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17-32

17 주의 종에게 은혜 내려 주소서. 그리하면 내가 잘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주의 말씀에 순종할 것입니다. 18 나의 눈을 열어 주셔서 내가 볼 수 있게 하소서.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깨닫게 해 주소서. 19 나는 이 땅에서 나그네입니다. 주의 계명들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20 나의 영혼이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언제나 주의 규례에 대한 갈망으로 불타고 있습니다. 21 주는 거만한 자들을 꾸짖습니다. 그들은 저주받은 자들입니다. 주는 교만한 자를 책망하십니다. 그들은 주의 명령을 멀리하는 자들입니다. 22 더 이상 내가 조롱과 비웃음을 당하지 않게 해 주소서. 이는 내가 주의 법규들을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23 비록 세상의 권력자들이 모여 앉아 나에 대해 험담을 할지라도, 주의 종은 주의 법령들을 깊이 생각할 것입니다. 24 주의 법규들은 나의 기쁨입니다. 그것들은 나의 조언자들입니다. 

25 내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앉아 있습니다. 주의 말씀으로 나의 영혼을 새롭게 하소서. 26 내가 나의 행위를 고백했더니 주는 내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게 주의 법령들을 가르쳐 주소서. 27 나로 주의 교훈들과 가르침들을 이해하게 해 주소서. 그러면 내가 주의 기적들을 깊이 생각할 것입니다. 28 나의 영혼이 슬픔으로 지쳐 있습니다. 주의 말씀으로 나에게 힘을 주소서. 29 악한 길에 빠지지 않도록 나를 보살펴 주소서. 주의 법을 가르치시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30 내가 진리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나의 마음을 주의 법도들에 맞추어 놓았습니다. 31 여호와여, 나는 주의 법규들을 단단히 붙들고 있습니다.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해 주소서. 32 내가 주께서 명령하신 길로 가고 있는 것은 주께서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쉬운성경)

17 [Gimel] Be good to your servant, that I may live and obey your word. 18 Open my eyes to see the wonderful truths in your instructions. 19 I am only a foreigner in the land. Don’t hide your commands from me! 20 I am always overwhelmed with a desire for your regulations. 21 You rebuke the arrogant; those who wander from your commands are cursed. 22 Don’t let them scorn and insult me, for I have obeyed your laws. 23 Even princes sit and speak against me, but I will meditate on your decrees. 24 Your laws please me; they give me wise advice.

25 [Daleth] I lie in the dust; revive me by your word. 26 I told you my plans, and you answered. Now teach me your decrees. 27 Help me understand the meaning of your commandments, and I will meditate on your wonderful deeds. 28 I weep with sorrow; encourage me by your word. 29 Keep me from lying to myself; give me the privilege of knowing your instructions. 30 I have chosen to be faithful; I have determined to live by your regulations. 31 I cling to your laws. Lord, don’t let me be put to shame! 32 I will pursue your commands, for you expand my understanding. (New Living Translation)

시편 119편에는 거의 매절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똑 같은 단어를 쓰지 않고 서로 다른 다양한 단어들을 사용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는 여러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말씀(word, 17, 25, 28절)’ ‘법(instruction, 18, 29절)’ ‘계명(commands, 19절)’ ‘규례(regulations, 20절)’ ‘명령(commands, 21, 32절)’ ‘법규(laws, 22, 24, 31절)’ ‘법령(decrees, 23, 26절)’ ‘교훈(teachings, 27절)’ ‘법도(regulations, 30절)’ 이런 다양한 말들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단어들을 사용하는 저자의 의도(意圖)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자신의 풍부한 어휘력을 자랑하려고 한 것일까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만큼 우리 실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저자의 의도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이라는 한 단어만 사용했다면 아마도 독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준엄한 것으로 생각하고 친근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시편 119편의 저자는 이런 것까지 감안해서 어떤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훈으로, 어떤 때는 법으로, 어떤 때는 세밀한 안내서와 같은 instruction으로, 어떤 때는 규칙과 같은 regulations로, 어떤 때는 왕의 조서(詔書)를 뜻하는 decrees로,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조금씩 뉘앙스가 다른 말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시편 119편의 저자는 풍부한 상상력(想像力)과 어휘(語彙) 사용의 달인(達人)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나의 눈을 열어 주셔서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깨닫게 해 주소서(18절)”라고 간구합니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 있는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눈(eyes)’은 우리의 이해력(理解力)을 가리킵니다. 좀 더 전문적인 말로 한다면 ‘perceptio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해력은 매우 제한되어 있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한번 보세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명기 8:3) 우리의 지식과 경험은 주로 눈에 보이는 세계에 한정(限定)되어 있습니다. 조금만 생에 대한 통찰력이 있는 사람들은 물질 세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無知) 정도로 잘 모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실험할 수도 없고, 증명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이 진리를 깨닫게 하시려고 사십 년 동안 매일 ‘만나(manna)’를 먹게 하셨습니다. ‘만나’는 매일 새벽마다 하늘에서 내렸습니다. 내가 일하고 돈 벌어서 내 노력으로 사는 방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들이 있는데, 이것들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할 수도 없는 것들이다(No eye has seen, no ear has heard, and no mind has imagined what God has prepared for those who love him, 고린도전서 2:9)”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깨달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시편 119편의 저자가 하나님께 “나의 눈을 열어 달라”고 간구하는 것은 눈의 시력(視力)을 좋게 해 달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놀라운 은혜의 일들을 깨닫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 있는 진리를 깨닫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글자로 쓰여 있는 문자적인 의미를 넘어서 그 말씀 속에 들어 있는 영적인 진리를 깨닫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 말을 다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I will pursue your commands, for you expand my understanding(나는 주님의 계명을 따르겠습니다. 주께서 나의 이해력을 넓혀 주시기 때문입니다).” (32절) 

