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5:13-15

13 여호수아가 여리고 근처에 있었을 때, 눈을 들어 보니 어떤 사람이 자기 앞에 칼을 들고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여호수아는 그에게 다가가 “당신은 우리 편이요, 아니면 적의 편이요?”라고 물었습니다. 14 그 사람은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다. 나는 여호와의 군대 사령관으로 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땅에 엎드려, 그에게 물었습니다. “주의 종인 저에게 하실 말씀이 무엇입니까?” 15 여호와의 군대 사령관은 “너의 신을 벗어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의 말 대로 했습니다. (쉬운성경)

13 When Joshua was near the town of Jericho, he looked up and saw a man standing in front of him with sword in hand. Joshua went up to him and demanded, "Are you friend or foe?" 14 "Neither one," he replied. "I am the commander of the LORD's army." At this, Joshua fell with his face to the ground in reverence. "I am at your command," Joshua said. "What do you want your servant to do?" 15 The commander of the LORD's army replied, "Take off your sandals, for the place where you are standing is holy." And Joshua did as he was told. (New Living Translation)

성경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요셉, 모세, 오늘 말씀에 나오는 여호수아, 그리고 다윗, 에스라, 느헤미야 같은 사람들은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여호수아 (Joshua)는 모세의 뒤를 이어 가나안 땅을 정복한 사람입니다. 젊었을 때는 모세 옆에서 모세를 도왔던 ‘조력자 (assistant)’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오랜 기간 모세의 후광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던 사람이었지만,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탐했던 12명의 스파이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 대표로 정탐에 참가했었습니다. 가나안 정탐 사건을 계기로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유다 지파 대표로 정탐에 참가했던 갈렙 (Caleb)을 눈여겨 보셨습니다. “내 종 갈렙과 (여호수아는) 다른 마음을 가졌다. 그들은 나를 온전히 따르고 있다. 따라서 나는 그들을 이미 본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겠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은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But my servant Caleb and Joshua have a different attitude than the others have. They have remained loyal to me, so I will bring them into the land they explored. Their descendants will possess their full share of that land).” (민수기 14:24)

그때부터 여호수아의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보통 말씀이 아닙니다. 이전까지는 아주 평범했던 사람이 어떤 일을 계기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도 모른 사이에 사람들 사이에서 리더십을 갖게 됩니다. 마틴 루터 킹 (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이 그랬습니다. 이 사람은 보스턴 신학교를 졸업하고 1954년에 앨라배마의 몽고메리 (Montgomery, Alabama)에 있는 평범한 작은 교회의 담임 목사로 가게 됩니다. 거기서 평생 작은 교회의 목회자로서 살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어느날, 몽고메리에서 작은 사건이 일어납니다. 로자 루이즈 매콜리 파크스 (Rosa Louise McCauley Parks, 1913-2005)라는 한 흑인 여자가 버스를 탔다가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 때는 이런 일이 흔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가라앉지 않고 무려 382일 동안이나 흑인들 사이에서 ‘버스 타기 거부 운동 (Montgomery Bus Boycott, 1955)’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 우연히 마틴 루터 킹 Jr. 목사가 개입하게 됩니다. 이것이 그가 흑인 인권운동가가 된 계기입니다. 여호수아에게는 가나안 정탐 사건이 그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사람이 여러가지 일을 계획해도 결국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다 (You can make many plans, but the Lord’s purpose will prevail) (잠언 19:21)”는 성경 말씀이 맞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들은 쉽게 이루어집니다. 

또 하나 성경 말씀에서 여호수아에 대하여 알 수 있는 말씀이 출애굽기 17장에 나옵니다. 광야생활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말렉’이라는 사나운 부족들과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모세는 이 전쟁을 여호수아에게 맡깁니다. 모세는 전쟁터에 나가지 않고 손에 지팡이를 들고 아론과 훌 (Hur)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갑니다. 모세가 손을 높이 들고 있으면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이기고, 모세의 손이 내려가면 아말렉이 전쟁에서 이기는 이상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모세가 지쳐서 팔을 들지 못하게 되자 아론와 훌은 큰 돌을 가져다 그 위에 모세를 앉히고 두 사람이 모세의 팔을 붙들어 올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전쟁에서 여호수아가 아말렉을 물리치고 승리합니다. 여호수아는 이 전쟁을 치르면서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 때는 모세도 몰랐고, 여호수아 자신도 몰랐을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서 여호수아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모세 이후를 준비할 시간도 없이 모세가 죽습니다. 그 누구도 모세의 자리를 채울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모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 이후를 치밀하게 대비하고 계셨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세계는 그 이전 세계와 분명히 같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학교라는 시스템도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회사 시스템도 많은 부분 재택 근무형식으로 바뀔 가능성이 많다고 합니다. 교회는 어떻게 될까요? 사회 전반이 다 바뀌는데, 교회만 예외가 될 수 있을까요? 교회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에서는 ‘한국교회총연합회’라는 곳에서 5월 31일을 ‘예배 회복의 날’로 정한답니다. 이 사람들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대표성이 있는 단체도 아닌데, 마치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빨리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겠지만, 지금 다시 집단 감염자가 나오고 있는 비상 시국에 왜 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무지하고, 성급하고, 판단력이 부족한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교회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코로나바이러스 이후를 어떻게 계획하고 계시는지 신중하게 하나님의 뜻을 묻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목사도 학자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첫 번 과제는 ‘여리고 성’을 점령하는 일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은 매우 견고한 성이었습니다. 훈련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함락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여호수아의 마음은 대단히 무거웠을 것입니다. 굳게 닫힌 견고한 여리고 성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으로 떨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호수아는 자기 앞에 칼을 들고 서 있는 낯선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아군이요? 적군이요?” 이 사람은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니요. 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군대 사령관이오 (Neither one! I am the commander of the LORD's army)!” (14절) 여러분, 이게 말이 됩니까” 아무 편도 아니라니요?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편이라고 해야 맞지 않습니까? 

