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2020 | 사순절 새벽기도 16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님
김태환 목사
요한복음 6:16-27
16 밤이 되자 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 호수로 내려갔습니다. 17 이미 날은 어두워졌지만 예수님께서는 아직 제자들에게 오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작은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가기 위해 갈릴리 호수를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18 그 때, 강한 바람이 불어 오고 호수 위의 파도는 점점 거세졌습니다. 19 제자들은 약 4~5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를 노 저어 갔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 배를 향하여 오시는 것이 보였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웠습니다. 20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1 제자들은 기꺼이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셨습니다.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22 다음 날, 호수 반대편에 서 있던 군중은 그 곳에 배가 한 척밖에 없다는 것과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시지 않고, 제자들만 떠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3 그 즈음, 배 몇 척이 디베랴에서 왔습니다. 디베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린 후, 사람들이 빵을 먹었던 장소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입니다. 24 사람들은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이 그 곳에 없다는 것을 알고는 배를 타고 예수님을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갔습니다. 25 사람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언제 여기에 도착하셨습니까?” 26 예수님께서 그 사람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내가 행한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썩어 없어지는 음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원히 있어서 영생을 주는 음식을 위해 일하여라. 인자는 너희에게 그런 음식을 줄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자가 이런 일을 행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16 That evening Jesus' disciples went down to the shore to wait for him. 17 But as darkness fell and Jesus still hadn't come back, they got into the boat and headed across the lake toward Capernaum. 18 Soon a gale swept down upon them, and the sea grew very rough. 19 They had rowed three or four miles① when suddenly they saw Jesus walking on the water toward the boat. They were terrified, / ①Greek 25 or 30 stadia [4.6 or 5.5 kilometers] 20 but he called out to them, "Don't be afraid. I am here!①" / ①Or The `I AM' is here; Greek reads I am. See Exod 3.14 21 Then they were eager to let him in the boat, and immediately they arrived at their destination! 22 The next day the crowd that had stayed on the far shore saw that the disciples had taken the only boat, and they realized Jesus had not gone with them. 23 Several boats from Tiberias landed near the place where the Lord had blessed the bread and the people had eaten. 24 So when the crowd saw that neither Jesus nor his disciples were there, they got into the boats and went across to Capernaum to look for him. 25 They found him on the other side of the lake and asked, "Rabbi, when did you get here?" 26 Jesus replied, "I tell you the truth, you want to be with me because I fed you, not because you understood the miraculous signs. 27 But don't be so concerned about perishable things like food. Spend your energy seeking the eternal life that the Son of Man can give you. For God the Father has given me the seal of his approval."
‘오병이어’의 표적이 있은 후 사람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 왔고, 예수님을 찾으려고 아우성들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예수님은 산에 계셨습니다. 이 상황에서 예수님은 홀로 하나님을 대면하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이런 말씀들을 주목해서 봐야 합니다. 사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어렵고 힘들 때가 있지만, 그 때가 위험한 때는 아닙니다. 정말 우리 인생에 있어서 위험한 때는 우리가 성공했을 때입니다. 성공했을 때 자칫 사람이 교만해 지거나 처신을 잘못해서 아주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자기가 선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하라 (If you think you are standing firm, be careful that you don't fall)!” (고린도전서 10:12)”는 경고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한창 자기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인기가 높아졌을 때 사람들 틈에 있지 않고 산으로 가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본을 받아서 어느 때가 위기이고, 어느 때가 기도해야 할 때인지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그 시간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밤중에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노를 저어서 한 5km 정도 갔을 때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고 파도가 거세게 일기 시작했습니다.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 “Meanwhile, the disciples were in trouble far away from land, for a strong wind had risen, and they were fighting heavy waves (마태복음 14:24)”라고 기록했습니다. 마가는 그의 복음서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He saw that they were in serious trouble, rowing hard and struggling against the wind and waves. About three o'clock in the morning Jesus came toward them, walking on the water. He intended to go past them.” (마가복음 6:48)
그 때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 배를 향하여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제자들은 기뻐서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셔 들였고,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이 말씀도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에 좀 다르게 나와 있습니다. 제자들은 물 위를 걸어 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다!”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좀 찬찬히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 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조용하던 호수에 갑자기 바람이 불고 거센 파도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어저께까지 괜찮았는데, 오늘 갑자기 예상치 않았던 일이 터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수 김광석도 그렇게 죽었습니다. 저녁까지 후배들과 술을 마시고,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다음 날 김광석이 죽은 것입니다. 같이 있었고, 같이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멘붕에 빠졌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고 하면서 그의 죽음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충분히 그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김광석이 왜 죽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이런 말도 안되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찬송가 67장 가사에 그런 가사가 있잖아요? “질그릇같이 연약한 인생 주 의지하여 늘 강건하리.” 난 이 가사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잘 표현한 것 같아서 부를 때마다 큰 은혜가 됩니다.