이 시편 119편의 저자의 간구가 오늘 우리들의 간구가 되어야 합니다. 예전에 어떤 분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전 예배에 나오긴 하는데 목사님의 말씀이 무슨 말인지 통 모르겠어요.” 그러더니 또 한 참 지나서 또 그분이 “이제 조금씩 목사님의 말씀이 들리는 것 같아요” 이렇게 말씀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차츰 들리기 시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눈이 열리는 경험입니다. 여러분, 바울이 에베소 교회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그들의 눈이 열리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을 알고 계신가요? “항상 기도 가운데 여러분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여러분에게 주셔서 하나님을 더 잘 알게 하시며, 여러분의 마음을 밝혀 우리에게 주시려고 예비해 두신 것을 깨닫도록 기도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약속하신 복이 얼마나 풍성하고 놀라운지 깨닫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I pray also that the eyes of your heart may be enlightened in order that you may know the hope to which he has called you, the riches of his glorious inheritance in the saints).” (에베소서 1:16-18, NIV). 이 기도를 배워서 오늘 우리도 이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우리 눈을 열어 달라고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속에 감춰 있는 진리를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나누고 싶은 말씀은 24절 말씀입니다. “주의 법규들은 나의 기쁨입니다. 그것들은 나의 조언자들입니다(Your laws please me; they give me wise advice).” 다른 번역 성경에서는 ‘laws’를 ‘statutes’ 혹은 ‘decrees’로 번역했습니다. ‘법령(法令)’이라는 뜻입니다. 왕이 백성들에게 내리는 조서(詔書)가 ‘법령’입니다. 왕의 명령이니까 백성들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새벽기도에서 ‘오늘의 양식’을 읽고 있습니다. 내일 읽을 ‘오늘의 양식’은 다니엘서에 있는 말씀입니다. 다니엘이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의 꿈을 멋지게 해석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다니엘은 높은 지위를 얻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다니엘의 세 친구까지 지방의 관리로 임명됩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은 금으로 자기 신상(神像)을 만들죠. 높이가 27m, 폭이 2.7m의 엄청난 크기의 신상입니다. 전령이 왕의 법령을 선포합니다. “모든 나라와 민족들아, 왕의 명령을 전한다.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온갖 악기 소리가 나면 모두 엎드려 느부갓네살 왕이 세우신 황금 신상에 절해야 한다.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즉시 불타는 용광로 속에 던져 넣을 것이다.” (다니엘 3:4-6) 악기 소리가 들리면 모두 엎드려 왕의 신상을 향해 절해야 합니다. 그러니, 언제 악기 소리가 들릴지 몰라 백성들은 불안합니다. 그 때 절하지 않는 사람은 뜨거운 용광로 속에 던져집니다. 그러니, 왕의 조서를 들은 백성들이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시편 119편의 저자가 24절에서 사용하고 있는 ‘법규(法規)’라는 말은 정확하게 ‘법령(decrees)’이라는 말입니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법령’이라고 하면서 이 하나님의 ‘법령’이 나를 기쁘게 한다고 합니다. 이 시편 저자에게 하나님의 ‘법령’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기쁨의 대상입니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They give me wise advise(그 법령들이 나에게 지혜로운 충고를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령’ 나에게 지혜를 주고,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해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편 저자는 나는 하나님의 ‘법령’을 기뻐한다고 합니다.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이 내린 ‘법령’은 백성들을 두려움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왕의 신상이 만들어지고 그런 무서운 법령이 선포된 것을 보면,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을 제거하려는 음모가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신상에게 절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왕에게 이런 ‘법령’을 선포하게 한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 내린 ‘법령’ 속에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으려는 무서운 음모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령’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선포됩니다. 하나님의 ‘법령’은 그것을 지키는 사람에게 ‘지혜로운 충고’를 줍니다. 우리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고, 혼란스러울 때, 우리가 바라는 것이 ‘wise advise(지혜로운 충고)’ 아닙니까? 

