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4/2021 | 시편 119편(I)
복 있는 사람이 걷는 길 (The Way of A Blessed Person)
김태환 목사
시편 119:1-16
1 흠잡을 데 없는 올바른 길로 가는 사람들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여호와의 법에 따라 걷는 자들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2 여호와의 법규들을 지키는 자들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을 다해 여호와를 찾는 자들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3 그들은 결코 잘못된 일들을 하지 않으며, 그들은 주의 길을 따라 걷습니다. 4 주는 교훈들을 정해 주셨습니다. 이 교훈들은 반드시 잘 지켜야 할 것들입니다. 5 나의 길이 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내가 주의 법령에 변함없이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6 그 때에 나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주의 모든 명령들을 잘 지키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7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주를 찬양하겠습니다. 내가 주의 의로운 법들을 배우면서 주를 찬양할 것입니다. 8 내가 주의 법령들을 지키겠습니다. 나를 완전히 버리지 마소서.
9 젊은이가 어떻게 그의 길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주의 말씀에 따라 살면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10 내가 마음을 다해 주를 따르렵니다. 내가 주의 말씀에서 떠나지 않게 하소서. 11 내가 주의 말씀을 내 마음 속에 두었습니다. 내가 주께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12 여호와여, 주께 찬양을 드립니다. 나에게 주의 법령들을 가르쳐 주소서. 13 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규례들을 내가 큰 소리로 선포합니다. 14 나는 주의 법규에 따르는 것을 기뻐합니다. 재산을 많이 가지는 것보다 더 좋아합니다. 15 나는 주의 교훈들을 읊조리며, 주의 길들을 깊이 생각합니다. 16 나는 주의 법령들을 기뻐합니다. 나는 주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쉬운성경)
1 [Aleph①] Joyful are people of integrity, who follow the instructions of the Lord. 2 Joyful are those who obey his laws and search for him with all their hearts. 3 They do not compromise with evil, and they walk only in his paths. 4 You have charged us to keep your commandments carefully. 5 Oh, that my actions would consistently reflect your decrees! 6 Then I will not be ashamed when I compare my life with your commands. 7 As I learn your righteous regulations, I will thank you by living as I should! 8 I will obey your decrees. Please don’t give up on me!
9 [Beth] How can a young person stay pure? By obeying your word. :10 I have tried hard to find you - don’t let me wander from your commands. 11 I have hidden your word in my heart, that I might not sin against you. 12 I praise you, O Lord; teach me your decrees. 13 I have recited aloud all the regulations you have given us. 14 I have rejoiced in your laws as much as in riches. 15 I will study your commandments and reflect on your ways. 16 I will delight in your decrees and not forget your word. (New Living Translation)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밤이 길고 기온이 선선하여 책 읽기에 좋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런 때에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하는 시간들을 가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앞으로 몇 주에 걸쳐 시편의 백미(白眉)라고 하는 시편 119편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시편 119편은 여러가지 면에서 독특한 시편입니다. 우선 길이가 매우 깁니다. 무려 176절까지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매 절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만큼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시편 119편은 정교하게 의도적으로 쓰여진 시편입니다. 히브리어에는 22개의 자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119편은 모두 22개의 연(聯, stanza)로 되어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각 연이 히브리어 22개의 자음 순서대로 구성되어 있고, 각 연의 8개 절들이 같은 히브리어 자음으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설명이 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번 화면을 보세요. 시편 119편은 이런 식으로 매우 정교하게 의도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면 오히려 이 시편에 대한 호기심이 떨어질 수가 있으니까요. 바로 말씀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119편의 저자는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답을 하는 식으로 써내려 갑니다. 여러분들은 행복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행복의 조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조건들이 채워지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은 경제적인 것입니다. 며칠 전에 한 유튜브 채널에서 베트남에서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려면 돈이 얼마나 있으면 되느냐고 사람들을 인터뷰했습니다. 이 질문을 받은 한 여성이 “저는 한 번도 그렇게 살아보지 않아서 얼마가 돈이 드는지 모르겠어요” 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인터뷰하는 사람이 한 달에 얼마나 버느냐고 물었더니 150만원 정도 번다고 했습니다. 그만한 돈이면 웬만큼 살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그 돈으로 부모님을 모셔야 하고, 형제들도 돌봐야 하기 때문에 빠듯하다고 대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사람들이 행복의 조건으로 가족을 꼽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고 위해주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대답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요. 성경은 행복을 조건으로 보지 않고 관계(relationship)로 봅니다. 이런 말씀을 그냥 흘려듣지 마시고요. 행복에 대한 성경적인 가치관을 여러분의 가치관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보세요, 오늘 말씀에 “흠잡을 데 없는 올바른 길로 가는 사람이 행복하다(1절)”고 합니다. “여호와의 법을 따라 걷는 사람이 행복하다(1절)”고 합니다. “여호와의 법규를 지키는 사람이 행복하다(2절)”고 합니다. “마음을 다해 여호와를 찾는 사람이 행복하다(2절)”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행복하게 된다면, 과연 그 조건을 모두 만족시켜서 행복하게 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행복을 조건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관계적인 것으로 보는 성경적인 관점을 받아들이면, 누구나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모두 이런 식이거든요?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도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될 수 없고, 우리 모두가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 될 수 없잖아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그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지 않고 투자해서 한 달란트를 남겼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 사람도 틀림없이 착하고 신실한 종이라고 주인에게 칭찬을 들었을 것입니다. 맞습니까? 성경은 내가 어떤 사람이든, 내가 다섯 달란트를 받았건, 두 달란트를 받았건, 한 달란트를 받았건 상관없이 모두가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행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행복한 삶의 비결은 하나님의 관계, 즉 말씀의 법을 존중하고 그 법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찾는다는 말은 전심(全心)으로, ‘with all your hearts’로 하나님을 찾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할 때는 전심으로 공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때는 공부에 성과도 없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원해서 공부할 때, 자발적으로 공부할 때는 전심으로 공부하게 됩니다. 그 때 실력이 붙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원해서,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 우리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이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돈독해지고 성숙해집니다. 이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시편 119편의 저자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저자는 청년들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길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8절) 청년들이 잘못된 가치관에 물들지 않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성장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가장 큰 투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오랫동안 청년 목회를 하면서 가졌던 생각도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청년들이 너무 물질적인 가치관에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물론 청년들만 그런 것은 아니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풍조가 그렇습니다. 