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2020 | 새해에는 이렇게 믿자 10
영적인 훈련 4 (Train Yourself for Godliness)
김태환 목사
창세기 1:1-5
1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2 그런데 그 땅은 지금처럼 짜임새 있는 모습이 아니었고, 생물 하나 없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어둠이 깊은 바다를 덮고 있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서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3 그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생겨라!” 그러자 빛이 생겼습니다. 4 그 빛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빛과 어둠을 나누셨습니다.
5 하나님께서는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습니다. 저녁이 지나고 아침이 되니, 이 날이 첫째 날이었습니다.
1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2 The earth was formless and empty, and darkness covered the deep waters. And the Spirit of God was hovering over the surface of the waters. 3 Then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4 And God saw that the light was good. Then he separated the light from the darkness. 5 God called the light "day" and the darkness "night." And evening passed and morning came, marking the first day.
우리는 지금 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기간입니다. 그리스도에게 마음을 집중하기 위해서는 절제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카톨릭 교인들은 고기 (meat)를 이 시간에 먹지 않습니다. 그대신 생선을 먹습니다. 여기에 착안해서 맥도날드에서 ‘Fish Burger’를 내 놓았다고 합니다.
이 기간에 성경 말씀을 읽고, 기도에 집중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절제하는 데 크게 도움이됩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나의 삶을 반성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다가가는 훈련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필요한 훈련이 아니라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꼭 있어야 하는 필수적인 훈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특별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 하나님의 영감 (inspiration)이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디모데후서 3:16)”고 했습니다. 신학자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씌어졌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하는 것을 가지고 오래 동안 논쟁을 벌였습니다. 요즘에 번역된 성경들을 보면 이 말을 “All Scripture is God-breathed and is useful for teaching, rebuking, correcting and training in righteousness”라고 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특별한 책입니다. 성경에 씌어진 글자 (말씀) 속에 하나님의 영감 (inspiration)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생각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세 가지 꼭 알아야 할 것들을 말씀 드리겠습니다.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읽은 창세기 말씀에 “그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생겨라!” 그러자 빛이 생겼습니다 (3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지만 땅은 아직 형체를 갖추지 못했고,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빛이 생겨라 (Let there be light)!” 하고 말씀하셨는데, 빛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말씀이 아니라 받아들임으로써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하나님의 말씀에 창조의 능력이 있다고 했는데, 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이면 우리 삶에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말씀이 가지고 있는 창조의 능력이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창조합니다.
이사야가 자기 백성들에게 이런 말씀을 전했습니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리면, 그리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오직 그 물이 땅을 적셔, 그것으로 식물이 싹이 터 사람들의 먹을 양식으로 자라난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도 그러하다. 내 말은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않는다. 내 뜻을 이룬 뒤에야, 내가 하라고 보낸 일을 다한 뒤에야 내게로 돌아온다 (The rain and snow come down from the heavens and stay on the ground to water the earth. They cause the grain to grow, producing seed for the farmer and bread for the hungry. It is the same with my word. I send it out, and it always produces fruit. It will accomplish all I want it to, and it will prosper everywhere I send it).” (이사야 55:10-11) 특히 마지막 말씀이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내는 곳이면 어디든지 그곳에서 그 말씀이 번창하게 됩니다. 성장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이게 ‘prosper’입니다. 명사형은 ‘prosperity’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실천해 나가면 우리의 삶이 성장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번영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잘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삶을 한번 보세요. 베드로가 헬라어를 몰랐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유세비우스(Eusebius, 263-339)의 교회사 (Church History)에 의하면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관이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을 벗어나면 베드로는 헬라어를 몰랐기 때문에 설교를 할 수 없어통역관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베드로가 어떻게 초대교회의 훌륭한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되기로 생을 결단했던 베드로는 늘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베드로의 삶 속에 많은 굴곡이 있습니다. 실수도 많이 했습니다. 어느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베드로 (시몬), 사탄이 자꾸 너를 자기 편으로 만들려고 하는구나. 난 네가 사탄의 시험에 넘어지 않게 해 달라고 계속 기도하고 있다.” (누가복음 22:31) 이 말씀이 NIV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Simon, Simon, Satan has asked to sift you as wheat. But I have prayed for you, Simon, that your faith may not fail.”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과 기도가 베드로의 인생을 성장 시키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했습니다. 저는 틀림 없이 여러분의 삶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때까지 힘든 일들을 참고 기다리고 견디십시오. 성경에는 그렇게 참고 견디면서 우리에게 크리스천의 성품 (character)이 만들어진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5:3-4).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생각하고 다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성경을 읽어도 “야, 여기에 이렇게 좋은 말씀이 있었구나!” 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말씀에만 빨간 줄을 긋습니다.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도 자기 생각과 맞는 말이 설교 중에 나오면 “목사님, 오늘 설교에 큰 은혜 받았습니다” 하면서 좋아합니다. 이 말을 뒤집어서 말하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 생각과 다른 설교에 은혜를 받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잖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생각과 다르다니까요? 우리 생각과 같지 않다니까요?
