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020 | 사순절 새벽기도 10
내 이름 때문에!
김태환 목사
마태복음 10:16-23
16 “들어라!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마치 늑대 무리 속으로 양을 보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여라.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너희를 법정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나 때문에 너희는 총독들과 왕들 앞에 끌려갈 것이다. 너희는 그들과 이방 사람들에게 증언하게 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잡아 넘길 때,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걱정하지 마라. 그 때에 너희가 말해야 할 것을 다 알려 주실 것이다.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다. 너희 아버지의 영이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21 형제가 형제를 배신하여 죽게 하고, 아버지 또한 자녀를 그렇게 할 것이다. 자녀가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할 것이다. 22 내 이름 때문에 너희가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23 이 마을에서 너희를 핍박하면, 다른 마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 모든 마을을 다 다니기 전에 인자가 올 것이다.
16 “Look, I am sending you out as sheep among wolves. So be as shrewd as snakes and harmless as doves. 17 But beware! For you will be handed over to the courts and will be flogged with whips in the synagogues. 18 You will stand trial before governors and kings because you are my followers. But this will be your opportunity to tell the rulers and other unbelievers about me. 19 When you are arrested, don't worry about how to respond or what to say. God will give you the right words at the right time. 20 For it is not you who will be speaking - it will be the Spirit of your Father speaking through you. 21 "A brother will betray his brother to death, a father will betray his own child, and children will rebel against their parents and cause them to be killed. 22 And all nations will hate you because you are my followers. But everyone who endures to the end will be saved. 23 When you are persecuted in one town, flee to the next. I tell you the truth, the Son of Man① will return before you have reached all the towns of Israel.”
오늘 말씀은 ‘전도자의 매뉴얼’ 후속편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으로 내 보내면서 몇 가지 주의할 것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에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도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잘 모릅니다. 우리가 뱀처럼 지혜로워야 하는 이유는 이 세상이 악하고 험하기 때문입니다. ‘늑대들이 득실거리는 곳에 있는 양 (as sheep among wolves)’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늑대들 속에 양을 들여 보냈으니, 얼마나 잡혀 먹기 쉽겠습니까? 그러므로,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뱀처럼 지혜로워야 합니다. “Be as shrewd as snakes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shrewd’라는 단어는 ‘astute or sharp in practical matters (실제적인 면에 있어서 영리하고, 기민하고, 분별력이 있고, 똑똑하다)’라는 뜻입니다. 반대말은 ‘stupid, foolish, naïve’입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매우 낯선 말씀이 있습니다. 사울 (바울)이 회심한 것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분노했습니다. 분노한 유대인들은 사울을 죽이기로 모의를 합니다. 일단 사울이 도망을 가지 못하도록 밤낮으로 성문을 단단히 지켰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로를 통해서 사울은 유대인들의 음모를 입수하게 됩니다. 사울을 아끼는 사람들이 깜깜한 밤중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 난 구멍으로 그를 성 밖으로 달아 내렸습니다. 이렇게 사울은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습니다 (사도행전 9:23-25). 이런 행동이 뱀처럼 지혜로운 행동입니다. 도망가지 않고, 순교의 각오로 그 자리에서 버티거나, 기도로 이긴답시고 피하지 않았더라면 사울은 그 때 죽었을 것이고, 교회가 필요로 했던 훌륭한 사역자 하나를 잃었을 것입니다.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는 말씀은 “Be as harmless as doves”라는 말입니다. 제자들은 언제, 어떤 경우에도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한다든지, 죽인다든지 하는 행위는 어떤 경우도 용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단종교에서 하는 일들을 보십시오. 납치, 살인, 암매장 어떻게 이런 말들이 나올 수 있습니까? 포교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사람을 납치한다든지, 감금한다든지, 테러를 행한다든지, 고문을 한다든지 하는 행위는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이번에 신천지 문제를 놓고도, 종교의 자유를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천지를 놓고 종교의 자유를 말할 수 있습니까? 자기 아들 딸이 신천지에 들어간 후 연락이 끊어졌는데, 그리고 신천지에서 나온 사람들이 신천지의 무서운 실상을 폭로하고 있는데, 무슨 종교의 자유를 말합니까? 신천지 교인들이 일반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면서 그 교회가 풍비박산이 나고 급기야 신천지로 넘어간 교회가 한 둘이 아닙니다. 신천지에서 이런 짓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교회는 교회 입구에 “우리는 신천지 교인을 사절합니다!” 이런 글을 써 붙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정부의 조사에 협조하고, 제대로 된 명단을 넘기고 했더라면 지금 이 지경으로 감염된 사람들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동안에 이 사람들이 협조하지 않는 탓에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어 고생하고, 그 중에 죽은 사람들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무슨 종교의 자유를 말합니까? 세상에 해를 끼치는 행위는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이름 때문에’라는 말은 ‘너희가 내 제자라는 이유 때문에 (because you are my followers)’라는 뜻입니다. 이런 말씀을 읽고 있으면 저는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2,000년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끌려가고, 매를 맞고, 고문을 당하고 했는데, 오늘 우리에게는 이런 불이익이 없습니다. 우리는 운이 좋은 것인지, 운이 나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지구상에는 크리스천이라는 이름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집트에 있는 ‘콥틱 크리스천들’, 이 사람들은 서기 42년경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했던 마가가 전도한 사람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집트에서 갖은 불이익을 당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직업을 갖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콥틱 크리스천들이 열악한 밑바닥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당하는 고난은 오히려 복음을 변증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나 때문에 너희는 총독들과 왕들 앞에 끌려갈 것이다. 너희는 그들과 이방 사람들에게 증언하게 될 것이다.” (18절) 또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잡아 넘길 때,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걱정하지 마라. 그 때에 너희가 말해야 할 것을 다 알려 주실 것이다.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다. 너희 아버지의 영이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19-20)
아니, 평상시에는 무엇을 하고 있다가 이렇게 극단적인 시간에, 법정에 서서 복음을 변명해야 하겠습니까? 그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미리 걱정하지 말라니요? 이건 또 무슨 말입니까? 중국으로 청년들과 함께 단기선교를 갔을 때 일이 생각납니다. 우리를 안내하는 선교 단체에서 똑 같은 검은 색 백에 성경을 가져오면 좋겠다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보스턴을 출발할 때는 잘 몰랐는데, 점점 중국 북경 공항이 가까워 올수록 걱정이 되었습니다. 똑 같은 검은 색 백을 가진 사람들이 그 속에 성경을 가지고 갔으니, 만일 검열에 한 사람이라도 걸리면 다 같이 걸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 대책이 없이 그 선교단체에서 부탁한대로 성경을 가지고 갔습니다.
