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2019 |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은 (V) (To Live As A Christian)
김태환 목사
디모데전서 4:12-16
12 그대가 젊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그대를 업신여기지 않게 하고, 믿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범을 보이십시오. 말과 행동, 사랑과 믿음, 그리고 순결하고 깨끗한 삶을 통해 사람들에게 본을 보여 주기 바랍니다.
13 내가 갈 때까지 열심히 성경을 읽고 사람들을 권면하며 잘 가르치십시오.
14 그대가 받은 은사를 잊지 말고 잘 사용하십시오. 그것은 교회의 장로들이 그대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할 때, 예언을 통해 그대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15 온 맘을 다해 충성하여, 그대가 발전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십시오.
16 그대는 그대의 삶과 가르침에 주의해서, 늘 올바르게 살고 가르치기에 힘쓰십시오. 그러면 그대 자신뿐 아니라 그대의 말에 귀기울이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쉬운성경)
12 Don't let anyone think less of you because you are young. Be an example to all believers in what you say, in the way you live, in your love, your faith, and your purity.
13 Until I get there, focus on reading the Scriptures to the church, encouraging the believers, and teaching them.
14 Do not neglect the spiritual gift you received through the prophecy spoken over you when the elders of the church laid their hands on you.
15 Give your complete attention to these matters. Throw yourself into your tasks so that everyone will see your progress.
16 Keep a close watch on how you live and on your teaching. Stay true to what is right for the sake of your own salvation and the salvation of those who hear you. (New Living Translation)
오늘은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은’ 시리즈 설교 다섯 번째를 맞이했습니다. 오늘 설교의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은 계속해서 믿음이 성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은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지 않으면 비정상적이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52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더욱 자랐고,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Jesus grew in wisdom and in stature and in favor with God and all the people.” ‘stature’라는 말은 키 (height)라는 뜻도 있지만, ‘the degree of development of a person (한 인격체가 발전하고 성장하는 정도)’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모든 면에서, 신체적인 면에서나, 지적인 면에서나 도덕적인 면에서, 또 감정적인 면이나 정서적인 면에서 훌륭하게 잘 성장해서 모든 사람에게 칭찬의 대상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이 주는 영감이 무엇입니까? 크리스천은 성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누가 썼는지 그 저자를 모른다고 합니다. 신학자들은 히브리서의 기록 연대를 대략 65-70년 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로마에서 대 화재 사건이 64년에 일어난 것을 감안한다면, 히브리서가 기록된 때는 교회가 핍박을 받고 있던 때였습니다. 이 때 히브리서 저자는, 어려움에 처해 있는 신자들에게 우리의 믿음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는 주장을 편지로 씁니다. “여러분은 벌써 오래전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남을 가르칠 만도 한데 아직도 하나님 말씀의 초보적인 원리도 채 이해하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단단한 음식을 먹을 만큼 크지를 못하고 언제까지나 젖만 먹는 갓난 아이에 머물러 있습니다. 젖만 먹는 사람은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단한 음식은 성숙한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그들은 끊임없는 훈련으로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줄 아는 능력을 사람들입니다 (You have been believers so long now that you ought to be teaching others. Instead, you need someone to teach you again the basic things about God's word. You are like babies who need milk and cannot eat solid food. For someone who lives on milk is still an infant and doesn't know how to do what is right. Solid food is for those who are mature, who through training have the skill to recognize the difference between right and wrong).” (히브리서 5:12-14)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히브리서 저자의 안타까운 마음을 생각했습니다. 세상은 날로 험해 가는데, 크리스천들은 여전히 어린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이 사람들이 모진 핍박을 견뎌 낼 것인가?” “과연 이 사람들이 교회를 지켜 낼 것인가?”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고,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할 줄 모르는 이 사람들이 과연 세상에 나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이 될 것인가?” 하는, 히브리서 저자의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집니다.
믿음이 성장한다는 말은 ‘성숙한 크리스천 (a mature Christian)’이 된다는 뜻입니다. 믿음이 자라서 성숙한 믿음을 가져야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고,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능력이야 말로 인생의 가장 큰 자산 (assets)이 아닌가요? 학교에서 공부 잘한다고 해서 이런 능력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공부는 잘하는데,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줄 모르고,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구별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 아닙니까?
오래 전입니다만, 제가 한국에 나갔다가 청년 사역으로 유명하다는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정말 청년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청년들이 그 말씀을 조용하게 듣습니다. 특별한 메시지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설교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설교자가 믿을 만한 곳에서 얻은 정보라고 하면서 이번 주에는 무슨 무슨 주식이 올라가니까 그 주식을 사라고 합니다. 나중에 들은 말입니다만, 그 목사님이 신학을 공부하기 전에 경영학인가 뭔가를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성공에 대한 야망으로 불타 있는 청년들에게 돈을 벌 수 있는 소스를 제공함으로써 청년들의 야망이 타오르도록 기름을 붓고 있었습니다.
