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020 | 새해에는 이렇게 믿자 5
하나님의 은혜 2 (Desiring God's Grace)
김태환 목사
시편 42:1-5
1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이듯이 오 하나님이시여, 내 영혼이 주를 찾아 헤매입니다.
2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애타게 그리워합니다. 언제 내가 하나님을 만나러 갈 수 있겠습니까?
3 낮이면 낮마다, 밤이면 밤마다 내 눈물이 양식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내게 말합니다.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지?”
4 지난 일들을 생각하면 할수록 내 가슴이 찢어집니다. 나는 사람들을 이끌고, 하나님의 성전을 향해 들어가곤 했습니다. 기뻐 소리를 지르고 감사의 찬송을 부르며, 그 행복한 사람들과 어울리곤 했습니다.
5 오 내 영혼아, 어찌하여 슬퍼하는가? 왜 그렇게 속상해하는가? 하나님께 희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나를 구원하신 분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신 그분을 마땅히 찬양해야 할 것이 아닌가?
1 As the deer longs for streams of water, so I long for you, O God.
2 I thirst for God, the living God. When can I go and stand before him?
3 Day and night I have only tears for food, while my enemies continually taunt me, saying, "Where is this God of yours?"
4 My heart is breaking as I remember how it used to be. I walked among the crowds of worshipers, leading a great procession to the house of God, singing for joy and giving thanks amid the sound of a great celebration!
5 Why am I discouraged? Why is my heart so sad? I will put my hope in God! I will praise him again - my Savior and6 my God! Now I am deeply discouraged, but I will remember you.
오늘은 ‘하나님의 은혜’ 두 번째 설교입니다. 지난 설교에서 왜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지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설교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비결에 대하여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길에 대하여 성경이 어떤 길을 제시하고 있는 지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누구이시며, 어떤 분이신가?” 라는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크리스천의 삶의 ‘foundational question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이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너를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May the LORD bless you and protect you. May the LORD smile on you and be gracious to you. May the LORD show you his favor and give you his peace).” (민수기 6:24-26)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혹은 ‘여호와는 얼굴을 너를 향하여 드사’ 이런 말은 하나님과의 원만한 관계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렇게 축복하라고 하시면서 주신 말씀입니다. 이것이 빈 말이 아니라, 너희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같이 축복하면 내가 그들을 축복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굉장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축복의 말이 실제로 effective하게 working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사의 처방대로 약을 먹었더니, 그 약이 효과가 있어서 병세가 금방 좋아집니다. 이럴 때 “It works!” “It is working for me!” 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축복의 말씀이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 효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이 집에 평화가 있기를!'하고 빌어주어라. 만일 그 집 사람이 네가 빌어주는 평화를 받을 만한 사람이면 그 평화가 그에게 내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누가복음 10:5-6)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 때 예수님은 틀림 없이 민수기 6:24-26 말씀을 생각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상대방에게 이런 인사를 한다면 그 인사가 그 사람에게 효과가 있을까요? 성경은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제가 이스라엘에 가 보았더니, 유대인들이 길 가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지나가면서 “Shalom!” 이렇게 인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shalom’이라는 말이 히브리말로 ‘평화’라는 뜻입니다. 그 인사에 얼마나 진심이 담겼는지 모르지만 좀 형식적이라는 인상을 받기는 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서로 만나 인사할 때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사하는데 이 ‘안녕(安寧)’이라는 말이 참 좋은 말입니다. 평안하고 건강하다는 뜻인데요. 이런 뜻이 정확하게 히브리말 ‘shalom’ 이라는 말 속에 들어 있습니다. 헤어질 때 “안녕히 가세요!” 이렇게 인사합니다. 내내 평안하고 건강하시라는 참 좋은 인사입니다. 우리의 진심을 담아 이런 인사를 주고 받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서로 헤어질 때 영어로 “Goodbye!”라고 인사하는데요. 이 말도 참 좋은 말입니다. “May God be with you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이런 뜻이잖아요? 우리의 진심을 담아 이런 인사를 한다면 최고의 인사가 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격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와 인격적인 관계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첫째로, 하나님과 좋은 관계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 말씀이 민수기 6장에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너를 향하여 비추사’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너를 향하여 드사’ “May the LORD smile on you and be gracious to you!”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얼굴을 돌리신다는 말씀도 성경에 있을까요? 우리가 보기 싫은 사람이 있으면 얼굴을 돌리잖아요? 있습니다. “내 죄에서 주의 얼굴을 돌리시고 나의 모든 죄를 씻어 주소서 (Hide your face from my sins Remove the stain of my guilt).” (시편 51:9) 다윗이 죄를 범하고 나서 하나님께 회개하면서 했던 말입니다. 또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얼굴을 돌리시고, 그들을 내버려 두셔서, 하늘의 별들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Then God turned away from them and abandoned them to serve the stars of heaven as their gods).” (사도행전 7:42) 또 욥기에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How many wrongs and sins have I committed? Show me my offense and my sin. Why do you hide your face and consider me your enemy?” (욥기 13:24) 욥이 이렇게 자기의 정당함을 주장하다가 나중에 가서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내가 받는 고난 속에 내가 이해할 수 없고 깨달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회개한 것입니다. 이것이 욥기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말씀이 오늘 읽은 시편 42편 말씀입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이듯이 오 하나님이시여, 내 영혼이 주를 찾아 헤매입니다.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애타게 그리워합니다. 언제 내가 하나님을 만나러 갈 수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좋아하는 유명한 말씀입니다. 오늘 읽은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 말씀이 “As the deer longs for streams of water, so I long for you, O God. I thirst for God, the living God. When can I go and stand before him?”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long’이라는 단어는 “몹시 그리워하다” 혹은 ‘몹시 원하다”라는 뜻입니다. 다른 영어 성경에서는 ‘long’ 대신 ‘pant’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숨이 차서 입을 벌리고 헐떡이다’라는 뜻입니다.