믿음, 사랑, 정의, 의로움, 희생, 헌신, 섬김, 기도, 이런 것들에 대한 가치가 퇴색되고, 오직 물질적인 것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편 110:3 말씀을 좋아합니다. 청년들도 이 말씀을 좋아합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그런데,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는 잘 모릅니다. Amplified Bible은 이 말씀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Your people will offer themselves willingly [to participate in Your battle] in the day of Your power; In the splendor of holiness, from the womb of the dawn, Your young men are to You as the dew.” 하나님의 전쟁에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God’s people)이 기쁨으로 그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 ‘God’s people’ 중에 ‘하나님의 청년들이(God’s young men)’ 많이 참여합니다. 이 청년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께 새벽 이슬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순결하고 깨끗한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의 가치관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 말을 뒤집어서 말하면, 세상의 가치관에 물든 청년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동원될 수 없는, 아무 쓸모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8-9절 말씀을 읽어 보십시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길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How can a young person stay pure)?” 이 시편의 저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By obeying your word)”라고 대답합니다.
고난 중에 있던 욥이 이렇게 당당하게 선언하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But he knows where I am going. And when he tests me, I will come out as pure as gold).” (욥기 23:10)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길을 하나님께서 모두 알고 계시니까 이 고난이 끝나게 되면 나는 틀림없이 하나님 앞에 ‘pure gold(정금)’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 욥의 이런 자신감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 때 가서야 욥은 “저는 알지도 못하면서 말하였고, 깨닫지 못하는 일들을 아는 체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지금껏 했던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욥기 42:3, 6)” 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여러분, 욥이 그렇게 자신감에 차 있었던 것을 보면 욥이 올바로 살아왔던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욥의 주장이 어디가 잘못되었습니까?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pure gold’처럼 나타나는 것은 우리가 잘 살아왔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착하고 선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욥은 이점을 착각하고 자기의 의로움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다시 시편 119편 말씀으로 돌아가서 저자가 했던 질문을 다시 들어보십시오.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길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살면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나의 의(義)가 나를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고,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선하고, 더 착해서 내가 깨끗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깨끗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므로, 깨끗한 삶의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가치관으로 삼는 것입니다. 11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죄를 짓지 않으려고 주의 말씀을 내 마음 속에 두었습니다(I have hidden your word in my heart, that I might not sin against you).” ‘hidden’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옵니다. ‘감추다’라는 뜻이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 속에 감춰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보물처럼 감춰 있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수사학적인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가치관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뜻입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고’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라는 뜻입니다. ‘유혹’을 영어로 ‘temptation’이라고 합니다. ‘tempt’라는 동사에서 온 말입니다. 낚시 바늘에 미끼를 꿰어서 물고기를 유혹합니다. 요즘에는 가짜 미끼를 많이 씁니다. 번쩍번쩍 빛이 나기도 하고, 가짜 미끼가 움직이기까지 합니다. 물고기들이 좋은 먹잇감으로 알고 덥석 물어버립니다. 틀림없이 그 일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입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결정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번 한번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혹에 넘어갑니다. 유혹은 달콤합니다. 그래서 한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에 세 번이 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일을 계속하게 되고, 결국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게 됩니다.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가치관으로 삼는 것입니다. 요셉이 유혹을 받았을 때 그 집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요셉과 요셉을 유혹하는 주인의 아내만 있었습니다. 주인의 아내가 계획적으로 벌인 일이었습니다. 정말 청년 요셉이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요셉을 지켜 준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How could I do such a wicked thing? It would be a great sin against God(제가 어떻게 그런 악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큰 죄를 짓는 일입니다).” (창세기 39:9) 요셉의 이런 믿음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틀림없이 요셉은 아버지 야곱에게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배웠을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이 질투할 만큼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야곱이 아들들을 차별했다는 식으로 이 말씀을 읽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옆에 두고 가르쳤을 것입니다. 이것이 아들들에 대한 차별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요셉아, 이것 하나만은 꼭 지켜라. 너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눈 밖에 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요셉에 대한 야곱의 교육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래를 위한 값진 투자였습니다. 이 사건이 시발점이 되어 요셉은 감옥에 갇히게 되고, 그 때부터 요셉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습니까?
둘째로, 나의 삶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 배우는 것입니다(12절).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 확인해야 합니다(13절).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배워야하는 이유는 내가 받아들인 가치관을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소중함을 확인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며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는 주의 법규에 따르는 것을 기뻐합니다. 재산을 많이 가지는 것보다 더 좋아합니다(I have rejoiced in your laws as much as in riches).” (14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런 고백의 말씀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가치관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청년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가장 귀한 자산입니다. 자신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청년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전투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 청년들을 양육하는 사명을 감당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사명을 감당해 나가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관에 물들지 않은 깨끗한 청년들을 양육하는 것이 우리 교회가 계속해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확장하는 값진 투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