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2020 | 사순절 새벽기도 30
THE FIRST APOLOGIST
김태환 목사
요한복음 9:18-41
18 유대인들은 그 남자가 전에는 앞을 보지 못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남자의 부모에게 사람을 보내어 물어보았습니다. 19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 맞습니까? 당신들은 그가 나면서부터 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는데, 그가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게 되었습니까?” 20 그의 부모들이 대답하였습니다. “그 아이가 우리 아들인 것을 알겠고, 또 날 때부터 앞 못 보는 아이였다는 것도 알겠는데, 21 그 애가 지금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또 누가 그 아이의 눈을 뜨게 해 주었는지, 우리도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아이는 자기 문제에 대해서는 자기가 대답을 할 만큼 나이도 먹었으니, 그 아이에게 직접 물어 보십시오.” 22 그의 부모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회당에서 쫓아 내기로 이미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23 그래서 그 사람의 부모가 “그가 나이를 먹었으니 그에게 직접 물어 보십시오”라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24 바리새인들은 전에 보지 못했던 사람을 두 번째로 불러 그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오. 우리는 그 사람이 죄인인 것을 알고 있소.” 25 그가 대답했습니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아는 한 가지는 전에 제가 앞을 보지 못했으나 이제는 본다는 사실입니다.” 26 그들이 물었습니다. “그가 당신에게 무슨 행동을 했고, 그가 어떻게 당신 눈을 뜨게 했소?” 27 그 사람이 그들에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이미 당신들에게 다 말해 주었는데, 왜 들으려 하지 않습니까? 무엇을 다시 듣고 싶으십니까? 당신들도 그분의 제자가 되려고 그러십니까?” 28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그 사람에게 욕을 하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그의 제자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들이오. 29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이 사람에 대해서는 그가 어디서 왔는지조차 모릅니다!” 30 그 남자가 대답했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그 사람이 나의 눈을 고쳐 주었는데도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니 말입니다. 31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인의 말은 듣지 않으시지만, 경건하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의 말은 들으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32 나면서부터 앞 못 보는 사람의 눈을 뜨게 하였다는 말을 들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33 그분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34 이 말에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날 때부터 죄가 가득한 사람인데, 우리를 가르치려 하는가?” 그리고는 그 사람을 쫓아 내 버렸습니다. 35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이 회당에서 그 사람을 쫓아 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사람을 찾아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인자를 믿느냐?” 36 그 남자가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인자가 누구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그분을 믿겠습니다!”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미 그분을 보았다. 지금 너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38 그러자 그 사람은 “주님, 제가 믿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3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다.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들은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40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거기서 이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 몇 사람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우리도 앞을 보지 못한단 말이오?” 41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죄가 없겠지만, 지금 너희가 ‘우리는 본다’고 말하니 너희 죄가 아직 있다.”
18 The Jewish leaders still refused to believe the man had been blind and could now see, so they called in his parents. 19 They asked them, "Is this your son? Was he born blind? If so, how can he now see?" 20 His parents replied, "We know this is our son and that he was born blind, 21 but we don't know how he can see or who healed him. Ask him. He is old enough to speak for himself." 22 His parents said this because they were afraid of the Jewish leaders, who had announced that anyone saying Jesus was the Messiah would be expelled from the synagogue. 23 That's why they said, "He is old enough. Ask him." 24 So for the second time they called in the man who had been blind and told him, "God should get the glory for this①, because we know this man Jesus is a sinner." / ①Or Give glory to God, not to Jesus; Greek reads Give glory to God 25 "I don't know whether he is a sinner," the man replied. "But I know this: I was blind, and now I can see!" 26 "But what did he do?" they asked. "How did he heal you?" 27 "Look!" the man exclaimed. "I told you once. Didn't you listen? Why do you want to hear it again? Do you want to become his disciples, too?" 28 Then they cursed him and said, "You are his disciple, but we are disciples of Moses! 29 We know God spoke to Moses, but we don't even know where this man comes from." 30 "Why, that's very strange!" the man replied. "He healed my eyes, and yet you don't know where he comes from? 31 We know that God doesn't listen to sinners, but he is ready to hear those who worship him and do his will. 32 Ever since the world began, no one has been able to open the eyes of someone born blind. 33 If this man were not from God, he couldn't have done it." 34 "You were born a total sinner!" they answered. "Are you trying to teach us?" And they threw him out of the synagogue. 35 When Jesus heard what had happened, he found the man and asked, "Do you believe in the Son of Man?" 36 The man answered, "Who is he, sir? I want to believe in him." 37 "You have seen him," Jesus said, "and he is speaking to you!" 38 "Yes, Lord, I believe!" the man said. And he worshiped Jesus. 39 Then Jesus told him, "I entered this world to render judgment--to give sight to the blind and to show those who think they see that they are blind." 40 Some Pharisees who were standing nearby heard him and asked, "Are you saying we're blind?" 41 "If you were blind, you wouldn't be guilty," Jesus replied. "But you remain guilty because you claim you can see.
