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020 | 청지기주일/임명예배
나의 사명 (The Ministry Assigned Me By The Lord Jesus)
김태환 목사
사도행전 20:17-27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불렀습니다.
18 장로들이 오자,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아시아에 온 첫날부터 여러분과 함께 지내면서 어떻게 생활해 왔는지 여러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19 그 동안, 나는 유대인들이 지어 낸 모함으로 몹시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겸손히,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주님을 섬겼습니다.
20 나는 여러분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주저하지 않고 전파하였습니다. 나는 그것을 공중 앞에서나 여러분의 집에서 여러분을 가르쳤습니다.
21 유대인들과 그리스인들 모두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과 우리 주 예수님을 믿으라고 선포했습니다.
22 그러나 이제 나는 성령의 명령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그 곳에서 내게 무슨 일이 닥칠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23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어느 도시에 가든지 감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성령께서 내게 경고해 주셨다는 사실뿐입니다.
24 그러나 나는 내 목숨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 곧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25 나는 여러분과 함께 있는 동안, 줄곧 하나님의 나라를 전했습니다. 이제 나의 설교를 들으신 여러분 중에는 나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26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엄숙히 선언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설령 누군가 구원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27 그것은 내가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의 모든 뜻을 여러분에게 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17 But when we landed at Miletus, he sent a message to the elders of the church at Ephesus, asking them to come and meet him.
18 When they arrived he declared, "You know that from the day I set foot in the province of Asia until now
19 I have done the Lord's work humbly and with many tears. I have endured the trials that came to me from the plots of the Jews.
20 I never shrank back from telling you what you needed to hear, either publicly or in your homes.
21 I have had one message for Jews and Greeks alike?the necessity of repenting from sin and turning to God, and of having faith in our Lord Jesus.
22 "And now I am bound by the Spirit to go to Jerusalem. I don't know what awaits me,
23 except that the Holy Spirit tells me in city after city that jail and suffering lie ahead.
24 But my life is worth nothing to me unless I use it for finishing the work assigned me by the Lord Jesus?the work of telling others the Good News about the wonderful grace of God.
25 "And now I know that none of you to whom I have preached the Kingdom will ever see me again.
26 I declare today that I have been faithful. If anyone suffers eternal death, it's not my fault,
27 for I didn't shrink from declaring all that God wants you to know.
여러분, 먼저 이 지도를 한번 보십시오. 바울의 제 3차 선교여행의 루트를 그린 것입니다. ‘드로아 (Troas)’ ‘앗소 (Assos)’ ‘미둘레네 (Mitylene)’ ‘기오 (Chios)’ ‘사모 (Samos)’ ‘밀레도 (Miletus)’ ‘고스 (Cos)’ 바울의 3차 전도여행에 나오는 ‘에게 바다 (Aegean Sea)’ 연안에 있는 지명들입니다. 보기에는 이 섬들이 터키 연안에 가까이 있어서 모두 터키 영토인 것처럼 보이는 데, ‘고스’는 현재 그리스 영토입니다.
