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2020 | In Times Of Trouble 22
나는 너희 하나님이다 (I Am Your God)
김태환 목사
이사야 41:8-13
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선택한 야곱아, 나의 친구 아브라함의 자손아! 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데리고 왔으며, 세상의 가장 먼 곳으로부터 너를 불러냈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말하였다. 너는 나의 종이니, 내가 너를 선택하였고, 버리지 않았다고 하였다.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의 하나님이니, 떨지 말아라. 내가 너를 강하게 하겠다. 내가 너를 도와주고, 내 승리의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주겠다. 11 너에게 화를 낸 모든 자들이 수치를 당하며 당황할 것이다.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자들처럼 되어서 멸망할 것이다. 12 네가 아무리 찾아보아도 너에게 대적하는 자들은 만나지 못할 것이며, 너와 싸우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허무한 것 같이 될 것이다. 13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다. 내가 너의 오른손을 붙잡고 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돕겠다.” (새번역)
8 “But as for you, Israel my servant, Jacob my chosen one, descended from Abraham my friend, 9 I have called you back from the ends of the earth, saying, ‘You are my servant.’ For I have chosen you and will not throw you away. 10 Don’t be afraid, for I am with you. Don’t be discouraged, for I am your God. I will strengthen you and help you. I will hold you up with my victorious right hand. 11 “See, all your angry enemies lie there, confused and humiliated. Anyone who opposes you will die and come to nothing. 12 You will look in vain for those who tried to conquer you. Those who attack you will come to nothing. 13 For I hold you by your right hand - I, the Lord your God. And I say to you, ‘Don’t be afraid. I am here to help you. (New Living Translation)
혹시 여러분, 이 책을 읽어 보셨습니까? 고든 피 (Gordon D. Fee)와 더글라스 스튜어트 (Douglas Stuart)가 쓴 책인데요.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책입니다. 이 책의 영어 제목은 “How To Read The Bible For All Its Worth”입니다. 성경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손실하지 않고 성경을 온전히 읽는 법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고든 피는 캐나다에 있는 리전트 신학교에서 신약학 교수로 있는 분입니다. 고든 콘웰 신학교에서도 교수로 있었습니다. 더글라스 스튜어트는 고든 콘웰 신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있습니다. 이 책은 전문가들을 위한 책이 아니라 평신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쓴 책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이 말씀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이 나에게 주는 의미를 찾는 사람들은 먼저 저자가 이 구절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자기 멋대로 성경을 읽고 의미를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경을 읽을 때는 반드시 문맥을 따라 읽어야 한다고 합니다. 문맥에는 두 가지 문맥이 있는데, 하나는 문학적인 문맥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적인 문맥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어느 한 구절만 읽어서는 안 되고 앞뒤 문장을 잘 살펴서 읽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 말은 문학적인 문맥을 따져서 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역사적인 문맥에 따라 읽어야 하는 성경도 있습니다. 이 성경이 언제 기록되었는지, 이 성경을 누가 기록했는지, 그 때 당시의 사회는 어떤 사회였고, 사람들의 삶은 어떠했는지 살펴서 읽어야 성경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이사야 41장 본문 말씀은 역사적인 맥락을 알고 읽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사야서를 이사야 한 사람이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지금 그렇게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별로 없습니다. 보통은 이사야서를 1-39장, 40-55장, 56-66장, 이렇게 3등분합니다. 1-39장은 ‘제 1 이사야’라고 합니다. 유다 왕국이 멸망할 때까지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40-55장은 ‘제 2 이사야’라고 하는데요. 바빌로니아에서 포로생활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구원의 대한 소망의 말씀들이 들어 있습니다. 56-66장은 ‘제 3 이사야’라고 합니다. 바빌로니아 (페르시아)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국으로 돌아와 공평하고 정의로운 신앙공동체를 형성할 것이라는 꿈과 비전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제 2이사야’에 속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포로생활 중에 고난 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나의 종’ ‘내가 선택한 야곱’ ‘나의 친구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1절). 하나님께서 지금 포로생활 중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렇게 부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불행을 해석하는 방법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욥기의 내용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욥이 불행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 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인간의 불행에 대한 이런 해석을 정면으로 거부하셨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가 죄를 지어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이 사람이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일을 그 사람의 생애를 통해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요한복음 9:3) 이렇게 예수님은 인간의 불행에 대해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으셨습니다.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와서 온갖 고생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나의 종’ ‘내가 선택한 야곱’ ‘나의 친구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부르신 이유는 너희가 이런 불행을 당했다고 해서 나의 사랑에서 끊어졌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지금 조국을 잃고 이렇게 타국에 와서 떠돌고 있다고 해서 너희에 대한 나의 관심이 끊어졌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의 삶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지금 같은 때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The Age Of Uncertainty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말을 들어 보셨지요? 1963년에 하바드 대학의 경제학 교수였던 갤브레이스 (John Kenneth Galbraith)가 1977년에 쓴 책의 제목인데, 그 말이 지금도 유효합니다. 오히려 지금은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가 불확실합니다. 우리의 삶도 불확실합니다. 불확실하니까 염려가 되고, 걱정이 되고, 불안합니다.
