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2021 | 창립 43주년 기념 예배
증언 공동체로서의 교회 (The Church As A Witnessing Community)
김태환 목사
마태복음 16:13-20
13 예수님께서 빌립보 지방에 있는 가이사랴에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14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라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17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아들 시몬 아 네가 복되다. 네 혈육이 이것을 네게 알려 준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알려 주신 것이다. 18 내가 네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돌 위에 내 교회를 지을 것이니, 지옥의 문이 이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내가 네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줄 것이다.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잠그면 하늘에서도 잠겨 있을 것이요,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열면 하늘에서도 열려 있을 것이다.” 20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히 일렀습니다. (쉬운성경)
13 When Jesus came to the region of Caesarea Philippi, he asked his disciples, "Who do people say that the Son of Man is?"① / ①"Son of Man" is a title Jesus used for himself 14 "Well," they replied, "some say John the Baptist, some say Elijah, and others say Jeremiah or one of the other prophets." 15 Then he asked them, "But who do you say I am?" 16 Simon Peter answered, "You are the Messiah①, the Son of the living God." / ①Or the Christ. Messiah [a Hebrew term] and Christ [a Greek term] both mean "the anointed one." 17 Jesus replied, "You are blessed, Simon son of John①, because my Father in heaven has revealed this to you. You did not learn this from any human being. / ①Greek Simon bar-Jonah; see John 1.42; 21.15-17 18 Now I say to you that you are Peter (which means `rock')①, and upon this rock I will build my church, and all the powers of hell② will not conquer it. / ①Greek that you are Peter ②Greek and the gates of Hades 19 And I will give you the keys of the Kingdom of Heaven. Whatever you forbid① on earth will be forbidden in heaven, and whatever you permit② on earth will be permitted in heaven." / ①Or bind, or lock ②Or loose, or open 20 Then he sternly warned the disciples not to tell anyone that he was the Messiah. (New Living Translation)
오늘은 우리 교회 창립 43주년 기념 주일입니다. 1978년에 우리 교회를 창립했던 분들은 상당히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그 분들은 권위주의나 교권주의를 반대하고 자유롭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교회를 세우고, 다음 세대를 기르자는 목적을 가지고 하바드 스퀘어에 있는 11 Garden Street, Cambridge에서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로마서 12장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십시오(2절)”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이 NIV 성경에 “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2,000년 전에 말했던 ‘이 세대’는 어떤 세대였을까요? ‘세대(世代, generation)’라는 말은 그 시대의 정신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2,000년에 살았던 사람들이 가지고 살았던 시대 정신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본받지 말라고 한 것을 보면 그 시대 정신이 하나님을 믿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시대 정신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정신과 가치관은 어떤 것일까요? 2,000년에 밀레니엄을 시작되면서 많이 나왔던 말이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후기 모더니즘’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모더니즘’이 끝난 ‘후기 모더니즘 시대’라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엇인지 한번 들어볼까요? “The postmodern worldview denies that there is such a thing as truth: historical, moral, or otherwise. It denies that truth exists independently of our perspectives and interests(포스트모던적 세계관은 역사적, 도덕적 또는 그 밖의 진리와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합니다. 그것은 진리가 우리의 관점이나 관심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합니다).” — Mark Earley(정치인) "Postmodernism was a reaction to modernism. Where modernism was about objectivity, postmodernism was about subjectivity. Where modernism sought a singular truth, postmodernism sought the multiplicity of truths(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대한 반작용이었습니다. 모더니즘이 객관성에 관한 것이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주관성에 관한 것입니다. 모더니즘이 하나의 진리를 추구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진리의 다양성을 추구했습니다)." — Miguel Syjuco (작가) “We live in the postmodern world, where everything is possible and almost nothing is certain(우리는 모든 것이 가능한 곳에, 하지만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포스트모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 Václav Havel (Former President of the Czech Republic)
시대 정신이라는 것은 참 무서운 것입니다. 그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그 시대 정신의 영향을 받습니다. ‘포스트모던’ 시대 정신으로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고, 전통적인 가치들이 무너지고, 형식이 파괴됩니다. 여러분, MIT 건물 중에 ‘스타타 센터(Stata Center)를 보셨습니까? Frank Gehry라는 건축가가 2004년에 완성한 32 Vassar Street, Cambridge에 있는 건물입니다. $283.5 million이 들었다고 합니다. 위키피디아에 보면 이 건물의 형식은 ‘Deconstructivism(해체주의)’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건물의 형식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 같은 사람이 ‘해체주의’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이 건물이 완성되었을 때 보스턴 글러브에서 이런 기사를 실었습니다. “Stata’s appearance is a metaphor for the freedom, daring, and creativity of the research that occurs inside it(스타타의 모습은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연구의 자유, 대담함, 그리고 창의성에 대한 은유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건축뿐만 아니라 음악, 그림, 조각 등 전 예술 분야에, 그리고 문학, 철학 등 삶의 전반에 걸쳐 사람들의 의식구조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포스트모더니즘’이 주장하고 있는 대로 객관적인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믿고 있는 성경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절대적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모든 것이 상대적인 가치만을 갖는다면 우리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옳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나온 ‘다원주의(多元主義, Pluralism)’는 그동안 기독교에서 믿고 있던 모든 가치들을 부정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절대적인 가치는 존재하지 않고 상대적인 가치만 존재한다는 주장은 크리스천들의 존재 기반을 흔들었습니다. 신학자들 중에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다원주의’를 옹호하는 “No Other Name(다른 이름은 없다, Paul Knitter, 1985)?” 이런 제목의 책들이 출판되었습니다. 설교자들 중에도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결과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은 교회의 세속화를 부추겼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팬데믹 시대’를 맞이하여 2년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전처럼 모일 수 없게 되었고, 온라인 예배라는 형식을 만들어냈습니다. 