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020 | In Times Of Trouble 30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2) (Don't Be Afraid. Just Have Faith)
김태환 목사
마가복음 5:22-24, 35-42
22 야이로라고 이름하는 어떤 회당장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23 그리고 예수님께 거듭해서 간청했습니다. “제 어린 딸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발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러면 건강해지고 살아날 것입니다.” 2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와 함께 가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밀며 따라왔습니다......35 예수님께서 계속 말씀하고 계실 때,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 회당장에게 말했습니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왜 예수님을 계속 번거롭게 하십니까?” 3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말을 무시하시고, 회당장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37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야고보의 동생인 요한 외에는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38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도착해 보니 몹시 소란스러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크게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습니다. 39 예수님께서 들어가셔서 사람들에게 “어째서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이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0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시고, 아이의 부모와 제자들과 함께 아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41 그리고 아이의 손을 붙잡고 “달리다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번역하면 “어린 소녀야,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42 그러자 열 두 살 된 소녀는 즉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쉬운성경)
22 Then a leader of the local synagogue, whose name was Jairus, arrived. When he saw Jesus, he fell at his feet, 23 pleading fervently with him. "My little daughter is dying," he said. "Please come and lay your hands on her; heal her so she can live." 24 Jesus went with him, and all the people followed, crowding around him.......35 While he was still speaking to her, messengers arrived from the home of Jairus, the leader of the synagogue. They told him, "Your daughter is dead. There's no use troubling the Teacher now." 36 But Jesus overheard① them and said to Jairus, "Don't be afraid. Just have faith." / ①Or ignored 37 Then Jesus stopped the crowd and wouldn't let anyone go with him except Peter, James, and John (the brother of James). 38 When they came to the home of the synagogue leader, Jesus saw much commotion and weeping and wailing. 39 He went inside and asked, "Why all this commotion and weeping? The child isn't dead; she's only asleep." 40 The crowd laughed at him. But he made them all leave, and he took the girl's father and mother and his three disciples into the room where the girl was lying. 41 Holding her hand, he said to her, "Talitha koum," which means "Little girl, get up!" 42 And the girl, who was twelve years old, immediately stood up and walked around! They were overwhelmed and totally amazed. (New Living Translation)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의 사랑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부모를 주셨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만큼 많은 점에서 부모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닮았습니다. 가버나움의 회당에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있었습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 북서쪽에 있는 어촌입니다. 어촌이지만, 가버나움에 'Via Maris (바닷길)'이라는 무역로가 지나갑니다. 대상들이 여기서 쉬어가기도 하고, 가지고 온 물건들을 사고 팔기도 합니다. 가버나움은 단순한 시골 어촌이 아니라 세계가 돌아가는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글을 썼는데, 그 글의 요지는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신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시골 어부가 아니라 세계를 향해 열린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신 것이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에게 12살된 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병에 걸렸는지 그 딸의 생명이 위독합니다. 회당장은 예수님을 찾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이 말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When he saw Jesus, he fell at his feet, pleading fervently with him. ‘My little daughter is dying,’ he said. ‘Please come and lay your hands on her; heal her so she can live.’” (22-23절) 어떻습니까 딸에 대한 아버지 야이로의 사랑에서 죽어가는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 자기 아들까지 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갈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따라왔습니다. 길을 가시다가 12년 동안 ‘혈루증’에 걸려 고생하던 한 여자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일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아시지요? 율법에는 사람의 몸에서 피가 흐르는 경우 부정하다 (unclean)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물건을 함부로 만지면 안 되도록 율법에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만지는 물건들이 부정(不淨)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댔습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 병이 나았습니다.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가는 것을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돌아서서 물으셨습니다. ‘누가 내 옷을 만졌느냐?’” (5:30) 이 여자는 두려워 떨며 자기가 한 일을 사실대로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건강하게 지내라.” (5:34)
이렇게 시간이 지체되는 동안에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누군가 그 딸이 죽었으니까 집에 갈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예수님은 야이로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여러분, 지금 자기 딸이 죽었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 자기 집으로 가는 야이로의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말을 무시하시고 (overheard), 야이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여라 (Don't be afraid. Just have faith).” (36절)
여러분, 지난 주 설교에서 저는 하나님께서 때때로 그의 자녀들을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게 하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절망에 빠지게 하실까요? 바로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여라” 이 말씀을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왜 하나님은 나사로의 생명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도 금방 가시지 않았을까요?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장례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오빠의 죽음으로 절망에 빠진 마르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내가 너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Didn't I tell you that you would see God's glory if you believe)?” (요한복음 11:40) 바로 이 말씀을 하시려고 그랬습니다.
왜 하나님은 굳이 홍해 바다를 건너지 않아도 되는 출애굽 행렬을 돌이켜서 홍해 바다 앞에 진(陣, camp)을 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바로 “두려워하지 마시오! 굳게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여러분에게 베푸실 구원을 보시오.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하시오.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위해 싸워 주실 것이오 (Don't be afraid. Just stand still and watch the LORD rescue you today. The LORD himself will fight for you. Just stay calm) (출애굽기 14:13-14)” 이 말씀을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설정 (set up)을 하신 것입니다. 어떤 목표를 정해 놓고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짜서 음모를 꾸미는 것을 설정(設定)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God’s conspiracy (하나님의 음모)’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달라스 윌라드 (Dallas Willard)는 ‘하나님의 모략 (The Divine Conspiracy)’라는 책을 써서 한 때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쉬운 말씀같이 들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믿기만 하라”는 말씀이 무엇을 믿으라는 것인지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기만 하라는 말씀을 “병에 걸렸지만 나을 줄로 믿습니다” 이런 뜻으로 이해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상황은 절망적이지만 살아날 줄로 믿습니다” 이런 뜻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믿기만 하라는 말은 그보다 더 중요한 다른 뜻이 있습니다.
