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2020 | 사순절 새벽기도 37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김태환 목사
요한복음 12:27-43
27 “지금 내 마음이 무척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아버지, 이 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아닙니다. 나는 이 일 때문에 이 때에 온 것입니다. 28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소서!” 그 때, 하늘로부터, “내가 이미 영화롭게 하였고, 또다시 영화롭게 할 것이다”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29 곁에 서서 이 소리를 들은 많은 사람이 천둥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 중에는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30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 소리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를 위해서 들린 것이다. 31 이제 이 세상을 심판할 때가 되었다. 이제 이 세상의 통치자가 쫓겨날 것이다. 32 내가 땅에서 들려 올라가게 되면, 나는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 것이다.” 33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자신이 어떤 식으로 죽을 것인가를 보이려는 것이었습니다. 34 군중은 이 말을 듣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실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해서 ‘인자가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당신이 말씀하시는 ‘인자’란 도대체 누구입니까?” 35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빛이 잠시만 더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빛이 있을 때에 다니면 너희는 어둠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다니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36 빛이 너희에게 있을 동안 빛을 믿어라. 그러면 너희는 빛의 아들이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 숨으셨습니다. 37 예수님께서 이 모든 표적을 사람들 앞에서 행하셨지만, 그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38 이것은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이시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습니까? 주님의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39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이사야 예언자는 말하였습니다. 40 “주님께서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아와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41 이사야가 이런 말을 한 것은 그가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예수님에 관하여 말했기 때문입니다. 42 그러나 동시에 지도자들 중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많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바리새인들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회당에서 쫓겨날까 두려워했습니다. 43 그들은 사람에게 칭찬받는 것을 하나님께 칭찬받는 것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27 "Now my soul is deeply troubled. Should I pray, `Father, save me from this hour'? But this is the very reason I came! 28 Father, bring glory to your name." Then a voice spoke from heaven, saying, "I have already brought glory to my name, and I will do so again." 29 When the crowd heard the voice, some thought it was thunder, while others declared an angel had spoken to him. 30 Then Jesus told them, "The voice was for your benefit, not mine. 31 The time for judging this world has come, when Satan, the ruler of this world, will be cast out. 32 And when I am lifted up from the earth, I will draw everyone to myself." 33 He said this to indicate how he was going to die. 34 The crowd responded, "We understood from Scripture that the Messiah would live forever. How can you say the Son of Man will die? Just who is this Son of Man, anyway?" 35 Jesus replied, "My light will shine for you just a little longer. Walk in the light while you can, so the darkness will not overtake you. Those who walk in the darkness cannot see where they are going. 36 Put your trust in the light while there is still time; then you will become children of the light." After saying these things, Jesus went away and was hidden from them. 37 But despite all the miraculous signs Jesus had done, most of the people still did not believe in him. 38 This is exactly what Isaiah the prophet had predicted: "LORD, who has believed our message? To whom has the LORD revealed his powerful arm?"① / ①Isa 53.1 39 But the people couldn't believe, for as Isaiah also said, 40 "The Lord has blinded their eyes and hardened their hearts? so that their eyes cannot see, and their hearts cannot understand, and they cannot turn to me and have me heal them."① / ①Isa 6.10 41 Isaiah was referring to Jesus when he said this, because he saw the future and spoke of the Messiah's glory. 42 Many people did believe in him, however, including some of the Jewish leaders. But they wouldn't admit it for fear that the Pharisees would expel them from the synagogue. 43 For they loved human praise more than the praise of God.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기의 마음이 괴롭다고 하시면서 힘든 마음을 공유하시는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이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공관복음서에는 이 말씀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여기서 머무르며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마태복음 26:38) 제자들과 그런 마음을 나눈다고 해서 예수님께 도움이 될 일이 있을까요? 주님은 그 힘든 시간에 나와 함께 깨어 있자고 하셨지만 제자들은 모두 잠들어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주님은 계속해서 그런 제자들과 마음을 나누자고 하십니다.
사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자기가 세운 교회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제대로 기도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기를 위해서 더 담대하게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말씀을 전할 때,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복음의 비밀을 말할 수 있도록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에베소서 6:19) 우리도 이런 본을 받아서 비록 상대방이 믿음이 강한 사람이든 약한 사람이든 마음을 나누고 기도를 부탁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교제의 핵심입니다. 크리스천들이 나누는 성도의 교제는 서로 집을 방문하고, 같이 밥을 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하고, 노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때로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누는 교제의 중심에는 언제나 예수님께서 계셔야 합니다. 이 말씀을 아시지요?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 말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우리와 함께 교제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함께 나누는 이 교제는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가지는 교제입니다 (We proclaim to you what we ourselves have actually seen and heard so that you may have fellowship with us. And our fellowship is with the Father and with his Son, Jesus Christ).” (요한일서 1:3)
