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2/2019 |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은 (III) (To Live As A Christian)
김태환 목사
요한복음 13:12-17
1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신 뒤에, 옷을 입고 다시 자리에 앉으셔서, 그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내가 방금 전에 너희에게 행한 일이 무슨 뜻으로 한 것인지 이해하겠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너희 말이 맞다. 나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14 내가 선생과 주로서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그대로 너희도 행하게 하기 위해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16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종이 자기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그를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한 법이다.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그대로 행하면 너희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쉬운성경)
12 After washing their feet, he put on his robe again and sat down and asked, "Do you understand what I was doing?
13 You call me `Teacher' and `Lord,' and you are right, because that's what I am.
14 And since I, your Lord and Teacher, have washed your feet, you ought to wash each other's feet.
15 I have given you an example to follow. Do as I have done to you.
16 I tell you the truth, slaves are not greater than their master. Nor is the messenger more important than the one who sends the message.
17 Now that you know these things, God will bless you for doing them.” (New Living Translation)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늘 여러분과 세 번째 말씀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냥 주일날 교회 나간다고 크리스천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 활동을 한다고 크리스천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Christian’이라는 말을 사전에 찾아 봤더니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1) ‘a person who exhibits a spirit proper to a follower of Jesus Christ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합당한 정신을 보여 주는 사람)’ (2) ‘a person who professes belief in the teachings of Jesus Christ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 (신념)을 고백하는 사람)’ (3) ‘a person who exemplifies in his or her life the teachings of Christ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 (말씀)을 그의 삶에서 증명할 수 있는 사람) 비록 사전에 나오는 간단한 정의 (definition)이지만, ‘크리스천’이 어떤 사람들인지 핵심적인 내용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 속에 우리가 따라야 하는 신념이나 가치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믿음, 희망, 사랑, 기쁨, 평화, 선 (goodness), 자비 (mercy), 동정 (compassion), 이타심 (利他心, unselfishness), 겸손 (謙遜) (humility), 섬김 (service), 용서 (forgiveness), 화해 (reconciliation), 십자가, 고난 (suffering), 회개 (repentance), 거듭남 (born again), 구원 (salvation), 천국 (the Kingdom of God), 이런 것들이 크리스천들이 믿음을 가지고 따라야 할 가치들 (values)입니다.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이런 가치들을 따르지 않는다면 죄송하지만 크리스천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예전에 ‘전도폭발 훈련’에 갔다가 들은 이야기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전쟁에 나갔습니다. 가까스로 그 전쟁에 승리했습니다. 비록 전쟁에 이기긴 했지만 자기 군사들에게도 많은 희생이 있었습니다. 알렉산더는 그 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운 군인들에게 상을 주었습니다. 알렉산더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전쟁 중에 도망치는 것이었습니다. 알렉산더 앞에 전쟁 중에 도망쳤던 앳되게 보이는 한 청년이 붙들려 왔습니다. 이 청년은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습니다. 알렉산더는 “이 어린 아이가 전쟁에 나왔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얘야,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습니다. 이 청년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알렉산더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뭐라고, 네 이름이 뭐라고?” 놀란 이 청년은 다시 대답했습니다. “제 이름은 알렉산더입니다.” 알렉산더는 이 청년의 멱살을 잡고 “야, 이 놈아, 네 이름을 바꾸든지, 아니면 당장 네 태도를 바꿔라!” 이렇게 화를 냈다고 합니다.
우리도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을 바꿔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보여 주는 가치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 가치들을 실천하지 않으려면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바꿔야 합니다. 목회 경험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만하면 교회생활을 잘한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결코 없어지지 않는 이기적인 모습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목숨까지는 몰라도 자기 중심적인 이기적인 삶을 버려야 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If any of you wants to be my follower, you must turn from your selfish ways, take up your cross daily, and follow me).” (누가복음 9:23)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selfish ways (이기적인 삶의 방식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삶의 방식’에서 돌아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계속 예수님을 따라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hypocritical Christians (위선적인 크리스천)’이 됩니다. 결코 진실한 크리스천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잘 아시겠지만,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합니다. 또 무슨 일을 보면든지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라 (You must turn from your selfish ways daily)”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중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시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더니,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수건으로 닦아 주셨습니다. 누가 말릴 틈도 없이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제자 베드로의 발을 씻기려고 하는데, 베드로가 강력하게 예수님을 말렸습니다. “제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 베드로의 말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네 발을 씻기지 않으면, 너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이 말에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주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된다고요? 그럼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십시오!”
