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2020 | 사순절 새벽기도 38
종이 주인보다 크지 않다
김태환 목사
요한복음 13:1-17
1 유월절 바로 전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갈 때가 왔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2 저녁 식사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마귀가 이미 시몬의 아들 가룟 사람 유다의 마음속에 들어가 예수님을 배반할 생각을 갖게 하였습니다. 3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모든 것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또한 그는 아버지께로부터 오셨다가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셨습니다. 4 그래서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5 예수님께서는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두르신 수건으로 그들의 발을 닦아 주기 시작하셨습니다. 6 이윽고 시몬 베드로 차례가 되었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기시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7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지금은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지만 나중에는 이해할 것이다.” 8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제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네 발을 씻기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9 이 말을 들은 시몬 베드로는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10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사람은 발만 씻으면 되는 법이다. 그 사람은 온몸이 깨끗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너희 모두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11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자기를 배반할 사람이 누군지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희 모두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신 뒤에, 옷을 입고 다시 자리에 앉으셔서, 그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내가 방금 전에 너희에게 행한 일이 무슨 뜻으로 한 것인지 이해하겠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너희 말이 맞다. 나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14 내가 선생과 주로서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그대로 너희도 행하게 하기 위해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16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종이 자기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그를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한 법이다.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그대로 행하면 너희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1 Before the Passover celebration, Jesus knew that his hour had come to leave this world and return to his Father. He had loved his disciples during his ministry on earth, and now he loved them to the very end①. / ①Or he showed them the full extent of his love 2 It was time for supper, and the devil had already prompted Judas①, son of Simon Iscariot, to betray Jesus. / ①Or the devil had already intended for Judas 3 Jesus knew that the Father had given him authority over everything and that he had come from God and would return to God. 4 So he got up from the table, took off his robe, wrapped a towel around his waist, 5 and poured water into a basin. Then he began to wash the disciples' feet, drying them with the towel he had around him. 6 When Jesus came to Simon Peter, Peter said to him, "Lord, are you going to wash my feet?" 7 Jesus replied, "You don't understand now what I am doing, but someday you will." 8 "No," Peter protested, "you will never ever wash my feet!" Jesus replied, "Unless I wash you, you won't belong to me." 9 Simon Peter exclaimed, "Then wash my hands and head as well, Lord, not just my feet!" 10 Jesus replied, "A person who has bathed all over does not need to wash, except for the feet, to be entirely clean. And you disciples are clean, but not all of you." 11 For Jesus knew who would betray him. That is what he meant when he said, "Not all of you are clean." 12 After washing their feet, he put on his robe again and sat down and asked, "Do you understand what I was doing? 13 You call me `Teacher' and `Lord,' and you are right, because that's what I am. 14 And since I, your Lord and Teacher, have washed your feet, you ought to wash each other's feet. 15 I have given you an example to follow. Do as I have done to you. 16 I tell you the truth, slaves are not greater than their master. Nor is the messenger more important than the one who sends the message. 17 Now that you know these things, God will bless you for doing them.
오늘 말씀 전체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습니다. 바로 그날이 유월절 전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이면 유월절이고요. 각 유대인 가정에서는 유월절 저녁 식사를 합니다. 양고기와 쓴나물, 그리고 누룩이 없는 빵을 상에 올립니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하셨습니다. 식사 장소를 따로 마련하셨습니다. 양고기와 쓴나물도 준비했을 것입니다. 유월절 식사를 마친 후에 제자들과 함께 찬송을 부르면서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내 마음이 매우 불안하고 힘드니까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부탁하시고 따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셨을 때, 예수님은 유다가 끌고 온 성전 수비대 사람들에게 체포 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런 일이 있기 하루 전입니다. 그러니, 그 긴장감이 얼마나 컸을 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예수님은 체포되고, 곧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일어날 일들을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오늘 말씀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유월절 바로 전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갈 때가 왔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1절) “Before the Passover celebration, Jesus knew that his hour had come to leave this world and return to his Father.” 3절에 다시 같은 말씀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이렇게 같은 말씀이 반복해서 나온 것은 요한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기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자기에게 일어날 일들을 모두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면, 그날 저녁 시간을 어떻게 보내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식구들와 그날 저녁을 보내겠습니까? 아니면 평소에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 보겠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내겠습니까? 한 10여년도 더 지난 일입니다. 그날 눈이 몹시 오는 날이었습니다. 후배 목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보스턴에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를 보고 가라고 했더니, 렌터카를 타고 집에 왔습니다. 아내와 아들 하나를 데리고 셋이서 왔습니다. 제가 알기로 그 아내가 암으로 고생한다고 들었습니다. 그 후배 가족과는 서로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클레아몬트 신학교에서 같이 공부했거든요. 그런데 보니까 아들이 손에 뭘 들고 있습니다. 신장 투석하는 도구들 같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 눈오는 날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형이 생각이 나서 한번 보고 가려고 왔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좀 당황했습니다. 아니,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데.... 오려면 좋은 날 오지 그랬더니, 아무 말이 없어요. 그래서 일단 우리 집에 머물기가 불편하겠다 싶어서 옆에 있는 하이야트 호텔에 방을 잡아줬습니다. 대접을 하려고 해도 부인이 잘 식사를 못하니까 잘 해 주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날도 눈이 많이 왔는데, 후배 가족은 그날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아내는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상황이라면 마지막 저녁에,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무슨 일을 하셨나요?