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위로의 말, 격려의 말, 용기를 주는 말, 희망을 주는 말 아닙니까? 하지만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들이 실제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 말들이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말들인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크리스천들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입니까? ‘Omnipotent God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Omniscient God (무엇이든지 다 아시는 하나님)’ ‘Omnipresent God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어렵고 힘든 때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데리고 왔으며, 세상의 가장 먼 곳으로부터 너를 불러냈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말하였다. 너는 나의 종이니, 내가 너를 선택하였고, 버리지 않았다고 하였다.” (9절) 이스라엘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邊方)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강대국의 영향권에 들어 있는 변방 중에서도 변방인 작은 나라입니다. 국제 질서가 바뀌는 대로 이집트의 영향권에 있다가, 앗시리아의 영향권에 있다가, 바빌로니아의 영향권에 있다가, 페르시아의 영향권에 있다가, 신약시대에는 로마의 영향권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약소 국가를 자기 백성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말씀들이 많이 나옵니다. 특히 사람을 부르시고 선택하신다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구약 성경에는 예언자들을 선택하신 말씀들이 많이 나오고, 신약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신 말씀들이 나옵니다. 바울이 쓴 서신서에는 동역자로 선택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볼 때는 “그 사람은 정말 아닌 것 같다. 잘못 선택한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룟 유다, 데마같은 사람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팔아 넘긴 사람이고, 데마는 사도 바울의 동역자였다가 중간에 믿음의 길에서 돌아선 사람입니다. 성경에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카로 갔다 (디모데후서 4:10)”고 했습니다. 아니, 유다나 데마를 선택하는 과정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것 아닌가요?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 (요한복음 15:16)”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예수님을 배반하고, 믿음의 길에서 돌아서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뜻은 근시안적으로 보면 전혀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bird’s-eye view’로 봐야 합니다. 우리 말로 ‘조감도(鳥瞰圖)’라고 합니다. ‘aerial view’라고도 하고 ‘helicopter view’라고도 합니다. 이와 반대되는 관점 (view)을 ‘worm’s-eye view’라고 합니다. ‘벌레의 눈의 관점’이라는 뜻입니다. 벌레는 땅에 기어 다니기 때문에 ‘벌레의 눈’으로 보면 전체를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bird’s-eye view’로 전체를 봐야 보일 때가 많습니다. ‘bird’s-eye view’로 보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전체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오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로마서 11:29, 개역성경)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시겠습니까? 이 말씀이 Contemporary English Vers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God doesn't take back the gifts he has given or disown the people he has chosen.” 또 GOD'S WORD Translation에는 “God never changes his mind when he gives gifts or when he calls someone”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했을 때 거기에 하나님의 부르심과 선택하심이 있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선택하심은 어떤 경우에도 취소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the people of God)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사실이 시편 46편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그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1-3, 5절) 땅이 변하고, 산이 흔들리고, 바닷물이 뛰놀고, 산이 요동한다는 말은 우리의 삶이 그만큼 흔들리고 불안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묘사하는 수사법 (figure of speech)입니다. 이런 불안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내 삶 속에 계시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의 하나님이니, 겁을 내지 말아라. 내가 너를 강하게 하겠다. 내가 너를 도와주고, 내 승리의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주겠다.” (10절)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난 사람들에게 하지 않아야 하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괜찮아, 잘 될거야.” “걱정하지 마. 너만 그런 것이 아니야. 다들 그래.” “힘들지? 얼마나 힘들겠어.” “툴툴 털고 일어나야지.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시간이 지나면 금방 괜찮아질 거야.” 이런 말을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이런 말이 어려움 당한 사람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성경에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두려워하지 마.” “내가 붙들어 줄께.” “내가 함께 있어 줄께.” “내가 도와줄께.” 어려움 당한 사람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런 말들이 성경에도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Don’t be afraid, for I am with you. Don’t be discouraged, for I am your God. I will strengthen you and help you. I will hold you up with my victorious right hand.” (10절)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왜 우리는 무서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까? 왜 우리는 용기를 내라는 말을 들어야 합니까? 왜 우리가 너를 붙들어 주겠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까?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입니까? 11절 말씀과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와 다투는 사람들, 너에게 대적하는 사람들, 너와 싸우는 사람들을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로 만들어 버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는 큰 일이지만, 하나님께서 일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으십니다 (With God nothing is impossible).” (창세기 18:14, 마태복음 19:26, 마가복음 9:23, 누가복음 1:37)
‘바라바 (Barabbas)’라는 1962년에 나온 옛날 영화를 보았습니다. 바라바는 예수님 대신 목숨을 구한 흉악한 강도입니다. 앤소니 퀸 (Anthony Quinn)이 바라바 역으로 나옵니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예수님 대신 살아난 바라바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그 사람을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강도질을 하다가 붙잡힌 바라바는 절대로 살아나올 수 없다는 시실리 섬의 유황 광산으로 가게 됩니다. 하지만, 바라바는 거기서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유황 광산에서 만난 사하크 (Sahak)라는 사람과 함께 로마로 돌아와서 검투사가 됩니다. 그런데, 이 사하크라는 사람이 진실한 크리스천입니다. 그는 검투사들에게 예수님에 대하여 말하고 자기가 믿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감히 상상도 못할 만큼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당신들이 믿는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 주변이 있으시지요. 마치 몸 안에서 숨을 쉬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법은 단 하나, 사랑입니다.”
사하크가 담담하게 자기의 믿음을 말하는 이 장면이 저에게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고, 우리 몸 안에서 숨을 쉬는 것처럼 항상 우리 주변에 계시지만 (사도행전 17:24-28) 오늘 우리는 이 하나님을 못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의 오른 손으로 너를 붙잡고 있다 (I am your God. Don’t be afraid, I am with you. II will hold you up with my victorious right hand)”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붙들고 계시는 이유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선택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우리를 그분의 ‘victorious right hand’으로 붙잡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세상을 이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