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2019 | 성령강림절 후 여덟째 주일
네가 로마에서 나를 증거해야 하리라 (You Must Testify About Me In Rome)
김태환 목사
사도행전 26:24-32
24 바울이 이런 식으로 변명하자, 베스도가 바울을 향해 큰소리로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너의 많은 학식 때문에 네가 미쳐 버렸다”라고 말했습니다.
25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베스도 각하, 저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제가 드린 말은 다 사실입니다. 전부 맑은 정신으로 하는 말입니다.
26 아그립바 왕이 이 사실을 알고 계시므로제가 거리낌없이 말씀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일은 어느 한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하나도 왕이 모르실 리가 없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27 아그립바 왕이시여, 예언자들의 말을 믿으십니까? 믿으시는 줄 압니다.”
28 그러자 아그립바 왕이 바울에게 말했습니다. “그토록 짧은 시간에 나를 설득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29 바울이 대답했습니다. “짧은 시간이든 긴 시간이든 왕뿐만 아니라 지금 제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결박된 것 말고는 저처럼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30 그러자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과 버니게를 비롯해서 그들과 함께 앉아 있던 사람들이 다 일어났습니다.
31 그들은 그 방을 나갔습니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하면서 “이 사람은 사형을 당하거나 감옥에 갇힐 만한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32 아그립바는 베스도에게 “이 사람이 황제에게 상소하지 않았다면, 지금 석방될 수도 있었을 텐데”라고 말했습니다.
24 Suddenly, Festus shouted, "Paul, you are insane. Too much study has made you crazy!"
25 But Paul replied, "I am not insane, Most Excellent Festus. What I am saying is the sober truth.
26 And King Agrippa knows about these things. I speak boldly, for I am sure these events are all familiar to him, for they were not done in a corner!
27 King Agrippa, do you believe the prophets? I know you do?"
26:28 Agrippa interrupted him. "Do you think you can persuade me to become a Christian so quickly?"① / ①Or "A little more, and your arguments would make me a Christian."
29 Paul replied, "Whether quickly or not, I pray to God that both you and everyone here in this audience might become the same as I am, except for these chains."
30 Then the king, the governor, Bernice, and all the others stood and left.
31 As they went out, they talked it over and agreed, "This man hasn't done anything to deserve death or imprisonment."
32 And Agrippa said to Festus, "He could have been set free if he hadn't appealed to Caesar."
기독교 역사에서 볼 때 가장 뛰어난 ‘변증론자’는 ‘저스틴 (Justin Martyr, AD 100-165)’이라고 말합니다. 젊었을 때 ‘저스틴’은 플라톤 (Plato, BC 427-347)의 철학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스틴’은 에베소 근처에 있는 해변에서 한 유대인 노인을 만나게 됩니다. 이 노인은 ‘저스틴’이 대답할 수 없는 많은 질문을 했고, ‘저스틴’은 이 질문에 나름대로 대답을 했습니다. ‘저스틴’의 말을 들은 이 노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대는 행함과 사랑이 없는 말쟁이에 지나지 않는 것 같소. 그대는 선의 실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영리한 논쟁가, 교묘한 궤변론자가 되려는 것 같소. 성경에 나오는 히브리 예언자들을 연구해 보시오. 하지만,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지혜와 계시를 주시기 전에는 이것들을 깨달을 수 없을 터이니 그대 앞에 광명의 문들이 열리게 해 달라고 기도 하시오.” 저스틴의 눈에 이 노인이야 말로 참된 철학을 아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날 이후 ‘저스틴’은 구약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을 성취한 구원자시요, 진리라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는 시편 22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발견한 최초의 인물이었고, 이사야 52장과 53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발견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플라톤의 철학에 깊이 빠져 있었지만, 그의 철학적인 지식은 나중에 복음을 변증하는데 요긴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그는 당시의 크리스천들이 비난과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확신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저런 크리스천들이 죄악과 쾌락 속에 빠져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확신하면서, 기독교는 플라톤의 철학을 넘어섰다고 확신했다고 합니다.
