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2020 | 새해에는 이렇게 믿자 4
하나님의 은혜 (Desiring God's Grace)
김태환 목사
시편 127:1-2
1 여호와께서 집을 짓지 않으시면, 집 짓는 자들의 수고가 헛됩니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않으시면, 경비병들의 보초가 헛됩니다.
2 헛되이 일찍 일어나고, 늦게까지 일할 뿐입니다. 먹을 음식을 위해 수고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자들이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도록 하십니다.
1 Unless the Lord builds a house, the work of the builders is wasted. Unless the Lord protects a city, guarding it with sentries will do no good.
2 It is useless for you to work so hard from early morning until late at night, anxiously working for food to eat; for God gives rest to his loved ones. (New Living Translation)
오늘 설교 제목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정했습니다. 2020년은 교우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사모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기대와 소원이 제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찬양 중에 ‘하나님의 은혜’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조은아 씨가 가사를 썼고, 신상우 씨가 곡을 붙인 찬양입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나의 달려갈 길 다 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하도록/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한량 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 은혜/나 주저함 없이 이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 은혜”
우연히 신상우 씨의 간증 동영상을 보았습니다. 부모님을 따라 갔던 캐나다 이민 생활에서 처음에는 살기 위해 정신 없이 일하다가, 여기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좌절감 때문에 많은 방황을 했더라구요. 하지만 캐나다 이민 시절에 그는 많은 크리스천 음악가를 만나게 됩니다. 고형원을 만났고, 최덕신을 만났고, 조은아를 만났고, 송정미를 만납니다. 그리고, 최덕신을 통해서 송명희 시를 알게 됩니다.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일들을 생각하면서 문득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느 날 조은아에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가사를 하나 써 달라고 부탁합니다. 조은아는 그 다음 날로 가사를 써 왔습니다. 하얀 종이에 위에서부터 아래로 만년필로 가사를 써 왔다고 합니다. 신상우는 이 가사를 들고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가사에 곡을 붙인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30분도 안 되어 곡을 붙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서 신상우의 곡 중에는 조은아가 쓴 가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캐나다를 방문했던 박종호가 “이 곡 좋다”고 하면서 빼앗다시피 해서 이 곡을 가지고 귀국합니다. 그 후 신상우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박종호가 부른 ‘하나님의 은혜’가 제법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신상우는 소프라노 김영미 씨의 반주를 맡아 많은 공연을 함께 합니다. 김영미 씨가 부른 대표 곡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기 까지가 제가 들은 간증입니다. 그 밑에 붙은 댓글을 보다가 그가 2017년 50살의 나이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를 섬세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신상우는 CCM 곡들만 아니라 '베토벤 바이러스' '주몽' '대조영' '제빵왕 김탁구' 등 대중음악과 OST에도 천재적인 소질을 보였는데, 그만 간암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읽고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늘 읽은 시편 127편은 솔로몬이 쓴 시편입니다. 이 시편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자들 위해 쓰여진 시편입니다. 순례자들이 일주일, 열흘 혹은 보름을 걸어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갑니다. 순례자들은 길을 가면서 이 시편을 노래로 불렀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이 말씀에서 주목해서 봐야 할 말씀은 ‘여호와께서......하지 않으면 (unless the Lord builds a house, Unless the Lord protects a city)’이란 말입니다. 집을 짓는 일도 그렇고, 성을 지키는 일도 그렇고, 비즈니스를 하는 것도 그렇고, 공부를 하는 것도 그렇고, 가정 생활도 그렇고, 자녀를 기르는 것도 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면 인간의 모든 노력이 ‘헛되다 (in vain)’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도서 1:2에 나오는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Vanity of vanities,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What profit has a man from all his labor in which he toils under the sun)?” (NKJV) “Meaningless! Meaningless! Utterly meaningless! Everything is meaningless.” (New Living Translation, New International Version) 어떤 사람은 솔로몬이 말년에 염세주의 (厭世主義, pessimism)에 빠졌다고 합니다. 솔로몬이 인생을 비관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없이 살았던 삶에 대한 반성의 말씀입니다. 솔로몬은 말년에 잠깐 세상적인 기쁨과 즐거움에 빠져서 하나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이런 삶에 대한 반성의 결과로 남긴 책이 전도서 (Ecclesiastes)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았던 삶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도 하나님이 없는 삶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우리의 삶은 창조주 하나님과 연결되고, 창조주 하나님과 관계가 될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면 정말 모든 것이 헛되고,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까? ‘만리장성 (萬里長城, The Great Wall)’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만리장성’은 기원전 222년, 진나라의 진시황 때부터 시작해서 명나라 때 와서 완성된 무려 1800년 동안, 20개 왕조에 걸쳐 완성되었습니다. 길이가 무려 8,500km이고요. 1987년에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합니다. 우주선에서도 식별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만든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만리장성’을 건축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고 희생되었습니다. ‘만리장성’에 동원된 사람들 때문에 중국의 인구가 ‘만리장성’을 따라 분산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만리장성을 쌓은 목적은 북방 민족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을 지키는 문지기들이 뇌물을 받고 성문을 열어주는 바람에, 막상 외적의 침입을 막는 데는 무용지물이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헛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언제 ‘만리장성’을 보게 되면, 사진만 찍지 말고요. 그 무거운 돌을 거기까지 운반해 왔을 엄청난 인간의 노역(勞役)을 상상해 보십시오. 