구약 전도서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Yet God has made everything beautiful for its own time. He has planted eternity in the human heart, but even so, people cannot see the whole scope of God’s work from beginning to end.” (전도서 3:11)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들이 그들의 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 송에 영원을 심어 놓으셨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알도록 해 놓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를 계획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모릅니다. 그래서 불안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불안하니까 매 순간순간마다 내 미래를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오늘 말씀을 잘 보면, 제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고난의 현장에 찾아 오셨습니다. 자신이 어려울 때 그의 제자들에게 “나와 함께 깨어서 기도하자”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어려울 때 자기 제자들과 함께 고난을 함께 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찾아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 죽었다고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낯선 분의 모습으로 마리아와 함께 계셨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이 상심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나그네의 모습으로 그들과 함께 길을 걸으셨습니다. 우리가 힘들어 하는 고난의 현장 속에 주님은 함께 계십니다. 몸이 아파 고생하는 사람과, 감옥에 갇혀 있는 외로운 사람들이 하나님을 쉽게 만나는 이유는, 그들의 고난과 아픔과 외로움 속에 주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더욱 놀라운 것은 제자들을 찾아 오신 예수님께서 “나다,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But he called out to them, ‘Don't be afraid. I am here!①’ / ①Or The ‘I AM’ is here; Greek reads I am. See Exod 3.14 이 말씀은 좀 설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 말이 출애굽기 3:14에 처음 나오는데요.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을 때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 말로 ‘YHWH’을 ‘야훼’ 혹은 ‘여호와 (Jehovah)’라고 불렀습니다. 억지로 발음을 하니까 ‘야훼’ 혹은 ‘여호와’라고 발음하지 하나님을 말하는 히브리어는 모두 자음으로 되어 있어 발음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할 때는 ‘아도나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말로 ‘주’ 혹은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처음으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 (I AM who I AM)”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성경을 Greek으로 번역하면서 하나님의 이름 ‘I AM’을 번역해서 ‘ἐγώ εἰμι (ego eimi)’라고 번역했습니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께서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이것을 영어로 “I am here”라고 했지만 사실은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I AM is here”라고 말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나는 하나님은 믿겠는데, 예수님은 못 믿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과 예수님을 같은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다른 분이 아니라 같은 분입니다. 이런 성경 말씀이 예수님을 믿고 받아 들이는데 도움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내가 행한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썩어 없어지는 음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원히 있어서 영생을 주는 음식을 위해 일하여라. 인자는 너희에게 그런 음식을 줄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자가 이런 일을 행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26-27절) 예수님의 말씀은 “왜 너희들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표적을 보고도 믿지 못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먹을 것을 주는 자로 알았느냐? 썩어 없어질 음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을 주는 음식을 위해서 일하여라” 이런 뜻입니다. “Don't be so concerned about perishable things like food. Spend your energy seeking the eternal life that the Son of Man can give you.” (27절)
맞습니다. 오늘 새벽, 이 말씀이 우리들의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힘 (energy)을 무엇을 위해 써야 하는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이 일이 영원한 생명을 주는 일이겠다” 싶은 그 일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한비야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한 때 청년들이 한비야의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비야가 보통 사람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독특한 삶을 살고 있었으니까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비야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의 미래를 어떻게 계획해야 할 지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 가슴이 떨리는 일을 생각하고 그 일을 결정하라고요. 참 좋은 말이지만, 가슴만 떨려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가슴이 떨리는 일이라도 이기적인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중요한 것은 그 일이 영원한 생명이라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일이냐 하는 것입니다. 남을 돕는 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풍성하게 하는 일, 그리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일과 관계되는 일이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For God the Father has given me the seal of his approval.” (27절) 영원한 생명을 주는 일,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은 어디서 얻을 수 있느냐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에게서 얻을 수 있습니다. 영원한 양식은 오직 예수님만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어디서도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님만 그 양식을 주실 수 있다고 ‘도장 (seal)’을 찍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미쳐야 합니다. 예수님께 빠져야 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빠져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갈 수밖에 없고, 그런 사람이 예수님께로부터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양식을 나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일에 참여합니다. 그 일이 나의 소명이 되고, 나의 사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르겠다고요? 오늘 예수님의 말씀처럼 살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