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021 | 새해예배/In Times Of Trouble 40
여기에도 계시는 하나님 (Surely The LORD Is In This Place)
김태환 목사
창세기 28:10-19
10 야곱은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갔습니다. 11 어느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어, 야곱은 그 곳에서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야곱은 그 곳에서 돌 하나를 주워 그것을 베개 삼아 잠을 잤습니다. 12 야곱은 꿈을 꾸었습니다. 사다리 하나가 땅에 세워져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사다리 위로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13 야곱은 여호와께서 사다리 위에 서 계신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다.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네가 지금 자고 있는 땅을 줄 것이다. 14 네 자손은 땅의 티끌처럼 많아져서 동서남북 사방으로 퍼지며, 땅 위의 모든 민족들이 너와 네 자손을 통해 복을 받을 것이다. 15 나는 너와 함께하고 네가 어디로 가든 너를 지켜 줄 것이다. 그리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리니,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어 주기 전까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16 그 때에 야곱이 잠에서 깨어나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분명히 이 곳에 계시는데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17 야곱은 두려워하며 또 말했습니다. “이 곳은 두려운 곳이다. 이 곳은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다.” 18 야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베개로 삼고 잤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처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19 원래 그 성의 이름은 루스였으나, 야곱은 그 성의 이름을 벧엘 이라고 불렀습니다. (쉬운성경)
10 Meanwhile, Jacob left Beersheba and traveled toward Haran. 11 At sundown he arrived at a good place to set up camp and stopped there for the night. Jacob found a stone to rest his head against and lay down to sleep. 12 As he slept, he dreamed of a stairway that reached from the earth up to heaven. And he saw the angels of God going up and down the stairway. 13 At the top of the stairway stood the LORD, and he said, "I am the LORD, the God of your grandfather Abraham, and the God of your father, Isaac. The ground you are lying on belongs to you. I am giving it to you and your descendants. 14 Your descendants will be as numerous as the dust of the earth! They will spread out in all directions - to the west and the east, to the north and the south. And all the families of the earth will be blessed through you and your descendants. 15 What's more, I am with you, and I will protect you wherever you go. One day I will bring you back to this land. I will not leave you until I have finished giving you everything I have promised you." 16 Then Jacob awoke from his sleep and said, "Surely the LORD is in this place, and I wasn't even aware of it!" 17 But he was also afraid and said, "What an awesome place this is! It is none other than the house of God, the very gateway to heaven!" 18 The next morning Jacob got up very early. He took the stone he had rested his head against, and he set it upright as a memorial pillar. Then he poured olive oil over it. 19 He named that place Bethel (which means "House of God"), although it was previously called Luz. (New Living Translation)
성경에서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이 둘은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경쟁적으로 야곱이 형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에서과 야곱은 성장하면서도 많은 일화들을 남깁니다. 사냥에서 돌아온 에서는 너무 배가 고팠습니다. 마침 야곱은 부엌에서 팥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사냥으로 배가 고팠던 에서는 야곱에게 팥죽을 좀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야곱이 이상한 말을 합니다. “형이 가지고 있는 장자권(the birthright)을 나에게 주면 팥죽을 줄께요.” 보통 가정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이상한 두 형제 사이의 대화입니다. 그 때부터 두 사람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에서보다 야곱을 더 사랑했던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에서로 위장을 시켜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게 합니다. 이삭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장자 에서에게 줄 축복을 모두 야곱에게 줘 버립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에서는 아버지에게 말씀드리지만 아버지 이삭은 너에게 줄 축복이 없다고 합니다. 화가 날 대로 난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이 사실을 알고 하란에 있는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갑니다.
이런 일이 형제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요? 그것도 이삭과 리브가 같은 경건한 믿음의 집에서 말입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까 말씀을 드립니다만, 야곱이 형의 분노를 피해서 삼촌의 집으로 도망가던 때부터 에서는 하나님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하나님의 시선은 야곱에게 맞춰집니다.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두 나라가 네 몸 안에 있다. 두 백성이 네 몸에서 나누어질 것이다.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하고,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Your older son will serve your younger son).” (창세기 25:23) 또 말라기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에서는 야곱의 형제가 아니냐? 나는 야곱을 사랑했으나, 에서는 미워했다. 내가 에서의 산악지방을 폐허로 만들고, 그의 땅을 광야의 여우들에게 넘겨주었다.” (말라기 1:2-3) 왜 하나님은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했을까요?
