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2020 | In Times Of Trouble 26
주님, 저는 큰 고통 중에 있습니다 (Lord, I Am Deeply Troubled)
김태환 목사
시편 116:1-14
1 <죽음에서 살려주심을 감사> 나는 여호와를 사랑합니다. 이는 주께서 내 목소리를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도와 달라는 나의 울부짖음을 들으셨습니다. 2 주께서 내게 귀를 기울이셨으므로 나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주를 부를 것입니다. 3 죽음의 밧줄이 나를 옭아맸으며, 무덤의 고통이 나를 덮쳤습니다. 나는 괴로움과 슬픔으로 억눌려 있었습니다. 4 그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여호와여, 나를 구원해 주소서.” 5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올바른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6 여호와는 순진한 자들을 보호하시며 내가 큰 위험에 빠졌을 때,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7 오 나의 영혼아, 이제 편히 쉬어라. 이는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나에게 선을 베푸셨기 때문이다. 8 주는 내 영혼을 죽음에서 구해 내셨고, 나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셨으며, 나의 발이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9 이제 내가 여호와 앞에서 걸을 수 있고,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10 나는 굳게 믿고 말했습니다. “나는 큰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11 또 나는 실망 가운데서 여호와께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다!” 12 여호와께서 나에게 모든 좋은 것으로 베풀어 주셨습니다. 내가 어떻게 여호와께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13 나는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것입니다. 14 나는 여호와께 드린 나의 맹세를 지킬 것입니다.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약속을 이룰 것입니다. (쉬운성경)
1 I love the Lord because he hears my voice and my prayer for mercy. 2 Because he bends down to listen, I will pray as long as I have breath! 3 Death wrapped its ropes around me; the terrors of the grave① overtook me. I saw only trouble and sorrow. / ①Hebrew of Sheol 4 Then I called on the name of the Lord. “Please, Lord, save me!” 5 How kind the Lord is! How good he is! So merciful, this God of ours! 6 The Lord protects those of childlike faith; I was facing death, and he saved me. 7 Let my soul be at rest again, for the Lord has been good to me. 8 He has saved me from death, my eyes from tears, my feet from stumbling. 9 And so I walk in the Lord’s presence as I live here on earth! 10 I believed in you, so I said, “I am deeply troubled, Lord.” 11 In my anxiety I cried out to you, “These people are all liars!” 12 What can I offer the Lord for all he has done for me? 13 I will lift up the cup of salvation and praise the Lord’s name for saving me. 14 I will keep my promises to the Lord in the presence of all his people. (New Living Translation)
오늘 설교 말씀은 제목부터 우리 눈길을 끌지요? “주님, 저는 큰 고통 중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고통을 받기도 하고,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고, 억압을 받기도 하고, 무시를 받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내 인생은 끝이 났구나!” 하는 일들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우리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성서 신학자들은 시편 116편을 쓴 저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자 혹은 사미스트라고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시편 116편을 쓴 사미스트가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죽음의 밧줄이 나를 옭아맸으며, 무덤의 고통이 나를 덮쳤습니다. 나는 괴로움과 슬픔으로 억눌려 있었습니다.” (3절)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Death wrapped its ropes around me; the terrors of the grave① overtook me. I saw only trouble and sorrow. /①Hebrew of Sheol “죽음의 밧줄이 나를 칭칭 감고 있었고, 무덤의 공포가 나를 엄습했습니다. 나는 완전히 고통과 슬픔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아주 시적인 표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때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사미스트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고 합니다. “Then I called on the name of the Lord. Please, Lord, save me!” “하나님, 제발 살려주세요!” 영화의 한 장면 같지 않습니까? 한 밤 중에 괴한이 집에 침입했습니다. 인기척을 느낀 여자가 일어나 급히 911에 전화를 거는 순간 괴한이 전화기를 확 나꿔챕니다. 전화기에서는 “여보세요,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다급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call on’이라는 말이 ‘부르다’라는 뜻이 있지만 동시에 누구에게 ‘전화를 걸다’라는 뜻도 있잖아요? 이 사미스트는 다급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대부분의 시편들은 인간의 아픔과 절망을 주제로 씌어졌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지요?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가난하고, 힘든 생활을 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미켈란젤로 같은 사람도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귀족에게 고용되어서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 (The Last Supper)’이라는 명화를 남겼습니다. 