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2021 |
사순절 새벽기도의 의미(5) (The Meaning of the Lenten Prayer)
김태환 목사
누가복음 12:16-21
16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떤 부자의 밭에서 수확이 많이 나왔다. 17 그 부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 곡식을 저장해 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 18 그는 말했다. ‘이렇게 해야겠다. 내 곳간을 헐고 더 큰 곳간을 세워 거기에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저장하겠다.’ 19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말할 것이다. ‘인생아, 여러 해 동안 쓰기에 넉넉한 많은 재산을 가졌으니 편히 쉬고 먹고 마시며 인생을 즐겨라.’ 20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말했다.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 밤 네 영혼을 가져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준비한 것을 누가 가져가겠느냐?’ 21 이런 사람은 자신을 위해 재물을 쌓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사람이다.” (쉬운성경)
16 Then he told them a story: "A rich man had a fertile farm that produced fine crops. 17 He said to himself, `What should I do? I don't have room for all my crops.' 18 Then he said, `I know! I'll tear down my barns and build bigger ones. Then I'll have room enough to store all my wheat and other goods. 19 And I'll sit back and say to myself, "My friend, you have enough stored away for years to come. Now take it easy! Eat, drink, and be merry!"' 20 "But God said to him, `You fool! You will die this very night. Then who will get everything you worked for?' 21 "Yes, a person is a fool to store up earthly wealth but not have a rich relationship with God." (New Living Translation)
여러분, 지금 사순절을 잘 지내고 계신가요? 새벽기도에서 매일 듣는 은혜로운 찬양이 있습니다. ‘눈을 주님께 돌려(Turn Your Eyes Onto Jesus)’라는 제목의 찬양입니다. 사순절에 아주 적합한 찬양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순절을 기도의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의 의미는, 사순절을 맞이해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예수님께 집중하고, 지금 내가 올바로 살고 있는지 나의 삶을 반성해 본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삶에 많은 유혹들이 있습니다. 주님보다는 나의 일에 관심을 더 갖게 하고, 영적인 일보다는 물질적인 일에 더 관심을 갖게 하는 많은 유혹들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비단 지금 뿐만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던 문제입니다. 그만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이 말씀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모두 자기 일에만 정신이 팔려 예수 그리스도의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그렇지 않습니다(All the others care only for themselves and not for what matters to Jesus Christ. But you know how Timothy has proved himself).” (빌립보서 2:21) 바울이 디모데를 처음 만난 것은 1차 전도여행 때 소아시아의 루스드라(Lystra)에서였습니다. 그리고 디모데를 데리고 2차 전도여행을 했습니다. 디모데의 아버지는 그리스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신앙의 내력이 있는 경건한 분이었습니다. 디모데는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바울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디모데는 바울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의 아들이기도 했고, 제자이기도 했고,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동역자이기도 했습니다. 디모데의 성격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알고, 다른 사람들의 사정을 잘 이해해 주는 성격이어서 목회자의 성품을 타고 난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외롭고 힘들 때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이 디모데였습니다.
이번 사순절에 오스왈드 체임버스 목사님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 이 책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저도 날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자연히 그 책을 정성껏 읽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그 책을 통해 오스왈드 목사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자신을 드린 것을 보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에게 질문했습니다. “나는 오스왈드 목사님처럼 나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 있는가?”
크리스천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물질적인 가치가 아니라 영적인 가치입니다. 이 영적인 가치들이 지금 이 시대에 와서 큰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나라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무너지면서, 더욱 더 많은 나라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경제 체제를 말할 때 ‘계획경제’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자본주의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자본주의를 자기들 처지에 맞게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 모두가 인간의 이기심과 열심히 능력껏 일해서 벌어들이면 모두 사유재산이 된다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잘 맞아 떨어진 결과입니다.
