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2021 | 교회의 모델 안디옥 교회
부활절이 지나고(15) (After Jesus’ Resurrection)
김태환 목사
사도행전 13:1-3
1 안디옥 교회에는 예언자와 교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와 함께 자라난 마나엔과 사울입니다. 2 그들이 주님께 예배드리며 금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내가 그들에게 맡긴 일을 하게 하여라.” 3 그래서 그들은 금식과 기도를 마친 뒤에 바나바와 사울에게 손을 얹고 그들을 떠나보냈습니다. (쉬운성경)
1 Among the prophets and teachers of the church at Antioch of Syria were Barnabas, Simeon (called ‘the black man’①), Lucius (from Cyrene), Manaen (the childhood companion of King Herod Antipas), and Saul. / ①Greek who was called Niger 2 One day as these men were worshiping the Lord and fasting, the Holy Spirit said, "Dedicate Barnabas and Saul for the special work to which I have called them." 3 So after more fasting and prayer, the men laid their hands on them and sent them on their way. (New Living Translation)
오늘은 이방인 지역에 최초로 세워진 안디옥 교회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사도행전을 쓴 누가는 안디옥 교회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 이유는 누가 자신이 안디옥 교회를 통해 성령께서 일하시는 것을 생생하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의 지성인이었고, 역사 의식이 뛰어났던 누가는 안디옥 교회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을 생생하게 남기고 싶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안디옥(Antioch)’은 시리아(Syria)에 있는 안디옥을 말합니다. 그 당시에는 시리아에 속해 있었지만, 현재는 터키 영토에 속해 있습니다. 안디옥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도시였기 때문에 그 당시 주요 교통 수단이었던 배를 통한 이동(移動)이 용이했던 도시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안디옥은 당시 로마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세계의 3대 도시로 이름을 날렸다고 합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안디옥은 지정학적인 위치상 그리스(헬라) 문화와 동양의 문화가 서로 교차하는 도시였다는 것입니다.
이 안디옥에 박해를 피해 온 많은 크리스천 디아스포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말씀을 통해 이런 사실들을 확인할 때,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치밀하게 계획하신 일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 주 전에 하나님의 관심은 ‘모이는 교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흩어지는 교회’에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교회를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에 흩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안디옥 교회를 이방인 선교의 전초기지(outpost)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에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리라(열왕기하 19:31, 이사야 9:7, 37:32)”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은 “The zeal of the LORD Almighty will accomplish this(NIV)” 혹은 “The passionate commitment of the Lord of Heaven’s Armies will make this happen(NLT)”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면 그 일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열심을 가지고 하시는 일이라면 그 일이 반드시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교회를 ‘흩으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열심을 가지고 추진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열심이 성취되어 나가는 과정을 안디옥 교회를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한번 돌아보세요. 예루살렘에 최초의 신앙공동체가 생겼습니다. 그들은 무엇이든지 각 사람이 필요에 따라 물건을 사용했습니다(사도행전 4:32, 34). 그들은 날마다 같이 모였습니다. 박해가 없던 때는 성전 뜰에 모였습니다(사도행전 2:36). 집집마다 서로 돌아가면서 식사를 하고, 주님의 성만찬을 나누기도 했습니다(사도행전 2:46). 그 공동체 안에 끈끈한 ‘연대감(solidarity)’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박해를 통해 이 공동체를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흩어진 주님의 제자들은 어디든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특이한 것은 안디옥에 있는 크리스천들이 그리스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바나바를 파견해서 안디옥 교회의 실태를 조사하도록 했습니다. 바나바는 하나님께서 안디옥 교회를 통하여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문을 열고 계신 것을 알고, 고향 다소에 은둔해 있는 사울을 데리고 안디옥 교회로 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일년 동안 안디옥 교회의 신자들을 집중적으로 훈련시킵니다. 그 때 이 안디옥 교회 사람들에게 붙은 이름이 ‘크리스천(Christians)’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다섯 명의 지도자를 세웠습니다. 바나바와 사울 외에 시므온(Simeon)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니게르(Niger)’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말로 하면 ‘the black man(피부색이 검은 사람)’이라는 별명입니다. 이로 보아 시므온은 아프리카 사람인 것으로 보입니다. 또 구레네(Cyrene) 출신 루기오(Lucius)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레네가 지금의 리비아에 속한 도시인 것을 감안하면, 루기오도 아프리카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지만, 구레네에서 살다 온 유대인이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나엔(Manaen)’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이하게 마나엔은 헤롯 안티파스(King Herod Antipas)와 어렸을 때 친구라고 합니다.
이 지도자들은 바나바와 사울을 통해 일년 동안 집중적으로 양육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리더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양육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연장자 순서로 세우거나 경험이 많은 순서 대로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믿음이 좋은 사람’ 중에서 세워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양육으로 만들어집니다.