예수님은 계속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무척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아버지, 이 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아닙니다. 나는 이 일 때문에 이 때에 온 것입니다.” (27절) 이 말씀이 Good News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Now my heart is troubled--and what shall I say? Shall I say, ‘Father, do not let this hour come upon me’? But that is why I came--so that I might go through this hour of suffering.” “지금 나의 마음이 괴롭다. 그렇다고 ‘아버지, 이 시간이 저에게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할까? 아니,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바로 이 괴롭고 힘든 고난의 시간을 겪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이 힘든 고난의 시간을 혼자 겪어야만 했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온전히 우리를 위해 힘든 시간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죄의 값을 대신 치르는 대속물 (ransom)이 되실 수 있으니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과 같이 깨어 있지 않고 잠을 잤다고요. 예수님은 누구의 도움고 받지 않고 혼자 그 힘든 시간을 겪어야 했다니까요? 여러분과 저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고난의 시간을 혼자 모두 겪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힘든 시간에 하나님께 기도하심으로 또 하나의 ‘example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힘든 시간에 기도하라고요. 다시 말씀 드립니다. ‘힘든 시간 (in times of trouble)’에 하나님의 도움을 실제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 설정에 힘써야 한다고요. 그렇지 않고 갑자기 힘든 일을 맞이해서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 하나님의 은혜를 ‘값싼 은혜 (cheap grace)’로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소서 (Father, bring glory to your name)!”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이 올바른 기도입니다. 언제나 나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시지요? 이 말씀이 공관복음서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아버지, 내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마태복음 26:39, 마가복음 14:36, 누가복음 22:42)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이 기도에 즉각 응답하셨습니다. “내가 이미 영화롭게 하였고, 또다시 영화롭게 할 것이다.” (28절) 신기한 것은 옆에 있는 사람들도 뭔가 분명하지는 않아도 무슨 소리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9:7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의 응답을 주시는 채널은 매우 다양하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가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내용이 이해가 가십니까? “내가 이미 영화롭게 하였고, 또다시 영화롭게 할 것이다 (I have already brought glory to my name, and I will do so again).” 하나님께서 두 번 영광을 받으시는데 한번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면서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이미 받으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한번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여기 두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 첫째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즉 무엇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인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이 먼저 있어야 하고요. 둘째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했으면 그 뜻을 행동으로, 실천으로 옮겨야 합니다. 시간 관계상 이 문제를 더 자세하게 말씀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내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 것이 성경 말씀과 일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모르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맞는지 체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둘째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자기 뜻을 말씀해 주십니다. 셋째는 내가 분별한 하나님의 뜻이 이기적인 것이 아닌지 점검해야 합니다. 이기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제가 여러 번 이런 일을 경험했습니다. 간혹 부부가 저에게 와서 “목사님, 저희는 한국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그러면 제가 “그래요?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결정을 했어요?” 이렇게 물어 보면 “왜 몇 주 전에 목사님께서 설교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저희는 그 말씀이 저희에게 주신 말씀으로 알고 마음을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말들 합니다. 저는 그 부부를 대상으로 설교한 것은 아닌데, 그 부부는 그렇게 들은 것입니다. 그런 케이스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내가 (인자가) 땅에서 들려 올라가게 되면, 나는 (인자는)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 것이다 (32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NLT 성경에 “And when I am lifted up from the earth, I will draw everyone to myself”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And when the Son of Man is lifted up from the earth, the Son of Man will draw everyone to myself”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여기서 알아 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인자’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 말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인자가 땅에서 들려 올라가게 되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이 성경에 처음 나온 것은 요한복음 3:14-16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높이 들었던 것처럼 인자도 들려야 한다.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이 말씀에 “인자도 들려야 한다”는 말씀이 나오지 않습니까? 모세가 광야에서 장대에 구리 뱀 (a bronze snake )을 만들어 높이 매단 적이 있습니다. 이 말씀이 구약성경 민수기 21장에 나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독사 (poisonous snakes)를 보냈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물려 죽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이 백성을 용서해 주시고 살려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구리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매달아라. 뱀에 물린 사람은 그것을 쳐다보면 살 것이다 (민수기 21:8)”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했고, 독사에게 물려 죽어가는 사람들이 장대 끝에 달린 ‘구리 뱀’을 쳐다보는 사람은 모두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도 그를 믿는 사람들이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들려야 한다.”
골고다 언덕에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골고다 (Golgotha)’라는 말은 아람어, 혹은 히브리어인데 ‘Place of the Skull (해골의 곳)’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형수들이 그곳에서 죽었던 것 같습니다. ‘골고다’에서 죄수들을 십자가에 못을 박습니다. 십자가를 땅에 놓고 죄수들을 못 박은 다음에 들어 올리는 식으로 죄수들을 십자가에 매답니다. 예수님과 같은 시간에 다른 두 죄수도 십자가에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그 십자가가 우리의 구원을 위한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이 장대에 매단 구리 뱀을 쳐다보는 사람은 모두 산다고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 저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라는 사람이 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매달리셨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누구는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구원이 그렇게 쉽냐고요. 예. 우리 기독교의 메시지는 그렇게 쉽습니다. 누구든지 진심으로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구원을 얻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메시지를 복음이라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구원을 위한 ‘복된 소식’ ‘기쁜 소식’ ‘Good News’입니다. ‘gospel’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good story’ ‘good message’라는 뜻입니다.
누구는 이 구원의 소식을 의심할 것입니다. 예, 그래서 이 구원의 소식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주여, 우리가 전한 메시지를 누가 믿었습니까? 주님의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LORD, who has believed our message? To whom has the LORD revealed his powerful arm)?” (38절) 이 말씀은 구약성경 이사야 53:1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런 사람이 우리를 구원하다니 말도 안 돼!” “아니,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이런 사람에게 구원의 능력이 어디 있겠어?” 우리가 말하는 구원의 메시지가 아무리 쉽고, 간단하고, 누구나 믿을 수 있는 말씀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초라하게 보이지요? 아무리 봐도 그 사람이 우리를 구원할 것 같지 않지요? 십자가 밑을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다른 사람을 구원하겠다는 사람이 십자가에 매달렸구만. 당신이나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내가 믿겠소 (마태복음 27:42)” 이렇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고린도전서 1:18)
이제 말로 기독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구원 받은 삶을 그들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을 약속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 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의 삶을 이렇게 산다고 우리의 삶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의 말을 들었습니다. “신천지 문제가 없었으면 벌써 한국은 코로나바이러스를 해결했을 것이라고요.” 저와 여러분의 삶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6)”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이 고난주간 셋째 날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온전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드리십시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여전히 우리의 희망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분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