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7/2021 | 야외예배
우리는 하나님이 기르시는 양 (We Are The Flock Under His Care)
김태환 목사
시편 95:1-7
1 다 와서 여호와께 기쁜 노래를 부릅시다. 우리 구원의 반석이 되시는 주님께 큰 소리로 외칩시다. 2 감사의 노래를 부르면서 주 앞에 나아갑시다. 음악과 노래로 주를 높입시다. 3 여호와는 위대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신들 위에 뛰어난, 위대한 왕이십니다. 4 땅의 가장 깊은 곳도 그분의 것이며, 가장 높은 산들도 그분의 것입니다. 5 바다도 그분의 것입니다. 이는 주가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손으로 마른 땅도 지으셨습니다. 6 다 와서 엎드려 주를 경배합시다.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읍시다. 7 그분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분 목장의 백성이며 그분이 기르는 양 떼들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에게 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쉬운성경)
1 Come, let us sing to the Lord! Let us shout joyfully to the Rock of our salvation. 2 Let us come to him with thanksgiving. Let us sing psalms of praise to him. 3 For the Lord is a great God, a great King above all gods. 4 He holds in his hands the depths of the earth and the mightiest mountains. 5 The sea belongs to him, for he made it. His hands formed the dry land, too. 6 Come, let us worship and bow down. Let us kneel before the Lord our maker, 7 for he is our God. We are the people he watches over, the flock under his care. If only you would listen to his voice today! (New Living Translation)
거의 일 년 반 만에 이렇게 야외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오늘 날씨가 좀 덥기는 하지만, 그래도 싱그러운 공기를 마시니까 숨이 트이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맞은편 나무 숲에서 모였었는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나무를 모두 베어버려서 좀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그렇게 큰 아름드리 나무들을 키우려면 100년도 넘게 걸릴 텐데 왜 모두 베어버렸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말씀은 시편 95편 말씀입니다. 우리 생각 같아서는 이 시편도 다윗이 썼을 것 같은데, 다윗은 아닌 것 같습니다. 비록 무명의 저자이지만, 이 저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그가 쓴 시편 한 절 한 절 속에 하나님께 대한 그의 믿음이 배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쉽게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실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습니다. 서기 51년경, 사도 바울이 그리스의 아테네에 가서 설교할 때, 그는 하나님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그분은 온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으로서 하늘과 땅의 주님이십니다.....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으로부터 세계 모든 인류를 만들어 땅 위에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살 시대와 지역의 경계를 정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있고 하나님 안에서 움직이며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7:24-28)
바울은 이 말씀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지으신 분이라고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와 상관없이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직접 관계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있고 하나님 안에서 움직이며 존재하고 있습니다(For in him we live and move and exist., 28절)” 셋째로,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관계하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오늘 시편을 쓴 사미스트(저자)는 하나님을 어떻게 고백하고 있을까요? 첫째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합니다(1절).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일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5:19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시와 찬미와 영적인 노래로 서로 이야기하며,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고 찬송하십시오(Speak to one another with psalms, hymns and spiritual songs. Sing and make music in your heart to the Lord).”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서로서로 옆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인정의 마음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해 주신 일들이 너무 감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시편 100편에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Enter his gates with thanksgiving; go into his courts with praise)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는 사람은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의 대문을 열어야 하고,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이 계시는 뜰(courts)을 밟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갖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미스트는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6절)”고 합니다. 우리가 성숙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오랫동안 목회하고 설교하면서 얻은 결론은 딱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내 생명의 주인이라는 것, 이것만 제대로 알면 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 하나만 잘 알고 지키면 충분합니다.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감동적인 영상(https://youtu.be/Fe-6SRwMdWs)을 보았습니다. 2018년에 제작한 이 영상에 고양이 한 마리가 한 남자의 어깨 위에 올라가 얼굴에 몸을 비비며 애교를 부리고 있고, 이 남자는 고양이의 행동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남자는 미국 캘리포니아 페어뷰 밸리(Fairview Valley)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라이언 콜먼(Ryan Coleman)이라는 사람입니다. 콜먼은 2018년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진화 현장에 투입되었습니다. 이 화재로 80명이 숨졌고, 건물, 가옥 1만1천여 채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산불 진화를 위해 현장에 투입된 콜먼은 우연히 불길에 갇혀 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구출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고양이는 자신을 구해준 콜먼 곁을 떠나지 않고 그의 목에 올라타서 온몸으로 고마움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화재 현장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이 고양이는 줄곧 콜먼을 따라다녔다고 합니다. 콜먼은 이 동영상을 찍어 자기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무려 170만 번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고, 약 33,000명이 이 동영상을 공유했다고 합니다. 자기 생명을 구해 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이 고양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입니다.