이런 말씀을 바울이 그냥 지나갈 리가 없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의 주권에 대해 말하면서 에서와 야곱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에서에게 무슨 잘못이 있어서 야곱을 선택하고 에서를 버린 것이 아니라 에서와 야곱 두 사람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하나님은 에서를 버리고 야곱을 선택하기로 결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을 선택하시는 주권이 완전히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 자신을 성찰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말씀입니까? 악마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네 삶의 주인은 너 자신이야. 누구도 너에 대하여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가 없어. 네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면 되는 거야. 네 인생은 너의 것이니까!” 하지만 성경은 정반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네 인생의 주인은 네가 아니야. 너의 삶에 대한 주권이 하나님께 있어. 너의 삶에 대하여 결정권을 가지고 계시는 그분의 뜻에 맞춰 살아야 해!”
오늘 읽은 창세기 28:10-19 말씀은 야곱이 하란으로 도망 가던 중 ‘루스(Luz)’라는 곳에서 잠을 자다가 꿈을 꾼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루스’는 인가(人家)가 없는 황량한 광야였을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밤이 되었습니다. 지친 야곱은 돌 하나를 주워 그 돌을 베고 잠을 청했습니다. 야곱은 지금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초지종을 몰랐을 것입니다. “왜 그날 나는 형 에서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왜 나는 형이 받을 축복을 가로챘을까?” “왜 나는 지금 형을 피해서 도망을 가고 있을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야곱은 집에서 아버지, 어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루 아침에 도망자 되고 말았습니다.
2020년이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지금의 상황을 예측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주일에는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친구들을 만나 서로 반갑게 껴안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주일을 보내는 것이 일상(日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가는 대신 온라인으로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이렇게 예배 드려도 괜찮은 것인가?” 왠지 시간이 흐를수록 집중도 잘 안 되는 것 같고 예배 드리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저희 가정이 속해 있는 가족모임에서도 예배에 대한 말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어서 교회에 가서 예배 드렸으면 좋겠어요.” “예배 드리는 것 같지 않고요. 집중도 안 돼요.” “예배에서 은혜를 못 받으니까 한 주일 내내 힘들어요.” 지금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루스’ 광야에서 돌 베개를 베고 잠을 자던 야곱은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사다리 하나를 보았는데, 그 사다리는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다리로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사다리 위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다.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네가 지금 자고 있는 땅을 줄 것이다. 네 자손은 땅의 티끌처럼 많아져서 동서남북 사방으로 퍼지며, 땅 위의 모든 민족들이 너와 네 자손을 통해 복을 받을 것이다. 나는 너와 함께하고 네가 어디로 가든 너를 지켜 줄 것이다. 그리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올 것이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어 주기 전까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13-15절)
야곱은 잠에서 깼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똑 같은 황량한 들판, 돌과 모래,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꿈 속에서 들은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지금 야곱은 형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도망가는 중입니다. 손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보장된 것이 없습니다. 이런 야곱에게 꿈 속에서 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터무니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꿈 속에서 느꼈던 하나님의 숨결이 자기를 감싸고 있다고 느낀 야곱은 이렇게 외칩니다. “난 잘 몰랐지만 하나님께서 이곳에도 계셨구나. 이곳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로구나(What an awesome place this is! It is none other than the house of God, the very gateway to heaven)!” 야곱은 베개로 베고 잤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처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이름을 ‘하나님의 집(The House Of God)’이라는 뜻으로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여러분, 그 당시에는 아직 성전이 없었습니다. 성전은 없었지만, 사람들은 온 세상이 하나님을 섬기는 제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세웠습니다. 꿈에서 깬 야곱에게 들었던 생각이 무엇이었습니까? “여기에도 하나님이 계셨는데, 난 그걸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 묵상하다가 왜 하나님은 야곱을 도망자로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바로 야곱에게 이런 깨우침을 주시려고, 그리고 오늘 저와 여러분이 그 말씀을 읽게 하시려고 야곱을 도망자로 만들지 않았을까요? 야곱이 꾼 꿈은 누가 만들어낼 수 있는 꿈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꿈이었습니다. 야곱이 ‘루스’ 광야에서 돌 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을 때만 해도 야곱은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더 힘들고 더 외로웠습니다. 야곱은 아버지 야곱의 집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은 그런 곳에 계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와 같은 사람과 하나님은 함께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런 황량한 광야에 하나님께서 계실 리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솔로몬 때에 성전을 짓습니다. 그 때부터 사람들은 성전에 대하여 특별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전을 하나님이 계시는 특별한 장소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지금도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걸어 나오면서부터 뭔가 하나님과 멀어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마음이 허전합니다. 비즈니스 현장으로 돌아가면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공부하는 학교, 도서관, 강의실에 하나님께 계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일주일 내내 나 혼자 치열하게 살다가 주일이 되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들으면서 영적인 굶주림을 채우고, 다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현장이란 하나님이 없는 곳이고, 외롭고 힘든 곳이고,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소일 뿐입니다.
