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2020 | 사순절 새벽기도 40
갈릴리에서 만나자
김태환 목사
마태복음 28:1-10
1 안식일 다음 날, 즉 한 주의 첫 날 동틀 무렵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습니다. 2 그 때, 강한 지진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그 천사는 돌을 굴려 치우고, 그 위에 앉았습니다. 3 그 모습은 번개와 같았고, 옷은 눈처럼 희었습니다. 4 경비병들이 그 천사를 보고 두려워 떨었고, 마치 죽은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5 천사가 그 여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6 예수님은 여기 계시지 않다.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와서 예수님이 누우셨던 곳을 보아라. 7 그리고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먼저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을 뵐 수 있을 것입니다.’ 보아라,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전할 말이다.” 8 여자들은 재빨리 무덤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두려우면서도 매우 기뻤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해 주려고 달려갔습니다. 9 그 때, 갑자기 예수님께서 여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잘 있었느냐?” 여자들은 예수님께 다가가서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했습니다. 10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말하여라. 거기서 그들이 나를 볼 것이다”
1 Early on Sunday morning①, as the new day was dawning, Mary Magdalene and the other Mary went out to visit the tomb. / ①Greek After the Sabbath, on the first day of the week 2 Suddenly there was a great earthquake! For an angel of the Lord came down from heaven, rolled aside the stone, and sat on it. 3 His face shone like lightning, and his clothing was as white as snow. 4 The guards shook with fear when they saw him, and they fell into a dead faint. 5 Then the angel spoke to the women. "Don't be afraid!" he said. "I know you are looking for Jesus, who was crucified. 6 He isn't here! He is risen from the dead, just as he said would happen. Come, see where his body was lying. 7 And now, go quickly and tell his disciples that he has risen from the dead, and he is going ahead of you to Galilee. You will see him there. Remember what I have told you." 8 The women ran quickly from the tomb. They were very frightened but also filled with great joy, and they rushed to give the disciples the angel's message. 9 And as they went, Jesus met them and greeted them. And they ran to him, grasped his feet, and worshiped him. 10 Then Jesus said to them, "Don't be afraid! Go tell my brothers to leave for Galilee, and they will see me there."
오늘 말씀은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 새벽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새벽에 두 여자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였습니다. 우리는 이 여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야 합니다. “많은 여자들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를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섬기려고 따라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7:55-56) 이 명단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그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두 마리아가 바로 이 여자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문이 예루살렘에 돌았을 때 그럴 리가 없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 여자들이 무덤을 잘못 찾아갔을 것이라고 합니다. 소위 ‘The Wrong Tomb Theory (잘못 찾아간 무덤설)’입니다. 그러나, 마태는 그런 설을 단호하게 부인합니다. 이 두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부터 무덤에 묻히는 것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 보았던 사람들입니다.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이 사실을 몇 번이나 강조합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 맞은편에 앉아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7:61)
‘잘못 찾아간 무덤설’을 주장하는 근거는 무덤을 찾아갔던 사람들이 여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여자들로부터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It is nonsense!” 이런 반응을 보였습니다 (누가복음 24:11). 하지만, 이런 리스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활의 첫 증인들이 여자들이었다는 사실은 여자들을 하나님의 사역에 전면으로 소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울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두 하나입니다 (There is neither Jew nor Greek, slave nor free, male nor female, for you are all one in Christ Jesus).” (갈라디아서 3:28)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에 도착했을 때 강한 지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천사는 무덤을 막은 돌을 치웠습니다. 천사들의 모습은 번개와 같았고, 옷은 눈처럼 희었습니다. 경비병들이 천사를 보고 두려워 떨었고, 마치 죽은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이런 표현들은 하나님의 개입 (God’s intervention)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God’s intervention이 있으면 모든 것이 설명이 안 됩니다. God’s intervention이 있으면 우리의 이성이나 지식, 경험으로 설명이 안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God’s intervention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설명이 안 됩니다. 사람이 개입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개입해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디 부활뿐이겠습니까?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면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적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수님은 여기 계시지 않다.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와서 예수님이 누우셨던 곳을 보아라.” (5-6절) 누가복음에는 이 말씀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찾느냐? 예수님은 여기 계시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다 (Why do you seek the living among the dead? He is not here, but is risen).” (누가복음 24:5-6)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 갔던 두 여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천사에게 들은 메시지는 빨리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으니 갈릴리로 가십시오. 예수님은 먼저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을 뵐 수 있을 것입니다 (8절)”라고 전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천사의 메시지는 다시 한번 부활하신 예수님이 확인해 주셨습니다.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말하여라. 거기서 그들이 나를 볼 것이다.” (9-10절) 여러분, 이 말씀을 통해서 질문이 생기지 않습니까? 천사의 말을 듣고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해 주려고 달려가는 두 여자에게, 이번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자들이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전해 주었을 때 제자들도 너무 놀라서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무덤에 가서 무덤이 비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또 그들이 직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전도를 통해서, 설교를 통해서 널리 전파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것과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과 그리고는 베드로에게 나타나시고, 그후에 열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고, 그후에 한번에 오백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도 나타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이미 죽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그후에 야고보에게, 그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시고, 맨 마지막으로 조산아와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3-8) 3-4절 말씀만 New Living Translation으로 읽어 볼까요? “I passed on to you what was most important and what had also been passed on to me. Christ died for our sins, just as the Scriptures said. He was buried, and he was raised from the dead on the third day, just as the Scriptures said.”