이 말씀을 한번 보세요.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 (My thoughts are nothing like your thoughts, and my ways are far beyond anything you could imagine. For just as the heavens are higher than the earth, so my ways are higher than your ways and my thoughts higher than your thoughts).” (이사야 55:8-9)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높습니다.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깊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밖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나중에 말씀 드리겠지만, 물리학에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아인슈타인이나 뉴턴 같은 사람과 대화가 되겠습니까? 수준 차이가 너무 나서 대화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똑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유함은 참으로 깊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헤아릴 수 없으며, 그분의 길은 아무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 수 있겠습니까? 누가 그분의 의논 상대가 될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 11:33-34) “How unsearchable are His judgments and unfathomable His ways!” (33절, NASB)
여러분은 인류 역사에 가장 훌륭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를 한 사람 뽑는다면 누구를 뽑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1879-1955)을 뽑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 못지 않게 주목을 받는 사람이 아이작 뉴턴 (Issac Newton, 1642-1727)입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이 나를 어떤 눈으로 볼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 비친 나는 어린아이와 같다. 나는 바닷가 모래밭에서 매끈하게 닦인 조약 돌이나 예쁜 조개껍데기를 발견하고 기뻐하지만, 거대한 진리의 바다는 발견되지 않은 상태로 내 앞에 놓여 있다 (I do not know what I may appear to the world; but to myself I seem to have been only like a boy, playing on the seashore, and diverting myself, in now and then finding a smoother pebble or a prettier shell than ordinary, while the great ocean of truth lay all undiscovered before me).”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윤리 책에서 처음 이 말씀을 읽었을 때, 그 때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저는 뉴턴이 말한 ‘진리의 바다’라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유함’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뉴턴이 진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그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의 부유함은 ‘unsearchable’ ‘unfathomable’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러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백성에게 전달합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Don't be afraid. Just stand still and watch the LORD rescue you today. The Egyptians you see today will never be seen again. The LORD himself will fight for you. Just stay calm).” (출애굽기 14:13-14)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 바다 앞에서 절대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위해 싸울 테니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과 얼마나 다릅니까?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릅니다. 사람이 죽게 되었으면 뭐라도 해 봐야지 어떻게 가만히 있습니까? 왜 우리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느냐고 한바탕 토론을 벌여야 맞을 것 같은데,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입니다. 중세기의 신학자 중에 안셀름 (Anselm, 1033-1109, 이탈리아)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Credo ut intelligam.” 영어로 번역하면, “I believe so that I may understand (나는 이해하기 위해서 믿는다)”이라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살립니다. 우리가 용기를 잃어 버리고 주저 앉아 있을 때, 우리가 낙심되어 있을 때, 우리가 절망할 때, 우리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고, 위로하고, 우리를 일으켜 세웁니다. 성경에 보면 종종 하나님의 말씀이 ‘떡’이나 ‘빵’ 혹은 ‘양식’에 비유됩니다. 요한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내게 오는 사람은 결단코 굶주리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I am the bread of life. Whoever comes to me will never be hungry again. Whoever believes in me will never be thirsty).” (요한복음 6:35) “빵’이나 ‘떡’이나 ‘밥’은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에 비유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힘을 공급한다는 뜻입니다.
겁과 두려움에 빠져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마라, 나다 (Don’t be afraid. I AM is here)!” (요한복음 6:20)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붙잡혀 감옥에 갇힌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생명을 보장 받을 수 없는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그는 주님의 위로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Be encouraged, Paul. Just as you have been a witness to me here in Jerusalem, you must preach the Good News in Rome as well).” (사도행전 23:11) 주님의 말씀을 잘 들어 보십시오. “바울 너는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할 사명을 가진 사람이야. 그 때까지 아무도 네 생명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내가 너를 지킬 것이다.” 이런 말씀 아닙니까?
예수님은 “너희가 나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너희 속에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말을 듣다 (요한복음 14:23-24)”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머리 속에 지식으로만 머물지 않게 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성경을 읽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읽어도 삶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머물러 여러분을 성장 시키고, 열매를 맺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에서 말씀의 향기가 배어 나게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