여러분, 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삼 일 만에 다시 세우겠다(Destroy this temple, and in three days I will raise it up).” (요한복음 2:19) 사람들은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어이없어 했습니다. 이 성전을 짓는데 46년이 걸렸는데, 당신이 무슨 재주로 삼 일만에 짓겠느냐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를 쓰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해석해 놓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전은 그분 자신의 몸을 가리킨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요한복음 2:21-22)
예수님께서 그 때 하신 말씀은 눈에 보이는 성전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이 성전이 되는 그런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시간과 장소의 제한을 받지 않고 제자들이 있는 곳에 나타나셨습니다. “예배하는 사람들이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이 아닌 곳에서 신령과 진정의 마음으로 예배하는 때가 오고 있다.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 (요한복음 4:21, 23) 예수님의 부활이 예배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될 것이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지금 이 시간까지도 예배의 장소를 교회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불과 한 10개월 전까지만 해도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지금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가정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가 되고 있습니다. 오피스가, 일터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가 되고 있습니다. 학교가, 강의실이, 연구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코로나바이러스를 통해 예배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바꾸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은 “예배를 어디서 드리느냐 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입니까?” 하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요. 이 문제가 정말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예배하는 장소에 하나님께서 계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배하는 장소가 어디가 맞느냐고 물었지만, 예수님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예배 장소가 문제가 되지 않는 때가 오고 있다 (The time is coming when it will no longer matter whether you worship the Father on this mountain or in Jerusalem) (요한복음 4:21)”고 말씀하셨습니다. 영(The Spirit)은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온 세상이 영이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 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깨달은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루스’의 황량한 광야, 그리고 나와 같은 도망자가 누워 잠을 청하고 있는 이곳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통해서 “난 몰랐는데 여기에도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하고 깨달은 것입니다. 그랬더니, ‘루스’가 ‘벧엘’이 되고, ‘루스’가 천국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성경 구절 하나 인용할 텐데요.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언제 누구에게 하신 말씀인지 맞춰보십시오. “In all my traveling with the people of Israel I never asked any of the leaders that I appointed why they had not built me a temple made of cedar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동행하면서 난 한번도 왜 나를 위해서 백향목으로 만든 집을 짓지 않느냐고 말한 적이 없다).” (사무엘하 7:7) 이 말씀의 요점은 하나님은 어느 한 곳에 계시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그의 백성들과 함께 있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내 백성이 광야에 있으면 나도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이 기쁘고, 내 백성이 힘든 고난의 현장에 있으면 나도 그 자리에 있는 것이 기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예배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현장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가 되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곳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온라인 예배 방식이 예배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기폭제가 되고 있습니다. 코로나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자신과 교회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변화되도록 협력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2021년 새해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들과 과감하게 결별(訣別)하고,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것들을 과감하게 실행하는 한 해가 되게 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우리들의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