그러면, “믿기만 하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첫째로,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기만 하라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11:6에 아주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그가 계시다는 것과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그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것 (God is in control)을 믿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나의 삶 속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통제 속에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omnipotent God)’이십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를 찾아온 천사 가브리엘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고 계신가요? “마리아야, 두려워하지 마라. 하나님께서 네게 은혜를 베푸신다. 네가 아이를 임신하게 될 것이다. 너는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는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저는 결혼하지 않은 처녀의 몸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하지 못하실 일이 없다 (For nothing is impossible with God).” (누가복음 1:37)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개입해 들어오신다는 것 아닙니까? 나의 삶에 간섭하신다는 것 아닙니까? 이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인도하신다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전지하신 하나님 (omniscient God)’이라고 합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갔을 때 열 일곱 살 어린 나이였습니다. 궁금한 것은 그 어린 요셉이 어떻게 이집트에서 그렇게 인정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너는 어디서든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비밀이 없다. 하나님은 너의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을 잊지 마라!” 아버지 야곱의 교육이 요셉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이 하나님을 믿었고, 그 덕분에 요셉의 삶은 형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 되게 해 주셨습니다. 요셉은 아버지께 배운 믿음을 가지고 유혹의 시간을 이겨내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성경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는지 아십니까? “The LORD was with him and caused everything he did to succeed.” (창세기 39:2, 3, 23) 요셉이 하나님을 믿으니까 하나님께서 요셉의 생에 개입해 들어오셔서 그를 형통하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는 ‘omnipresent God’입니다. 구약 요나서의 메시지는 그 당시 율법주의에 빠진 유대교에게 경고를 주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을 자기들만의 하나님으로 축소시켜버렸습니다. 율법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하나님은 유대나라에만 계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요나서를 읽는 사람들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온 세상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제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클레아몬트 신학교에 다닐 때 일입니다. 1984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신학교에 들어왔지만 들을 수 있는 수업이 많지 않았습니다. Advanced class가 많았고요. 처음 입학한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수업은 설교학과 희랍어, 그 외 한 과목이 더 있었던 것 같습니다. 희랍어 클래스는 희랍어 원문을 놓고 영어로 번역하는 수업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희랍어를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클레아몬트에 와서 영어로 희랍어를 공부했습니다. 잠을 자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클래스에서 열심히 하는 학생으로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학기말이 되었는데, 저의 선배 한 사람이 한국을 방문하는데 공항에 라이드를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라이드 줘야 할 시간이 딱 희랍어 학기말 시험이 끝나는 시간이어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험 전날 그 선배가 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저를 찾아왔습니다. 자기가 희랍어 시험 문제를 알려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에 제가 별 반응을 안 보이니까 재미가 없었는지 희랍어 교수 책상 위에 시험 문제지가 있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때 교수실 청소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방 열쇠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저녁 시간에 그 교수실에 청소를 하러 들어갔는데, 정말 책상 위에 시험 문제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시험 문제가 보이지 않도록 엎어 놓았더라고요. 시험지를 보는 순간 제 가슴이 얼마나 뛰었는지 아십니까? 제 속에서 심장이 뛰는 소리가 ‘쾅쾅쾅’하고 들리더라고요. 제가 얼마나 유혹을 받았는지 잘 모르실 것입니다. 희랍어 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 그래도 유혹을 이기기가 어렵더라고요. 저는 지금도 어떻게 그 교수실을 뛰쳐나왔는지 모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저를 지켜주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너를 보고 계신다는 제 양심의 소리였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상을 주신다는 말은 장차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판단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우리는 ‘공의의 하나님’ 혹은 ‘정의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나는 이미 하나님께 내 삶을 바쳤고, 이제는 이 땅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고, 내가 달려가야 할 길도 끝냈으며, 믿음도 지켰습니다. 이제 내게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 면류관은 하나님과 함께하며 의롭게 살았다는 표시로 주시는 상입니다. 주님이 바로 정의의 재판관이시기 때문에 마지막 그 날에 주님은 내게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6-8)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평생 바울을 지켜 주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 할 수 있었던 것은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살지 않습니다.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해서 삽니다. 우리는 언젠가 우리의 삶을 판단하시는 그분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절망 속에 있는 마르다에게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는 말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결과를 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을 영어로 “I believe in God”이라고 말하잖아요? 사전에서 이 말을 찾아봤더니 이렇게 설명하더라고요. “Believe in means to have faith that something exists. You believe in something because you have faith that it exists, even though you may never have seen or experienced it.” 이 설명이 꼭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인격과 말씀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들을 믿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을 볼 수 없고, 비록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어도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내 삶에 들어오셔서 하시는 놀라운 일을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