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2020 | In Times Of Trouble 8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나의 힘(II) (The Joy Of The Lord Is My Strength!)
김태환 목사
느헤미야 8:1-10
1 일곱째 달이 되자,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자기 마을에 자리잡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물 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제사장이자 학자인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모세의 율법책을 읽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2 그래서 제사장 에스라가 무리를 위해 율법책을 가져왔습니다. 그 때는 일곱째 달 초하루였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듣고 깨달을 만한 사람은 다 모여들었습니다. 3 에스라는 ‘물 문’ 앞 광장에서 이른 아침부터 한낮까지 율법책을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에스라는 듣고 깨달을 만한 모든 사람에게 율법책을 읽어 주었고, 그들은 율법책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4 에스라는 높은 나무 단 위에 섰습니다. 그 나무 단은 이번 일을 위해 따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에스라의 오른쪽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가 섰고, 왼쪽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 섰습니다. 5 에스라가 율법책을 폈습니다. 에스라가 높은 데에 서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다 그를 볼 수 있었습니다. 에스라가 책을 펴자, 모든 백성이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말하면서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습니다. 7 낭독을 듣기 위해 서 있는 백성들에게 레위 사람인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가 율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8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책을 백성들이 알아듣기 쉽게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설명해 주었으므로 백성들은 그들이 읽어 주는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9 그런 뒤에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이자 학자인 에스라, 그리고 백성들을 가르치던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의 거룩한 날이오. 울거나 슬퍼하지 마시오.” 그들이 이 말을 한 것은 백성들이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울었기 때문입니다. 10 느헤미야가 말했습니다. “가서 기름진 음식을 먹고 좋은 음료수를 드십시오. 그리고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주십시오. 오늘은 거룩한 날이오. 슬퍼하지 마시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곧 여러분에게 힘이 될 것이오.” (쉬운성경)
1 all the people assembled with a unified purpose at the square just inside the Water Gate. They asked Ezra the scribe to bring out the Book of the Law of Moses, which the LORD had given for Israel to obey. 2 So on October 8 Ezra the priest brought the Book of the Law before the assembly, which included the men and women and all the children old enough to understand. 3 He faced the square just inside the Water Gate from early morning until noon and read aloud to everyone who could understand. All the people listened closely to the Book of the Law. 4 Ezra the scribe stood on a high wooden platform that had been made for the occasion. To his right stood Mattithiah, Shema, Anaiah, Uriah, Hilkiah, and Maaseiah. To his left stood Pedaiah, Mishael, Malkijah, Hashum, Hashbaddanah, Zechariah, and Meshullam. 5 Ezra stood on the platform in full view of all the people. When they saw him open the book, they all rose to their feet. 6 Then Ezra praised the LORD, the great God, and all the people chanted, "Amen! Amen!" as they lifted their hands. Then they bowed down and worshiped the LORD with their faces to the ground. 7 The Levites - Jeshua, Bani, Sherebiah, Jamin, Akkub, Shabbethai, Hodiah, Maaseiah, Kelita, Azariah, Jozabad, Hanan, and Pelaiah - then instructed the people in the Law while everyone remained in their places. 8 They read from the Book of the Law of God and clearly explained the meaning of what was being read, helping the people understand each passage. 9 Then Nehemiah the governor, Ezra the priest and scribe, and the Levites who were interpreting for the people said to them, "Don't mourn or weep on such a day as this! For today is a sacred day before the LORD your God." For the people had all been weeping as they listened to the words of the Law. 10 And Nehemiah continued, "Go and celebrate with a feast of rich foods and sweet drinks, and share gifts of food with people who have nothing prepared. This is a sacred day before our Lord. Don't be dejected and sad, for the joy of the LORD is your strength!" (New Living Translation)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함께 나라를 다시 세우는 운동을 벌였다는 말씀을 읽으면서 여러분들은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에스라는 탁월한 율법학자이고,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 1세가 임명한 총독입니다. 에스라는 학문과 영성이 뛰어난 사람이었고, 느헤미야는 열정이 넘치고 추진력이 있는 행정가 (정치가)였습니다. 두 사람의 나이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두 사람 모두 바빌로니아 포로 시기에 바빌로니아에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 7년 때, 2차 귀환자들과 함께 조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에스라 7:8).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 20년, 3차 귀환 때 돌아왔습니다 (느헤미야 2:1). 단순하게 귀국 연대만 본다면 에스라가 느헤미야보다 약 13살 정도 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에스라, 느헤미야 두 사람을 보면서 바울과 바나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많은 동역자들을 생각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초대교회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바나바는 초대교회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무엇보다도 바나바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사울의 회심 (conversion)을 의심하고 있을 때, 사울의 회심의 진정성을 인정했던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고향으로 내려가 은둔하고 있던 사울을 불러내서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소개하고 인정받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시리아 안디옥 (Antioch of Syria)에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에서 일년을 같이 사역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안디옥 교회가 파견한 선교사로서 1차 선교여행을 같이 합니다.
