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2020 | In Times Of Trouble 18
피할 길을 내시는 하나님 (God Who Makes A Way Out)
김태환 목사
고린도전서 10:11-13
11 이 모든 일들은 우리 조상들에게 본보기로 일어난 일들이며,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12 그러므로 자기가 굳게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13 누구나 겪는 시험 이외에 여러분에게 닥칠 시험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한 분이셔서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의 시험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시험을 당할 때에 시험을 견디고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을 주십니다. (쉬운성경)
11 These things happened to them as examples for us. They were written down to warn us who live at the end of the age. 12 If you think you are standing strong, be careful not to fall. 13 The temptations in your life are no different from what others experience. And God is faithful. He will not allow the temp-tation to be more than you can stand. When you are tempted, he will show you a way out so that you can endure. (New Living Translation)
‘에드워드 모트 (Edward Mote, 1797-1874)’라는 영국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를 여의고 의지할 곳 없이 불행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모트’는 살아 남기 위하여 가구 공장에 들어가 어린 나이에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도 아무도 그를 따뜻하게 맞아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런던 거리를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트’는 무심코 한 교회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세상에 믿고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생전 처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모트’의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가구 공장에서 성실하게 일한 결과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되고, 어느새 가구 공장의 사장으로 진급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자기와 같은 사람을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그의 마음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종이에 적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부른 488장 찬송 가사입니다.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밖에는 믿음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은혜가 넘치는 찬송 가사입니다.
오늘은 ‘In Times Of Trouble (어렵고 힘들 때)’ 시리즈 설교 18 번째 시간으로 ‘피할 길을 내시는 하나님 (God Who Makes A Way Out)’이런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 모든 일들은 우리 조상들에게 본보기로 일어난 일들이며,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경고를 하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11절)” 이렇게 시작됩니다. 문제는 ‘이 모든 일들 (These things)’이 무슨 일이길래 이 일들이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는 ‘본보기 (examples)’가 되고 후손들에게는 ‘경고 (warnings)’가 되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일어났던 네 가지 일들에 대해서 말합니다. 하나는, 조상들이 광야생활 하던 중에 우상숭배를 했던 일입니다 (7절). 이 일이 하나님의 분노를 사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둘째로, 광야생활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행 (sexual immorality)’에 빠졌던 일을 지적합니다 (8절). 이 일도 하나님의 분노를 사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셋째로, 바울은 조상들이 하나님을 ‘시험 (test)’했던 일을 지적합니다 (9절). 이 일도 하나님의 분노를 사서 많은 사람들이 뱀에 물려 죽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조상들이 하나님께 ‘불평’했던 일을 지적합니다 (10절). 이 일도 하나님의 분노를 사서 많은 사람들이 멸망했습니다. 이 네가지 일들을 보면, 모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일들입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걱정하지 마. 너만 그런 것이 아니야.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다 그렇게 했을 거야!”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면서 어떤 때는 ‘원칙’을 강조해야 할 때가 있고, 어떤 때는 ‘타협’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원칙’을 강조하는 사람을 답답하고,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믿음생활 하는 사람을 “flexible하다” 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바로 그 점을 지적합니다. “너희들을 상황을 핑계 대고 적당히 타협하면서 너희 자신들을 정당화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 때 너희가 피할 길을 마련하고 계셨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피할 길을 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버리거나 절망하면 안 됩니다.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방 어디를 봐도 초나라의 노래뿐이어서 어디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초나라의 ‘항우’가 한나라의 ‘유방’과 대치하고 있던 어느 날 밤,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심신이 지친 초나라 병사들은 고향의 노래를 듣고 탈영했습니다. ‘항우’ 역시 그 노래를 들고 한나라에 항복한 초나라 병사가 많음을 알고 절망했다는 말에서 ‘사면초가’라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성경에도 ‘사면초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8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방에서 압박을 받아도 눌리지 않으며, 난처한 일에 빠져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핍박을 당해도 버림을 받지 아니하고, 매를 맞아 넘어져도 망하지 않습니다 (We are pressed on eve-ry side by troubles, but we are not crushed. We are perplexed, but not driven to despair).” 크리스천은 ‘사면초가’의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크리스천은 그런 상황에서도 피할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다니엘서에 이런 말씀이 있는 것을 아시지요? “다니엘은 왕이 새 법에 도장을 찍은 것을 알고도 자기 집 다락방으로 올라가 늘 하던 것처럼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방 창문은 예루살렘 쪽을 향해 열려 있었습니다.” (다니엘 6:10) 왕이 도장을 찍었다는 ‘새 법’은 “앞으로 삼십 일 동안 왕 이외에 다른 신에게 기도를 하는 자가 있으면 누구든지 사자굴에 집어넣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법입니다. 이 법은 다니엘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하여 만든 법입니다. 이런 법이 통과된 것을 알면서도 다니엘은 늘 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한 달만 참으면 되는데, 이런 무모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니엘은 매우 총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그는 ‘새 법’을 어기고 자기가 하던 대로 하나님께 기도했을까요? 저는 이 질문의 대답을 “그 방 창문은 예루살렘 쪽을 향해 열려 있었다 (He went home and knelt down as usual in his upstairs room, with its windows open toward Jerusalem)”는 말씀에서 발견했습니다. 다니엘이 그렇게 했던 것은 무모한 행동이 아니라 피할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피할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처한 상황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찬양 중에 ‘My God Is So Big (내가 믿는 하나님은 아주 커요)’ 이런 제목의 찬양이 있습니다. 가사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1절) My God is so big, so strong and so mighty There's nothing my God cannot do/My God is so big, so strong and so mighty There's nothing my God cannot do. He made the trees He made the seas He made the elephants too/My God is so big, so strong and so mighty There's nothing my God cannot do/ (2절) My God is so great, so strong and so mighty There's nothing my God cannot do My God is so great, so strong and so mighty There's nothing my God cannot do The mountains are his The rivers are his The skies are his handy works too/My God is so great, so strong and so mighty There's nothing my God cannot do There's nothing my God cannot do There's nothing my God cannot do For you (https://youtu.be/Aq1ZIC4lsEw)
둘째로, 우리를 위해 피할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우리는 하나님을 의심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계실까?” “정말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 주실까?” 이런 의심을 합니다.
