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1/2020 | 송구영신예배/In Times Of Trouble 39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I Am About To Do Something New)
김태환 목사
이사야 43:18-21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개역성경)
18 “But forget all that - it is nothing compared to what I am going to do. 19 For I am about to do something new. See, I have already begun! Do you not see it? I will make a pathway through the wilderness. I will create rivers in the dry wasteland. 20 The wild animals in the fields will thank me, the jackals and owls, too, for giving them water in the desert. Yes, I will make rivers in the dry wasteland so my chosen people can be refreshed. 21 I have made Israel for myself, and they will someday honor me before the whole world.” (New Living Translation)
지난 주일 예배 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2020년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시작해서 코로나바이러스로 마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해결되기는 커녕 많은 나라들이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루나 이틀, 혹은 한 달이나 두 달이 아니라 무려 11개월째 인간의 활동에 제약을 받는 이런 일이 과거에 있었던가 싶을 만큼 우리 모두는 특이한 상황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유명한 말입니다. 라틴어로는 “hoc quoque transibit (혹 쿠오퀘 트란시비트)”라고 하고, 영어로는 “This, too, shall pass away!” 혹은 “This too shall pass!” “This also pass away!” 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의 경전인 미드라쉬에 ‘다윗왕의 반지’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다윗왕이 궁중 세공인(細工人)에게 이런 명령을 내립니다. “내가 낄 반지를 만들어라. 그리고 그 반지에 내가 큰 전쟁에서 이겨 환호할 때도 교만하지 않고, 내가 큰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도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 이 명령을 들은 세공사는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었지만, 반지에 무슨 글을 새겨 넣어야 할 지 몰라서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현명하기로 소문난 왕자 솔로몬에게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그때 솔로몬 왕자가 알려준 글귀가 바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였다고 합니다. 세공인은 이 글귀를 반지에 새겨 왕에게 바쳤는데 다윗 왕은 매우 흡족해하면서 세공인에게 큰 상을 내렸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이 꼭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성공했을 때 너무너무 기쁘지만 그 시간도 지나갑니다. 그러니 내 성공했다고 해서 교만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 내가 슬프고 절망적인 상황을 만났다고 해도 그 상황도 지나갑니다. 그러니 내가 언제까지 슬퍼하고 절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성공했을 때 교만하지 말고, 낙심될 때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에게도 이런 교훈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팬데믹 같은 엄청난 재난도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또한 지나 갈 것입니다. 팬데믹 후의 인류의 역사는 한 단계 발전하고 진화(進化)할 것입니다. 물론 인류의 역사는 좋은 쪽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우리의 삶에 대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나쁜 것, 좋지 않은 것과는 과감하게 결별해야 합니다. 내가 그동안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것들을 과감하게 실천하는 쪽으로 나의 삶의 방향을 다시 설정해야합니다. 이런 말씀이 성경에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고 있다시피 벌써 잠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었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 밤이 다 지나고 낮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낮에 활동하는 사람처럼 단정히 행동합시다. 난잡한 유흥을 즐기지 말고, 술 취하지 마십시오. 성적으로 문란하거나 퇴폐적인 생활을 버리십시오. 다투지 말고 질투하지 마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십시오. 죄의 본성이 바라는 정욕을 만족시키는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로마서 13:11-14) 크리스천으로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런 것들을 뒤로 미루지 말고 실천할 때가 되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1976-) 같은 사람은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세계는 그동안 이루지 못한 개혁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심란한 상황 속에서 2021년 새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새해에 대한 기대도 있지만, 한편 우리 마음 속에 ‘불확실성(uncertainty)’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는 먼저 이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내야 하겠습니다. 우리 마음에 불안이 있다는 것은 곧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서 계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불안을 떨쳐내는 성경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내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차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고라 자손이 썼다는 시편 42편 말씀을 보세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내 속에 있는 불안을 의인화(擬人化, personification)해서 불안과 대화를 합니다.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Put your hope in God. For I will still praise him, my salvation and my God) (5, 11절).” 찬송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하는 좋은 도구입니다. 우리 마음이 무겁고 힘들고 불안할수록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읽은 이사야 43장 말씀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새로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이사야 본문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합니다. “아, 지난 나쁜 기억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새 일을 생각하라는 말씀이구나!”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New Living Translation에서 이 말씀을 한번 읽어 보십시오. “But forget all that-it is nothing compared to what I am going to do. For I am about to do something new. See, I have already begun (이 모든 일들을 잊도록 하라. 이 일들은 내가 앞으로 할 일들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새로운 일들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미 시작한 일들을 보라)!”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성경 속에서만 발견하려고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 나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몇 천년 전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나오는, 성경 속에 갇혀 있는 하나님께 붙들려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그 일들이 놀랍기는 하지만 지금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위해서 하고 계시는 일들과 비교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닐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위해서 새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위해서 하시는 일들은 ‘some¬thing old’가 아니라 ‘something new’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요한복음 1:16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이더라.”