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2021 | 성령의 사역(2)
부활절이 지나고(9) (After Jesus’ Resurrection)
김태환 목사
요한복음 14:12-21
12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그 사람도 행할 것이다. 심지어 이보다 더 큰 일들도 행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13 그리고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너희에게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이다. 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켜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고, 그분은 너희와 영원히 함께 있을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실 것이다. 17 그분은 진리의 성령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므로, 그분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그분이 너희 안에 계시고 너희는 그분 안에 있기 때문에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다. 18 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 두지 않고 너희에게로 다시 올 것이다.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나, 너희는 나를 볼 것이다. 그것은 내가 살고 너희도 살 것이기 때문이다. 20 그 날에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다. 21 내 계명을 가지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고,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낼 것이다.”(쉬운성경)
12 "I tell you the truth, anyone who believes in me will do the same works I have done, and even greater works, because I am going to be with the Father. 13 You can ask for anything in my name, and I will do it, so that the Son can bring glory to the Father. 14 Yes, ask me for anything in my name, and I will do it! 15 "If you love me, obey my commandments. 16 And I will ask the Father, and he will give you another Advocate①, who will never leave you. / ①Or Comforter, or Encourager, or Counselor. Greek reads Paraclete; also in 14.26 17 He is the Holy Spirit, who leads into all truth. The world cannot receive him, because it isn't looking for him and doesn't recognize him. But you know him, because he lives with you now and later will be in you. 18 No, I will not abandon you as orphans-I will come to you. 19 Soon the world will no longer see me, but you will see me. Since I live, you also will live. 20 When I am raised to life again, you will know that I am in my Father, and you are in me, and I am in you. 21 Those who accept my commandments and obey them are the ones who love me. And because they love me, my Father will love them. And I will love them and reveal myself to each of them."(New Living Translation)
성령이 누구인지 제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 보았습니다. “성령은 삼위일체 중 셋째 위(位)에 계신 분으로 신자의 삶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영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혹시 여러분 이런 말씀을 기억하고 계시나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이 말한 대로,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다.” (요한복음 7:37-38) 이 말씀에 ‘목마르다’는 말과 ‘생수의 강’이라는 말이 대조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사마리아의 수가 성에 사는 한 여자가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 여자의 이름은 ‘오르파(Orpha)’라고 합니다. ‘오르파’는 예수님에게 ‘생수’를 달라고 합니다. 저는 ‘오르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오르파’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여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진리를 찾아 방황하던 ‘어거스틴’이 한 때 문란한 생활을 했던 것처럼, 어쩌면 ‘오르파’도 진리를 찾아 방황했던 여자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르파’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 장소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오르파’는 더 나은 삶을 찾아 방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르파’는 그날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에게서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이 마른 사람은 나에게 와서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은 이런 말씀을 덧붙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는 사람들이 장차 받을 성령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을 받으시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아직은 성령이 계시지 않았습니다.”(요한복음 7:39) 무슨 말씀인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배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의 강’은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성령의 사역’에 대하여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읽어야 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사람들로 하여금 ‘만족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My purpose is to give them a rich and satisfying life.”(요한복음 10:10) 이 말씀을 잘 읽어 보세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저와 여러분이 목마르지 않는 만족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런 삶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또 하나 소개할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23:11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 날 밤에 주님께서 바울 곁에 서서 말씀하셨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를 증언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나를 증언하여야 한다.’” 비록 이 말씀에 성령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바울 곁에 서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신 분은 성령이십니다. 2,000년 전에 제자들과 함께 사셨던 예수님께서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예수님은 고난 받는 신자들을 찾아 위로해 주십니다. 하지만, 이제는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서 그 일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에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한 일들보다 ‘더 큰 일들(even greater things than these in extent and outreach, Amplified Bible)’을 하게 될 것이다(요한복음 14: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통하여 더 넓게, 더 멀리 전파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께 너희와 영원히 함께 있을 ‘다른 보혜사(another Advocate)’를 보내 주시라고 구할 것이다(요한복음 14:16)”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은 “너희와 영원히 함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2,000전에 이스라엘에 사셨던 역사적인 예수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실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성령께서 오시면 성령은 영(spirit)이시니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실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가지 않으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면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낼 것이다(It is best for you that I go away, because if I don't, the Advocate won't come. If I do go away, then I will send him to you., 요한복음 16: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아시겠지요? 이 말씀을 잘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최종 목적이 우리에게 보혜사를 보내 주시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혜사에 대하여 무지(無知)하거나, 보혜사가 우리의 삶 속에서 하는 일을 무시하거나, 보혜사의 도움을 거절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헛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 낯선 말입니다. ‘보혜사’는 ‘성령’의 다른 이름입니다. 한자로 ‘보전할 보(保)자’ ‘은혜 혜(惠)자’ ‘스승 사(師)자’를 씁니다. ‘우리를 지키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고, 우리를 가르쳐 주시는 스승과 같은 분’이라는 뜻입니다. 희랍어 원문에는 ‘파라클레이토스(παράκλητος)’라고 나와 있습니다. ‘파라’라는 말은 ‘옆에’ 혹은 ‘곁에’라는 말입니다. ‘클레이토스’라는 말은 ‘돕는 자’라는 말입니다. ‘파라클레이토스’는 ‘곁에서 도와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New Living Translation에 보면 ‘파라클레이토스’라는 말이 ‘Advocate(편을 들어주는 자)’ ‘Comforter(위로를 주는 자)’ ‘Encourager(격려하는 자)’ ‘Counselor(조언을 해 주는 자)’ 이렇게 4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 ‘Helper(도와주는 자)’ 혹은 ‘Strengthener(능력을 주는 자), ‘Intercessor(중보자)’라는 말을 더 첨가할 수도 있습니다(Amplified Bible).