북경 공항에 도착을 했는데, 대원들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제 각기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전 그 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걸려도 내가 먼저 걸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제일 먼저 백을 끌고 나갔습니다. 검열대가 눈에 보이는데, 제 가슴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도 태연한 척하면서 검열대로 성경이 든 검은 색 백을 끌고 걸어 갔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무도 나를 제지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는 너무 싱겁게 검열대를 통과하여 백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비행기가 예정 시간보다 좀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검열대에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저를 내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 대원들이 아무 일 없이 검정색 백을 가지고 나왔는데, 대원 중에 전도사님 한 분이 걸려서 안으로 끌려 들어갔습니다. 그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밖에서도 웬만큼 보였습니다. 백 속에 있는 것들을 다 쏟아내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전도사님 얼굴에서 비지땀이 흐르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제 모두 걸렸구나!” 하고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그 전도사님이 가방에 물건들을 주섬주섬 넣더니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더니, 자기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간 사람이 성경책을 펼쳐 보면서 “응? 사전이구나!” 하면서 도로 다 집어 넣으라고 해서 집어 넣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또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대원들이 먼저 단기선교를 떠났습니다. 저와 제 아내가 하루 늦게 중국으로 출발했습니다. 가면서 큰 이민 가방 네 개에 비타민, 항생제 등 중국에서 요구하는 약들을 챙겨 넣고, 입을 만한 옷들을 모아서 이민 백에 넣었습니다. 옷이 그렇게 무거운지 몰랐습니다. 돌덩이처럼 무거웠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내내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 옷들을 다 어디에 쓸 것인지 물을 텐데, 뭐라고 대답을 하지?” 또 “주소가 어디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을 하지?” 이런 걱정을 하면서 어느 새 북경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아무 대책 없이 검열대 앞으로 갔습니다. 백을 올려 놓으라고 해서 검열대 위에 백 네 개를 올려 놓았습니다. 엑스레이를 통과합니다. 제 가슴이 또 두근두근 뛰었습니다. 그런데, 아무 일 없이 무사히 통과되었습니다. 나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 것이 분명했습니다.
두 가지 말씀이 생각납니다. 하나는 디모데후서 4:2에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전하고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사람들을 책망하고 훈계하고 격려하시오 (Preach the word of God. Be prepared, whether the time is favorable or not. Patiently correct, rebuke, and encourage your people with good teaching).”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는 주어진 모든 시간들이 복음을 전파하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좋은 기회가 주어져도 물론 그 기회를 살려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써야 하고, 기회가 좋지 않은 때라도 그 기회를 복음을 전파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또 한가지 말씀은 에베소서 5:16에 있는 말씀입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Make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in these evil days).” 이 말씀을 다른 번역성경에서는 “Redeem your time because the days are evil”이라고 했습니다. ‘redeem’이라는 말은 ‘buy back (다시 사다)’라는 뜻입니다. 이미 다른 일에 팔린 시간을 다시 사 오라는 말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이렇게 세월이 악한 때에는 시간을 사서 나의 시간으로 만들어 그 시간을 좋은 일에, 예를 들면,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이 그 시간을 사서 악한 일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전도자의 매뉴얼’ 안에 들어 있는 말씀입니다.
‘전도자의 매뉴얼’은 예수님께 대한 완전한 충성과 헌신을 요구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나의 삶을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드리고자 하는 헌신과 결단입니다. 목사의 심정으로 참 안타깝습니다. 지금은 자기의 인생을 온전히 그리스도에게 드린 사람들을 찾아 보기 어렵습니다. 몇 년 전까지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이라는 말이 유행했었습니다. 이 ‘포스트모더니즘’ 사상 중에 하나가 ‘다원주의 (Pluralism)’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자는 사상입니다. 이 ‘다원주의’는 ‘상대주의 (relativism)’라는 토대 위에 세워진 체계입니다. 아무 것도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 것은 없고, 오직 상대적인 가치만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알게 모르게 ‘다원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서 나의 삶을 드리고 헌신한다는 말이 이제는 낯선 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이렇게 말한답니다. “왜? 내가 내 인생을 그분에게 바쳐야 하지?” 바울은 “너희는 이 시대를 본받지 말라 (로마서 12:2)”고 했는데, 우리는 지금 이 시대 정신에 서서히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기도 시간에 다른 기도하지 말고요. “나는 지금 나의 삶을 온전히 그리스도를 위해 드리고 있는가? 드리고 있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