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020 | 사순절 새벽기도 31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김태환 목사
요한복음 10:1-18
1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양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사람은 도둑이며 강도다. 2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양의 목자다. 3 문을 지키는 사람은 목자를 위해 문을 열어 준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을 밖으로 인도한다. 4 목자가 자기 양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후, 양들 앞에서 걸어가면,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기 때문에 그의 뒤를 따른다. 5 하지만 양들은 낯선 사람을 절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양들은 낯선 사람의 음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서 멀리 도망간다.” 6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들어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분이 자기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7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앞에 온 사람들은 다 도둑이며, 강도들이다. 양들은 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9 나는 문이다. 나를 통해 들어가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 사람은 들어가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며, 또 좋은 목초를 발견하기도 할 것이다. 10 도둑은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기 위한 목적으로 온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 왔다.” 11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12 품삯을 받고 양을 돌보는 사람은 사실 목자가 아니며, 양도 자기 양이 아니다. 그 사람은 늑대가 오는 것을 보면, 양만 남겨 두고 멀리 도망가 버린다. 그러면 늑대는 양을 공격하여 양들을 흩트린다. 13 그 사람은 단지 품삯을 받고 양을 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양을 돌보지 않는다.” 14 “나는 선한 목자다. 나도 내 양을 알고, 내 양도 나를 알아본다.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아버지를 안다. 그리고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16 내게는 이 우리 안에 있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다. 나는 그 양들도 인도해야 한다. 그 양들도 내 음성을 들을 것이다. 그래서 한 목자 아래서 한 무리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나의 목숨을 스스로 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목숨을 다시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 18 아무도 내게서 목숨을 빼앗을 사람이 없고, 다만 내 스스로 생명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세도 있고, 그것을 다시 찾을 권세도 있다. 나는 이 계명을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다.”
1 "I tell you the truth, anyone who sneaks over the wall of a sheepfold, rather than going through the gate, must surely be a thief and a robber! 2 But the one who enters through the gate is the shepherd of the sheep. 3 The gatekeeper opens the gate for him, and the sheep recognize his voice and come to him. He calls his own sheep by name and leads them out. 4 After he has gathered his own flock, he walks ahead of them, and they follow him because they know his voice. 5 They won't follow a stranger; they will run from him because they don't know his voice." 6 Those who heard Jesus use this illustration didn't understand what he meant, 7 so he explained it to them: "I tell you the truth, I am the gate for the sheep. 8 All who came before me were thieves and robbers. But the true sheep did not listen to them. 9 Yes, I am the gate. Those who come in through me will be saved. They will come and go freely and will find good pastures. 10 The thief's purpose is to steal and kill and destroy. My purpose is to give them a rich and satisfying life. 11 "I am the good shepherd. The good shepherd sacrifices his life for the sheep. 12 A hired hand will run when he sees a wolf coming. He will abandon the sheep because they don't belong to him and he isn't their shepherd. And so the wolf attacks them and scatters the flock. 13 The hired hand runs away because he's working only for the money and doesn't really care about the sheep. 14 "I am the good shepherd; I know my own sheep, and they know me, 15 just as my Father knows me and I know the Father. So I sacrifice my life for the sheep. 16 I have other sheep, too, that are not in this sheepfold. I must bring them also. They will listen to my voice, and there will be one flock with one shepherd. 17 "The Father loves me because I sacrifice my life so I may take it back again. 18 No one can take my life from me. I sacrifice it voluntarily. For I have the authority to lay it down when I want to and also to take it up again. For this is what my Father has commanded."
어저께 ‘apologist’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Samuel Greeleaf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사람이 한 말 중에 꼭 보여 드리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그만 깜빡 잊어버리고 못한 말씀이 있습니다. 한번 그가 한 말을 보실까요? “A person who rejects Christ may choose to say that I do not accept it, he may not choose to say there is not enough evidence (어떤 사람이 나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는 차고 넘친다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으로 들어갈까요? 오늘 말씀도 긴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내 양 (my own sheep, 14절)’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고 우리는 그 목자를 따르는 양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다”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의 생각 속에 다윗이 쓴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말씀이 들어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있을 법한 생각 아닙니까?