여러분, 서론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이런 생각을 한번 해 보세요. “왜, 사도행전을 쓴 누가는 이렇게 안디옥 교회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가 안디옥 교회를 통해 이루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열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안디옥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대략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동서 문화가 교차되는 요충지에 있는 안디옥 교회를 이방인 선교의 본부((headquarter)로 만들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안디옥에 수많은 인종들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보스턴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문화적으로나 도시의 구성원에서나 보스턴과 안디옥은 참 많이 닮았습니다. 보스턴은 수많은 인종들이 함께 사는 다문화, 다인종 도시입니다. 보스턴처럼 각 나라의 문화를 존중해가면서 함께 살아가는 도시가 흔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우리교회가 위치한 케임브리지는 다인종 도시의 모델과 같은 도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스턴은 하나님의 선교적인 마인드를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최고의 도시입니다. 요즘에 와서 ‘다인종 교회(multi-ethnic church)’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2,000년 전에 세워진 시리아의 안디옥 교회는 이미 ‘다인종교회’였습니다. 저는 보스턴에서 목회하면서 한국교회라는 담(barriers)을 넘지 못했습니다. 제가 못 넘은 이 담을 이제 다음 세대인 여러분들이 뛰어 넘어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안디옥 교회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다섯 명의 지도자들을 세우셨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지도자로 세운 것은, 이방인 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안디옥 교회의 지도들은 모두 이방인들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교회가 무슨 일을 추진하려고 하면 먼저 지도자들의 마음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다섯 명의 지도들 중에 사울이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사도행전 9:15에 이런 말씀이 있었잖아요? “사울은 이방 사람들에게 나의 이름을 전하기 위하여 선택한 나의 도구이다(Saul is my chosen instrument to take my message to the Gentiles).” 이제 바야흐로 이방인 선교를 위해 사울을 도구로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계획(열심)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보는 것은 사도행전을 읽는 큰 재미입니다.
셋째로, 안디옥 교회는 교회의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이 분명한 교회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들이 주님께 예배드리며 금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절) 예배와 금식과 성령의 음성이 있습니다. 4절 말씀에는 금식이라는 말과 기도라는 말이 같이 나옵니다. 예배와 금식과 기도는 모두 교회의 정체성을 이루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들입니다. 예배는 신자들이 같은 자리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 듣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마음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이 예배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예배를 소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예배가 매주 규칙적으로 열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이 예배를 소홀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이번 주에 예배를 못 드리면 다음 주에 드리면 되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또 금식(禁食, fasting)과 기도가 있습니다. 금식은 밥을 안 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밥을 안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금식을 하는 이유와 목적이 중요합니다. 금식은 식사를 끊음으로써 더욱 영적으로 민감(敏感)해지고,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해지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보세요. 안디옥 교회가 예배에 집중하고 금식할 때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성령의 음성(a voice of the Holy Spirit)’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이 말씀이 중요한 이유는, 오늘 우리에게 이 말씀이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교회 생활을 시작하고, 성경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성령의 음성’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나도 성령의 음성을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답답하고,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 지 모를 때, ‘성령의 음성’을 듣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여러분들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성령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십니까? ‘성령의 음성’은 우리에게 희생(sacrifice)을 요구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성경을 읽고 연구하면서 얻은 결론입니다. ‘하나님의 음성’ 혹은 ‘성령의 음성’은 반드시 우리의 희생을 요구합니다. 이 말은 나의 희생이 동반(同伴)되지 않는 어떤 음성을 들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음성을 들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닙니다.
넷째로, 그러면, 안디옥 교회가 들은 ‘성령의 음성’이 어떤 것이었을까요?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내가 그들에게 맡긴 일을 하게 하여라.” (2절) 이 ‘성령의 음성’ 속에 희생이 들어 있습니까? “One day as these men were worshiping the Lord and fasting, the Holy Spirit said ‘Dedicate Barnabas and Saul for the special work to which I have called them.’” (New Living Translation) “While they were worshiping the Lord and fasting, the Holy Spirit said, ‘Set apart for me Barnabas and Saul for the work to which I have called them.’” (NIV) ‘set apart’라는 말은 바나바와 사울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시킬 수 있도록 따로 세우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바나바와 사울 두 사람을 더 이상 너희 교회에 머물게 하지 말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이방인 선교를 위해 내 놓으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잘 읽어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를 향한 ‘성령의 음성’은 안디옥 교회에 사람들이 더 많이 들어오고, 안디옥 교회가 더욱 은혜가 충만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 두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시킬 수 있도록 두 사람을 ‘set apart’하라는 것이 안디옥 교회가 들은 ‘성령의 음성’이었습니다. 이게 말이 되나요? 안디옥 교회에 다섯 명의 지도자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 지도자들 중에서 바나바와 사울은 가장 핵심적인 지도자였습니다. 만약 두 사람을 제외한다면 대번에 지도자들의 팀웍이 무너지고 지도력에 큰 공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것을 알았지만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서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성령의 음성’은 반드시 우리의 희생을 요구합니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시나요? 이 사실을 알면서도 ‘성령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시나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위해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희생을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뿐만 아니라 제자의 삶 자체가 희생을 요구합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세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If any of you wants to be my follower, you must turn from your selfish ways, take up your cross daily, and follow me).” (누가복음 9:23) 누구든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고 합니다. 매일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자기 생각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고, 자기 중심적인 이기적인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진정한 교회의 모델과 같은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를 운영하고 계신 분은 성령님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서 바나바와 사울, 두 사람을 내 놓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 대로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 선교의 전초기지(outpost)가 되었습니다. 교회를 흩으셔서 이방인들을 위한 선교를 원하셨던 하나님의 열심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교회입니다. 우리교회를 통해 안디옥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