오늘 말씀은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뜨게 된 사건의 여파(餘波)가 얼마나 컸는지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가 죄를 지어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이 사람이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일을 그 사람의 생애를 통해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3절)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언제, 어떻게,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 사람의 불행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가 중요한 것이 이 문제가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하잖아요?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문제들, 고난, 절망, 이런 것들이 아무 뜻 없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이 들어 있다면, 그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가 언제, 어떻게, 어떤 과정을 통해서 드러나게 되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잘 봐야 합니다.
제가 길고 복잡한 문제를 몇 가지 이슈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로, 이 사건은 유대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사실 성경을 읽어보면 이 사건 보다 더 충격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살고 있는 ‘나사로’라는 사람은 죽은 지 4일이 되었는데,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이 사건이 유대 사회에 주었을 충격은 이무 말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수많은 인파가 모여 손에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흔들면서 “호산나!”를 외쳤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수많은 인파들은 도대체 어디서 온 사람들일까요? 이 성경 말씀 한번 보시겠습니까? “그러자 대제사장들은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였습니다.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예수님께 가서 그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유월절을 지키러 온 많은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님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실 때 함께 있던 많은 군중들은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증언하였기 때문에, 이처럼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표적에 대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맞으러 나왔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2:10-13, 17-18) 사실은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을 살려 내신 이야기가 성경에 또 한번 나옵니다. 누가복음 7장에 나오는데요.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동네에 가셨을 때 이미 죽어서 관 속에 들어 있는 한 청년을 살려 내신 말씀입니다. 이 청년의 어머니는 과부였는데, 아들이 죽자 모든 희망이 끊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어머니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 아들을 살려내서 어머니에게 돌려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7:11-15).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이 사건은 그렇게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오늘날에도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 이 사건이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 사람에 대한 사건은 사람들의 화제에 올랐습니다. 지금 같으면 ‘실검 순위 1위’로 떠 올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아는 그 사람이 맞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하고 비슷하기는 한데 그 사람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요한복음 9:8-9). 그도 그럴 것이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앞을 못보고 길거리에 앉아 구걸을 하던 사람이 두 눈을 뜨고 있으니, 쉽게 믿어지겠습니까?
둘째로, 유대 지도자들은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한 이 사람의 사건을 자세하게 조사했습니다. 조사한 이유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면밀하게 조사해서 사건의 진상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이 사건이 사람들에게 큰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어떻게 하든지 이 사건이 진실이 아니라, 잘못 알려진 사건임을 입증해서 예수님에게 사람들의 이목(耳目)이 집중되는 것을 차단하려고 했습니다. 본인을 두 차례나 심문했고, 그 부모까지 찾아가서 이 사람이 당신 아들이 맞는지 확인할 정도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 남자에게 묻습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당신의 눈을 뜨게 하였다고 주장하는데, 당신은 그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남자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는 예언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사람의 부모에게 사람들을 보내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 맞습니까?” “그 아이가 우리 아들 맞습니다. 날 때부터 앞을 못 보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애가 지금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또 누가 그 아이의 눈을 뜨게 해 주었는지, 우리도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아이는 자기 문제에 대해서는 자기가 대답을 할 만큼 나이도 먹었으니, 그 아이에게 직접 물어 보십시오.” (요한복음 9:23)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의 부모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회당에서 쫓아 내기로 이미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9:22)
여러분, 이 말씀에서 그 당시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께 대하여 가지고 있었던 적대감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인정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회당에서 쫓아낸다고 했는데, 이것을 영어 단어로 ‘excommunication’이라고 합니다. 동사는 ‘excommunicate’입니다. 위의 말씀을 이렇게 잘 번역했습니다. “His parents said these things because they feared the Jews, for the Jews had already agreed that if anyone confessed him [to be the] Christ, he should be excommunicated from the synagogue.” (Darby Bible Translation) 한국 말로 번역한다면 ‘파문(破門)’입니다. 그 뜻은 ‘the ecclesiastical sentence by which a person is excommunicated’입니다. 유대사회 같은 종교사회에서는 회당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사형선고나 같은 것입니다.