많은 화가들이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그렸습니다. 가장 유명한 그림은 Warner Sallman (1892-1968, 미국)이 그린 ‘The Good Shepherd (선한 목자)’입니다. 그 그림 한번 보실까요? 오늘 읽은 말씀 요한복음 10:11 “나는 선한 목자다” 이 말씀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입니다. Warner Sallman이 그린 또 하나의 명작이 있는데, 그 그림 제목이 ‘The Head of Christ’입니다. 이 그림의 제목이 ‘The Head of Christ (예수 그리스도의 이마)’인 것이 참 인상적이지 않습니까? 사람의 이마가 그 사람의 성격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Sallman이 그린 예수님의 이마를 한번 보십시오. 빛이 나면서 강인한 인상을 주지 않습니까? 전체적으로는 온유한 예수님의 모습이지만, 강인한 의지를 가진 예수님의 얼굴입니다.
이 그림에 우리 시선을 빼앗기지 말고, 다시 Sallman이 그린 ‘선한 목자’ 그림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양 한 마리를 품에 안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잃어버린 양 한 마리의 비유 (누가복음 15:4-6) ’가 생각이 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 뒤로 잔잔한 강이 흐르고 있고, 양들 앞에는 풀밭이 있습니다. 양들의 표정은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는 만족한 표정들입니다. 양 가운데 서 계시는 예수님 역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양과 목자이신 예수님의 관계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가장 가관인 것은 많은 목사들이 자기들을 목자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교회를 맡고 있는 목사에게 ‘pastor’라는 이름을 붙여 줍니다. 그런데, 이 ‘pastor’라는 말이 ‘a person who leads to pasture (초장으로 인도하는 사람)’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pastor’는 목장에서 ‘양을 치는 사람 (shepherd)’을 말합니다. 목사들의 모임에 가 보면 회장이라는 사람이 나가서 “여러분, 각자의 목장에서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습니까?”하고 인사를 합니다. 또 대표 기도하는 사람은 그런 기도를 합니다. 정말 가관입니다. 제가 여러 번 목사들 앞에서 설교할 기회 있을 때마다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무슨 목자냐? 당신들이 양들을 인도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지금의 교인들은 아무 생각 없이 목사를 따르는 사람들도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시대의 목사들은 목자가 될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목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우리 역시 목자 되시는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양들 중에 하나이다” 이렇게 열변을 여러 번 토했지만 소용 없습니다. 여전히 자기들이 목자인 줄 압니다. 그런 생각들이 몸에 뱄습니다. 목사들은 지금보다 한 없이 더 낮아지고 겸손해 져야 합니다. 목사가 무슨 특권일 줄 아는 교만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프랜시스 교황이 신부들 (목사들)에게 이렇게 말해서 그 말이 화제가 되었었잖아요? “여러분의 몸에서 양의 냄새가 나야 합니다.” 여전히 교황도 목사와 양을 구별하고 있는 것이 유감이긴 하지만, 목사들이 양 무리 속으로 들어가야 한 것은 퍽 인상적입니다. 목사가 무슨 특권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말을 빌린다면, 목사는 사역자에 불과합니다 (고린도전서 3:22-23).
