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021 | 부활주일 메시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If A Grain of Wheat Falls Into The Ground And Dies)
김태환 목사
요한복음 12:20-26
20 유월절에 예배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에 온 사람들 중에 그리스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21 이 사람들이 갈릴리 벳새다 출신인 빌립에게 와서 요청했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였고, 안드레와 빌립은 다시 예수님께 그 말을 전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24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법이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히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를 섬기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서 높이실 것이다.”. (쉬운성경)
20 Some Greeks who had come to Jerusalem for the Passover celebration 21 paid a visit to Philip, who was from Bethsaida in Galilee. They said, "Sir, we want to meet Jesus." 22 Philip told Andrew about it, and they went together to ask Jesus. 23 Jesus replied, "Now the time has come for the Son of Man to enter into his glory. 24 I tell you the truth, unless a kernel of wheat is planted in the soil and dies, it remains alone. But its death will produce many new kernels--a plentiful harvest of new lives. 25 Those who love their life in this world will lose it. Those who care nothing for their life in this world will keep it for eternity. 26 Anyone who wants to be my disciple must follow me, because my servants must be where I am. And the Father will honor anyone who serves me. (New Living Translation)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 띄엄띄엄 앉아 있습니다만, 서로를 보시면서 “해피 이스터(Happy Easter)!” 하면서 인사하시지요? 부활하신 예수님은 한 곳에 모여 문을 잠그고, 불안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Peace be with you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한복음 20:19)”하시면서 인사를 하셨습니다. 히브리 말로는 “샬롬(Shalom)”입니다. 이 인사가 이 시간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아직도 상황이 종료되지 않았지만, 지난 일년 동안 참 애 많이 쓰셨습니다. 갈 곳을 마음대로 가지 못하고, 만날 사람들을 마음대로 만나지 못하고, 생활에 제약을 받으면서 참 애들 많이 쓰셨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담임 목사로서 하나님의 평안을 전합니다. “샬롬!”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성경 말씀이 무엇일까 하고 여러 날 생각하다가 결정한 말씀이 요한복음 12:24절 말씀입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I tell you the truth, unless a kernel of wheat is planted in the soil and dies, it remains alone. But its death will produce many new kernels-a plentiful harvest of new lives.” 이 말씀을 잘 보면 “If a kernel of wheat dies(밀알 하나가 죽으면)”이라는 말과 “If a kernel of wheat doesn’t die(밀알 하나가 그대로 죽지 않으면)”이라는 말이 서로 대조되어 있습니다. 땅에 떨어져 죽는 밀알과 죽지 않은 밀알, 별로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다릅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새로운 생명들을 만들어 내게 되지만,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배경을 아시지요? 그 때는 유월절 명절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키는 제일 큰 명절입니다. 과거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조상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은 것을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하나님이 보낸 죽음의 사자가 연기처럼 모든 사람들의 집으로 스며 들어가서 처음 난 것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사람도 처음 난 아이는 죽었고, 가축들도 처음 난 것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에는 죽음의 사자가 들어가지 않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집에는 아무 피해가 없었습니다. 모세의 지시대로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발랐거든요. 그런 집들은 피해가 없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는 명절이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이 되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도시는 수많은 순례자들로 차고 넘쳤을 것입니다. 해외에 나가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유월절을 지키러 왔고, 외국인들도 구경 삼아 왔을 것입니다.
그 외국인들 가운데 그리스 사람 몇 명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이 사람들은 아마도 이스라엘에 현자(賢者)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만나러 왔을 것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고대로부터 철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년경-399)와 그의 제자 플라톤(Plato)이 있습니다. 플라톤은 아테네 출신인데요. 출생 연도도 알려지지 않았고, 사망 년도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대충 BC 430년경에 났고, 348년경에 죽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또 한 사람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이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BC 384-322)입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그리스 철학자로서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와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들이 살았던 시대를 우리나라 역사에서 찾아보면 고조선 때입니다. 이렇게 우리나라 역사와 서양 역사를 비교해 보면 정말 엄청난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우리나라 역사에 고조선 때 문헌이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상은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서양 사상사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플라톤의 ‘국가론’ ‘소크라테스의 변명’ ‘향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형이상학’ ‘니코마코스 윤리학’ ‘정치학’ ‘수사학’ ‘논리학’ 등 실로 엄청납니다. 이들의 책은 한국말로도 번역되어 읽히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에 ‘아테네(Athens)’를 방문했던 때는 서기 50년경이었습니다. 바울이 아테네 도시를 둘러보면서 수많은 신상들이 도시에 널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레오바고(Areopagus)’라는 광장에 수많은 철학자들이 모여 매일 토론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울은 아테네 도시에 대한 인상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아테네 사람과 그 곳에 사는 외국 사람들은 새로운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말하거나 듣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7:21)
이것이 서기 50년경의 아테네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서기 30년경 예수님 당시에도 아테네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들은 날마다 모여서 토론했고, 새로운 사상에 대해 목이 말라 있었습니다. 이들 중 몇 사람이 유대나라에 현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이 그리스 사람들은 예수님을 대면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이 사람들이 예수님께 무슨 질문을 했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이 사람들을 대면하자마자 예수님은 이들이 의도를 단번에 아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리를 말한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이 사람들은 이 사람의 입에서 무슨 새로운 말이 나올까 하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바로 ‘밀알의 비유’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당연한 말씀이라는 생각을 하신 분이 계십니까? 농사를 짓는 분들에게는 새로울 것이 없는 말씀입니다. 씨앗을 뿌려서 그보다 몇 십 배, 몇 백 배의 수확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농사입니다. 하지만, 이 예수님의 이 말씀은 비유 말씀이거든요? 일상적이고 쉬운 이야기 같지만 이 이야기 속에 예수님께서 전달하고자 하는 진리가 들어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단순히 씨를 뿌리고 거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려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밀알의 비유’가 평범한 이야기로 들립니까?