이 그림은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 성당 (Santa Maria delle Grazie)’에 부속 수도원이 있는데, 이 수도원의 식당 입구에 그린 그림입니다. 다빈치는 작품 의뢰를 받아 그 그림을 벽에 그린 것입니다. 가로 9.1m, 세로 4.2m의 큰 그림입니다. 작곡자 헨델 역시 완전히 폐인이 되어 사람들과 관계를 끊고 지내던 때에 ‘메시아’를 작곡했습니다. 이 작품으로 헨델은 다시 재기할 수 있었습니다. ‘만종(晩種, The Evening Prayer)’이라는 그림으로 유명한 밀레 (Jean-François Millet, 1814-1875)는 얼마나 경제적으로 힘든 생활을 했습니까? 밀레는 그 때 물감을 살 돈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가난과 역경이 명화를 만들었고, 인류가 길이 보존해야 할 유산(遺産)이 되었습니다. 시편116편도 사미스트가 처했던 고난과 역경 속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전도서에 있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의 전부 (the whole scope of life)를 알 수 없도록 했다고 합니다 (전도서 3:11). 모두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시편 저자들이 만났던 고난과 역경들이 그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일까요? 아니요. 오늘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가 겪는 고난이 절망으로 끝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창조의 힘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과 함께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삶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8:28). 이런 말씀을 붙잡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사람들은 크리스천들 밖에 없습니다.
다시 오늘 시편 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자기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사미스트는 제일 먼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 (God is our refuge)’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위급한 상황 속에서 보통 사람들 입에서는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입에서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이름이 나옵니다.
도대체 이 사미스트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었길래 위급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불렀을까요? 오늘 말씀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올바른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여호와는 순진한 자들을 보호하시며 내가 큰 위험에 빠졌을 때,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How kind the Lord is! How good he is! So merciful, this God of ours! The Lord protects those of childlike faith; I was facing death, and he saved me).” (5-6절)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납니다. 전교인이 야외예배를 갔는데, 날씨가 좋지 않았습니다. 비가 올 것 같기도 하고요. 비가 올 경우를 대비해서 쉘터 (shelter)를 예약하려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미 예약을 하는 바람에 예약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도 야외예배 장소가 ‘합킨톤 팍 (Hopkinton Park)’이었는데, 우리가 늘 모이는 곳이 아니라 사방이 막혀 있는 아늑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pavilion 형태의 shelter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다른 미국 교회가 그 shelter를 예약을 했는지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데, 비가 막 쏟아집니다. 우리 교인들은 비를 피해야 하는데 갈 곳이 없으니까 shelter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그 shelter는 이미 미국교회 교인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그 shelter가 두 교회 교인들이 비를 피해 점심을 먹기에는 비좁았습니다. 게다가 우리 교회는 예약도 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놀랍게도 미국 교회 교인들이 우리를 위해서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점심을 다 먹었다고 하면서 자리를 양보하고 먼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How kind the Lord is! How good he is”라는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이 사미스트에게 하나님은 쉘터와 같은 분이었습니다. 급하고 위태할 때 그리로 달려가면 언제나 문을 열어 주시고 환영해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에 대하여 사미스트는 “우리 주님은 얼마나 친절하고 얼마나 좋으신 분인가!”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이 사미스트에게 하나님은 친절하고, 선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불쌍하게 여기는 ‘compassion’을 가진 분, 순진한 사람들을 보호하시고,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순진한 사람들’이란 말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the simple’ ‘the simplehearted’ ‘the helpless (힘 없는 사람들)’ ‘the ordinary people (보통 사람들)’라고 번역할 수 있는 말입니다. New Living Translation에는 ‘those of childlike faith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라고 나와 있습니다. 어린아이 같은 순진하고 단순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을 때 항상 자기를 도와주셨던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다시 그로하여금 위태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찾게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크고 작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그 경험들이 어렵고 힘들 때 하나님을 찾게 하고 있습니까? 