2015년 9월 2일, 한 장의 사진이 전 세계 사람들을 울렸습니다. 터키의 휴양지 ‘보드룸 (Bodrum)’ 해변에 빨간 셔츠를 입은 한 어린 아기가 엎드러진 채 죽어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이 아기의 이름은 ‘아일란 쿠루디 (Alan Kurdi)’라는 세 살배기 아이였습니다. 한 시리아 난민 가족이 시리아 북부에 있는 작은 도시 ‘코바니 (Kobane)’를 출발해서 육로로 터키로 들어 간 후 거쳐 고무 보트를 타고 그리스 영토인 ‘고스 (Cos)’로 가던 중에 거센 파도에 배가 뒤집히면서 참변을 당한 것입니다. 이 가족은 처음에 캐나다로 이민을 가려고 했지만 거절을 당한 후에 그리스로 건너가 유럽으로 망명을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지명들을 소개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 지명들이 2,000년 전에 사도 바울이 복음을 가지고 에게 바다를 건넜던 지도에 등장하는 이름들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곳 지명들이 뜻하지 않게 ‘시리아 난민’이라는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지명들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뭔가 우리 마음을 때리고, 뭉클하게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상의 희망이라고 말하면서도 권력과 물질의 풍요로움과 평안 속에 안주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사이에 이곳은 모두 이슬람화 되고 말았습니다. 터키도 그렇고, 에게 바다의 섬과 도시들이 모두 이슬람화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과거와 현재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변화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유럽의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모두 시리아 난민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쿠루디 가족’이 무사히 ‘고스’ 섬에 도착하고, 그리스로 들어갔다고 해도 유럽의 국가들이 난민들을 거절하는 마당에 어떻게 되었을 지, 앞날을 보장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온 가족이 다 죽고, 혼자 살아남은 ‘쿠루디’의 아버지는 이제 나에게는 삶의 희망이 없다고 하면서 시리아의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나라들도 모두 자기 나라에 대한 걱정을 먼저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난민들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나라들이 일찍 복음을 받아들인 나라들 아닙니까? 우리에게 이런 역사에 대한 이해와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시아에 온 첫날부터 여러분과 함께 지내면서 어떻게 생활해 왔는지 여러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나는 언제나 겸손히,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주님을 섬겼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주저하지 않고 전파하였습니다. 이제 나는 성령의 명령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그 곳에서 내게 무슨 일이 닥칠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어느 도시에 가든지 감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성령께서 내게 경고해 주셨다는 사실뿐입니다. 그러나 나는 내 목숨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 곧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내가 떠난 뒤에 어떤 사람들이 사나운 이리처럼 교회에 들어와서 양 떼를 해치려 할 것을 나는 압니다. 또한 여러분 가운데서도 진리를 왜곡되게 말하고, 제자들을 유혹하여 자기를 따르게 하는 사람들도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십시오. 내가 삼 년 동안을 밤낮으로,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쉬지 않고 교훈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제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을 능히 세울 수 있고 모든 거룩한 백성들과 함께 기업을 받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나는 그 누구의 금이나 은이나 옷을 탐낸 적이 없습니다. 나는 모든 일에서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였습니다. 여러분은 저처럼 열심히 일해서 약한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또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18-35절)
우리는 이 바울의 고백을 들으면서 몇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그가 가지고 있었던 복음에 대한 열정을 배워야 합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쁜 소식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들어 있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이 복음을 전해준 덕분에 내가 이 복음을 믿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갖는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이 복음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간절한 생각을 말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주저하지 않고 전파하였습니다 (I never shrank back from telling you what you needed to hear, either publicly or in your homes).” (20절) “I didn't shrink from declaring all that God wants you to know.” (27절)
오늘 말씀에만 그렇게 나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복음을 전할 때마다 기도 중에 늘 여러분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전심으로 섬기는 하나님께서 나의 증인이 되십니다. 지금 나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여러분에게 갈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여러분을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 까닭은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을 나누어 주어 여러분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로마서 1:9-11) 이 말씀 속에 복음을 로마에 사는 크리스천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하는 그의 간절함이 나와 있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이 간절함이 없습니다. 복음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나누고 싶은 열정이 없다고요.
로마서 12:2에 유명한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는 이 세상을 본받지 말라 (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NIV).”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패턴은 어떤 것입니까? 다른 사람의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개인주의적인 생각이 이 세상의 패턴 중의 하나입니다. 부부 간에도 서로 사생활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에 끼어들 공간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의 패턴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구원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복음을 나눠야 합니다.