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은혜 위에 은혜’라는 말은 그리스 말을 문자적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영어로 직역하면 ‘grace upon grace’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충만한지 은혜 위에 또 은혜가 있다는 표현입니다. 이런 경우 영어에서는 ‘grace after grace’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만큼이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 뒤에 또 하나님의 은혜가 줄줄이 따라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그렇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하시는구나! 굉장하다!” 하면서 그 일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늘 그의 자녀들을 위해서 새로운 일을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목사님 중에 존 파이퍼(John Piper)라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저는 그 목사님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熱情)을 좋아합니다. 여러분들은 차를 타고 가다가 길이 막히면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이런 식으로 길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가? 여기에다 한국식으로 고가도로(overpass)를 만들면 트래픽 문제가 단번에 해결될 텐데......”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 보지 않았습니까? 존 파이퍼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경에는 다리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강을 건너시기를 원하신다.” 생각해 보니 정말 성경에는 다리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다리가 되셨으니까 따로 다리라는 말이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 앱이나 성경 프로그램을 가지고 계시면 한번 찾아보세요. 한국말로 ‘다리’를 찾지 말고 영어로 ‘bridge’를 찾아야 합니다. 한국말로 ‘다리’를 찾으면 ‘기다리다’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사다리’라는 말도 나오고요. ‘허벅다리’ ‘넓적다리’ 이런 말들이 옵니다. 성경에는 나에게 다가오는 고난을 다리를 건너서 쉽게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대신 고난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더 경험하게 되고, 그 하나님과 함께 고난을 이겨 나가는 법을 배우게 합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야곱 백성아, 내가 너희를 창조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아, 내가 너희를 만들었다. 내가 너희를 구원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희 이름을 불렀으니 너희는 내 것이다. 너희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희와 함께하겠다. 너희가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희를 덮치지 못할 것이며, 불 사이로 지날 때에도 타지 않을 것이고, 불꽃이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 여호와가 너희의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며 너희를 구원할 구원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집트를 속량물로 삼아 너희를 구했고, 에티오피아와 스바를 몸값으로 넘겨주어 너희를 내 것으로 삼았다. 너희가 내게는 소중하므로, 다른 사람들의 목숨과 너희를 바꾸어 그들로 너희 대신 죽게 하겠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므로, 너희가 또한 영화롭게 될 것이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이사야 43:1-5)
매우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에 New Living Translation으로 이 말씀을 읽어 보려고 합니다. “Do not be afraid, for I have ransomed you. I have called you by name; you are mine. When you go through deep waters, I will be with you. When you go through rivers of difficulty, you will not drown. When you walk through the fire of oppression, you will not be burned up; the flames will not consume you. For I am the Lord, your God, the Holy One of Israel, your Savior. I gave Egypt as a ransom for your freedom; I gave Ethiopia and Seba in your place. Others were given in exchange for you. I traded their lives for yours because you are precious to me. You are honored, and I love you. Do not be afraid, for I am with you(내가 너희를 구원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희 이름을 불렀다. 너희는 내 것이다. (여기서 구원의 뜻으로 사용된 ‘ransom’이란 단어는 몸값을 치르고 너희를 샀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나의 것이라고 합니다). 너희가 깊은 물을 지날 때 내가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 너희가 고난의 강을 건널 때 너희는 빠지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고난의 불 속을 통과할 때 너희는 불에 타지 않을 것이다. 불꽃이 너희를 삼키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가 하나님,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구세주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가 자유를 얻도록 하기 위해서 이집트를 대가로 지불했다. 나는 너희 대신 이디오피아와 스바를 내주었다. 너희 대신 다른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너희의 생명을 다른 사람들의 생명과 바꾸었다. 너희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영광을 받을 것이다.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니 두려워마라).”
이 말씀이 이해가 되시나요? 저는 이 말씀이 2021년에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 중에 ‘ransom’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일반적인 의미는 보석금, 혹은 몸값입니다. 성경에서는 ‘대속물’ 혹은 ‘속죄 제물’이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마가복음 10:45에 예수님은 우리의 대속물이 되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속죄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이집트, 이디오피아, 스바 이런 나라들이 ‘대속물’이 되었습니다. 우리 머리로 모두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말씀이지만, 요점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다른 나라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도 이 문제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이렇게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자기 아들까지 희생시켜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Others were given in exchange for you. I traded their lives for yours because you are precious to me. You are honored, and I love you (너희를 대신하여 다른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나는 그들의 생명과 너희를 바꾸었다. 너희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4절) 이런 성경의 말씀을 머리로만 읽지 말고 마음으로 읽고 가슴으로 읽어 보세요. 이 말씀이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은혜로운 말씀으로, 이 말씀 앞에서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나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말씀으로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2021년 새해는 이 하나님과 함께 시작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새 일을 준비하고 계시는 하나님, 다리를 만드는 대신 우리와 함께 어려운 시간들을 헤쳐나가시는 하나님, 우리가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낼 때 함께하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과 함께 2021년 새해를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Do not be afraid, for I am with you (두려워할 필요 없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까)” 그러니 겁낼 필요 없습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불안해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우리를 위해서 새 일을 계획하고 계시는 하나님과 함께 힘차게 한 해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