한번은 어느 집에 초대를 받아 갔었는데, 그 집에 키가 큰 낯선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더니 자기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목사님, 저 아이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난 아이입니다” 하면서 지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제가 “그런데, 집사님, 저 아들을 교회에서 못 본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예, 지금은 교회 안 갑니다” 이 말을 듣고 제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요?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믿음이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셨던 경험을 가진 사람 중에도 지금은 믿음을 갖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믿음생활에서 경험이 중요하지만, 그 경험이 반드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발전한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축복이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 “나는 굳게 믿고 말했습니다. ‘나는 큰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또 나는 실망 가운데서 여호와께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다!’” (10-11절) “I believed in you, so I said, ‘I am deeply troubled, Lord.’ In my anxiety I cried out to you, ‘These people are all liars!’” 이 말씀은 아주 독특합니다. 아마 성경 어디에서도 이런 말씀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이 사미스트의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시편 말씀에 “내가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이런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좀 달라요. “‘주님, 저는 지금 큰 고통 중에 있습니다 불안합니다’ 제가 이렇게 부르짖을 때는 ‘I believed in you, so I said (내가 주님을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고통 중에도 내가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고통 중에 있지만, 이번에도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실 것을 믿고 그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뒤에 “이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장이입니다” 이런 말이 나오지요? 자기 주변에 좋은 말을 해 주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이 사람들의 말은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 소용이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나를 도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안한 중에도 (in my anxiety)’ 이 사미스트는 그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많이 불렀던 찬양 가사가 생각납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나의 소망이 저에게서 나는도다/오직 주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이시니/오직 주만이 나의을 산성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 시편 62편 다윗이 쓴 시편을 그대로 옮겨온 것입니다. 이 찬양 좋아하고 많이들 불렀는데요. 부르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불렀는지 모르겠습니다. “He alone is my rock and my salvation, my fortress where I will not be shaken (하나님만이 그 안에서 내가 흔들리지 않을 나의 바위, 나의 구원, 나의 산성입니다).”
윌리엄 커싱 (William Orcutt Cushing, 1823-1902, 미국)이라는 유명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목사님은 설교를 잘해서 많은 성도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성대가 나빠지게 되고, 급기야 목소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가 앓고 있던 병은 ‘creeping paralysis’라는 병이었는데, 이 병은 목소리를 잃게 되는 병이었습니다. 설교자에게 성대는 생명과 같기 때문에, 그 목사님은 목회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이 목사님은 눈물과 절망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하나님께 꿇어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통해 그는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음성을 찬양 시로 쓰게 됩니다. 그 찬송이 바로 419장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입니다.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밤 깊고 비바람 몰아쳐도/아버지께서 날 지켜 주시니/거기서 편안히 쉬리로다/주 날개 밑 평안하다/그 사랑 끊을 자 뉘뇨/주 날개 밑 내 쉬는 영혼/영원히 거기서 살리” 비록 이 목사님의 목소리는 다시 소생되지 않았지만, 그는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서 마음에 치유를 받았고, 남은 인생을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은혜를 경험한 것입니다. 이 목사님의 찬양 시에 Ira D. Sankey (1840-1908, 미국)라는 유명한 작곡자가 곡을 붙임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찬송가가 되었습니다. 커싱 목사님은 평생 300개의 찬양시를 남겼다고 합니다. 그 중에 우리가 많이 부르는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545장)’ ‘예수께서 오실 때에 그 귀중한 보배 (564장)’ 이런 찬송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마지막으로 사미스트가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주는 내 영혼을 죽음에서 구해 내셨고, 나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셨으며, 나의 발이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8절)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큰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