저스틴의 기독교 변증은 그의 저서 ‘The First Apology of Justin Martyr (순교자 저스틴의 첫 번째 변증)’ ‘The Second Apology of Justin Martyr (순교자 저스틴의 두 번째 변증)’이라는 두 권의 책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로마의 황제들을 대상으로 기독교를 변호했습니다. 그는 안토니누스 피우스 (Antoninus Pius, AD 86-161) 황제 때 로마에 학교를 세우고 제자들에게 기독교 변증론을 가르쳤고, 기독교를 공격하는 사상가들과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arcus Aurelius, AD 121-180)’ 황제 때 다른 신들에게 숭배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참형을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그를 ‘순교자 저스틴’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저스틴’을 1세기의 기독교 변증론자라고 말하는데, ‘저스틴’ 이전에 살았던 사도 바울 역시 탁월한 기독교 변증론자였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붙여 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말은 ‘복음의 변증론자 (an apologist for the gospel)’라는 말입니다. 그는 아테네에서 철학자들과 기독교의 진리에 대하여 토론했고 (사도행전 17:22-31),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부활에 대하여 설명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전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줄 수 없다.” 저는 이 말이 바울에게 꼭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변증론자들은 성경의 진리를 반대하는 사상이나 다른 이단 사상이 교회로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기독교의 진리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기독교를 변호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만큼 기독교의 교리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는 유대교에 정통했고, 그 시대의 철학에도 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믿었으니, 그분 안에서 계속 살아가십시오. 그분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그 위에 여러분의 삶을 계획하시길 바랍니다.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늘 감사한 생활을 하십시오. 헛된 말과 거짓 철학에 속아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것들은 모두 사람의 생각에서 비롯되었으며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결코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므로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모든 성품은 이 땅에 계신 그리스도께 완전히 나타난 바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진정으로 완전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분은 모든 지배자와 권세자들의 머리가 되시는 분입니다.” (골로새서 2:6-10) “And now, just as you accepted Christ Jesus as your Lord, you must continue to follow him. Let your roots grow down into him, and let your lives be built on him. Then your faith will grow strong in the truth you were taught, and you will overflow with thankfulness. Don't let anyone capture you with empty philosophies and high-sounding nonsense that come from human thinking and from the spiritual powers of this world, rather than from Christ. For in Christ lives all the fullness of God in a human body. So you also are complete through your union with Christ, who is the head over every ruler and authority.” (Colossians 2:6-10, New Living Translation) 당시에 교회로 침투해 들어오는 스토익 철학 사상 (Stoic philosophy)이나 ‘영지주의 (Gnosticism)’로부터 기독교의 진리를 변호하는, 이 보다 더 완벽한 변증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바울의 탁월한 변증, 하나 더 볼까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여러분은 이 세상의 헛된 규칙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처럼 행동하십니까? 왜 아직도 ‘이것을 붙잡으면 안 된다’, ‘저것은 맛보면 안 된다’, ‘만지지 마라’ 하는 등의 규칙에 얽매여 있는 것입니까? 이런 규칙들은 먹으면 없어지고, 쓰면 사라지고 마는 세상 것들에 대한 인간적인 규칙이요, 가르침일 뿐입니다.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훌륭해 보일지 모르나, 그것은 다 사람들이 만든 종교적 관습들입니다. 거짓된 겸손으로 자기 몸을 괴롭히기만 할 뿐, 마음속에 파고드는 악한 욕망과 죄를 이겨 내게 할 수는 없습니다.” (골로새서 2:20-23) “You have died with Christ, and he has set you free from the spiritual powers of this world. So why do you keep on following the rules of the world, such as, ‘Don't handle! Don't taste! Don't touch!’? Such rules are mere human teachings about things that dete-riorate as we use them. These rules may seem wise because they require strong devotion, pious self-denial, and severe bodily discipline. But they provide no help in conquering a person's evil desires.” (Colossians 2:20-23, New Living Translation)
“변증론자로서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바울은 체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자리에서나 자신의 체험을 기꺼이 사람들과 나누었습니다. “나는 유대교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했을 뿐 아니라, 아예 없애 버리려고 했습니다. 나는 나와 나이가 비슷한 다른 유대인들보다 더 열심히 유대교를 믿었고, 그 누구보다도 조상들의 전통을 열심히 지켰습니다.” (갈라디아서 1:13-14) “저는 어느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조건을 더욱 많이 갖춘 사람입니다. 나는 태어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나는 베냐민 지파의 자손이며, 히브리인 중에서도 히브리인이며,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바리새인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따르는 데 있어서는 그 어느 누구도 허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완벽한 삶을 살았습니다.” (빌립보서 3:4-6) “나는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위임 받아 다마스커스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을 향해 가다가 정오쯤 되어 하늘에서 밝은 빛이 저와 제 일행을 둘러 비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에 저는 히브리 말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도행전 26:12-14) 바울이 아그립바 왕 (King Agrippa) 앞에서 했던 변명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나를 따로 세우셔서 은혜로 나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내게 보이셨습니다.” (갈라디아서 1:15-16) 바울에게 있어서 체험은 그를 어떤 고난의 환경 속에서도 굳건하게 지켜주는 버팀목이었습니다.