이 말씀을 한번 보세요. “그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는데, 이 성경은 그대를 지혜롭게 하여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게 하였습니다. 모든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진리를 가르쳐 주며, 삶 가운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해 줍니다. 또한 그 잘못을 바르게 잡아 주고 의롭게 사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자로 준비하게 되고, 모든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게 됩니다.” (디모데후서 3:15-17) 성경이 우리를 지혜롭게 만든다고 하지 않습니까? 성경을 통해서 내 삶 가운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성경을 사용하셔서 ‘to prepare and equip his people’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정말 이 말씀이 사실이라면 시편 119편의 저자가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줍니까?

마지막으로, 나눌 말씀은 25절 말씀입니다. “내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앉아 있습니다. 주의 말씀으로 나의 영혼을 새롭게 하소서(I lie in the dust; revive me by your word).” 또 28절에도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나의 영혼이 슬픔으로 지쳐 있습니다. 주의 말씀으로 나에게 힘을 주소서(I weep with sorrow; encourage me by your word).” 25절 말씀을 Contemporary English Version에서는 이렇게 번역했네요. “I am at the point of death. Let your teachings breathe new life into me(내가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주의 교훈으로 나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십시오).” 

내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앉아 있다든지, 내가 슬픔에 지쳐 있다든지, 이런 말씀들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주님도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마태복음 26:3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히브리서에는 “우리 주님도 하나님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다(히브리서 5:7)”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아시고 경험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우리를 도우실 수 있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5:9, 4:15). 여러분은 어렵고 힘든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시나요? 술로 밤을 지새우나요? 아니면, 그냥 만신창이가 되도록 자신을 내버려 둡니까? 시편 119편의 저자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에게 힘을 부어 달라고 간구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일으켜 달라고 간구하십시오. 지친 내 영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refresh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시편 30편은 다윗이 쓴 시편인데요. 다윗은 그 시편에 이렇게 썼습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Weeping may last for the night, But a shout of joy [comes] in the morning, NASB, 5절).” 아무리 깜깜한 절망 속에서도 밤은 지나가고 새벽이 찾아옵니다. 다윗은 아침이 기쁨의 소리를 지르면서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일찍이 다윗은 아침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찬양한 적이 있습니다. “It is good to proclaim your unfailing love in the morning, your faithfulness at night(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고 밤에는 주의 성실하심을 알리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을까요)?” (시편 92:2) 지혜로운 사람은 압니다. 내 마음이 상하고 아플 때 새벽에 하나님께 나와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God’s unfailing love)’으로 치유를 받습니다. 고침을 받고 온전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특권(特權)입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독일)는 당시 타락한 교회를 원래의 자리로 돌려 놓은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화면을 한번 보시지요. “Take myself as an example. I opposed indulgences and all the papists, but never with force. I simply taught, preached, and wrote God’s Word; otherwise I did nothing. And while I slept, or drank Wittenberg beer with my friends, the Word so greatly weakened the papacy that no prince or emperor ever inflicted such losses upon it. I did nothing; the Word did everything(나는 면죄부와 모든 교황권에 반대했지만 결코 강력하게 반대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고, 설교했고, 글을 썼을 뿐입니다. 그 외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교황권을 약화시켜 어떤 왕자나 황제도 그런 피해를 입힌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이 모든 것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은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새벽에 환호성을 지르며 찾아오는 기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똑 같은 고백을 하게 됩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이 다 하셨습니다”라고요. 내 눈을 열어 진리를 깨닫게 한 것도, 지혜로운 충고로 나에게 기쁨을 준 것도 준 것도, 또 지친 내 영혼에 새 힘을 부어 준 것도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