돈 많이 벌 수 있는 길을 알려주고, 성공의 길을 알려 주는 일은 교회가 할 일이 아닙니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선과 악,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제가 늘 청년들에게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곳 보스턴에 왔으니 여기서 최고의 학문을 공부하라고요. 보스턴에 하바드와 엠아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스턴에 있는 학교들은 모두 훌륭합니다. 모두 좋은 학교들입니다. 제가 보스턴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하바드 스퀘어에 있는 ‘Episcopal Divinity School’라고 하는 작은 학교에서 한 과목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다른 학교에 비하면 학교 사이즈가 아주 작습니다. 도서관도 작습니다. 그런데,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학교의 커리큘럼을 봤더니 장난이 아닙니다. 과목 별로 그 분야의 최고 신학자들이 와서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보스턴에 있는 학교들이 다 좋고 훌륭합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은 세계 수준의 학문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거짓인지, 구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을 ‘성숙한 크리스천 (a mature Christian)’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성숙한 크리스천’이 될 수 있습니까? 대답은 성경 속에 있습니다. 디모데전서와 후서는 모두 바울이 제자 데모데 (Timothy)에게 쓴 편지입니다. 편지 내용은 목회에 필요한 내용들입니다. 그 내용 중에 목회자로서 디모데 개인에게 쓴 충고의 내용들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 12절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대가 젊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그대를 업신여기지 않게 하고 믿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범을 보이십시오 (Don't let anyone think less of you because you are young. Be an example to all believers in what you say, in the way you live, in your love, your faith, and your purity).” 전에도 한번 그런 질문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디모데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을까요? 제 생각에는 30살을 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바울이 여러가지 충고를 하고 있습니다만, 요약하면, 네가 발전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15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온 맘을 다해 충성하여, 그대가 발전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십시오 (Throw yourself into your tasks so that everyone will see your progress).” 다른 번역성경에는 ‘so that your progress may be evident to all (NASB)’ ‘so that everyone may see your progress (NIV)’라고 나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아, 저 사람이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게,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구나!” 이렇게 눈으로 보아 알 수 있도록 성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세계성만찬주일’입니다. 전 세계에 있는 크리스천교회들이 같은 날을 정해 놓고 성만찬 예식을 갖습니다. 이렇게 성만찬을 하는 이유는 주님의 몸인 빵과 주님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함께 먹으면서 주님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여라 (Do this in remembrance of me) (누가복음 22:19)”고 하셨습니다. ‘remembrance’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 말로 ‘기념’ 혹은 ‘기억’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나를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고 부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내가 너희들에게 한 말을 잊지 말고 실천에 옮겨라, 내가 너희들에게 가르쳐 준 교훈을 잊지 말라고 너희들의 삶에서 나타내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성만찬을 예식을 통해서 기억하고 기념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으심을 전해야 합니다 (For every time you eat this bread and drink this cup, you proclaim the Lord's death until he comes, 고린도전서 11:26).” 여러분, 이것이 주님을 기억하고, 주님을 기념한다는 말의 뜻입니다. 전 세계의 교회들이 주님의 성만찬 예식을 하면서 예수님의 죽음, 십자가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왠지 공허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저에게 생각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I don't have any silver or gold for you. But I'll give you what I have. In the name of Jesus Christ the Nazarene, get up and walk!” 사도행전 3:6에 나오는 유명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 한마디로 예루살렘이 뒤집히고 난리가 났거든요. 1세기의 사도들에게는 ‘내게 있는 것 (what I have)’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세상에 나가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선포했습니다. 정말 부끄럽고 안타까운 것은 오늘 우리에게 사도들이 가지고 있었던 ‘what they have’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부끄럽고 안타깝습니다. 바울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십자가의 진리를 세상에 proclaim하는 것이 성만찬을 갖는 의미라고 말했는데, 오늘 우리 안에서 세상을 향해서 선포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없고, ‘십자가의 메시지’가 없습니다. A. W. 토저 (A. W. Tozer, 1897-1963)의 말이 생각납니다. “We have sold out to carnal methods, carnal philosophies, carnal viewpoint, carnal gadgets and have lost the glory of God in our midst. We are a starved generation that has never seen the glory of God (우리는 세상적인 방법들과 세상적인 철학들과 세상적인 관점과 세상적인 기계들에게 우리 자신들을 팔아 넘겨버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본 적이 없는 허기진 세대입니다).” 토저 목사님의 이 예언자적인 말씀인데, 오늘 우리에게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와 바울이 디모데에게 충고했던 말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성숙한 크리스천이 되어야 한다.” “네가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숙한 크리스천으로 성장해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 (aspiration), ‘strong desire’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에게 이 열망이 있는 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이 열망이 없기 때문에 우리 믿음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고, 우리 안에 이 열망이 없기 때문에 쉽게 다른 사상, 다른 주장과 타협해 버립니다. 결과적으로, 세상을 향해 아무 것도 선포할 것이 없는 크리스천이 되고 맙니다.
우리 시대에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끊임없이 성숙한 크리스천으로 성장하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자기 속에 성장에 대한 열망이 있는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찾습니다. 오늘 말씀 중에 “Focus on reading the Scripture to the church (13절)”란 말씀이 나옵니다. 마음 속에 성장에 대한 열망이 있는 사람은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성경을 알고자 하는 진지하고 적극적인 마음이 느껴집니다. 기도를 해도 마음에 성장에 대한 열망이 있는 사람은 기도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건성으로 형식적인 기도를 하는 사람과 진실한 마음으로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과 기도하는 마음도 다르고 기도하는 태도도 다릅니다.
정말 제가 바라는 것은, 우리 교회가 이런 성장에 대한 열망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열망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도 우리 공동체 안에 들어오면 이 열망을 품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열망이 열매를 맺어서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로 자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가서도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 구별합니다.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별합니다. 진실과 거짓이 싸울 때에는 서슴지 않고 진실 편에 섭니다. 이런 사람이 그리스도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그 속에 ‘what I have’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세상을 향해 선언할 메시지가 있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