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2020 | In Times Of Trouble 13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I Will Give You Rest)
김태환 목사
마태복음 11:25-30
25 그 때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이것들을 지혜롭고 영리한 사람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보여주셨으니 감사합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 내게 모든 것을 주셨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고, 아들과 아들이 나타내 주고자 하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다. 28 무거운 짐을 지고 지친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할 것이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쉼을 얻을 것이다. 11:30 나의 멍에는 쉽고 나의 짐은 가볍다.” (쉬운성경)
25 At that time Jesus prayed this prayer: "O Father, Lord of heaven and earth, thank you for hiding these things from those who think themselves wise and clever, and for revealing them to the childlike. 26 Yes, Father, it pleased you to do it this way! 27 "My Father has entrusted everything to me. No one truly knows the Son except the Father, and no one truly knows the Father except the Son and those to whom the Son chooses to reveal him." 28 Then Jesus said, "Come to me, all of you who are weary and carry heavy burdens, and I will give you rest. 29 Take my yoke upon you. Let me teach you, because I am humble and gentle at heart,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 souls. 30 For my yoke is easy to bear, and the burden I give you is light." (New Living Translation)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 모두에게 아주 친숙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구약성경 이사야 55:1-2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너희 목마른 사람아, 다 와서 마셔라. 돈이 없는 사람도 와서 마셔라. 포도주와 우유를 마시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마셔라. 어찌하여 너희는 진정한 음식이 못 되는 것을 위해 돈을 쓰느냐? 어찌하여 만족시켜 주지도 못할 것을 위해 애쓰느냐? 내 말을 잘 들어라. 그러면 너희가 영혼을 살찌우는 음식을 먹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통해 하신 말씀이 400년이 지나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 때 이사야 두루마리 속에 있는 말씀을 떠올리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눈에 비친 그 시대의 사람들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 (those who are weary and carry heavy burdens’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두 ‘쉼 (rest)’이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신다면 예수님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요? 2,000년 전과 지금은 세상이 너무나 달라졌습니다. 인간의 지식은 엄청나게 확장되었고, 인간의 삶은 말할 수 없이 편리해졌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의 본질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피곤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고, 우리에게는 쉼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피곤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 쉼이 필요한 사람들은 다 나에게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기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우리는 성경에서 이런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길을 잃고 고생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불쌍하게 여기셨다 (When Jesus saw the crowds, he had compassion on them because they were confused and helpless,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마태복음 9:36, 마가복음 6:34) ‘confused’ ‘helpless’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참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자가 없는 양들이 어떻게 길을 알겠습니까? 목자가 없는 양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혹시 이런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인류 역사 속에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예수님같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을 나에게 오라고, 내가 안식을 준다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도 안식이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무슨 근거로 나에게 오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I have been given all authority in heaven and on earth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마태복음 28:18) 또 요한복음 12:49에는 “I don't speak on my own authority. The Father who sent me has commanded me what to say and how to say it (나는 나의 권위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말씀해 주신다)”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초대에 응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은 초대를 거절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큰 잔치의 비유 (The Parable of The Great Banquet)’가 있습니다. 이 비유는 누가복음 14장에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열고 많은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초대받은 사람들이 일제히 핑계를 대면서 잔치에 갈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미안하지만 내가 밭을 샀는데, 급히 가 봐야 하겠습니다.” “내가 소를 열 마리 샀는데, 소를 잘 샀는지 테스트를 해봐야 하겠습니다.” “죄송하지만,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집을 비울 수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 이것들을 지혜롭고 영리한 사람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보여주셨으니 감사합니다." (25절) 모든 사람들을 초대했지만, 자신이 똑똑하고 잘 났다고 자신한 사람들은 모두 초대를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어린아이같은 사람들은 초대에 응했습니다. ‘어린아이 같은 사람 (the childlike)’이 누구입니까? 놀랍게도 성경에는 이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나타내 보여주시기를 원하는 사람들 (27절)’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우리들의 이해력을 훨씬 뛰어넘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의 초대를 거절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초대에 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가 주시는 안식 (쉼)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평생 교회생활은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과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지난 주에 ‘마음으로 믿는다 (believe in your heart, 로마서 10:9)’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머리로는 예수님을 믿지만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 그리스도에게 자신의 삶을 온전히 ‘commit (의탁)’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주시는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이런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정말 얼마나 안타깝고 불행한 일입니까?
그 다음으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쉼을 얻을 것이다. 나의 멍에는 쉽고 나의 짐은 가볍다.” (29-30절)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내게 와서 배우고, 내가 지워주는 짐을 지고, 내가 주는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도대체 누구시길래 이런 말씀을 하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humble and gentle at heart)’ 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자신의 마음은 이렇다고 말씀하셨습니다.
