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1/2019 | 성령강림절 후 여섯째 주일
유럽 대륙으로 건너 간 복음 (The Gospel Spread Across To The European Continent)
김태환 목사
사도행전 16:6-15
6 그들이 아시아 지방에서 복음 전하는 것을 성령께서 막으셨기 때문에 바울과 그 일행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두루 다녔습니다.
7 그들은 무시아 지방 가까이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영이 허락하지를 않았습니다.
8 그래서 그들은 무시아를 지나서 드로아로 내려갔습니다.
9 바울은 밤에 어떤 마케도니아 사람이 바울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 주십시오”라고 애원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본 뒤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고 확신하고는 즉시 마케도니아로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11 우리는 배를 타고 드로아를 떠나 곧장 사모드라게로 갔다가 이튿날, 네압볼리로 갔습니다.
12 다시 네압볼리를 떠나서 로마의 식민지요, 마케도니아 지방의 중심 도시인 빌립보로 갔습니다. 우리는 며칠 동안, 그 곳에서 머물렀습니다.
13 우리는 안식일에 기도처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 성문 밖 강가로 갔습니다. 우리는 그 곳에 앉아, 모여든 여자들에게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4 그 여자들 중에 두아디라라는 도시에서 온 루디아라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루디아는 자주색 옷감 장수였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루디아가 바울의 말을 귀담아 들을 수 있도록 주님께서 그녀의 마음을 여셨습니다.
15 루디아와 그 집안 식구들이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루디아는 “제가 참으로 주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저희 집에 오셔서 머물러 주십시오”라고 간청하면서 우리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6 Next Paul and Silas traveled through the area of Phrygia and Galatia, because the Holy Spirit had prevented them from preaching the word in the province of Asia at that time.
7 Then coming to the borders of Mysia, they headed north for the province of Bithynia①, but again the Spirit of Jesus did not allow them to go there. / ①Phrygia, Galatia, Asia, Mysia, and Bithynia were all districts in what is now Turkey
8 So instead, they went on through Mysia to the seaport of Troas.
9 That night Paul had a vision: A man from Macedonia in northern Greece was standing there, pleading with him, "Come over to Macedonia and help us!"
10 So we① decided to leave for Macedonia at once, having concluded that God was calling us to preach the Good News there. / ①Luke, the writer of this book, here joined Paul and accompanied him on his journey
11 We boarded a boat at Troas and sailed straight across to the island of Samothrace, and the next day we landed at Neapolis.
12 From there we reached Philippi, a major city of that district of Macedonia and a Roman colony. And we stayed there several days.
13 On the Sabbath we went a little way outside the city to a riverbank, where we thought people would be meeting for prayer, and we sat down to speak with some women who had gathered there.
14 One of them was Lydia from Thyatira, a merchant of expensive purple cloth, who worshiped God. As she listened to us, the Lord opened her heart, and she accepted what Paul was saying.
15 She was baptized along with other members of her household, and she asked us to be her guests. "If you agree that I am a true believer in the Lord," she said, "come and stay at my home." And she urged us until we agreed.
바울과 바나바는 제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2차 전도여행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상치 않았던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친히 이방인 선교를 위해서 예루살렘 공의회를 준비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 공의회’의 편지를 가지고 안디옥으로 돌아왔습니다. 제 2차 선교 여행을 준비하던 어느날,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큰 논쟁이 벌어집니다. 성경에는 “두 사람이 심히 다투어 두 사람이 갈라서게 되었다 (Their disagree¬ment was so sharp that they separated, 사도행전 15:39)”고 했습니다. 그 때부터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따로 전도여행을 합니다. 바울과 갈라선 바나바의 활약상은 아쉽게도 사도행전에 나오지 않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바울에게 초점을 맞추고,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더욱 조심해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시리아 (Syria)와 길리기아 (Cilicia)를 거쳐 아시아 (Asia)로 가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 길이 막힌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성령께서 그 길을 막으셨기 때문에 (because the Holy Spirit had prevented them from preaching the word in the province of Asia at that time, 6절)’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아시아로 들어가지 못하고 ‘부르기아 (Phrygia)’와 ‘갈라디아 (Galatia)’를 거쳐 ‘무시아 (Mysia)’로 갔다가 북쪽 내륙 ‘비두니아 (Bithynia)’로 가려고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성령께서 그 계획을 막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예수의 영이 그곳으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but again the Spirit of Jesus did not allow them to go there, 7절)”고 했습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바울과 실라는 ‘무시아’의 항구도시 ‘드로아 (Troas)’에서 잠을 자게 됩니다.