예수님은 “내가 떠나지만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 두지 않고 다시 올 것이다(요한복음 14:18)”라고 하셨습니다. “I will not abandon you as orphans-I will come to you”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곁을 떠나셨지만 사실은 영원히 함께 계시기 위해서 떠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I will come to you”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모가 없고 의지할 곳이 없는 아이들을 ‘고아’라고 합니다’ 제자의 삶은 결코 ‘고아’와 같은 삶이 아닙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의 영이신 ‘파라클레이토스’와 함께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 곁에서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상담해 주시고, 우리를 도와주시고, 힘을 주시고, 우리 편이 되어 주십니다.
저는 가끔 드라이브를 하면서 모르는 길을 찾아갈 때 성령의 사역이 GPS와도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차 안에 달려 있는 GPS가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됩니까? 한 번도 안 가본 길도 GPS를 켜고 따라가면 불안하지 않습니다. 이젠 GPS가 많이 좋아져서 오류가 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갔다가 돌아올 때 ‘Go Home’ 바튼만 누르면 집에까지 걱정하지 않고 올 수 있습니다. 올 때 고속도로를 탈 수도 있고, 고속도로를 피해서 로컬 길로만 올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전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위해 고난을 받으심으로 우리가 따라야 할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십시오.”(베드로전서 2:21)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남기신 발자국을 보게 하시고 그 발자국을 따라가도록 도와주시는 분이 바로 ‘파라클레이토스’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생활을 내 마음 대로 하려고 하지 말고, ‘파라클레이토스’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the Spirit of truth)’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31-32) 이 말씀을 잘 보세요. 이 말씀은 성령의 사역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는 일을 합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은 그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므로, 그를 맞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안다. 그것은, 그가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He is the Holy Spirit, who leads into all truth. The world cannot receive him, because it isn't looking for him and doesn't recognize him. But you know him, because he lives with you now and later will be in you).”(요한복음 14:17) ‘파라클레이토스’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말씀이 놀랍지 않습니까?
한번은 이사야 말씀을 읽다가 깜짝 놀란 말씀이 있습니다. 이사야 30:20-21에 있는 말씀인데요 “비록 주께서 너희에게 슬픔의 빵과 고통의 물을 주셨으나, 여호와께서 여전히 너희와 함께 계시며 너희를 가르치실 것이다. 너희가 직접 너희를 가르치시는 분을 뵙게 될 것이다. 너희가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잘못된 길로 가려 하면 뒤에서 ‘이 길이 옳은 길이니 이 길로 가거라’ 하는 소리가 너희 귀에 들릴 것이다.” 이 말씀의 배경을 모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사람은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 있을 때 잘못되기 쉽고, 유혹을 받기도 쉽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럴 때 잘못된 길을 가지 않도록 조언해 주는 분이 있는데, 그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은 우리가 믿음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위해서 우리 곁에 계시는 분입니다. 보세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고(요한복음 4:24),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도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하고(에베소서 6:18), 찬양도 신령한 노래(spiritual songs)’를 불러야 합니다. “시와 찬미와 영적인 노래로 서로 이야기하며,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고 찬송하십시오.”(에베소서 5:19, 골로새서 3:16)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일은 ‘파라클레이토스’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서 해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되고, 기도가 되고, 찬양이 되는지 정확하게 아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성령의 내적인 음성(the inner voice of the Spirit)’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바울 곁에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용기를 내라고 하신 주님의 음성이 바로 바울이 들었던 ‘성령의 내적인 음성’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령께서는 친히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언합니다.”(로마서 8:16) ‘우리의 영과 함께’ 라는 말은 ‘with our spirit’ 혹은 ‘together with our spirit’라는 말입니다. Douay-Rheims Bible에 이 말이 “For the Spirit himself gives testimony to our spirit, that we are the sons of God”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영에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라는 말은 쉽게 ‘우리의 마음’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생각을 불어넣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내적인 음성’입니다.
어느 눈이 많이 온 날이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어둑어둑한 때였습니다. 그날 따라 여기저기 삽을 들고 나와 눈을 치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 때 어디를 가야 할 일이 생겨 차를 빼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뒷바퀴가 헛돌고 미끄러지면서 차가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인지 웬 키 큰 사람이 삽을 들고 제 차 옆에 바싹 서 있는 것입니다. 저는 차 안에서 차를 빼려고 낑낑거리고 있었고, 그 사람은 제 차 옆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신경이 쓰이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창문을 열고 “What do you want? Why are you standing here?” 그랬더니 그 사람이 “I want to help you”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제 차가 헛바퀴를 돌면서 빠지지 않는 것을 보고 나를 도와주려고 그렇게 서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 사람의 도움으로 차를 뺐고 저는 여러 번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성령에 대한 말씀을 준비하다가 문득 그 때 있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파라클레이토스’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를 돕기 위하여 우리 곁에, 우리 속에 계시는데 우리는 그 사실을 모르고 내 힘으로 믿음생활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도움을 거절하고, 무시하고 있습니다. 성령에 대한 지식이 부족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믿음생활이 즐겁습니까? 기쁨이 있습니까? 힘들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믿음생활 하고 있는지 여러분의 믿음생활을 반성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