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0:8-10

8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말씀이 네게 가까이 있으니,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9 여러분이 만일 여러분의 입으로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하고, 또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을 믿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10 여러분은 마음으로 믿어 의롭다 함을 얻으며,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쉬운성경)

8 In fact, it says, "The message is very close at hand; it is on your lips and in your heart." And that message is the very message about faith that we preach. 9 If you confess with your mouth that Jesus is Lord and believe in your heart that God raised him from the dead, you will be saved. 10 For it is by believing in your heart that you are made right with God, and it is by confessing with your mouth that you are saved. (New Living Translation)

성경에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로마서 13:11에 있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 생각나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22-24 말씀입니다.

제가 ‘In Times Of Trouble’이란 주제를 가지고 설교를 시작한 것인 지난 해 3월 29일 주일이었습니다. 그 이후 매 주일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힘들어하는 교우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씀을 설교했습니다. 지난 주일까지 40번을 설교했네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중에 코로나바이러스를 통해서 이 세상을 바꾸어 나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한 해 마지막 주일 송년예배와 송구영신예배, 그리고 새해 첫 주일 예배에서 코로나바이러스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설교했습니다.

이렇게 설교를 하는 동안 연일 쏟아지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뉴스와 말씀 묵상,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같은 사람의 책과 강연을 통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의 역사학과 교수로 있는데요. 1978년생으로 불과 43살인데, 세계적인 석학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그가 쓴 책들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고요. 뉴욕 타임지에서 선정한 베스트 셀러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한국의 대학들과 방송국에서 이미 여러 차례 강연을 했더라고요. 역사학자이기 때문에 탁월한 분석 능력이 있는 데다가 달변(達辯)입니다. 그의 대표작 ‘사피엔스 (Sapience, 2014)’와 ‘호모 데우스(Homo Deus, 2016)’는 인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쓴 책입니다. 그리고 한 책이 더 있습니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2018)’이라는 책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유발 하라리의 말에 모두 찬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유대인이지만 특이하게도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그가 내 놓는 대안 중에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류의 역사에 대한 분석 능력이 탁월한 것은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저의 관심은 “그러면, 팬데믹 이후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모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서 이 시대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학자나 인류학자, 미래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문명사적인 전환(轉換)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삶의 모든 분야에서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이제 우리는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그 변화의 속도를 더욱 가속시킬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많은 이슈들이 수면(水面) 위로 올라오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전환기를 앞두고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어떤 결정을 하느냐가 인류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변화의 과정 속에 하나님께서 분명히 개입하고 계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자기의 지혜를 통해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전하는 어리석어 보이는 말씀 선포로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 (Since God in his wisdom saw to it that the world would never know him through human wisdom, he has used our foolish preaching to save those who believe).” (고린도전서 1:21) 그렇다면, 우리 시대에도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깨닫도록 해야 할 책임이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있습입니다. 과학과 테크놀로지는 눈부시게 발전하는데 사람들이 그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과학과 기술을 얼마든지 나쁜 쪽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인류가 ‘demonic power(악마적인 힘)’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유발 하라리가 ‘Homo Deus(호모 데우스)’에서 전달하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호모(homo)’라는 말은 ‘인간’이란 말이고, ‘데우스(deus)’라는 말은 ‘신’이라는 말입니다. ‘호모 데우스’는 ‘신이 된 인간’이란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전문가들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나라의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5년 후에, 10년 후에 인류가 멸망한다고 해도 그 말에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 기후의 변화에 대처하지 않으면 10년 후, 20년 후 인류에게 재앙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해도 트럼프 같은 사람을 보세요. 2015년에 각국 정상들이 합의한 ‘파리 기후 변화 협정’에서 우리 미국은 탈퇴한다고 선언하면서 미국의 이익이 먼저라고 했습니다. 이런 정책이 트럼프 지지자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전문가들은 오래 전부터 ‘인공지능(AI)’의 발달은 수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입을 열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급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팬데믹 이후의 세계에서 인간의 힘은 더욱 강하게 될 것입니다. 인공지능(AI)의 발달과 빅데이터, 그리고 ‘알고리즘(algorithm)’은 인류를 ‘Homo Deus’의 자리에 앉게 할 것입니다. 만일 인류가 이 힘을 ‘demonic power(악마적인 힘)’로 사용한다면 인류에게 돌이길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입니다. 역사는 인간 중심의 역사로 재편되고, 하나님을 완전히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크리스천의 시대적인 책임은 역사를 움직이는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 로마서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여러분이 만일 여러분의 입으로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라고 고백하고, 또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을 믿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으로 믿어 의롭다 함을 얻으며,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9-10절)