지금 이 지역의 교회들을 비롯해서 많은 교회들이 대면예배를 하고 있지만, 교인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예전의 1/3 정도가 대면예배에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코로나 시대가 끝이 나도 절대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전문가들의 말이 맞았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몰라 당황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시대의 정신(흐름)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흐름을 알아야 대책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고 있다시피 벌써 잠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었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 밤이 거의 다 지나 낮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로마서 13:11-12) 2,000년 전에 바울은 이 말씀으로 잠자고 있는 크리스천들을 깨웠습니다. 이제 이 말씀을 읽는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 이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올해로 우리 교회는 창립 43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창립 예배이지만 예전과 같은 축하 분위기가 아닙니다. 이 창립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해야 하겠습니까? 이런 때에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하면서 무기력하게 앉아 있어야 하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과 팬데믹 사태까지, 이 시대의 흐름을 우리는 어떤 관점으로 봐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주관하고 계신다고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흐름의 배후에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사탄이 교회를 말살하기 위하여 이런 일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은, 비록 교회가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일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맞이하고 있는 위기 속에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이 들어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말씀은 마태복음 16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이스라엘 땅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곳에 ‘가이사 (Caesar, 로마 황제를 지칭하는 이름)’를 숭배하는 신전(神殿)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그곳으로 제자들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Who do you say I am)?” 이 질문에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16절)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 대답을 기뻐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 사실을 너에게 알려 준 것이다. 너는 어느 누구에게 이 사실을 배운 것이 아니다(Because my Father in heaven has revealed this to you. You did not learn this from any human being).” (17절) 그리고,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겠다. 지옥의 권세가 (이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You are Peter (which means `rock'), and upon this rock I will build my church, and all the powers of hell will not conquer it).” (18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기를 주신 이유는 교회가 신앙고백을 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위기를 통하여 우리 교회가 ‘증언 공동체’로 다시 태어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신앙 고백이 있는 교회는 ‘지옥의 권세(all the powers of hell)’가 이기지 못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고난을 이기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한 신앙고백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 땅에 처음 생겼을 때부터 교회는 예수님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공동체였습니다. 이 말씀을 한번 보세요. “공의회는 다시 사도들을 안으로 불러들여서 매질을 한 후에,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엄하게 명하고 놓아주었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예수님 때문에 모욕당하는 것을 영광이라고 생각하여 오히려 기뻐하면서 공의회를 나왔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성전 뜰에서, 그리고 집집마다 다니며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내용을 쉬지 않고 가르치고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5:40-42)
이 말씀이 시대착오적인 말씀으로 들립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의 크리스천들의 입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한 신앙고백이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the Lord)’으로 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이라는 말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말그대로 예수님이 여러분의 삶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마리아의 이야기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삼는 삶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Mary sat at the Lord’s feet and listened to his teaching)." (누가복음 10:39, ESV). 우리는 다시 겸손하게 주님을 주님 되게 하는 신앙고백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이 세상이 복음 전파의 현장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세상은 우리의 삶의 현장을 말합니다. 1806년에 Williams College의 다섯 청년들이 기도했습니다. 이 청년들의 기도 제목은 놀랍게도 “The Field Is The World(세계가 우리의 사역지이다)!”였습니다. 우리는 복음 전파에 대한 이 청년들의 뜨거운 열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이 곧 우리의 사역지입니다. 내가 일하고, 연구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돈을 버는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들이 우리의 사역지입니다.
보세요. 주님은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8)”고 하셨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내가 사는 곳을 중심으로 점점 더 확장되어 나가는 이 곳이 어디입니까? 우리의 삶의 현장들입니다. 지금은 어디든지 우리의 일터가 되고 삶의 현장들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들의 삶의 현장에서 나의 증인들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예수님이 주신 이 사명을 잊고 살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명령으로 주신 말씀은 “온 세상으로 가거라.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여라(마가복음 16:15)” 이 말씀이라고 합니다. “Go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od News to everyone.” 이 말씀에서 ‘go into’라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누가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Go into all the world to start working in a particular type of job or business.”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에서, 일하고, 활동하고, 얘기하고 하는 모든 일들이 복음을 전파하는 일과 관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일들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 자신들이 주 안에서 올바로 서야 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바울은 “사랑으로 진리만을 말하고,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모든 면에서 성장하도록 하십시오(에베소서 4:15)”라고 성도들을 권면했습니다. 계속해서 성장하지 않는 크리스천들은 이 시대를 책임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어려운 시대를 우리에게 맡기시고, 우리 교회에게 맡기셨습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과 팬데믹 시기에 우리가 세울 수 있는 대안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이 대안들은 모두 우리가 무관심하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 시대의 흐름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식어 있고, 형식적인 믿음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께 대한 신앙고백을 하고, 이 교회가 예수님을 증언하는 공동체가 되고,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들이 복음을 전파하는 현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 성장하는 크리스천이 되기를 결단한다면, 우리는 이 변화하는 시대를 책임질 수 있습니다. 이 위기를 교회가 새로워지는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