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2020 | 사순절 새벽기도 25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김태환 목사
요한복음 8:12-20
12 그후에 예수님께서 다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서 생활하지 않을 것이며,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13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당신이 당신 자신에 대해 증언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할 수 없소.”
14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그렇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증언한다. 하지만 나의 증언은 참되다. 이는 내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갈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한다.
15 너희는 세상의 표준을 가지고 판단하지만, 나는 아무도 그렇게 판단하지 않는다.
16 설령 내가 판단한다 하더라도, 나의 판단은 참되다. 이는 내가 판단할 때에, 혼자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판단하시기 때문이다.
17 너희의 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은 참되다고 기록되어 있다.
18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증언하는 사람이며, 또 나를 위해 증언하시는 분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이시다.”
19 그 사람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어디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도 알지 못하고 나의 아버지도 모른다. 만일 나를 알았다면 또한 나의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20 이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성전 뜰, 헌금함을 보관해 두는 곳에서 사람들을 가르칠 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을 잡지 못했습니다. 이는 아직 그분의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2 Jesus spoke to the people once more and said, "I am the light of the world. If you follow me, you won't have to walk in darkness, because you will have the light that leads to life."
13 The Pharisees replied, "You are making those claims about yourself! Such testimony is not valid."
14 Jesus told them, "These claims are valid even though I make them about myself. For I know where I came from and where I am going, but you don't know this about me.
15 You judge me by human standards, but I do not judge anyone.
16 And if I did, my judgment would be correct in every respect because I am not alone. The Father① who sent me is with me. / ①Some manuscripts read The One
17 Your own law says that if two people agree about something, their witness is accepted as fact①. / ①See Deut 19.15
18 I am one witness, and my Father who sent me is the other."
19 "Where is your father?" they asked. Jesus answered, "Since you don't know who I am, you don't know who my Father is. If you knew me, you would also know my Father."
20 Jesus made these statements while he was teaching in the section of the Temple known as the Treasury. But he was not arrested, because his time① had not yet come. / ①Greek his hour
오늘 말씀의 요절은 12절 말씀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I am the light of the world)!” 그리고 나머지 말씀들은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당신이 세상이 빛이라고 하면 빛이 되는 것입니까? 그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가 이 세상의 빛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하셨는지 궁금하시지요?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William Holman Hunt (1827-1910, 영국)가 그린 ‘세상의 빛 (The Light of The World)’이라는 제목의 그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에 등불을 들고 어느 집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주변은 온통 어둡습니다. 어느 계절인지 모르겠지만 문 앞의 풀들이 마른 것으로 보아 늦가을 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방은 어둡고 예수님 주변만 빛이 있습니다. 예수님 머리 뒤에 빛나는 물체는 보름달이 아니라 예수님에게서 나는 후광입니다. 그런데, 이 집의 문은 닫혀 있고, 문 앞에 마른풀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집에 사는 사람의 상태가 이렇게 황폐하고 말라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문에 손잡이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시지만, 손잡이가 없어서 문을 열고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안에 있는 사람이 문을 열고 예수님을 들어오시게 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있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Look!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If you hear my voice and open the door, I will come in, and we will share a meal together as friends.” (요한계시록 3:20)
문을 두드리는 예수님의 손을 보십시오. 저런 자세로는 문을 세게 ‘꽝꽝’ 두드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손가락으로 ‘똑똑’ 하고 두드립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얼굴은 그 안에서 나는 작은 인기척이라고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이고 있는 진지한 표정입니다.
이왕 홀만 훈트의 그림을 보았으니 하나 더 볼까요? 이 그림은 ‘The Shadow of Death (죽음의 그림자)’라는 그림인데요. 상당히 영감이 있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의 배경을 보면 장소는 작업실인 것 같습니다. 각종 공구들이 벽에 걸려 있고요. 바닥에는 대패밥이 어지럽게 널려 있습니다. 큰 톱도 보이고요. 때는 해가 저물어가는 늦은 오후인 것 같습니다. 석양빛이 예수님의 작업실을 비추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일을 하다가 잠깐 쉬면서 팔을 벌리고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의 뒤로 그림자가 진 것이 보입니다. 그 옆에 있는 여자는 누군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윌리엄 버클리 (William Barclay, 1907-1078, 영국) 목사님의 책에서 이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Barclay 목사님은 이 여자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라고 했습니다. 마리아가 우연히 예수님의 뒤에 생긴 그림자를 보면서 깜짝 놀라는 장면이라고 이 그림을 해석했습니다. 마리아가 놀라는 얼굴은 보이지 않습니다. 석양 빛을 받아 생긴 예수님의 그림자가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의 그림자 같이 보입니다. 마리아는 우연히 그의 작업실에서 아들의 죽음의 그림자를 본 것입니다. 참 화가의 영감 (inspiration)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William Holman Hunt는 성화 (sacred paintings)를 주로 그렸습니다. 이 그림들 말고도 그가 남긴 좋은 그림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세상에 빛인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서 살지 않으며, 생명의 빛을 얻는는다고 했습니다 (12절). 어둠 속에 사는 사람은 윌리암 홀만 훈트의 그림에서 보았듯이 사방이 컴컴한 어둠 속에 갇혀 삽니다. 그 사람의 마음 상태가 황폐합니다. 그런데,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생명의 빛을 얻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물론 이 말씀에도 ‘생명’과 ‘빛’이 연결되어 있습니다만, 이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참 빛이 있었습니다. 그 빛은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췄습니다. 참 빛이 되신 말씀이 세상에 계셨습니다. 