바울이 이 말씀을 쓴 것은 1세기 중간 때입니다. 3차 전도 여행 때 고린도에서 쓴 것으로 보고 있으니까 서기 55-56년쯤 되겠네요. 예수님이 돌아가신 지 불과 20년이 지난 때에 이 말씀을 썼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읽고 충격을 받은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인 것을 마음으로 인정하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속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울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인정하는 사람은, 나도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앞에서 그를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마태복음 10:32-33) 우리가 어떤 것을 사람들 앞에서 인정한다는 것은 그 일에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인정한다는 말은 단순히 그렇게 말을 한다는 의미 외에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나의 삶으로, 나의 행동으로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세상을 바꾸고, 교회를 바꾸고 계십니다. 팬데믹을 통해서요.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크리스천들은 어떤 사람들이 되어야 할까요? ‘Confessing Christians (고백하는 크리스천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이시며 세상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을 입으로, 삶으로, 행동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여러분, 독일의 ‘고백교회(The Confessing Church)’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셨습니까? 세계 제1차 대전에서 패전하고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했던 독일은 땅에 떨어진 국민들의 사기와 자존심을 살려줄 영웅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틈을 타고 등장한 사람이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입니다.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를 총통으로 선출하고 히틀러에게 모든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정권을 장악한 히틀러는 권력을 강화하고 국민들의 권리를 제약하는 조치들을 쏟아냈습니다. ‘반유대주의 법(anti-semitism)’을 만들어서 유대인들을 차별하고 추방하기 시작했습니다. 히틀러는 독일의 교회를 하나의 교회(unified church)로 만들어 통치에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히틀러의 정책을 지지하고 찬양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동조하지 않은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만이 복종의 대상이요, 하나님의 계시라는 내용의 ‘바르멘 선언(Barmen Declaration of Faith, 1934)’을 발표합니다. 이 선언을 칼 바르트(Karl Barth)가 초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바르멘 선언’을 따라 히틀러에 대한 불복종을 선언한 교회가 ‘고백교회’입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본회퍼가 바로 고백교회 목사입니다. 

본회퍼 목사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본회퍼는 ‘Confessing Christian’의좋은 예를 보여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1936년에 본회퍼는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나치의 감시를 받기 시작합니다. 신학원은 폐쇄 당했고요. 세계 2차 대전이 시작된 1939년에 본회퍼는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1892-1971) 교수의 초빙을 받아 뉴욕에 있는 유니온 신학교로 갔지만 고국의 형제들이 겪는 어려움을 외면할 수 없어 다시 독일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그 때 본회퍼는 라인홀드 니버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저는 독일의 크리스천들과 함께 우리 조국의 어려운 시기를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형제들과 함께 이 시대의 고난을 나누지 않는다면 전쟁 후 독일 교회를 재건하는 일에 참여할 권리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유니온 신학교에는 ‘Bonhoeffer Room(본회퍼의 방)’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1943년 4월에 본회퍼는 체포됩니다. 무슨 일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히틀러 암살계획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리고, 2년 후, 1945년 4월 9일에 39살의 나이로 옥중에서 교수형에 처해집니다. 그의 묘비에는 그가 남긴 유언대로 “여기 그리스도의 제자 디트리히 본회퍼 잠들다” 이렇게 새겨 있다고 합니다. 그는 평생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것을 그대로 배우고 따르고 실천하는 제자로서 살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는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하면서 이런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한 사람이 죽어야 한다면 내가 그 일을 하겠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일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겠다.” 

지난 주일에 ‘선한 능력으로’라는 찬양을 불렀습니다. 이 찬양 가사를 쓴 사람이 본회퍼입니다. 이 노래의 가사는 1944년 12월 19에 자기 약혼자였던 마리아에게 준 성탄 시였습니다. 이 시의 단어 하나하나에 표현하기 힘든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한국 말로 번역된 가사에서는 그 긴장감과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아쉬웠습니다. 특히 “믿음으로 일어날 일 기대하네” 이 가사는 정말 잘못된 번역입니다. “우리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인내로 견디며 두려움 없이 맞이할 것입니다” 이렇게 번역해야 합니다.

히틀러의 광기(狂氣)를 바로잡기 위해서 독일의 ‘고백교회’가 등장했듯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크리스천은 자신이 믿는 것을 확실하게 고백하는 ‘고백하는 크리스천들’입니다. 팬데믹 이후에 있을 엄청난 문명사적인 변화를 예상하듯이, 우리 크리스천의 삶에도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크리스천들이 잠에서 깨어나 이 시대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미니스트리에 적극적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마음으로 인정하고, 입으로, 행동으로, 삶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가 ‘Confessing Christian’으로 산다는 것은 곧 우리의 삶을 예수님의 삶과 일치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Confessing Jesus’로 사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 시대 속에서 ‘Confessing Christian’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한번 같이 보실까요?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선한 고백을 하신 그리스도 앞에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흠 없이 그대에게 주신 계명(명령)을 실천할 것을 부탁합니다).” (디모데전서 6:13-14) 자신에게 주어진 막강한 힘을 과시하면서 “나에게는 당신을 놓아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박을 권한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오?” 이렇게 말하는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은 무슨 고백을 하셨습니까? “네가 가진 권세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면, 네게는 나를 해할 어떤 권한도 없다.” (요한복음 19:11) 요셉은 파라오 앞에서 무슨 말을 했습니까? “It is beyond my power to do this, but God can tell you what it means and set you at ease (왕의 꿈을 해석하는 일은 저의 능력 밖의 일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고 왕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창세기 41:6) 파라오 앞에서 이런 말을 고백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당신 파라오가 아닙니다. 당신보다 더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은 한 인간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은 만유의 주가 되시는 분입니다.” 이런 의미 아닙니까?

히틀러 앞에서 목숨을 걸고 저항했던 고백교회의 목사들, 본회퍼, 그리고 예수님, 사도 바울, 구약에서는 요셉, 모세, 다니엘, 에스라, 느헤미야, 모두 그 시대에 하나님을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팬데믹 이후 문명사적으로 대 전환이 이루어지는 시대에, 과연 우리는 크리스천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시대에 묻혀 시대의 흐름에 떠내려가는 삶을 살지 않아야 합니다. 이제는 잠에서 깨야 합니다. 구습(舊習)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우리가 믿는 것을 더욱 확실하게 고백하는 크리스천으로 살아야 합니다. 입으로만 아니라 삶으로, 행동으로 책임 있게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