셋째로, 이 사람은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변호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리새인들에게 끌려가 심문을 받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이 사람 간의 대화를 한번 들어 보시지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오. 우리는 그 사람이 죄인인 것을 알고 있소.”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아는 한 가지는 전에 제가 앞을 보지 못했으나 이제는 본다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9:24-25) “흠, 그래? 그 예수라는 사람이 당신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시 말해 보시오.” “내가 이미 여러 번 말했는데, 무엇을 다시 듣고 싶으십니까? 혹시 당신들도 그분의 제자가 되려고 하십니까?” “당신은 그의 제자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들이오. 우리는 모세는 잘 알지만, 예수라는 사람에 대하여는 그가 어디서 왔는지조차 모릅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그 사람이 나의 눈을 고쳐 주었는데도 그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다니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인의 말은 듣지 않으시지만, 경건하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의 말은 들으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앞 못 보는 사람의 눈을 뜨게 하였다는 말을 들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말에 화가 난 바리새인들은 ‘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난 놈이 감히 우리를 가르치려 해?’ 하면서 그 사람을 쫓아 내 버렸습니다.” (요한복음 9:25-34)
여러분, 이 사람이 하고 있는 말과 행동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이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셨고, 이 사람은 온갖 위험과 두려움을 이겨내면서 자기 눈을 뜨게 해 주신 예수님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의 불행을 통하여 이런 식으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이 최초의 ‘apologist’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나사로 같은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존재감만으로도 훌륭한 ‘apologist’로 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 사람은 적극적으로 그의 눈을 뜨게 해 준 예수님을 변호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람보다 뒤의 사람인데, 사도 바울은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apologist’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만큼 장시간에, 열정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호한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 대표적인 ‘apologist’는 제가 지난 해 부활절 예배에서 소개했던 Simon Greenleaf (1783-1853)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하바드 법대를 창설한 사람입니다. ‘전도자의 증언 (Testimony of the Evangelists, 1846)’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사람의 전공은 법정에서 어떤 증거가 실효성 있는지에 대한 연구입니다. 이 사람은 무신론자였기 때문에 그가 마음만 먹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아무 증거 없는 사건이라는 결론을 얻을 줄 알았습니다. 그는 사복음서에서 부활의 증거를 수집했습니다. 놀랍게도 그가 얻은 결론은 “부활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사건이 분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스스로 얻은 결론을 부인할 수 없어서 자신이 크리스천이 되었고, 유력한 apologist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 최고의 ‘apologist’는 C. S. Lewis (1898-1963)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Screwtape Letters, 1942)’ ‘나니아 연대기 (The Chronicles of Narnia, 1950-1956)’ ‘순전한 기독교 (Mere Christianity, 1952)’ 같은 수많은 기독교를 옹호하는 책들을 썼습니다. ‘순전한 기독교’는 그가 쓴 최대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신학적인 입장이나 전통의 차이점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시각에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런 요소들을 배제한, 순수한 기독교란 어떤 것인지 그 시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순전한 기독교’라는 번역이 잘된 번역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불행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하나님은 이 사람의 불행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이런 경우 이 사람의 불행은 단순한 불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불행을 통해서 이 사람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절망과 불행이 있습니까? 문제는 나의 불행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행히 예수님을 만나고 성경의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이 사람을 결국 회당에서 쫓아냈습니다 (34절). 다시 이 사람에게 불행한 일이 닥쳤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아무도 막지 못합니다. 그는 회당에서 쫓겨나는 불이익을 받았지만, 이제 이 사람은 이런 일을 충분히 극복하고도 남는 사람이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에 대한 얘기를 듣고 그를 만나러 오신 것은 감동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을 겁니다. “너는 인자를 믿느냐?” “선생님, 인자가 누구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너는 이미 그분을 보았다. 지금 너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주님, 제가 믿습니다!” 이 사람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다.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들은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39절) “Then Jesus told him, ‘I entered this world to render judgment--to give sight to the blind and to show those who think they see that they are blind.’” 마침 옆에서 이 대화를 엿듣고 있던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 그럼 우리가 앞을 보지 못한단 말이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those who think they see (자기들은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는 시각장애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잘 봅니다. 우리가 blind라고요?” 예, 이런 사람들이 blind입니다. 그들은 자기들 앞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은 ‘영적 시각장애자 (spiritual blind)’라고 하셨습니다. 눈이 안 보인다고 해서 장애자가 아니고요. 눈은 잘 보이고 좋은 시력을 가졌으나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장애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든지 그것 때문에 여러분이 장애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장애자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이런 예수님의 생각과 관점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자유함을 얻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