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2020 | 사순절 새벽기도 14
참 안식이신 예수님
김태환 목사
마태복음 11:16-30
16 내가 이 세대의 사람들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겠느냐? 이들은 마치 장터에 앉아 있는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을 부르는 것과 같다. 17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피리를 불었는데, 왜 춤을 추지 않았느냐? 우리가 슬픈 노래를 불렀는데, 왜 울지 않았느냐?’ 18 요한은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그러자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다. ‘그는 귀신들렸어.’ 19 인자가 와서 먹고 마시니, 사람들이 말했다. ‘저 사람을 봐! 탐욕이 많은 사람이야. 저 사람은 술꾼이야. 세리와 죄인의 친구야.’ 그러나 지혜는 그 행한 일 때문에 옳다는 것이 증명된다.” 20 그 때, 예수님께서 자신이 가장 많은 기적을 베푸셨던 도시들을 꾸짖기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은 이들이 회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1 “화가 미칠 것이다. 고라신아! 화가 있을 것이다. 벳새다야! 너희에게 베풀었던 기적이 두로와 시돈에서 있었다면, 그 곳 사람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 쓰며 회개했을 것이다. 2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의 날에 너희가 두로와 시돈보다 더 많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23 그리고 너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높아질 줄 아느냐? 오히려 너희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너희에게 베푼 기적이 소돔에서 일어났다면, 그 도시가 오늘까지 남아 있었을 것이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의 날에는 너희가 소돔보다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다.” 25 그 때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이것들을 지혜롭고 영리한 사람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보여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 내게 모든 것을 주셨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고, 아들과 아들이 나타내 주고자 하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다. 28 무거운 짐을 지고 지친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할 것이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쉼을 얻을 것이다. 30 나의 멍에는 쉽고 나의 짐은 가볍다.”
16 "To what can I compare this generation? It is like children playing a game in the public square. They complain to their friends, 17 `We played wedding songs, and you didn't dance, so we played funeral songs, and you didn't mourn.' 18 For John didn't spend his time eating and drinking, and you say, `He's possessed by a demon.' 19 The Son of Man, on the other hand, feasts and drinks, and you say, `He's a glutton and a drunkard, and a friend of tax collectors and other sinners!' But wisdom is shown to be right by its results." 20 Then Jesus began to denounce the towns where he had done so many of his miracles, because they hadn't repented of their sins and turned to God. 21 "What sorrow awaits you, Korazin and Bethsaida! For if the miracles I did in you had been done in wicked Tyre and Sidon, their people would have repented of their sins long ago, clothing themselves in burlap and throwing ashes on their heads to show their remorse. 22 I tell you, Tyre and Sidon will be better off on judgment day than you. 23 "And you people of Capernaum, will you be honored in heaven? No, you will go down to the place of the dead①. For if the miracles I did for you had been done in wicked Sodom, it would still be here today. / ①Greek to Hades 24 I tell you, even Sodom will be better off on judgment day than you." 25 At that time Jesus prayed this prayer: "O Father, Lord of heaven and earth, thank you for hiding these things from those who think themselves wise and clever, and for revealing them to the childlike. 26 Yes, Father, it pleased you to do it this way! 27 "My Father has entrusted everything to me. No one truly knows the Son except the Father, and no one truly knows the Father except the Son and those to whom the Son chooses to reveal him." 28 Then Jesus said, "Come to me, all of you who are weary and carry heavy burdens, and I will give you rest. 29 Take my yoke upon you. Let me teach you, because I am humble and gentle at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 souls. 30 For my yoke is easy to bear, and the burden I give you is light."