‘동시대(同時代)’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시대’라는 말입니다. ‘같은 시대를 산 사람들’을 영어로 ‘contemporaries’라고 합니다. ‘같은 시대를 산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동시대를 살았습니다. 이 두 사람을 통해서 초대교회가 축복을 받았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동시대를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을 통해서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사람들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지난 주에 소개했던 류성룡과 이순신이 동시대인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통해서 당파싸움으로 기진해 있던 조선 사람들이 축복을 받았고, 일본을 물리칠 수가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동시대를 사는 우리들을 통해서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축복을 받고, 이 시대가 축복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생각을 하면 우리가 같은 시대를 산다는 일이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주에 에스라에 대한 일화 하나를 소개했습니다. 오늘은 느헤미야에 대한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성벽 재건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일 때, 사마리아의 관리들은 끊임없이 공사를 방해했습니다. 처음에 이들은 절대로 성벽 재건 공사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바빌로니아 포로에서 귀환한 사람들이 성벽을 쌓아봐야 그까짓 성벽은 여우 한 마리만 올라가도 무너질 것이라고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성벽 재건 공사가 반이나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다급해진 이들은 느헤미야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지금 당신에 대한 나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당신이 성벽 공사를 마치고 왕이 되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페르시아의 왕이 이 소문을 들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 일단 만나서 얘기합시다. 몇 시까지 ‘오노 평야 (the plain of Ono)’에 있는 한 집에서 만납시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이것이 그들의 술책인 것을 알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도 계속해서 이들은 느헤미야를 회유하려고 했습니다. 한번은 예언자들을 매수해서 “오늘 저녁 당신을 죽이려는 음모가 있으니 오늘 저녁은 성전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도 당신과 함께 있겠습니다 (느헤미야 6:10).” 그렇지만 느헤미야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아니라 자기를 함정에 빠뜨릴 음모라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그 말이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나는 스마야의 말을 들으면서 그것이 하나님께 받은 말씀이 아니라 뇌물을 받고 나에게 이런 예언을 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I perceived that God had not spoken to him, but that he had uttered this prophecy against me because To-biah and Sanballat had hired him).” (느헤미야 6:12, NASB, NKJV) 이 말씀을 잘 보세요. 어떤 성경에는 “I realized that.......” 이렇게 번역한 성경도 있지만, 많은 성경들이 “I perceived that.....”이라고 했습니다. ‘perceive’의 명사형이 ‘perception’입니다. 우리 말로 번역을 하자면 ‘지각(知覺)’이라고 할까요? 사전에 ‘perception’에 대한 설명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the act or faculty of perceiving, or apprehending by means of the senses or of the mind (생각이나 감각적으로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이나 행위)’ ‘immediate or intuitive recognition or appreciation; insight; intuition; discernment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인식 능력)’ 제가 이렇게 이 구절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그만큼 느헤미야가 상황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에 대하여 즉각적으로 그 상황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솔로몬이 쓴 잠언 말씀에 ‘discernment’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네가 은이나 숨은 보물을 찾는 것처럼 지혜를 찾는다면, 네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섬기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 (If you seek her as silver, and search for her as for hidden treasures; Then you will discern the fear of the LORD, and discover the knowledge of God).” (잠언 2:4-5, NASB) ‘perception’ ‘discernment’ ‘intuition’ 이것은 노력을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열심히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insight (통찰력)’를 얻도록 위해서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1:17-18).