둘째로, 바울은 매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이 말은 그의 말에 사람을 설득하는 힘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바울의 변증을 들었던 총독 베스도 (Governor Festus)는 바울이 매우 유식한 사람인 것을 알고 “바울, 그대는 미쳤구나. 그대의 많은 학식이 그대를 미치게 했구나 (Paul, you are insane. Too much study has made you crazy) (사도행전 26:24)!”라고 큰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같은 자리에서 바울의 변명을 들었던 아그립바 왕은 “그대는 이 짧은 시간에 나를 설득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Do you think you can persuade me to become a Christian so quickly)?” (사도행전 26:28) 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변증하는 바울의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흥분하지 않은 차분한 목소리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확신에 찬 얼굴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듣는 사람들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말에 설득되고 있었을 것입니다.
셋째로, 바울은 변증론자로서 자신의 삶을 사랑했습니다. “나는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 곧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나의 목숨을 조금도 아깝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But my life is worth nothing to me unless I use it for fin-ishing the work assigned me by the Lord Jesus--the work of telling others the Good News about the wonderful grace of God).” (사도행전 20:24)
이 말씀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리빙스턴 (David Livingstone, 1813-1873, 영국)입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People talk of the sacrifice I have made in spending so much of my life in Africa. It is emphatically no sacrifice. Say rather it is a privilege (사람들은 내가 아프리카에서 그토록 많은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하여 희생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단호하게 말하지만 이것은 희생이 아닙니다. 특권이라고 말해 주십시오).” 저는 사도 바울 역시 복음의 변증론자로 살았던 자신의 삶에 대하여 리빙스턴과 똑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사도 바울은 1세기의 변증론자였고, 순교자 ‘저스틴’은 2세기의 변증론자였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변증론자들이 있을까요? 예, 많이 있습니다. ‘사이몬 그린리프 (Simon Greenleaf, 1783-1853, 미국)’는 탁월한 그 시대의 기독교 변증론자였습니다. ‘The Testimony of the Evangelists, 1842-1853)’라는 3권의 책을 남겼습니다. ‘C. S. 루이스 (Lewis, 1898-1963, 영국)’ 같은 사람은 보다 최근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The Mere Christianity (단순한 기독교), 1952)’라는 책을 남겼습니다. 무신론자였다가 크리스천이 된 배경을 살려 무신론자들에게 기독교는 어떤 종교인지 설명하는 명저(名著)입니다. ‘나니아 연대기 (The Chronicles of Narnia, 1955-1956에 출판된 7개의 시리즈 소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The Screwtape Letters, 1942)’도 기독교를 변증하는 그의 탁월한 책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역시 기독교 변증론자로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잘못된 사상으로부터, 기독교 이단들로부터, 신은 없다고 하면서 기독교의 진리를 조롱하는 무신론자들의 공격으로부터 기독교의 진리를 변증하는 변증론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세기에 ‘저스틴’과 동시대에 살았던 ‘켈수스 (Celsus)’라는 그리스 철학자는 기독교를 공격했던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부활했다고 하지만, 누가 살아난 것을 보았는가? 미친 여자와 넋이 나간 사람들뿐이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 ‘켈수스’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사람들의 주장으로부터 기독교의 진리를 변호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우리가 크리스천으로 부름을 받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성경에 대하여 모르고, 기독교의 진리를 모른다면 우리는 기독교를 변호할 수 없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