둘째로, 그는 그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모든 희생을 감수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말합니다. “But my life is worth nothing to me unless I use it for finishing the work assigned me by the Lord Jesus-the work of telling others the Good News about the wonderful grace of God.” (24절) 내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반드시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그 사명을 위해서 그의 목숨도 아깝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까? 2,000년 전에 갈릴리의 어부들은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는 말씀을 따르기 위하여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배와 그물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전부였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찬송 중에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I'd Rather Have Jesus)’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이 찬송은 Rhea. F. Miller (1894-1966, 미국) 라는 사람이 가사를 썼고, George Beverly Shea (1909-2013, 미국) 라는 사람이 작곡을 하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찬송가에 얽힌 이야기가 있습니다. ‘죠지 베버리 쉐아’는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학교를 쉬고 뉴욕에 있는 보험회사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 때 죠지는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 중에 NBC 방송국 프로그램 편성 부장을 알게 되었습니다. 죠지는 그 사람에게 자기가 노래에 소질이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아마도 그 프로그램 담당자도 죠지의 굵직한 베이스 목소리가 호소력이 있고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NBC 스튜디오에서 1,500명의 방청객과 전국의 청취자들에게 ‘가라 모세 (Go Down Moses)’를 부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청취자들은 굵직하고 호소력 있는 죠지의 목소리에 열광했습니다. 방송국 편성부장은 이 프로그램에 정기 출연을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죠지에게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온 것입니다.
그러나 죠지는 즉각 대답하지 않고 생각을 좀 해 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의 마음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희망에 부풀어 잠을 못 이룰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속에 있는 뭔가가 그로 하여금 쉽게 결정하지 못하도록 말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의 어머니가 아들이 고민하는 것을 보고 시 한 편을 주면서 이 시를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 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아침에, 죠지는 그날 교회에서 부를 찬송을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 속을 떠나지 않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금이나 은보다 차라리 주 예수를 선택하고 싶다”는 어머니가 준 시에서 읽은 구절이었습니다. 그 순간 죠지는 자기도 모르게 피아노를 치면서 즉흥적으로 그 시에 곡을 붙여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던 어머니가 달려와 아들을 껴안으면서 “엄마는 이 노래 너무 좋구나! 오늘 예배 시간에 이 노래를 불러 줄 수 있겠니?” 하고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 찬송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NBC 방송극의 요청을 거부한 죠지는 그 후 빌리 그레이엄 크루세이드 (Billy Graham Crusade)의 요청을 받고 독창자로 세계를 돌면서 찬양을 했습니다. 그가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찬양을 할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의 뜨거운 박수갈채도 예수님과 바꿀 수 없습니다.”
셋째로, 그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가 무엇이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는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5절)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 말씀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You should remember the words of the Lord Jesus:‘It is more blessed to give than to receive.’” 바울은 크리스천의 삶을 그 한마디로 요약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내 것을 주는 것입니다.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열정이 있어야 하고, 내게 맡기신 책임과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나의 소중한 것들을 내려 놓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1961년 1월 20일, John F Kennedy가 취임 연설에서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My fellow Americans, ask not what your country can do for you –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country (나라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느냐고 묻지 말고, 여러분이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 주십시오).” 우리는 교회를 향하여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가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 줄 수 있느냐고 묻지 말고, 내가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오늘은 청지기 주일입니다. 여러분, 화면을 한번 봐 주십시오. ‘청지기 (Stewardship)’라는 말은 이제 잘 안 쓰는 말이 되었습니다만, 교회에서는 여전이 이 말을 사용합니다. ‘청지기직 (Stewardship)’이라는 말은 우리 크리스천의 삶의 방식입니다. 크리스천의 삶의 방식은 네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Give (주다)’ ‘Serve (섬기다)’ ‘Attend (출석하다. 참여하다)’ ‘Grow (성장하다)’ 이 네 가지가 각각 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줌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재능과 자원 (resource)를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섬김입니다. 그리고 은혜 받을 수 있는 모든 자리에 열심이 출석하고, 참여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더욱 성숙하고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런 크리스천이라야 자신의 재능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할 수 있고, 섬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