여러분, 이런 성경 말씀을 읽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거룩하고, 참되며,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의 말씀이다. 그분께서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다....내가 네 앞에 문을 열어 두었으니, 아무도 그 문을 닫지 못할 것이다 (This is the message from the one who is holy and true, the one who has the key of David. What he opens, no one can close; and what he closes, no one can open....I have opened a door for you that no one can close).” (요한계시록 3:7-8)
하나님께서 닫으신 문은 아무도 열 수가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문을 억지로 열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문을 열어 주신다는 것을 믿고 기다립니다. 성경에 ‘발람의 길 (the footsteps of Balaam, 베드로후서 2:15)’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온 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때 모압 (Moab)이라는 나라를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그 때 모압의 왕은 ‘발락 (Balak)’이라는 사람이었는데, 발락은 이스라엘 민족이 모압 땅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발람’이라는 신통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불러서 이스라엘 민족을 저주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발람’에게 백지 수표를 주면서 돈은 얼마든지 줄 수 있으니 와서 이스라엘 민족을 저주하라고 합니다. 여차저차해서 결국 ‘발람’은 ‘발락’이 보낸 사람들을 따라갑니다. ‘발람’은 입으로는 “발락 왕이 은과 금으로 가득 차 있는 그의 집을 준다 해도, 나는 내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그 민족을 저주하지 말라고 하시는 명령을 어길 수 없습니다 (민수기 22:18)”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의 마음은 벌써 발락이 제시하는 돈의 유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시켜 ‘발람’의 앞을 가로 막았습니다. 그 때 ‘발람’은 나귀를 타고 좁은 담장 길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나귀의 눈에 하나님의 천사가 칼을 들고 길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귀가 천사의 칼을 피하려고 담장에 바싹 붙는 바람에 타고 있던 ‘발람’의 발에 상처가 났습니다. 화가 난 ‘발람’이 나귀를 때립니다. 나귀가 다시 길을 가는데, 아주 좁은 길이 나왔습니다. 이번에도 나귀의 눈에는 하나님의 천사가 앞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귀는 피할 길이 없어 가다 말고 털썩 주저 앉았습니다. 화가 난 ‘발람’이 또 나귀를 때립니다. 그랬더니 나귀가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를 때립니까?” 하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화가 난 ‘발람’은 “네가 길을 제대로 가지 않으니까 때리는 것이 아니냐?” 나중에 하나님의 천사가 ‘발람’에게 말합니다. “네가 하는 일이 악하기에, 내가 너를 막으려고 온 것이다. 만약 나귀가 비켜서지 않았다면, 너는 벌써 내 칼에 죽었을 것이다.” (민수기 22:32-33)
이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발람’이 가는 길을 기뻐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발람’은 나귀가 말을 하는 이 황당한 일을 겪으면서 ‘발람’은 하나님께서 내가 가는 길을 막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포기할 수 없는 욕심 때문에 계속 그 길을 갑니다. 성경은 이것을 ‘발람의 길’이라고 합니다. 그 길이 파멸의 길인지 모르고 계속해서 그 길을 갑니다. 이 말씀 속에 ‘발람의 길’을 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한 길을 막으시는 것은 다른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 속에서 한 문을 닫으시고 다른 문을 열어 주시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이것은 제가 지금까지 성경을 읽으면서 얻는 확신입니다. 그리고, 저의 삶 속에서도 이 문을 닫으시고 다른 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했습니다.
아시아 선교의 문을 막으신 하나님은 유럽 선교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길이 막혀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바울에게 마케도니아 사람에 대한 환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나타나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 주십시오 (9절)”라고 애원하는 환상을 본 것입니다. 이 환상을 본 바울은 이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유럽 선교의 문을 열어 주시는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유럽 선교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무슨 증거가 있습니까?” 저는 성경 속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나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세요. “바울이 그 환상을 본 뒤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고 확신하고는 즉시 마케도니아 (Macedonia)로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우리는 배를 타고 드로아 (Troas)를 떠나 곧장 사모드라게 (Samothrace)로 갔다가 이튿날, 네압볼리 (Neapolis)로 갔습니다. 다시 네압볼리를 떠나서 로마의 식민지요, 마케도니아 지방의 중심 도시인 빌립보 (Philippi)로 갔습니다. 우리는 며칠 동안, 그 곳에서 머물렀습니다.” (10-12절) 그렇게 꽉 막혀 있던 길이 확 뚫리지 않습니까? 일사천리(一瀉千里)로 길이 열립니다. 또 하나의 증거는, 하나님께서 이미 빌립보 선교를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선교 (The Mission of God)’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 (Yahweh-Yireh, 창세기 22:14)’이신 하나님은 때가 되어 아시아 선교를 막으시고 유럽 선교의 문을 여셨습니다.