이사야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소도 제 주인을 알고, 나귀도 제 주인의 여물통을 알지만, 이스라엘은 제 주인을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Even an ox knows its owner, and a donkey recognizes its master’s care - but Israel doesn’t know its master. My people don’t recognize my care for them.” (이사야 1:3) 하나님께서 내 생명을 지으셨고, 지금도 나의 삶을 돌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삶의 목적이 분명해집니다. 그 목적은 나의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런 삶을 통해서 삶의 의미(意味)를 발견합니다.
둘째로, 사미스트는 “그분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분 목장의 백성이며 그분이 기르시는 양 떼들입니다(7절)”라고 고백합니다. 이 사미스트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잘 아는 다윗 역시 탁월한 사미스트였습니다. 우리가 가진 성경에 다윗이 쓴 시편이 무려 73편이나 있습니다. 시편 전체가 150편이니까 거의 절반에 가까운 시편을 다윗이 쓴 것입니다. 참 대단합니다. 다윗 역시 하나님을 목자로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편 23:1-2절) 예수님도 자신과 제자들과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왔다.” (요한복음 10:10)
7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 볼까요? “우리는 그분 목장의 백성이며, 그분이 기르시는 앙떼들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목장을 떠나서는 살 수 없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내 멋 대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목장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목장에서 풀을 뜯고, 하나님의 목장에서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내가 내 힘으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를 기르시는 목자가 계십니다. 우리는 그 목자를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그렇게 극성을 부리던 코로나바이러스가 이제 좀 잡혀가는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은 계속해서 경고를 하고 있지만, 점점 일상을 회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매스크를 쓰지 않고 돌아다니고, 레스토랑에 가도 제법 사람들이 북적거립니다. 우리 교회도 다음 주부터는 사전 등록을 하지 않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매스크를 쓰고 예배를 드리고, 예배 후 다과도 9월부터나 시작하려고 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우리가 힘든 시간을 보낸 것은 사실이지만, 신앙적으로는 우리 자신들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깨달았습니다. 과학문명이 최고로 발달한 21세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금까지 30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1918년 스페인 독감 때는 최소 5,000만명에서 최대 1억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불과 100년 전의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과학이 발달했고, 인간의 지식이 확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팬데믹으로 여전히 인간은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시편 95편 오늘 본문 말씀은 “오늘날 여러분에게 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십시오(7절)”라는 말씀으로 끝이 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하나님의 돌보심과 은혜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어에 ‘쉐마(shema)’라는 말이 있습니다. ‘듣는다’는 말입니다. 영어로는 ‘hear’입니다. 그런데 ‘쉐마’라는 히브리 말에는 ‘hear and do or obeying(듣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 번역된 영어 성경에서는 ‘쉐마’를 ‘listen’이라는 말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대단한 존재들이 아니라,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붙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실천하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사람이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안에 있으면, 그는 열매를 많이 맺는다. 그러나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Yes, I am the vine; you are the branches. Those who remain in me, and I in them, will produce much fruit. For apart from me you can do nothing. NLT).” (요한복음 15:5) 예수님은 말씀을 하시고 마지막에 “귀있는 사람은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깨닫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이 축복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준 선물입니다. 오늘 이 야외예배가 이 축복을 기뻐하고 같이 나누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