 일로 인해 크게 놀라며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1 Peter and John went to the Temple one afternoon to take part in the three o'clock prayer service.
2 As they approached the Temple, a man lame from birth was being carried in. Each day he was put beside the Temple gate, the one called the Beautiful Gate, so he could beg from the people going into the Temple.
3 When he saw Peter and John about to enter, he asked them for some money.
4 Peter and John looked at him intently, and Peter said, "Look at us!"
5 The lame man looked at them eagerly, expecting some money.
6 But Peter said, "I don't have any silver or gold for you. But I'll give you what I have. In the name of Jesus Christ the Nazarene①, get up and② walk!" / ①Or Jesus Christ of Nazareth ②Some manuscripts omit get up and
7 Then Peter took the lame man by the right hand and helped him up. And as he did, the man's feet and ankles were instantly healed and strengthened.
8 He jumped up, stood on his feet, and began to walk! Then, walking, leaping, and praising God, he went into the Temple with them.
9 All the people saw him walking and heard him praising God.
10 When they realized he was the lame beggar they had seen so often at the Beautiful Gate, they were absolutely astounded!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첫 번째 주일입니다. 지난 주일이 ‘성령강림절’이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령강림’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하나님께서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마지막 날’에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서기 33년 어느 날, 오후 3시쯤이었습니다. 그 시간은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기도하기 위해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성전으로 올라가는 문이 여러 개가 있었지만, 사람들은 ‘아름다운 문 (the beautiful gate)’을 제일 많이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문 앞에 기도하러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는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걷지 못했기 때문에 누군가가 날마다 그 시간에 이 사람을 메고 와서 그 자리에 앉혀 놓았던 것입니다. 마치 물건처럼, 저녁에는 누군가가 이 사람을 메고 가서 어디에 들여 놓았을 것입니다.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아무 것도 새로울 것이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새로울 것이 없는 평범한 것이라도 그 일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면 그 평범한 것이 비범한 것이 됩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개입 (God’s intervention)’이라고 합니다. 새로울 것이 없는 ‘평범(平凡)한 (ordinary)’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서 개입해 들어오시면 ‘비범(非凡)한 (extraordinary)’ 것이 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비범한 삶’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내 삶에 개입해 들어오시기를 열심이 기도하고, 열심히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베드로와 요한, 두 사람이 그 시간에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성전 문 앞에 앉아 있던 이 사람이 손을 벌리며 돈을 좀 달라고 구걸을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 사람을 눈 여겨 보면서, “우리를 보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Peter and John looked at him intently, and Peter said ‘Look at us’”라고 나와 있습니다. ‘intently’라는 말은 ‘강렬하게, 뚫어지게, 시선을 고정하고, 주목하여’라는 뜻입니다. 위에서도 말씀 드렸습니다. 왜 그 날 그 시간에 두 사람은 성전 문 앞에 앉아 구걸하는 이 사람을 그런 눈을 바라 봤을까요? 아니, 그보다 나머지 제자들은 그 시간에 어디에 있고, 베드로와 요한 두 사람만 기도하러 왔을까요? 바쁜 일이 있었을 수도 있고, 피치 못한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 두 사람은 그 시간에 기도하려고 성전에 올라가다가 이 사람과 눈이 마주친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이 일이 우연처럼 보일 수도 있고, 별 의미 없는 일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작고 사소한 일 속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보시오!”라는 두 사도의 단호한 말에 이 사람은 “무언가 얻을 것을 기대하면서 두 사람을 쳐다보았습니다 (The lame man looked at them eagerly, expecting some money., 5절)”저는 이 순간이 바로 이 불쌍한 사람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6절) “I don't have any silver or gold for you. But I'll give you what I have. In the name of Jesus Christ of Nazareth, get up and walk!” (New Living Translation)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그 사람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 걷지 못하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껑충껑충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는, 이 기적 속에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 (God’s intention and purpose)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서기 33년 어느 날 오후 3시에 유대인들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던 그 때 일어났던 이 기적은 우연히 어쩌다가 일어난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일어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몇 년 전에 한국을 방문하면서 비행기 안에서 읽을 책을 한 권 가지고 갔습니다. 그 책이 톰 라이트 (Tom Wright)가 쓴 “톰 라이트가 묻고 예수가 답하다 (Simply Jesus)”라는 제목의 책이었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정말 소름이 끼치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쳐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톰 라이트가 이렇게 말합니다. “베데스다 연못은 유대인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양의 문 (Ths Seep Gate)’ 바로 옆에 있는 문입니다. 베데스다 연못은 성전 바로 앞에 있는 연못입니다. 여기에 병자들이 누워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38년된 병자를 고치심으로 성전의 무능함을 만천하에 드러내신 것입니다. 