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1절) 이 말씀은 New Living Translation으로 한번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He had loved his disciples during his ministry on earth, and now he loved them to the very end①.” / ①Or he showed them the full extent of his love 이 말씀을 잘 보면, 예수님은 그의 사역 기간 동안 그의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들을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에 reference가 붙어 있습니다. “He showed them the full extent of his love” 이렇게, 끝까지 사랑했다는 말을 그의 사랑이 미칠 수 있는 최고의 범위까지 사랑하셨다는 뜻으로 번역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정도로 제자들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귀담아 들어야 할 말씀이 아닌가 합니다. 결국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다 살았을 때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내가 쓴 논문, 내가 쓴 페이퍼,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것입니까? 비록 그 논문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주목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내 생이 끝나는 마당에 얼마나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전도서에 바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History merely repeats itself. It has all been done before. Nothing under the sun is truly new. Sometimes people say, ‘Here is something new!’ But actually it is old; nothing is ever truly new. We don’t remember what happened in the past, and in future generations, no one will remember what we are doing now.” (전도서 1:9-11)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들을 누가 기억해 주겠느냐는 말입니다. 머지 않아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 말 속에 모든 것이 헛되다는 pessimism이 흐르고 있긴 합니다만, 충분히 솔로몬이 이렇게 말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랑만이 영원합니다.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 사랑을 실천하고 베풀었던 일들만 영원합니다. 바울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Love never gives up, never loses faith, is always hopeful, and endures through every circumstance. Love will last forever!” (고린도전서 13:7-8) 사랑은 결코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은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은 희망적이기 때문에, 사랑은 어떤 환경에서도 견디기 때문에, 사랑만이 영원하다는 말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그의 생애 마지막 저녁에 하신 일은 자기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시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두르신 수건으로 그들의 발을 닦아 주기 시작하셨습니다.” (4-5절)
우리가 이 말씀을 읽을 때 예수님께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다고 생각하고 지나갑니다. 도대체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이 ‘섬김’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섬김’에 몇 가지 깊이 생각할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섬김의 동기가 사랑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신 것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모든 크리스천의 행위의 동기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이 말은 사랑 외에 다른 것이 동기가 되어서 하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크리스천의 이름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사랑의 동기가 아니라 다른 동기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 많이 보았습니다. 선하게 생긴 자기의 외모를 이용해서, 필요하다면 눈물을 흘리는 연극을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서, 선교의 이름으로, 헐벗은 사람들을 이용하고, 배고픈 사람들을 이용하고, 생명이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이용해서 결국은 자기 잇속을 차리는 사람들 많이 보았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사랑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내가 이 사람들을 사랑해야 되겠다는 자기 생각이나 결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갈 때가 왔다는 것을 아시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물이 낮은 곳을 향하여 내려 가듯이, 예수님의 사랑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 나온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사랑의 출처 (origin)도 하나님과의 관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서로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Dear friends, let us continue to love one another, for love comes from God).” (요한일서 4:7)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그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섬김은 매우 ‘겸손한 (humble)’ ‘자기를 낮추는 (menial)’것이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 13-14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너희 말이 맞다. 나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내가 선생과 주로서 너희 발을 씻겼으니......” 예수님은 “내가 선생인데, 내가 주인데, 그런 일을 할 수 없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빌립보서 2장은 바울이 예수님의 겸손에 대하여 쓴 말씀입니다. 바울의 눈에 비친 예수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합니다. 그는 이렇게 예수님의 겸손에 대하여 썼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똑같이 높은 분이셨지만, 결코 높은 자리에 있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높은 자리를 버리시고, 낮은 곳으로 임하셨습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고 종과 같이 겸손한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6-8) “Though he was God, he did not think of equality with God as something to cling to. Instead, he gave up his divine privileges; he took the humble position of a slave and was born as a human being. When he appeared in human form, he humbled himself in obedience to God and died a criminal's death on a cross.” 이 말씀은 우리가 왜 겸손한 삶을 살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내가 누군데.....” “그래도 체면이 있지......” 이런 생각이 우리로 하여금 겸손의 삶을 살지 못하게 가로 막습니다. 이런 마음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은 equality를 가지고 계시면서도 그것을 내려 놓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내려 놓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섬김에 대한 말씀은 우리의 섬김이 매우 ‘지속적 (insistent’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섬김’이 일회적으로 그치면 안 되고,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사람은 발만 씻으면 되는 법이다.’” (9-10절) 날마다 외출하고 들어와서 발을 닦아야 하듯이, 발을 닦아 주는 일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이 섬김의 일을 그의 제자들에게 부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내가 선생과 주로서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그대로 너희도 행하게 하기 위해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그대로 행하면 너희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14-15, 17절)
예수님께서 그날 발을 씻겨 주신 제자들은 평생 그 날 밤에 있었던 일을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조금이라고 마음 속에 교만한 마음이 들거나, 섬김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종이 주인보다 높지 못하다!” (16절) 이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나는 너희들의 주로서 섬김의 본을 보였는데, 너희가 내 본을 따라 살지 않으면 너희가 나보다 더 높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말씀이잖아요? 그런데, 공동체 안에서나, 교회 안에서 보면 예수님보다 더 높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내가 누군데.....” “내가 이런 사람인데.....” 하면서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이것을 알고 그대로 행하면 너희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한번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자기를 낮추고, 겸손하게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서 한번 섬겨 보시지요. 예수님의 말씀 대로 정말로 내가 행복지는지요. 섬기는 삶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과 감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주님의 본을 따르고 있다는 기쁨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