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2020 | 사순절 새벽기도 29
아직 빛이 있을 때
김태환 목사
요한복음 9:1-17
1 예수님께서 걸어가실 때, 나면서부터 앞 못 보는 사람을 보셨습니다. 2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 사람이 이렇게 앞 못 보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의 부모 때문입니까?” 3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가 죄를 지어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이 사람이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일을 그 사람의 생애를 통해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4 우리는 낮이 계속되는 동안,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계속해야 한다.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이 올 것이다.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6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신 후, 땅에 침을 뱉어 그것으로 진흙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진흙을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눈에 발랐습니다. 7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실로암 샘에 가서 씻어라.”(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라는 뜻입니다) 그 사람은 샘으로 가서 씻었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습니다. 8 그 사람의 이웃이나, 전에 이 사람이 구걸하던 것을 본 적이 있던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이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 아니냐?” 9 “맞아, 이 사람이 그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아니야, 이 사람은 전에 구걸하던 사람이 아니야. 단지 그와 비슷한 사람일 뿐이야”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0 그래서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11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수라고 하는 분이 진흙을 만들어 그것을 내 눈에 바르고 실로암 샘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12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소?” 그 남자는 “나도 모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13 사람들은 전에 보지 못했던 사람을 바리새인들에게 데려갔습니다. 14 예수님께서 진흙을 만들어, 그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준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15 바리새인들은 다시 그 남자에게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분이 진흙을 내 눈에 발랐습니다. 내가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16 바리새인 중에는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편, 어떤 사람은 “죄인이 어떻게 이와 같은 표적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 사이에 편이 갈렸습니다. 17 바리새인들은 그 남자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분이 당신의 눈을 뜨게 하였는데, 당신은 그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남자가 대답했습니다. “그는 예언자입니다.”
1 As Jesus was walking along, he saw a man who had been blind from birth. 2 "Rabbi," his disciples asked him, "why was this man born blind? Was it because of his own sins or his parents' sins?" 3 "It was not because of his sins or his parents' sins," Jesus answered. "This happened so the power of God could be seen in him. 4 We must quickly carry out the tasks assigned us by the one who sent us①. The night is coming, and then no one can work. / ①Other manuscripts read I must quickly carry out the tasks assigned me by the one who sent me; still others read We must quickly carry out the tasks assigned us by the one who sent me 5 But while I am here in the world, I am the light of the world." 6 Then he spit on the ground, made mud with the saliva, and spread the mud over the blind man's eyes. 7 He told him, "Go wash yourself in the pool of Siloam" ①. So the man went and washed and came back seeing! / ①Siloam means "sent" 8 His neighbors and others who knew him as a blind beggar asked each other, "Isn't this the man who used to sit and beg?" 9 Some said he was, and others said, "No, he just looks like him!" But the beggar kept saying, "Yes, I am the same one!" 10 They asked, "Who healed you? What happened?" 11 He told them, "The man they call Jesus made mud and spread it over my eyes and told me, `Go to the pool of Siloam and wash yourself.' So I went and washed, and now I can see!" 12 "Where is he now?" they asked. "I don't know," he replied. 13 Then they took the man who had been blind to the Pharisees, 14 because it was on the Sabbath that Jesus had made the mud and healed him. 15 The Pharisees asked the man all about it. So he told them, "He put the mud over my eyes, and when I washed it away, I could see!" 16 Some of the Pharisees said, "This man Jesus is not from God, for he is working on the Sabbath." Others said, "But how could an ordinary sinner do such miraculous signs?" So there was a deep division of opinion among them. 17 Then the Pharisees again questioned the man who had been blind and demanded, "What's your opinion about this man who healed you?" The man replied, "I think he must be a prophet."