성경에 ‘맛사 (Massa)’라는 지명이 있습니다. ‘맛사’라는 지명에는 ‘테스트 (test)’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 (Is the LORD here with us or not)?” 하면서 하나님을 테스트한 데서 나온 말입니다 (출애굽기 17:7).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필요한 것을 모두 공급해 주셔서 아쉬운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이번에도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실까?” 하면서 하나님을 테스트한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사람들이니까 때때로 불평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때에도 크리스천은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하나님을 테스트하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보세요. “하나님을 잘 믿어야 아무 소용없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어. 여호와 앞에서 기도하고 회개해도 아무 소용없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성공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잘되는 걸?” 말라기 3:14-15에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내버려 두세요. 우리는 당신의 진리를 알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전능자가 누구이기에 우리가 그를 섬기고 그에게 기도해야 하나요?” 욥기 21:14-15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욥이 친구 소발과 변론하는 중에 나온 말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그런 사람들이 잘 되고 나 같은 사람이 이런 고난을 받느냐고 자기를 변론한 말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처한 환경이 어렵고 힘들어도 우리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크리스천은 ‘믿음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시는 ‘피할 길’을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련해 주시는 ‘피할 길’은 ‘믿음의 눈’으로 봐야 보이는 길입니다. 왜 똑 같은 가나안 땅을 보고 돌아와서 열 사람이 보고한 것과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이 보고한 것이 달랐을까요? 두 사람은 그 땅을 ‘믿음의 눈 (God’s point of view)’을 가지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열 사람들은 그 땅을 ‘사람의 눈 (human point of view)’을 가지고 보았습니다. 아니, 왜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가 자기 앞을 막았을 때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시면서 책망하셨을까요? ‘사람의 눈’을 가지고 보면 ‘사람의 일’만 보입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고 봐야 지금 예수님을 통해서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일’이 보입니다.
바울이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창조’입니다. 이전 것들은 지나갔고, 보십시오, ‘새 것들’이 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17)”라고 말했을 때, 그가 말한 ‘새로운 창조’ 혹은 ‘새로운 사람 (New Person, Contemporary English Version)’은 어떤 사람일까요? ‘믿음의 눈’을 가지고 ‘새로운 관점 (new point of view)’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돈안지유돈(豚眼只有豚) 불안지유불(佛眼只有佛)”이란 말이 있습니다.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말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봐야 비로소 ‘하나님의 일’이 보입니다. 크리스천은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세상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고린도후서 5:7 말씀이 그 말씀 아닙니까? “We live by faith, not by sight (우리는 믿음으로 살지 눈에 보이는 것을 살지 않습니다).”
이 말이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인지 맞춰 보십시오. “내가 너를 이 백성과 이방인들에게서 구원할 것이며, 너를 이방인에게로 보내어 그들의 눈을 뜨게 하고,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세력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겠다.” (사도행전 26:18)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 말을 ‘아그립바 (Agrippa)’ 왕 앞에서 자신을 변호할 때 했습니다. ‘아그립바’는 헤롯 대왕의 손자로 ‘헤롯 안티파스’를 대신해서 유대 지역을 다스리는 왕이 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이라는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어둠의 세계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빛의 세계를 보게 하고, 사탄의 세력에 매여 살던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사람의 눈’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믿음의 눈’을 갖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 (gift)’입니다 (고린도후서 5:18). 선물은 우리 마음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주시는 분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믿음의 눈으로 세상에서 진행되는 하나님의 일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까? 지금이야말로 이렇게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믿음의 눈’이 있어야 어렵고 힘들 때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위해 마련해 주시는 ‘피할 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눈’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어렵고 힘든 이 시기에 나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마련해 주신 ‘피할 길’은 어떤 것인지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지금은 이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는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