그분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 생명은 세상 사람들을 비추는 빛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9-10, 4)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The one who is the true light, who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 He gave life to everything that was created, and his life brought light to everyone (참 빛이신 그 분이, 모든 사람에게 빛을 주시는 그분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의 생명은 모든 사람들에게 빛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잘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빛은 곧 생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빛’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나는 양들이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 왔다 (I came that they might have life abundantly, 요한복음 10:10)”고 하신 말씀과도 일치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이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믿는 빛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나가서 빛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빛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너희는 이 세상의 빛이라 (마태복음 5:14)”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과도 일치합니다. 빛은 곧 ‘생명의 빛’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너희가 이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을 얻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세상에 보여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희는 이 세상에 빛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로 사는 것인지 모릅니다. 무엇이 올바로 사는 것인지 모르니까 공부를 남보다 많이 해도 그것이 성공의 도구가 되고, 남보다 더 좋은 스펙을 쌓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남보다 많은 것을 소유해도 무엇이 올바로 사는 것인지 모르니까 자기가 가진 resource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 줄을 모릅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나는 빛 가운데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여전히 어두움 가운데 사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빛 가운데 살고 있는 사람이며,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잘못되게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어두움 가운데 있는 사람이며, 어두움 속에 살면서 자신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어두움이 그를 눈멀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빛 가운데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사신 것처럼 살아야만 합니다.” (요한일서 2:9-11, 6) "Those who say they live in the light should live their lives as Jesus did."
사도행전에 보면 처음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을 ‘크리스천’이라고 불렀다고 했는데, 저는 이 말 속에 좋은 의미가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을 ‘크리스천’이라고 부른 것은 안디옥 (Antioch)에서 처음 있었던 일입니다 (사도행전 11:26). 시리아에 있는 도시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박해가 시작되니까 이들 피해서 피난 갔던 사람들이 안디옥으로, 또 소아시아로 (지금의 터키에 있는 도시들) 갔습니다. 이 사람들을 ‘디아스포라 (diaspora)’라고 부릅니다. 이 ‘디아스포라’들이 어떻게 살았을까요? 서로 함께 모여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예배 드리고, 또 서로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아 주고, 그렇게 살지 않았을까요? 그 때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는 바울과 바나바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안디옥 교회에서 일년동안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훈련을 잘 받았으니까 안디옥 교회가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지 않았겠습니까?
‘크리스천 (Christians)’이라는 이름 속에 예수님의 인격과 사상과 교훈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가끔 어떤 분들이, 또 목사님들 중에도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초대교회 사람들이 정말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거든요? 물건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필요에 따라 나누어 썼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있을 수 없는 경의로운 일입니다. 이런 기적 같은 일들이 초대교회에서 있었습니다. 이제 이 시대에 우리가 크리스천의 삶은 어떤 것인 것 세상에 보여줘야 합니다. 여러분이 크리스천의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면 교회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 있겠지만, 보여 주지 못하면 교회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당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하는데, 그 증거가 뭡니까? 당신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입니까? 증거를 보여 주시오.” 어제 새벽기도 말씀에서도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라!” 이렇게 말씀하면 되는 것이냐고요. 예수님께서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지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지금 똑 같은 질문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이것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You judge me by human standards, but I do not judge anyone (너희는 인간적인 기준을 가지고 나를 판단하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누구도 판단하지 않는다).” (15절) 사람들이 ‘human standards’를 가지고 예수님을 판단합니다. 바울이 고린도후서 5:16에서 ‘human standards’에 대해서 말하잖아요? “나는 이제부터 그 어떤 사람도 세상의 관점으로 알지 않겠습니다. 전에는 내가 그리스도를 세상적인 관점으로 판단했으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I have stopped evaluating others from a human point of view. At one time I thought of Christ merely from a human point of view. How differently I know him now)!” 지금 사람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세상의 빛이라는 것을 증명하라고 요구할 때도 사람들은 당연히 ‘human standards’을 가지고 증명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식으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적인 일은 ‘human standards’를 가지고 증명할 수 있지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본질 상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는 것을 어떻게 ‘human standards’를 가지고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자신을 이렇게 증명했습니다. “너희 율법에 두 사람의 증인이 있으면 그것은 옳다고 되어 있다. 나에게 두 개의 증인이 있다. 하나는 나 자신이고, 다른 하나는 나를 보내신 나의 아버지이시다 (I am one witness, and my Father who sent me is the other).” (18절)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얼마나 화를 냈겠습니까? 오늘 읽은 성경 마지막 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But he was not arrested, because his time had not yet come (아직 그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체포되지 않았습니다).” (20절) 예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예수님을 체포하고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지만, 상황을 통제하고 있는 분은 유대 지도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을 지배하고 계신다는 것 아닙니까?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도, 그리고 우리의 삶도, 우리의 미래도 지배하고 통제하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오늘도 이 믿음을 가지고 마음에 큰 평안을 얻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