오늘 말씀은 복잡한 것 같지만, 요점은 간단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면서부터 앞을 못 보는 사람을 보게 해 주셨다는 말씀과, 예수님께서 내가 이 세상에 있을 동안에서 빛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에게 불행한 일이 많이 있지만, 앞을 못 보는 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헬렌 켈러 (Helen Keller, 1880-1966)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삼 일만 볼 수 있다면, 첫째날은, 나에게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 준 설리번 (Anne Sullivan) 선생님의 얼굴을 몇 시간이나 바라보고 그 모습을 내 마음 깊이 간직하고 싶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과 들꽃들, 그리고 석양에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다. 둘째 날에는 먼동이 트며 밤이 낮으로 바뀌는 웅장한 기적을 보고 나서, 서둘러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을 찾아가 하루 종일 인간이 진화해 온 자취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그리고 저녁에는 아름답게 빛나는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겠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날에는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아침 일찍 큰길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볼 것이다. 그리고 나서, 오페라하우스와 영화관에 가 공연들을 보고 싶다. 그리고 어느덧 저녁이 되면, 네온사인이 반짝거리는 쇼 윈도에 진열되어 있는 아름다운 물건들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와, 나를 사흘 동안이라도 볼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다시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아시지요? 우리가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나면서부터 앞을 못 보는 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앞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의미에 대하여 알아 보겠습니다. 첫째로, 이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시라는 것입니다. 제가 전에 마태복음 11:4-5절 말씀을 말씀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 말씀은 이사야 35:5-6 말씀을 대조해서 읽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이 말씀은 메시야 시대가 되면 있을 일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메시아 시대에 대한 말씀이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 성취된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인간의 불행을 해석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셨습니다. 이 새로운 관점이라는 것이 곧 하나님의 관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묻습니다. “선생님, 이 사람이 이렇게 앞 못 보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의 부모 때문입니까?” (2절) 이것이 그 당시 사람들이 불행을 해석하던 방식이었습니다. 인간의 불행은 죄의 대가를 받는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것을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 합니다. 인간의 불행을 ‘human pint of view (인간적인 관점)’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인간적인 관점만 가지고는 우리의 삶의 문제들을 모두 해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봐야 인간의 불행의 문제가 비로소 해석됩니다. 이미 보았던 요셉의 불행, 욥의 불행, 그리고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고난과 불행과 절망의 문제는 오직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해석해야 비로소 풀립니다. 예수님은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이 사람의 생애를 통해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This happened so the power of God could be seen in him). 이 말씀은 곧 이 사람의 불행에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이 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믿는 우리는 비록 내 삶 속에 불행한 일, 절망스러운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나의 불행이, 나의 절망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보세요. “I create the light and make the darkness. I send good times and bad times. I, the Lord, am the one who does these things.” (이사야 45:7) 나의 불행을, 나의 절망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으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 목적이 무엇일까요? “For I know the plans I have for you. They are plans for good and not for disaster, to give you a future and a hope.” (예레미야 29:11)
셋째로, 예수님께서 이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셨다는 것은 단순히 이 사람이 보게 되었다는 의미 이상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기억하시지요? “The Word gave life to everything that was created, and his life brought light to everyone.” (요한복음 1:4) “The one who is the true light, who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 (요한복음 1:9) 이 사람이 빛을 보게 된 것은 곧 이 사람에게 그의 생명을 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사람의 생명이 회복된 것입니다. 집에서도 쫓겨나고, 사람들에게 멸시와 조롱을 받고, 인간 답게 살지 못했던 이 사람에게 빛이 비쳤습니다. 이렇게 이 사람의 삶에 어느 날 홀연히 인생의 낮이 찾아 온 것입니다. 이제 이 사람은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닙니다. 당당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고, 다른 사람들 틈에 낄 수 있고, 성전에 가서 예배도 드릴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한 인간으로 온전히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우리는 낮이 계속되는 동안,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계속해야 한다.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이 올 것이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4-5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에서 낮과 밤이라는 메타포를 사용하셨습니다. 낮은 빛이 있는 동안입니다. 이 빛 속에서 우리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빛 속에서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곧 아무도 일 할 수 없는 밤이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밤에는 빛이 없음으로 일 할 수 없습니다. 밤에는 모든 사람들이 일을 쉬고 안식을 합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가요? 우리에게 인생의 낮이 있고 밤이 있습니다. 아무리 일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는 밤이 누구에게나 찾아 옵니다. 아직 빛이 있는 낮일 때 우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 일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 일이 무슨 일일까요?
잠깐 이 질문을 답을 잠시 뒤로 미뤄 놓고요. 그 뒤에 나오는 안식일에 대한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날이 마침 안식일이었습니다. 눈을 뜨게 된 사람이 바리새인들에게 불려갔습니다. 눈을 뜬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이 진흙을 내 눈에 발랐습니다. 내가 씻었더니 보게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 말을 듣고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으면 죄인인데, 죄인이 어떻게 이와 같은 표적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모두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라는 규정에 매여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런 규정에 매여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누가복음 6:9) 이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선을 행하는 일 (doing good deeds)’과 ‘생명을 구하는 일 (saving life)’은 율법의 규정보다 더 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규정보다 더 위에 있기 때문에 선을 행하는 일이나 생명을 구하는 일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설교를 온라인으로 듣고 계시는 FKCC 여러분들, 한번 여러분의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그냥 이렇게 물에 떠내려가듯이 살다가 여러분의 인생을 끝내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설마 어렵게 공부해서 학위 받는 것이 여러분의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겠지요?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는 것이 여러분의 인생의 전부는 아니겠지요? 뭔가 여러분의 인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처럼 곧 인생의 밤이 옵니다. 제가 캘리포니아 클레아몬트로 신학공부를 하러 왔을 때 나이가 31살이었습니다. 지금 60대 후반이 되었습니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러갔는지 정말 빨리 지나갔습니다. 제 인생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까요? 예, 많습니다. 가끔 무슨 범죄를 저지른 붙잡혀서 포토라인에 설 때가 있습니다. 여기 저기서 플래쉬가 터집니다. 어떤 사람이 큰 소리로 물어 봅니다. “지금 심정이 어떻습니까? 후회는 하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정말 엉망으로 살았으면서도 “제 인생에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후회가 없어요? 왜 한번도 인간 답게 살아 보지 못했으면서 왜 후회가 없어요? 한번도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풀거나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살았으면서 왜 후회가 없다고 합니까?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곧 인생의 밤이 옵니다.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습니다.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이 빛 가운데서 여러분의 인생을 계획하세요.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계획이 아니라 참 인간으로 살 수 있는 길을 찾으세요. 그리고 ‘선을 행하는 일,’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찾으세요. 이 말씀이 여러분의 미래를 결정하는 말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