예수님께서 자기 시대를 어떻게 보셨을까요? 우리도 우리 시대를 보면서 생각이 있지 않습니까? “이 세상이 왜 이 모양이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보신 자기 시대의 모습은 아이들이 장터에서 다른 친구들에게 불평을 하는 모습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야, 왜 내가 노래를 부르는데 가만히 있어? 춤을 춰야지!” “야, 왜 내가 슬픈 노래를 부르는데 왜 안 울어? 울어야지!” 예수님께서 이런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가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요한은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더니, 사람들이 ‘그 사람은 귀신이 들린 사람이야’ 이렇게 비난하고, 내가 와서 먹고 마셨더니 ‘저 사람을 봐! 아주 게걸이 들렸구만! 저 사람은 술꾼이야. 세리들과 노는 꼴이라니!’하고 비난한다.” (18-19절) 예수님께서 보신 자기 시대의 모습은 올바로 반응할 줄 모르는 시대였습니다. 올바로 반응할 능력을 상실한 시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무조건적으로 비난하는 시대였습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면서 박수를 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They were completely amazed and said again and again, ‘Everything he does is wonderful. He even makes the deaf to hear and gives speech to those who cannot speak.’” (마가복음 7:37)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Fear swept through the crowd as they saw this happen. And they praised God for sending a man with such great authority.” (마태복음 9:8) “중풍병자는 일어나 침상을 들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걸어 나갔습니다. 사람들이 놀라서 하나님께 찬송을 드렸으며 ‘우리는 이와 같은 일을 본 적이 없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마가복음 2:12)
지도자들이 문제였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 율법학자들, 제사장들, 사두개인들, 이런 지도자들이 문제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깎아 내리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일반 대중들의 관심이 예수님을 향하고 있는 것을 시기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들끼리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을 보시오. 우리 계획은 하나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온 세상이 저 사람을 따르고 있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12:19) 그리고,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예수님께서 하고 계시는 것도 불만의 원인이었습니다. 자기들은 병을 고치지 못하는데, 예수님은 병을 고치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려냈다는 소문을 지도자들도 듣고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 지도자들이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평소에도 사람들을 보내서 예수님 주변을 감시하게 했고, 예수님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재미 있는 것은 유대에 총독으로 와 있던 빌라도도 예수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모였을 때, 빌라도가 말했습니다. ‘너희는 누구를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아니면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냐?’ 빌라도가 이렇게 말한 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시기해서, 자기에게 넘겨 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7:17-18) “도대체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악한 일을 저질렀느냐? 나는 이 사람에게서 죽을 죄를 찾지 못했다. 따라서 매질만 하고 풀어 주겠다.” (누가복음 23:22)
예수님은 자기를 비난하는 지도자들을 향해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러나 지혜는 그 행한 일 때문에 옳다는 것이 증명된다 (But wisdom is shown to be right by its results)” (마태복음 11:19) 예수님의 말씀은 그 지혜가 옳은 지혜인가, 틀린 지혜인가 하는 것은 그 지혜를 듣고,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내가 성경 말씀을 지키고 안 지키고 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성경의 진리를 따라 살고, 그래서 내 삶이 변화 되는 것은 곧 성경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내가 성경의 진리를 잘 따르지 않고, 내 삶이 변화되지 않으면 그것은 곧 성경 말씀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가장 많이 기적을 베풀었던 가버나움, 벳새다, 고라신, 이 세 도시들을 꾸짖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도시 사람들이 많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Then Jesus began to denounce the towns where he had done so many of his miracles, because they hadn't repented of their sins and turned to God).” (20절) ‘성 프랜시스’ (1181-1226. 이탈리아)라는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보통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라고 합니다. ‘아시시’는 지명입니다. ‘아시시 (Assisi)’ 출신 ‘프란치스코’라는 말입니다. 프랜시스가 남긴 “Lord, make me an instrument of your peace” 이 기도문이 유명합니다. 프랜시스가 제자들을 데리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면서 전도를 가고 있었습니다. 이 때 한 제자가 프랜시스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선생님 자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 나는 큰 죄인이지.” “아내, 선생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들은 어떻게 합니까? 선생님 자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프랜시스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큰 죄인이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내려다보시면서 어디 적합한 사람이 없나 하고 찾으시다가 나 프랜시스를 찾으신 거야. 하나님께서 내가 나의 사랑을 이 사람에게 쏟아 붓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쏟아 부었더라면 그 사람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지 보여주기 위해서 나 같은 죄인을 선택한 것이야!”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 도시를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너희들에게 베풀었던 그 많은 기적들을 두로와 시돈에 베풀었더라면 그 도시들이 지금 모두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을 것이다.” 예수님의 이 책망은 세 도시 사람들에 대한 책망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을 향한 책망으로 들어야 합니다. 어저께 새벽에 그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듣고 배우는 것들은 예언자들도 보지 못하던 것들이라고요 (마태복음 13:17). 지금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그렇게 귀한 것인데,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옳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19절).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실천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끝으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지친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할 것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쉼을 얻을 것이다. 나의 멍에는 쉽고 나의 짐은 가볍다 (28-30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오라고 초청한 사람들은 ‘those who are weary and carry heavy burdens (지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입니다. 이 말씀에 이중의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시대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을 자기에게 오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마가복음 6:34) 이 말씀에서 ‘목자’는 누구이고, ‘양’은 누구입니까? ‘목자’는 그 당시 지도자들입니다. 양은 그 당시 백성들입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의 말씀은 얼마나 도전적인 말씀입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은 나에게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말씀은 지도자들이 줄 수 없는 안식과 쉼을 내가 주겠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해당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가 ‘those who are weary and carry heavy burdens’입니다. 사는 것이 힘에 버겁습니다. 얼마 전에도 어느 자매가 “목사님, 저 어쩌면 한국으로 돌아 가야 할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공부를 마쳐도 미래가 밝지 않습니다. 어둡습니다. 청년들의 어깨가 무겁습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삶이 힘들어요. 하지만, 이만큼이라도 우리의 삶을 붙들어 주고, 견딜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 없으면 어디서 위로를 받고, 어디서 힘을 얻고, 용기를 얻나요? 나는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을 자기에게 오라고 부르시는 그 부르심 때문에, 그래도 금요일이 되고, 주일이 되면 “교회 가서 예배드려야지!” 하면서 교회로 나오는 그 믿음 때문에, 지금 여러분의 삶이 지켜지고 있는 것입니다. 힘들어도 “새벽에 나가서 말씀 듣고 기도해야지!” 하는 그 작은 믿음이 우리를 지켜 주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