이 말씀에 ‘what had been passed on to me (나에게 전달되어 온 것)’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도 다음 세대에게 부활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역사적인 책임감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최초에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말을 들은 여자들이, 제자들에게 가서 그 말을 전했고, 제자들은 그 말을 듣고 밖에 나가서 예수님은 부활하셨다고 전파했다면, 부활의 역사적 근거 (historicity)는 대단히 희박했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두 여자들을 직접 만나 주셨고, 베드로를 만나 주셨고, 열 두 제자들을 만나 주셨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오 백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나셨고, 야고보에게 나타나셨고, 바울에게 나타나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부활의 historicity가 있습니다.
이제 오늘 제 설교의 결론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천사의 말도 그랬고, 예수님께서 직접 여자들에게 하신 말씀도 그랬습니다.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나도 그리로 갈 테니 거기서 나를 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을까요? 갈릴리는 대부분 예수님의 제자들의 고향입니다. 갈릴리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갈릴리에 예수님께서 성장하신 나사렛이 있습니다. 그리고, 갈릴리에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지였던 가버나움도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가 있고, 배고픈 5,000명을 먹인 벳세다 들판도 갈릴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로 가라고, 거기서 만나자고 하셨을까요?
여러분, 지도를 한번 보십시오. 갈릴리가 여기 있고, 유대지방이 여기 있습니다. 가운데 사마리아 지방이 있고요. 유대에 사는 사람들은 갈릴리 사람들을 우습게 봤습니다. 그 이유는 갈릴리가 변방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이 살았고, 교육의 혜택을 못 받은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의 말에는 특이한 액센트가 있었습니다. 성경에 예수님 일행을 ‘갈릴리 사람들 (Galileans)’이라고 말한 곳이 있는데 (마태복음 26:73, 마가복음 14:70), 이 말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아주 비하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신 것은, 우리들의 삶의 현장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가난한 사람들, 교육의 혜택을 못 받은 사람들, 사회의 주류가 아닌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사회학적인 용어로 ‘the marginal people (주변 인간)’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 틈으로 들어 가면 사방에 우리가 섬겨야 할 사람들이 널려 있습니다. 오래 전에 제가 거창고등학교의 ‘직업 선택의 10계’라는 것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요. 놀랍게도 10개 모두가 모두 갈릴리로 가라는 말입니다.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쪽을 택하라. (4) 모든 것이 갖춰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 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사회적 존경 같은 것은 바라 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 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마지막으로, 성경 두 구절 소개하고 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그 명패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죽으신 곳이 예루살렘 성에서 가깝고, 그 명패는 아람어, 라틴어, 그리스어로 씌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9:20)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골고다가 예루살렘 성 밖에 있다는 것입니다.
같이 읽고 싶은 말씀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도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피로 그의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려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문 밖에 계신 주님께 나아가서 그분이 당하신 수치를 함께 겪읍시다. 이 땅에는 영원한 성이 없으며,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성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하여 항상 하나님께 찬양의 제사를 드립시다. 이는 그분의 이름을 증언하는 우리 입술의 열매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는 일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것을 서로 나누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입니다 (So also Jesus suffered and died outside the city gates to make his people holy by means of his own blood. So let us go out to him, outside the camp, and bear the disgrace he bore. For this world is not our permanent home; we are looking forward to a home yet to come. Therefore, let us offer through Jesus a continual sacrifice of praise to God, proclaiming our allegiance to his name. And don't forget to do good and to share with those in need. These are the sacrifices that please God).” (히브리서 13:12-16)
와우! 히브리서에 이런 말씀이 있었나요? 이 말씀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성문 밖에서 수치를 당하신 예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시는와우! 히브리서에 이런 말씀이 있었나요? 이렇게 예수님의 삶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는 말씀이 히브리서에 있었나요? 이 말씀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성문 밖에서 수치를 당하신 예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시는 예수님께 계시는 곳으로 가자는 것이잖아요? 그곳에 가서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께 충성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인지 선포하자는 것이 잖아요?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계속되는 제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잖아요? 갈릴리에 있는 사람들과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자는 것이 잖아요? 저는 여러분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은 강요해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저는 계속에서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 중에 갈릴리로 가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도록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