돌이 굴러 떨어지면서 사고로 깔려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부상 당한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언젠가 ‘만리장성’을 걸으면서 수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원망의 소리를 꼭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무려 1,800년에 걸쳐 이룩한 엄청난 프로젝트의 결과 치고는 너무 허무하지 않습니까?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않으시면, 경비병들이 잠을 자지 않고 성을 지켜도 모두 헛된 일이 되고 만다는 성경 말씀이 맞지 않습니까?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노력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은혜 (grace)’라는 말은 ‘unmerited favor (그럴 만한 공을 세운 것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주어진 호의)’ ‘undeserved favor (그럴 만한 자격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주어진 호의)’라는 뜻입니다. 저는 많은 청년들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목사님, 제가 보스턴으로 유학 오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제가 그럴 만한 자격이 없었거든요. 제가 이런 좋은 학교에서 공부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목사님, 전 정말 학위를 못 받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쓴 논문도 잘 되지 않았고, 너무 문제가 많았거든요.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졸업했습니다.”
저 자신도 유학생활을 했습니다만, 유학생활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딱 좋은 생활입니다. 나보다 더 똑똑하고,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과 경쟁을 하면서, 좌절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몰래 혼자 울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연약함과 아픔을 겪으면서 졸업을 하고 여기까지 왔거든요. 난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운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그 찬양 가사에 나오지 않습니까?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고요.
성경에 그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아서 나는 다른 사도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일 마저도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이었습니다.” (고전 15:10) 이 말씀이 Contemporary English Vers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But God treated me with undeserved grace! He made me what I am, and his grace wasn't wasted. I worked much harder than any of the other apostles, although it was really God's grace at work and not me.”
존 파이퍼 (John Piper)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The essence of the Christian life is learning to fight for joy in a way that does not replace grace. We can fight to walk in the paths where he has promised his blessings (크리스천의 삶의 진수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지 않는 방식 안에서 기쁨을 위해 싸우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축복을 약속하신 길로 걷기 위해 싸워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크리스천의 삶에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절대로 이 ‘하나님의 은혜’를 다른 것으로 replace (대체)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특히 미국같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는 자기가 일한만큼 대가를 받는다는 원리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도 나도 다투어서 ‘스펙 (specification)’을 쌓으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남보다 더 자격을 갖추고, 남이 하지 않은 경험을 쌓게 되면 그만큼 대우를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속에 작용하고 있는 원리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렇지 않거든요? 그럴 만한 일을 한 것이 없고, 그럴 만한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크리스천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사람들입니다. 주일날 예배 드린다고 교회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그 시간에 밀린 과제를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절대로 그것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이런 사람은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절대로 교만해지지 않습니다.
제가 우연히 시편 말씀을 읽다가 시편 65:11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이 너무 좋고 은혜가 되어서 제 책상 위의 컴퓨터 바탕화면에 이 말씀을 써 놓았습니다. 컴퓨터를 켜면 항상 이 말씀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궁금하시지요?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 방울이 떨어지며” (개역개정) “주께서 그 선하심으로 한 해에 면류관을 씌우시니, 주의 길에 기름이 뚝뚝 떨어집니다.” (우리 말 성경) “You crown the year with Your goodness; Your ways overflow with plenty.”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올해 2020년을 하나님께서 그의 선하심으로 관을 씌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길에 복이 차고 넘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길에 기름이 뚝뚝 떨어집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우리는 나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주님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좀 힘들더라도, 약간의 희생이 있더라도 주님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신상우 씨가 그랬습니다. 캐나다로 이민 간 그에게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었다고요. 그래서 그는 좌절했고 방황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때도 하나님은 그를 위해서 일하고 계셨습니다. 작사자, 작곡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그의 옆으로 모이게 하셨습니다. 고형원, 최덕신, 조은아, 박종호, 송명희, 송정미, 소프라노 김영미까지 그와 교제를 나누게 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그 당시 한국의 CCM을 대표하는 뮤지션들입니다. 그는 잘 몰랐지만, 그가 좌절하고 방황했던 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곡이 그렇게 이 세상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아마도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도 똑 같은 방식으로 일하실 것입니다. 힘든 시간도 있고, 우리 뜻대로 안 되는 일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여러분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고린도후서 12:9)”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놓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