이 시편 42편은 ‘고라 (Korah)’의 자손 중에 한 사람이 쓴 것입니다. ‘고라’에 대한 이야기가 구약성경 민수기에 나옵니다. ‘고라’는 모세나 아론과 같은 레위 지파 사람이었습니다. 같은 레위 지파 사람인데도 하나님께서 모세나 아론만 지도자로 사용하시는 것에 불만을 가졌습니다. 이런 ‘고라’에게 하나님은 무서운 벌을 내리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후손들에게는 벌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민수기 26:11).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은 ‘고라’의 후손들은 시를 쓰는 시인이 되고,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고라’의 후손 중의 한 사람이 쓴 시편 42편은 그런 의미에서 특별한 시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편의 저자는 무슨 일인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조롱합니다.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지?’ 지난 일들을 생각하면 할수록 내 가슴이 찢어집니다. 나는 사람들을 이끌고, 하나님의 성전을 향해 들어가곤 했습니다. 기뻐 소리를 지르고 감사의 찬송을 부르며, 그 행복한 사람들과 어울리곤 했습니다.” (3-4절) 지금 이 사람은 너무 너무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가 그립습니다.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애타게 그리워합니다. 언제 내가 하나님을 만나러 갈 수 있겠습니까?” (2절)
오늘 여러분은 그가 쓴 이 시편 말씀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이 시편 저자가 가지고 있는 ‘간절함’ ‘사모함’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카운트 한다면 약 3,500년 전에 살았던 이 시편의 저자는 지금 우리와 비교해 보면 비교할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부족한 것, 불편한 것투성이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에 비하면 모든 것이 너무 풍족합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에게는 그가 가지고 있는 ‘간절함’이 없습니다.
이 시편 저자는 그의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간절함’을 목마른 사슴에 비유했습니다. “As the deer pants for streams of water, so my soul pants for you, O God. My soul thirsts for God, for the living God. When can I go and meet with God?” (1-2절) 사슴이 목이 말라 입을 벌리고 헐떡거립니다. 목이 타 들어갑니다. 이 사슴에게는 어디서 시원한 물줄기를 발견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끝내 이 물줄기를 찾지 못하면 이 사슴은 죽고 말 것입니다. 지금 이 시편 저자에게 목마른 사슴이 보이는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의 영혼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 목이 타 들어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주일에 보통 때보다 좀 일찍 일어나서 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석하면 됩니다. 목마른 사람이 어디서나 물을 마실 수 있듯이,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이 말라 입이 타 들어가는 사람에게 누가 물 한 컵을 준다면 그 사람은 마지막 한방울의 물까지 다 마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목이 마른 사람이 예배에 참석한다면 예배순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방울의 은혜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예배에 집중할 것입니다. 예배자에게는 시편 42편의 저자가 말하고 있는 ‘간절함’과 ‘목마름’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길은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하게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했던 사람들을 보면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하게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나에게는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나는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쓰레기처럼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이제 압니다. 이로써 나는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빌립보서 3:8) 이 말씀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한 사람의 ‘간절함’을 읽을 수 있지 않습니까?
이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Let them praise the Lord for his unfailing love and for the wonderful things he has done for them. For he satisfies the thirsty and fills the hungry with good things).” (시편 107:8-9)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 ‘간절함’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길입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시편 67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May God be merciful and bless us. May his face smile with favor on us. (Selah) May your ways be known throughout the earth, your saving power among people everywhere.” (1-2절) 이 시편의 저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시편에 흐르고 있는 생각이 참 훌륭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셀라 (Selah)’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가장 합리적인 설명은 일종의 음악 기호라는 것입니다. 음악 기호는 찬양이나 연주를 하는 사람들과 서로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셀라’는 ‘여기서 잠깐 쉬라’는 ‘interlude’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시편을 이렇게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우리를 축복해 주십시오. 주의 미소 짓는 얼굴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잠깐 쉽니다) 하나님,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길을 알게 해 주십시오. 그들도 주님의 구원의 능력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되게 해 주십시오.”
이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기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잠깐 쉬고 그 은혜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보세요. Interlude 다음에, 기도의 내용이 달라졌습니다. 자기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구하는 이기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