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2018 | 사순절 26
하나님의 어린양 (The Lamb of God)
김태환 목사
로마서 3:21-26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 없이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율법과 예언자들도 증언한 것입니다.
22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옵니다. 이 의는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며,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24 그런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시는 속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는 판단을 받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25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내어 주셨으며, 누구든지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지은 죄에 대해 오래 참으심으로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의로우심을 보이셨습니다.
26 하나님께서 이 시기에 그분의 의로우심을 보이신 것은, 하나님 자신이 의로우시다는 것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의롭게 하신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였습니다.
21 But now God has shown us a way to be made right with him without keeping the requirements of the law, as was promised in the writings of Moses① and the prophets long ago. / ①Greek in the law
22 We are made right with God by placing our faith in Jesus Christ. And this is true for everyone who believes, no matter who we are.
23 For everyone has sinned; we all fall short of God's glorious standard.
24 Yet God, with undeserved kindness, declares that we are righteous. He did this through Christ Jesus when he freed us from the penalty for our sins.
25 For God presented Jesus as the sacrifice for sin. People are made right with God when they believe that Jesus sacrificed his life, shedding his blood. This sacrifice shows that God was being fair when he held back and did not punish those who sinned in times past,
26 for he was looking ahead and including them in what he would do in this present time. God did this to demonstrate his righteousness, for he himself is fair and just, and he declares sinners to be right in his sight when they believe in Jesus.
오늘 말씀은 율법의 규정을 지키지 않고도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구원의 '새 길'이 열렸다는 말씀입니다. 요약하면, 이 '새 길'은 이런 길입니다. (1) 율법과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약속되었던 길이다. (2) 이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온다. (3) 이 구원의 길은 차별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우리는 지금 이 말씀을 읽고 한가롭게 요점은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별 특별한 감동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저 늘 들어왔던 평범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로마에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보냈습니다. 로마의 크리스천들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로마서 말씀을 읽고 이 말씀을 가지고 설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가지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로마의 크리스천들은 누구를 통해서 복음을 들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세요. 바울이 드디어 로마에 거의 다 갔을 무렵, ‘브디올 (Puteoli)’이라는 곳에 도착을 했는데요. 여기서 바울은 크리스천 형제들을 만납니다. 그들의 초청을 받아 일주일을 그곳에 머물면서 그들과 교제합니다. 그리고, 로마에 도착합니다. 로마에서도 이미 바울의 온다는 소식을 듣고 부두에 환영 나와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로마의 크리스천 형제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만나 큰 위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8:15)
이 크리스천들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유대교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50% 이상 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나머지는 ‘Non-Jewish people’ 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이미 바울이 보낸 편지를 읽었을 것입니다. 유대교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바울의 편지를 을 읽으면서 바울이 제시한 구원의 ‘새 길’에 대한 말씀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아니? 율법 없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예수님 때문에 열렸다고?” “아니 누구나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예수님 여셨다고?” 하지만 이 사람들이 바울을 환영하러 이렇게 부두까지 나온 것을 보면, 바울의 편지를 충격적으로 받아 들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의미를 나름대로 정리를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또 ‘Non-Jewish people’에게도 바울의 편지는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구원의 길이 너무 쉽게 열리는 것에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로마의 크리스천 형제 자매들에게 대하여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지만, 어떻게 그 미스터리가 다 풀리겠습니까? 이 정도로 남겨 놓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23-25절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시는 속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는 판단을 받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내어 주셨으며, 누구든지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지은 죄에 대해 오래 참으심으로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의로우심을 보이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이 이를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은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소통의 채널이 끊어진 것을 말합니다. 죄는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 놓을 만큼 무서운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 그 죄를 용서 받기 위하여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주로 양을 드렸습니다. 양의 온순하고 순결한 모습이 제물로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제물을 고를 때는 신중하게 골랐습니다. 어린양 중에서 흠이 없는 양을 골랐습니다. 털에 다른 색이 들어 있지 않는 순백이어야 하고, 몸 어디에도 defect 된 부분이 없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렇게 어린양을 제물로 골라서 제사장에게 가져 갑니다. 그리고, 두 팔로 양을 꽉 잡고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 이렇게 해서 자신의 죄가 양에게 ‘전가 (im-putation)’ 된다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직접 칼로 양을 양을 죽입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그 양의 피를 제단에 뿌립니다. 이렇게 해서 속죄 제사를 마칩니다. 천년 넘게 지켜 온 유대교의 속죄 의식입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런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은 완전해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해마다 똑같은 제사를 드립니다. 그것은 황소나 염소나 양의 피로 죄를 깨끗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런 의식이 그들을 완전하게 할 수 있었다면, 더 이상 죄의식을 느끼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다시 제물을 드리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10:1-4)
또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몸을 드리신 제사를 통해 거룩함을 입었습니다...... 단 한 번의 제사로 그는 깨끗하게 된 사람들을 영원히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We have been made holy through the sacrifice of the body of Jesus Christ once for all).” (히브리서 10:10, 14)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십니다.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보십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Behold, the Lamb of God who takes away the sin of the world).” (요한복음 1:29, 36)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키면 한 말입니다. 이 말씀은 제가 이미 여러 번 말씀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화목 제물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 위해서 드리는 어린양과 다릅니다. 그 양은 자기 죄를 용서 받고 싶어서 자기가 선택해서 제사장에게 가져 간 양입니다. 이런 의식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용서 받는 유대교의 속죄의식은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해마다 이런 의식을 반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직접 제물로 선택하신 어린양입니다. 이 제물이면 우리의 죄가 영원히 용서 받을 수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고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속죄 제물입니다. 제물은 제물인데, 어린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제물로 준비하신 것입니다. 이제는 자기가 준비한 양을 두 손으로 꽉 잡고 자신의 죄를 고백해서 양에게 죄가 전가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전가되는 것입니다. 칼로 양을 죽여서 그 피를 제단에 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가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베드로는 이 피를 ‘보혈(寶血)’이라고, ‘The precious blood of Jesus’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베드로전서 1:18-19에 있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전에는 아무 가치도 없는 방식에 매여 살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조상이 물려 준 헛되고 쓸모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여러분은 그러한 무가치한 삶에서 구원 받았습니다. 금이나 은같이 없어지고 말 어떠한 것으로 대가를 지불한 것이 아니라, 한 점의 죄도 흠도 없으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여러분은 구원 받은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요? 베드로는 그 자신이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교의 속죄 의식에 너무나 익숙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이 한마디 말로 자신이 믿어왔던 유대교의 속죄 시스템을 모두 부정해 버립니다. ‘아무 가치도 없는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조상이 물려준 헛되고 쓸모 없는 것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용서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으로 돌아가는 구원의 새 시스템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대가로 지불한’ 구원이라고 합니다. 이 예수님의 보혈은 금이나 은과 같은 세상의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지금 누리고 있는 구원이 그렇게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앉아 있는 이 자리가 그렇게 귀한 자리입니다. 결코 아무나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결코 흔들릴 수 없는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눈에 올바른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들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직 우리의 믿음 하나를 보시고,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 감당할 수 없는 특별한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Therefore, since we have been made right in God's sight by faith, we have peace with God because of what Jesus Christ our Lord has done for us. Because of our faith, Christ has brought us into this place of undeserved privilege where we now stand, and we confidently and joyfully look forward to sharing God's glory).”(로마서 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