제가 클레아몬트에서 신학공부를 할 때 신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한 과목을 들었는데, 그 과목이 목회학에 해당하는 과목이었습니다. 거기서 한 책을 소개 받았는데, 리차드 백스터 (Richard Baxter, 1615-1691)라는, 영국의 청교도 목사님이 쓴 ‘The Reformed Pastor’라는 책이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구구절절이 목사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 지를 깨우쳐 주는 책이었습니다. 정말 양들을 위해서 깨어 있고, 돌보고, 자신을 모두 희생해야 하는 사람이 목사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어떻게 자기 관리를 하고, 자기 신앙의 성장을 위해서 애써야 하는지, 목사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 목사라면 목자라는 타이틀을 가질 자격이 있겠다고요.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도둑은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기 위한 목적으로 온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 왔다.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10-11절) 양들의 생명을 훔치고, 죽이고, 빼앗고, 파괴하는 사람은 목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하면서도 버젓이 목자의 자리에 앉아 있고, 그 보다 더 한 명칭을 자기에게 갖다 붙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의 말처럼 목자가 아니라 삯꾼입니다. 돈 받고 일하는 사람입니다. 돈이 탐나서 일하는 사람이지 목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참 목자의 삶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바쳤습니다. 사실 우리가 이 성경 말씀을 읽을 때 그렇게 안 읽어서 그렇지 한번 보세요.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뭡니까? 가슴이 섬칫하지 않습니까? 정말 양들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바친 사람이 남긴 유서와 같은 말씀을 지금 읽고 있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알고, 양들도 목자를 안다고 했습니다 (14절).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알고 양들은 음성을 안다고 했습니다 (3-4절). 이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완전히 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는 것처럼 나도 아버지를 안다 (15절)”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알고 내가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것처럼, 목자는 양들을 안다는 것입니다. 목자는 양의 전부를, 양의 모든 것을 완전하게 아는 것입니다. 양들의 필요가 무엇이지 알고, 또 때를 따라 양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완전하게 아는 것입니다. 그래야 참 목자라는 것입니다.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알고 따라가는 것은 이런 목자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 분을 따라가면 나의 생명이 위험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충분히 풀을 뜯을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리고, 저 분의 보호 아래서 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저 분의 인도 아래서 나의 생명이 더 풍성해 질 것이다.” 목자에 대한 이런 신뢰가 없으면 어떻게 목자를 따라 가겠습니까? “하지만 양들은 낯선 사람을 절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5, 8절)”고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또 자기를 ‘문 (the gate)’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통해 들어가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 사람은 들어가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며, 또 좋은 목초를 발견하기도 할 것이다.” (9절)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출입 (出入)’이라고 합니다. ‘출입’은 우리의 삶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우리는 아침에 집을 나가서 일하고, 저녁에 집에 들어와 쉬고 잠을 잡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오고 나가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문’이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분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들어오고 나가면서 ‘문’이신 예수님을 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정상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참 적절하게 자기 자신과 우리와의 관계를 표현하셨습니다. 시편 말씀이 생각납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시편 121:7-8)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하고 사방을 찾던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도움을 발견한다는 시편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이것을 위해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 고난을 받으심으로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십시오. 그분은 죄가 없으시며, 거짓을 말한 적도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모욕을 당해도 욕하지 않으시고, 고난을 받을 때도 위협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몸소 우리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우리가 더 이상 죄를 위해 살지 않고 의를 위해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상처를 입으심으로써, 우리가 낫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길 잃은 양처럼 잘못된 길로 갔지만, 이제는 영혼을 살피시는 목자와 보호자의 품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베드로전서 2:21-25)
마지막 절 25절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Once you were like sheep who wandered away. But now you have turned to your Shepherd, the Guardian of your souls.” 이 말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는 모두 양 같이 방황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목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들이 방황하는 이유는 목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참 목자가 되시고, 영혼의 가디언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가디언’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가디언’는 부모를 대신해서 그 아이를 돌보는 사람입니다. ‘가디언’은 부모를 대신하기 때문에 법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우리 영혼을 책임 있게 관리하고 돌보시는 ‘가디언’과 같은 분이라고 합니다. Guardian이라고 할 때 ‘G’자로 대문자로 썼지요? 예수님을 가리킨다는 뜻입니다. 이분을 신뢰하고, 이분을 믿고, 이분을 따라가는 이상 우리의 삶은 안전합니다. 그리고 만족한 삶이 주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목자로 삼고, 여러분의 영혼의 ‘가디언’으로 삼는 축복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에서 양이 할 수 있는 것은 목자를 신뢰하고 믿는 것입니다. 목자가 해야 하는 것은 양을 돌보고, 먹이고, 인도하고, 보호하고 양들의 생명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이 아침에, 여러분의 인생을 ‘선한 목자 (The Good Shepherd)’ 그리고 우리의 ‘영혼의 가디언 (The Guardian of our souls)’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여러분의 인생을 맡기는 결단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삶은 행복하고 만족한 삶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