이제 오늘 저의 설교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성전과 성벽이 재건되고, 이제 나라를 새롭게 세워야 한다는 공동의 비전을 가진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자신들의 죄를 통회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가서 기름진 음식을 먹고 좋은 음료수를 드십시오. 그리고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주십시오. 오늘은 거룩한 날입니다. 슬퍼하지 마십시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곧 여러분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Go and celebrate with a feast of rich foods and sweet drinks, and share gifts of food with people who have nothing prepared. This is a sacred day before our Lord. Don’t be dejected and sad, for the joy of the LORD is your strength)!” (느헤미야 8:10)
이 말씀을 직역하면, “주님의 기쁨이 여러분의 힘입니다” 이런 말니다. 그런데, 우리 성경에는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 곧 여러분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of’라는 전치사가 주로 소유를 나타내는 전치사이지만, 때로는 원인, 이유, 기원 (origin)을 나타낼 때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주님 때문에, 주님으로 인하여 오는 기쁨이 곧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또는 “주님의 기쁨에 참여하는 것이 곧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이렇게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의 문자적인 의미는 “Delight in Jehovah is a strong refuge for you (여호와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 너희에게 강력한 피난처가 됩니다)” 이런 뜻입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입니까? 바로 지금과 같은 때, 답답하고, 우울하고, 미래에 대한 걱정과 근심이 우리를 억누를 때, 경제적인 문제를 염려해야 할 때, 직장을 염려해야 하고, 비즈니스를 염려해야 할 때, 모든 활동이 중지되었을 때, 오늘 읽은 이 말씀이 우리에게 힘이 되지 않습니까? 이 말씀의 깊은 뜻을 잘 몰라도,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 된다는 말씀이 그 자체로 우리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지 않습니까?
이 말씀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쁨 (the joy of the Lord)’이라는 말은 매우 광범위한 말이지만,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문’ 앞에 모인 때가 바로 ‘속죄의 날 (The Day of Atonement)’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일곱째 달이 되자,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자기 마을에 자리잡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물 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1절)”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일곱째 달 10일을 ‘Yom Kippur (욤 키퍼)’라는 이름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 날 백성들은 자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달라고 했습니다. 에스라가 모세의 율법책을 읽어줬을 때 사람들 사이에서 울음이 터졌습니다. 회개의 울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이 그동안 얼마나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atonement’라는 말의 어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at onement in harmony’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다른 어떤 일보다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기쁨’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죄인 한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더 기뻐할 것이다.” (누가복음 15:7) 이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의 힘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제가 어느 글을 읽다가 좋은 구절을 메모해 놓았습니다. 다윗이 쓴 시편 32편에 대한 말씀입니다. “From David’s experience, we know that he is not talking about sinless perfection. Rather, he means the righteousness that God confers on the repentant believer and the uprightness of the one who confesses and forsakes his sins (다윗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죄 없는 완전에 대한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의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올바름에 대한 것이다).” 또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The children of Israel were never known for their perfect behavior. They were known for being the peo-ple of God (이스라엘의 자녀들은 한 번도 완전한 행동으로 알려진 적이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된 사람들로 알려졌다).” 이런 하나님의 기쁨을 아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해야 하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의 힘이 됩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나의 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와 함께 나누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느헤미야가 했던 말을 다시 한번 읽어 보십시오. “가서 기름진 음식을 먹고 좋은 음료수를 드십시오. 그리고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주십시오. 오늘은 거룩한 날이오.” 느헤미야는 계속 금식하고 슬퍼하지 말고 집에 가서 이 날을 축하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너 혼자만 축하하지 말고 축하하려고 해도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을 돌보라고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이 그냥 아무 뜻없이 성경에 쓰여진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느헤미야가 이 말을 한 것은 자기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代辨)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믿음생활은 항상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공동체를 생각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the people of God)’이라는 말을 한번 보십시오. 한 개인을 말하는 말이 아니라 공동체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한 개인의 구원에 초점을 맞추는 말씀이 없습니다. 항상 공동체의 구원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렇게 할 때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를 닮은 온전한 사람으로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This will continue until we all come to such unity in our faith and knowledge of God's Son that we will be mature in the Lord, measuring up to the full and complete standard of Christ).” (에베소서 4:13) 오늘 이 말씀을 읽는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기쁨에 참여해야 하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의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