많은 크리스천들이 범하는 오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의 편이라고 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나의 편이라고 생각합니까?” 이렇게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질문하겠습니다. “당신은 얼마나 하나님을 성실하게 믿습니까? 당신은 얼마나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감히 하나님은 나의 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문제에 대하여 여러 번 지적하셨습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이라고 말하는 사람 모두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만이 하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너희는‘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베풀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분명히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너희를 모른다. 악한 일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썩 물러나라 (I never knew you. Away from me, you evildoer).’” (마태복음 7:21-23)

하나님의 군대 사령관의 말은 “나는 지금 어느 편도 아닌 중립(中立)이다. 앞으로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너의 편이 될 수도 있고, 적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말로 들립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모르고 하나님은 무조건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도 이런 착각이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군대 사령관의 말을 듣고 땅에 엎드려 (Joshua fell with his face to the ground in reverence) 그에게 묻습니다. “주의 종인 저에게 하실 말씀이 무엇입니까 (I am at your command. What do you want your servant to do)?” (14절) “너의 신을 벗어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다.” “여호수아는 그의 말 대로 했습니다.” (15절)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세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다 (The place where you are standing is holy)”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거룩하다’는 말의 의미는 ‘다른 것과 구별되다’라는 뜻입니다. 지금 여호수아가 서 있는 곳이 거룩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임재 하셨기 때문입니다. 비록 여호수아가 길에서 하나님의 군대 장관을 만났다고 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현존방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에 선다면 우리가 무슨 말을, 무슨 행동을 할까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 앞에 선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했습니다. 이사야도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는 순간 “난 더러운 죄인인 내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눈으로 직접 뵈었구나.” (이사야 6:5) 이렇게 고백합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 나를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누가복음 5:8)”라고 고백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아무 ‘쓸모 없는 (worthless)’ 존재임을 인정하고 고백한 것입니다.

둘째로, “신을 벗어라! 이 말이 무슨 뜻일까?” 하는 것입니다. “신을 벗어라”는 말을 요즘처럼 잘 지키는 때가 과거에 없었습니다. 요즘은 신을 벗고 집에만 있습니다. 어디를 돌아다닐 수 없으니까요. 그냥 말로해서는 신발을 벗지 않으니까 신발을 벗을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우리를 내몬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그 동안 참 바쁘게 살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한번은 아침에 센트럴 스퀘어를 지나가면서 바쁜 걸음으로 출근하는 사람들, 버스를 타려고 줄지어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매일 저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해야 돈을 벌고 먹고 산다고 생각하니 서글픈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 어리석은 생각이지요? 당연히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먹고 살 수 있는데, 왜 일을 해야 하느냐 하는 생각이 얼마나 우스운 생각입니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는 것은 네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중지하라는 것입니다. 일하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삶인데, 그것을 중지하라는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들을 수도 없이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한번도 우리의 삶의 방식을 깊이 성찰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일해서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 넌 지금 여리고 성과 전쟁을 앞두고 부하들과 상의하고, 작전을 짜고, 마음이 분주하겠지만 이런 모든 활동을 중단할 수 있겠느냐? 네가 내 앞에서 신을 벗는다면 나는 이번 전쟁에서 너의 편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셋째로, “여호수아는 그의 말 대로 했습니다 (15절)”라는 말씀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5장 말씀이 15절로 끝이 납니다. 꼭 뒤에 무슨 말이 더 있을 것 같은데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어차피 여리고 성과의 싸움은 안 되는 싸움이니까! 아무리 작전을 짜도 이건 안 되는 싸움이니까!” 하면서 신발을 벗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신발을 벗는 동시에 여리고 성과의 전쟁은 여호수아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싸워주시는 전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작전 명령은 절대로 사람의 머리에서는 나올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발을 벗은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작전대로 실천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눈 앞에서 벌어졌고, 견고했던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성경의 메시지는 매우 역설적입니다. 뭔가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내가 가진 자원들 (resources)을 내려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진리를 밀알 하나의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기가 하신 말씀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한 부자 청년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네가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도 자기가 가진 것을 포기할 수 없어서 돌아섰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인리히 호프만 (Heinrich Hofmann, 1824-1911)은 이 말씀을 모티브로 해서 ‘그리스도와 부자 청년 (Christ And The Rich Young Ruler, 1889)’이라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안타까운 눈으로 이 청년을 바라보는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록 펠러 (John D. Rockefeller Jr. 1874-1960)가 이 그림을 사서 자신이 지은 뉴욕 맨해튼의 ‘리버사이드 교회 (Riverside Church)’에 걸어 놓았다고 합니다. 교회를 드나드는 많은 사람들이 이 부자 청년의 실패를 통해서 교훈을 얻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