우리는 그 당시 유대나라의 풍습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 말씀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유대나라는 기후가 건조합니다. 비가 내리는 우기(雨期)가 잠깐 있긴 합니다만, 그 외에는 비가 오지 않는 건조한 기후입니다. 그래서 밖에 외출하고 들어오면 손과 발이 먼지 투성이가 되기 때문에 손발을 씻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여기에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해서 외출하고 돌아 오면 반드시 발을 씻고,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도록 율법에 규정해 놓았습니다. 이것을 ‘유대인의 정결예식 (the Jewish custom of purification)’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집에나 손과 발을 씻을 수 있는 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2:6). 주인이 외출하고 돌아오면 그 집 하인들이 주인의 발을 씻어 주는 것이 그 당시의 풍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말씀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발을 씻어준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이 점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방금 전에 너희에게 행한 일이 무슨 뜻으로 한 것인지 이해하겠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너희 말이 맞다. 그런데, 내가 너희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그대로 너희도 행하게 하려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너희가 이것을 알고 그대로 행하면 복이 있을 것이다 (Do you understand what I was doing? You call me `Teacher' and `Lord,' and you are right. I, your Lord and Teacher, have washed your feet, you ought to wash each other's feet. I have given you an example to follow. Do as I have done to you. If you know these things, you are blessed if you do them).” (12-15, 17절)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다”고 생각 하면서 가볍게 지나갑니다.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이 일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습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또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은 ‘섬김 (service)’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섬김’은 제자가 선생의 말을 씻어주는 ‘섬김’이 아닙니다. 또 하인 (servant)이 주인 (Master)의 발을 씻어주는 ‘섬김’이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선생이 제자의 발을 씻어주는 ‘섬김’입니다. 주인이 하인의 발을 씻어주는 ‘섬김’입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행해지고 있던 풍습, 그 당시에 행해지던 관습을 혁신적이라고 할 만큼 완전히 뒤집어 엎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섬김’을 실천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본을 따라 ‘섬김의 삶’을 실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남김 없이 다 내주고 빈 손으로 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사용하던 방에 이런 글이 붙어 있었다고 합니다. “성공이 아니라 섬김입니다 (Not success, but service).” 왜 이 사람이 이런 삶을 살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독일 사람이, 남자도 아닌 여자가, 아무 연고도 없는 조선이라는 미지 (未知)의 나라에 와서 이렇게 남김 없이 자신을 내 줄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 살겠다는 이유 밖에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쉐핑 (Elizabeth Shepping, 1880-1934, 독일)’입니다. 32살의 나이에 조선에 들어와 22년 간 조선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54살의 나이에 영양실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또 한 사람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데이빗 리빙스턴 (David Livingstone, 1813-1873, 영국)입니다. 그는 평생 아프리카의 탐험가로, 선교사로 살았습니다. 그 당시 유럽은 아프리카를 전혀 몰랐습니다. 그저 미개한 땅으로만 알았습니다. 리빙스턴의 노력으로 아프리카의 지도가 그려질 정도였습니다. 그는 글래스고 (Glasgow) 대학에서 신학과 의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얼마든지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는데, 아프리카로 건너가 60살의 나이에 아프리카 ‘잠비아 (Zambia)’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그가 고국을 방문할 때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왜 당신은 자신의 행복을 버리고 그 같은 삶을 선택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I am a missionary, heart and soul. God had an only Son and He was a missionary and a physician, I am a poor, poor imitation of Him, or wish to be. In this service I hope to live; in it I wish to die (나는 마음도 영혼도 선교사입니다. 하나님께 외아들이 있었는데, 그분 역시 선교사이셨고, 의사였습니다. 나는 겨우 겨우 그분을 흉내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난 그분을 닮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같은 섬김을 계속하면서 살다가 죽기를 원합니다).” 또 그는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People talk of the sacrifice I have made in spending so much of my life in Africa. It is emphatically no sacrifice. Say rather it is a privilege (사람들은 내가 나의 생의 많은 시간을 아프리카에서 보냈다고 나의 희생에 대하여 말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것은 전혀 희생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내가 누린 특권이었다고 말해 주십시오).”
‘섬김 (service)’의 삶은 주님을 따르는 삶의 방식입니다. ‘섬김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이기적인 삶의 방식을 버리고 예수님이 보여 주신 삶의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여기는 사람은 ‘섬김의 삶’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Though he was God, he did not think of equality with God as something to cling to, but made himself nothing, taking the humble position of a servant (그는 하나님이셨지만,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것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고 겸손한 종의 위치를 가지셨습니다).” (빌립보서 2:6-7) 이 말씀이 이해가 되십니까? 자기가 어렵게 소유한 것을 성공의 발판으로, 출세의 기회로 삼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이 말씀을 죽어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잘 이해하고, 주님의 겸손을 닮으려고 하는 사람이 되어야 ‘섬김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손길을 통해서 진정한 ‘섬김의 삶’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이것은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살아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섬김을 받고자 하는 유혹이 생길 때마다 자신들의 발을 씻어 주신 주님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보여 준 섬김의 본을 잘 깨닫고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복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정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정말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이 어떤 길인지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가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은 ‘churchgoer (습관적으로 교회 다니는 사람, a person who goes to church habitually)’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보여 주신 ‘섬김의 삶’을 실천하며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