이런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돈의 많고 적음이 가치의 기준이 됩니다. 미국을 보세요. 능력이 많은 사람은 돈을 많이 벌고 능력이 적은 사람은 돈을 적게 법니다. 아무도 여기에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자본주의 체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런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영적인 것들의 가치가 점점 축소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줄고,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줄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줄고,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 교회들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마저도 모두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en you will be able to test and approve what God's will is--his good, pleasing and perfect will.” 크리스천은 이 시대의 패턴(유행)을 따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마음을 새롭게 해서 변화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로마서 12:2에 있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은 물질적인 가치보다 영적인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은 ‘마음을 항상 새롭게 하는 것(to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가치가 팽배한 이 시대의 풍조 속에서 어떻게 마음을 항상 새롭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문제는 전적으로 여러분 자신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조금 무책임한 말같이 들릴 수 있겠지만요. 달리 다른 길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영적인 가치가 물질적인 가치보다 더 중요하다고 인정한다면, 영적인 가치들을 선택해야 합니다. 예배를 소중하게 알고 진심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성경을 규칙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한번 이 말씀을 보세요. “형제 여러분, 선함을 추구하며 가치가 있는 것들에 마음을 쏟기 바랍니다. 참되고, 고상하고, 옳고, 순결하며, 아름답고, 존경할 만한 것들을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이 나에게 배운 것과 받은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4:8-9) “맞아! 인간이 인간 답게 살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을 추구해야 해!”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런 가치들을 선택해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자기 스스로 믿고 옳다고 믿는 가치를 따라 선택하고 결단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과거와는 많이 다릅니다. 과거에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목사님들이 성도들을 앞에서 이끌었습니다. 성도들은 목사님이 하라는 대로 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거든요? 이제는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이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 누가복음 12장 본문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습니까?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이 부자가 부럽지 않습니까? 성경 시대에는 사람들이 농사를 짓던 때였으니까요. 이 부자는 아주 비옥한 땅과 농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추수 때마다 많은 수확을 거두어들였습니다. 수확이 너무 많아서 저장할 창고가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이 부자는 더 큰 창고를 건축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설계사가 그려준 설계도를 보면서 꿈에 부풀었습니다. “이제는 아무 걱정이 편하게 쉬고 먹고 마시면서 인생을 즐길 수 있겠구나!”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날 밤에 이 부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어리석은 사람아! 내가 오늘 밤 네 영혼을 가져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네가 모아 놓은 재산은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마치면서 듣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아 놓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부요하지 못한 사람은 모두 이와 같이 될 것이다.” (21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이야기의 메시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좀 힌트를 드릴까요? 오늘 본문 말씀 앞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온갖 욕심을 경계하고 주의하여라. 재산이 아무리 많더라도 사람의 생명이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Beware! Guard against every kind of greed. Life is not measured by how much you own).” (15절) 우리의 인생은 재산이 많고 적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 뒤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요하고, 몸이 옷보다 중요하다.” (22-23절) 우리의 목숨, 우리의 생명이 옷이나 음식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돈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톨스토이가 평생 자기 소설의 모티브로 삼은 것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가 제일 좋아했던 성경 구절이 마태복음 16:26에 있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이 말씀이었습니다. 우리의 생명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생명은 천하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명을 위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생명을 위해서 투자하는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요한복음 10장에 나오는 이 말씀을 아시지요? “내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은 양들이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 왔다.” (요한복음 10:10) 이 말씀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말씀은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풍성한생명’이라는 말을대부분의 영어 성경에는 ‘abundant life’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풍성한 생명”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이에 대한 다양한 번역들이 있습니다. ‘satisfying life(만족한 삶, NLT)’ ‘life to the full or till it overflows(차고 넘치는 생명, Amplified Bible, NIV)’ ‘life with all its advantages(모든 이점을 가진 생명 혹은 삶, Mace New Testament)’ ‘life in all its fullness(충만한 삶, Berean Study Bible, Good News Translation)’ 이 모든 번역성경들을 종합해 보면 ‘풍성한 생명’이라는 말은 생명의 본래 의미가 완전히 드러나는 생명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우리에게 이 생명을 가르치고, 이 생명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었다고 그의 복음서에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풍성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는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뜻이 이 말씀 속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마태복음 4:4)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구약성경 신명기 8:3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이어령 씨가 예수를 믿고 나서 쓴 책 중에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말은 완성된 문장처럼 보이지만 그 뒤가 비어 있습니다. 빵만으로 살 수 없다면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 그 빈칸을 채워줘야만 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면,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성경 속에 답이 있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성경을 읽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고,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생명이 풍성해지기 위해서입니다. 지금보다 더 풍성한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보다 더 가치 있고, 지금보다 더 아름답게 살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이 우리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더 풍성한 삶을 살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더 좋은 빵을 얻기 위해서 달려가고 있지 않은가? 내가 지금 ‘어리석은 부자’처럼, 그런 사람을 성공의 모델로 생각하고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빵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투자하면서 생명을 위해서는 인색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만족하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되면, 비록 빵이 부족하고, 삶의 환경이 열악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명을 위해서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행복해지는 비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