성전이 할 수 없고, 바리새인들, 제사장들, 율법학자들이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할 수 있다고, 버젓이 성전 앞에서, 공개적으로 또 의도적으로 (intentionally) 38년된 병자들 고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기적 역시 ‘아름다운 문’ 앞에서, 바로 성전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일어났습니다. 사도들을 통해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났습니다. 삽시간에 이 소문이 예루살렘에 퍼졌습니다. 사도들은 이 소문을 듣고 모여 온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이 이 사람이 일어나 걷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3:16) 이 사람에게 일어난 이 기적은 복음을 전파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바로 성전 문 앞에서 일어난 이 기적에 대한 소문은, 편협한 유대교에 대한 소문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에 대한 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같은 말씀을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던 사람의 입장에서 말해 볼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그 시간부터 우리의 삶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우리의 절망도, 우리의 아픔도, 우리의 불행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부터 의미가 달라집니다. 걷지 못했던 한 불행한 사람의 이야기가 이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And we know that God causes everything to work together for the good of those who love God and ar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for them).” (로마서 8:28) 이 말씀은 다른 사람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불행한 이야기도 전혀 다른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이 기적이 처음으로 예수님 없이, 사도들을 통해서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모든 기적은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하나님께로 돌아간 후에 처음으로 이 기적이 사도들을 통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내 이름으로 세상에 나가서)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복음 10:8)”라고 말씀하셨고, 여러 차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세상에 보낸다.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요한복음 20:21-2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걷지 못하는 이 사람이 일어나 걷게 된 기적이 성령강림절 후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아버지께로 가면 곧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내가 하는 일을 너희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라 (요한복음 14: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인 되리라 (사도행전 1:8)”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대로 사도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읽을 때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을 믿는 나에게 이런 능력이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런 능력이 오늘 나에게 있고, 우리에게 있습니다. 다만 이런 능력이 일상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것을 경험하지 못할 뿐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때 어느 한 곳에도 예수님께서 개인적인 목적으로 능력을 드러내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내 속에 있는 능력을 드러내라고 하는 요구를 사탄의 음성이라고 생각하고 경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정은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자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만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사용하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만일 그날 베드로와 요한이 사적(私的)인 목적으로 능력을 드러내려고 했더라면 아무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 확실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밖에 없다 (6절)”고 선언하였습니다.
오후 3시에 무심코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던 사람들이 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이라면 늘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면서 봤던 ‘아름다운 문’ 옆에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 일어나 걸은 것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사람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이 일로 인해 크게 놀라며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When they realized he was the lame beggar they had seen so often at the Beautiful Gate, they were absolutely astounded!” (10절) ‘astound’라는 말은 놀라움으로 완전히 압도 당했다는 뜻입니다.
삽시간에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 두 사람을 보려고 몰려들었습니다. 이 때 베드로와 요한 두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여러분, 왜 이 일로 놀라십니까? 왜 그런 눈으로 우리를 보고 계십니까? 우리의 능력이나 우리의 경건함 때문에 이 사람이 걸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믿음 때문에, 여러분이 보고 아는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과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 이 사람이 완전한 치료를 받은 것입니다.” (사도행전 3:12, 16)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I always pray with joy being confident of this, that He who began a good work in you will carry it on to completion until the day of Christ Jesus (나는 늘 기쁨으로 확신을 가지고 여러분 모두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마지막 그 날까지 그 모든 선한 일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1:6)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선한 일 (a good work)’을 시작하셨고, 그 선한 일을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소명 (calling)’이라고 합니다. 빌립보서의 말씀을 잘 보십시오. ‘소명’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소명’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믿음과 부르심에 대한 순종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그의 능력을 드러내는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왜 내 안에 능력이 없다고 단언합니까? 내 안에 ‘착한 일’을 계속해서 이루어 나가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필요한 때에 하나님을 우리를 능력의 통로로 사용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