‘humble and gentle’이 말과 반대되는 말을 성경에서 찾는다면 아마 ‘harsh’라는 말일 것입니다. ‘달란트의 비유’를 보면, 주인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받은 종이 나옵니다. 이 종이 주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Master, I knew you were a harsh man, harvesting crops you didn't plant and gathering crops you didn't cultivate.” (마태복음 25:24) 이 말 속에 나오는 ‘harsh’라는 말은 ‘혹독한’ ‘가혹한’ 이런 뜻입니다. 이와 달리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입니다. 그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가 지워주는 짐을 지고, 나에게 와서 배우라”고 말씀하셨을 때,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힘들어 멜 수 없는, 우리가 지쳐서 질 수 없는, 그리고 우리가 지킬 수 없는 것을 가르치는 마음이 ‘harsh’한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가 전도사 시절에 많이 읽은 주석책이 ‘윌리엄 버클리 주석 (The Commentary of New Testament by William Barclay)’이었습니다. 그의 책을 읽는 사람들은 윌리엄 버클리라는 분의 해박한 인문학적인 지식에 놀라게 됩니다. 그분이 쓴 마태복음 주석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해오는 전설이라고 하는데요.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멍에’를 제일 잘 만드는 기술자였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지금처럼 가게에 간판을 달았다고 하는데요. 예수님의 목공소 간판에 이런 글이 씌어 있었다고 합니다. “My yokes fit well (내가 만든 멍에는 잘 맞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님의 목공소에는 항상 손님들이 몰렸다고 합니다.
여러분, ‘멍에 (yokes)’가 무엇인지 아시지요? ‘멍에’ 사진 한번 볼까요? 소 한 마리가 혼자 메는 ‘멍에’도 있고, 소 두 마리가 같이 메는 ‘멍에’도 있습니다. 이 ‘멍에’가 소에게 잘 맞지 않으면 소의 목덜미가 벗겨져 상처가 나고 소에게 고통을 주게 됩니다. 그래서 소를 목공소에 데려가서 먼저 치수를 재고 제작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멍에’가 다 만들어지면 또 소를 데리고 가서 소의 몸에 잘 맞는지 메워본다고 합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장 잘 맞는 ‘멍에’를 만들어 주시기 때문에 힘들지 않고, 예수님께서 지워 주시는 짐도 우리에게 알맞은 짐이기 때문에 힘들지 않다는 것이 오늘 성경 말씀의 뜻입니다.
이 말씀 속에 엄청난 교훈이 들어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이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합니까? 지금 여러분에게 맡기신 책임과 사명이 힘들다고 생각합니까? 그런 분들은 이런 생각을 한번 해 보세요. 여러분의 생명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책임을 지워 주시고, 사명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의 관점을 성경적인 관점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관점을 바꾸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나의 삶이 완전히 다른 색깔의 삶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하게 인생을 사는 비결입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William Barclay의 말입니다. “Whatever God sends to us is made to fit our needs and our abilities exactly; God has a task for every one of us, which is made to measure for us. Jesus said ‘my burden is light.’ It is not that the burden is easy to carry; but it is laid on us to love; it is mean to be carried to love; and love makes even the heaviest burden light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위해서 우리를 보내시든지 그 일은 우리의 필요와 우리의 능력에 정확하게 맞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일이 있다. 그 일은 우리에게 잘 맞도록 잰 (measure) 것이다. 예수님은 ‘나의 짐은 가볍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지워 주시는 짐이 지기 쉽다는 말이 아니라 그 짐이 사랑으로 우리에게 지워졌기 때문에 사랑으로 그 짐을 지라는 말이다. 사랑은 무거운 짐을 가볍게 만든다).”
어떤 여행사가 런던에서 에든버러 (Edinburgh)까지 약 400마일 되는 거리를 가장 빨리, 지루하지 않게 가는 방법을 찾아내는 사람에게 상품을 준다는 광고를 냈다고 합니다. 비행기로 가는 것이 제일 빠르다, 기차로 가야한다, 아니다. 길이 막히니 버스로 가는 것이 더 빠르다 등의 말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여행사에서 1등으로 뽑은 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먼 길을 가장 빨리 가는 길,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하고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초대에 응하는 것입니다. Sarah F. Adams (1805-1848)는 빼어난 미모에 연기력까지 겸비한 당시 영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린 여배우였습니다. 그런 그녀가 그만 폐결핵에 걸려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날로 수척해 가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는 것은 견딜 수 없는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마음의 위로를 받으려고 성경을 읽다가 여행에 지친 야곱이 돌을 베고 잠을 자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 그 자리에 돌 단을 쌓고 감사를 드린 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들었다는 창세기 28장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그녀는 그동안 헛된 꿈을 붙들고 살아왔던 자신의 지난 삶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병으로 인해 육신의 아름다움과 세상을 향한 꿈은 사라졌지만 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꿈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황폐할 대로 황폐해진 그녀의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찾은 것입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야곱이 기도했던 간절한 마음을 담아 찬송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 (Nearer, My God, to Thee)’입니다.
이제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음성을 통하여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나에게 오라고요. 내가 너에게 쉼을 주겠다고요. 우리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우리의 꿈이 사라지고, 우리의 영혼이 지치고 피폐해졌을 때, 우리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revive), 우리에게 새로운 꿈과 용기를 심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게 여러분의 눈을 돌리십시오. 그분을 진심으로 믿으십시오. 그분에게 여러분의 인생을 드리십시오. 그리고, 그분이 주시는 안식을 얻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