저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의 삶에 대한 비유 말씀이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꼭 그렇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처럼, 예수님의 생명은 땅에 떨어져 죽었습니다. 땅에 떨어진 씨가 썩어 죽고, 그 죽은 씨앗의 양분을 먹고 새로운 싹이 돋아나는 것처럼, 땅에 묻힌 예수님의 생명을 통해서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났습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우리 믿음을 고백할 때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예수님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the firstfruits of those who have fallen asleep, 고린도전서 15:20)’가 되셨다고 했습니다. 잠자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 부활하신 ‘첫 열매’입니다. 여러분, ‘첫 열매’라는 말은 제2, 제3, 제4의 열매들을 기대하게 합니다. 바울은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부활의 열매들이 된다고 했습니다(고린도전서 15:23).
여러분, 이 말씀을 한번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전부터 아셨던 사람들을 그분의 아들과 동일한 형상을 갖도록 미리 정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을 많은 형제들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8:29) 원래 하나님께 아들이 하나였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독생자(獨生子)’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에게 많은 형제들이 생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많은 아들들이 생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생명을 우리를 위해서 내 주셨더니, 그 결과 수많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생긴 것입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서 많은 열매들을 거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자기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것을 행하면, 너희는 내 친구다(요한복음 15:1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명한 것을 행하면(if we do what Jesus commands)’ 우리는 예수님의 친구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길이 멀고도 멀어 보입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렇게 읽어 보십시오. “너희도 내가 행한 것처럼 너희의 생명을 한 알의 밀알처럼 땅에 심으면 나의 친구가 된다” 이렇게 말입니다. 이렇게 이 말씀을 해석하니까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일이 그리 멀어만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읽은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콜베 신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분의 본명은 ‘막스밀리언 마리아 콜베’(Maximilian Maria Kolbe, 1894-1941, 폴란드)입니다. 세계 제2차 대전 때,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합니다. 콜베 신부는 동료 수도사들과 함께 유대인 2,000명과 폴란드 난민 3,000명에게 그들의 수도원을 은신처로 제공합니다. 나치는 그 수도원을 폐쇄하고 콜베 신부와 네 명의 동료들을 ‘아우슈비츠’라는 죽음의 수용소로 이송시켰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강제 노역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의 수감자가 탈옥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 수용소에는 탈옥 사고가 있을 때는 그 탈옥자와 같은 막사를 쓰는 수감자 중에 본보기로 열 명의 수감자를 무작위로 지명해서 아사형(餓死刑)에 처한다는 룰이 있었습니다. 수용소 지휘관이 죄수들을 모아 놓고 열 명을 지명합니다. “너!” “너!”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지명을 합니다. 그런데, 지명 당한 사람 중에 프란치세크 가조우니체(Franciszek Gajowniczek)라는 사람이 “내 아내, 내 아이들, 나는 죽기 싫습니다!” 하면서 처절하게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콜베 신부가 모자를 벗고 조용히 앞으로 나가 지휘관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폴란드의 가톨릭 사제입니다. 그 사람 대신 제가 죽게 해주십시오. 저는 늙었습니다. 저 사람은 아내와 자녀들이 있습니다.” 콜베 신부는 아사형을 선고받은 프란치세크 가조우니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저는 폴란드에서 온 가톨릭 사제입니다. 제가 저 사람을 대신해서 죽겠습니다. 저 사람은 아내와 자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청원이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래서, 콜베 신부가 그 사람을 대신해서 아사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용소 지휘관은 이들을 즉시 처형하지 않고, 물과 음식을 일체 주지 않고 굶겨 죽도록 했습니다. 수용소 간수들의 말에 의하면, 콜베 신부는 감옥 안에 같이 갇힌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 후 3주가 지났지만 콜베 신부와 다른 세 사람이 기적처럼 살아있었습니다. 결국 나치는 독극물을 주사하여 그들을 모두 살해했다고 합니다.
콜베 신부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알아보았더니, 콜베 신부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었습니다. 1912년 로마 대학에 유학을 가서 철학과 신학, 수학, 물리학 등을 공부하였고, 1915년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1919년에는 성 보나벤투라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콜베 자신은 자기는 나이가 많아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고, 그러니 내가 저 사람 대신 죽겠다고 했지만, 그 때 그는 겨우 47살이었습니다. 그는 결코 쓸모 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에게 갈 자가 없다(요한복음 14:6).” 콜베 신부의 아사 감방에 지금도 ‘콜베 신부의 십자가’가 있다고 합니다. 그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통과했던 십자가입니다. 콜베 신부 역시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죽음으로써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과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역사를 보면, 제2, 제3의 콜베 신부가 계속 나왔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기적이고 각박한 것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라 자신의 생명을 땅에 심는 사람들이 계속 나왔습니다. 독일인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자신의 삶을 바친 서서평(Elisabeth Shepping, 1880-1934) 선교사, 나에게 천개의 생명이 있다면 모두 조선에게 주겠다고 했던 캐나다의 루비 켄드릭(Lubye Rachael Kendrick, 1883-1908) 선교사, 소록도에서 나병환자를 위해 43년을 바친 오스트리아의 수녀 마리안느(Marianne Stoeger, 1934-)와 마가렛(Margreth Pissarel, 1935-) 수녀, 아프리카의 남수단에 가서 자신의 생명을 심은 이태석 신부(1962-2010), 이런 분들이 있어서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내가 부활의 ‘첫 열매’이고 나를 믿는 너희는 부활의 ‘나중 열매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우리는 단순히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너희도 예수님처럼 너희의 생명을 땅에 심어 많은 열매를 거두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