지금까지 아시아에 머물던 복음이 마케도니아 지방의 중심 도시 ‘빌립보 (Philippi)’에 전해졌습니다. 몇 년 전 터키 성지순례를 하면서 ‘에게 바다 (Aegean Sea)’를 보았습니다. ‘에게 바다’는 해협(海峽, straits)이니까요. 멀리 마케도니아가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좁은 바다입니다. 저희 성지 순례팀은 소형 배를 타고 ‘에게 바다’를 한바퀴 돌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느껴졌는지 모르지만, 그 때 제 마음은 형언할 수 없는 감동으로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2,000년 전에 바로 이 ‘에게 바다’를 건너서 마케도니아 빌립보로 건너갔겠구나 생각하니까 정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여러분, 이 글을 한번 보십시오. “A Christian historian said that the ship that carried the Apostle Paul carried the history of the world in it. Arnold Toynbee said in his ‘A Study of History’ that, when a wooden boat carried the Apostle Paul from Troas of Asia Minor to Macedonia, it moved the center of the world from the birthplace of civilization to Mediterranean and to the European Continent (한 기독교 역사가는 사도 바울을 태웠던 그 배는 그 배 안에 세계 역사를 태우고 있었다고 했다.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작은 목선이 소아시아 드로아에서 사도 바울을 태웠을 때, 세계의 중심은 문명의 발상지로부터 지중해와 유럽 대륙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Our Daily Bread, 9/11/2011) 토인비의 말은, 복음이 유럽 대륙에 전해 짐으로 세계 역사가 바뀌었다는 것 아닙니까? 그 때까지 변방이었던 유럽 땅이 세계의 중심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 아닙니까? 선교 역사에서 뿐만 아니라 문명사적으로 볼 때, 빌립보 선교는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읽다 보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일정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이 내가 원하는 뜻이라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한 쪽 문을 닫으시고 다른 문을 열어 주십니다. 사도 바울이 마케도니아로 건너가는 배를 탔을 때, 모든 일이 순탄하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안식일에 유대인들이 모이는 기도처를 찾았을 때 그곳에 이미 ‘루디아 (Lydia)’라는 한 여자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루디아가 바울의 말을 귀담아 들을 수 있도록 주님께서 그녀의 마음을 여셨습니다 (One of them was Lydia from Thyatira, a merchant of expensive purple cloth, who worshiped God. As she listened to us, the Lord opened her heart, and she accepted what Paul was saying).” (14절)
소름 돋는 일이 있습니다. 바울이 루디아에게 물었을 것입니다. “자매님은 고향이 어디세요?” “예, 저는 두아디라 사람이예요.” “뭐라고요? 두아디라 출신이라고요?” 여러분, 두아디라가 어디 있는지 아세요? 소아시아에 있습니다. 바울이 들어가려고 했다가 들어가지 못한 곳에 있습니다. 뜻하지 않게 빌립보에서 두아디라 출신 루디아를 만난 것입니다. 모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든든한 두아디라 출신 루디아를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이렇게 계속됩니다. 여차여차해서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시아 선교의 문을 닫으시고 유럽 선교의 문을 열어 주셨는데, 그리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 같았는데,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히다니 말이 됩니까?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것 밖에 없는데, 감옥에 갇히다니, 이런 일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일어났다면 어떻게 이 일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빌립보 감옥의 이름 없는 간수 한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그 간수 한 사람을 구원하는 과정 속에서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수감되고 고문을 받습니다. 바울과 실라를 집에 데리고 가서 “상처를 씻어 주었다 (16:33)”는 말씀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많은 고문을 당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순종하는 것이 곧 우리에게 고난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고난을 겪게 된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말 속에 지금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고난과 절망과 아픔과 실패와 기타 여러가지 문제들을 해석하는 열쇠가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러면 당신과 온 집안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16:31) 간수와 그 집안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런 성경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고작 그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이런 일들이 있었단 말입니까?”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생각에는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려고 그의 외아들을 이 땅에 보내 주신 분입니다. 자기 아들의 생명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사서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분입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이 바울을 빌립보로 가는 목선을 타게 만들었고, 그 하나님의 마음이 있었기에 수많은 유럽 대륙의 사람들이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럽은 유럽 문명을 일으키고, 세계사의 중심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