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2021 | 시편 119편(III)
가치 있는 삶의 비결 (The Secret To A Worthwhile Life)
김태환 목사
시편 119:33-48
[헤(이)]
33 여호와여, 나를 가르치시고 주의 법령들을 따르게 해 주소서. 그러면 내가 끝까지 그것들을 지킬 것입니다. 34 나에게 깨달음을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지킬 것입니다. 내가 마음을 다하여 주의 법에 순종할 것입니다. 35 내가 주께서 명령하신 길로 가기를 원합니다. 이는 내가 그 길에서 기쁨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36 나의 마음이 주의 법규들로 향하게 하시고, 이기적인 이익들로 향하지 않게 해 주소서. 37 내가 무가치한 것들에게서 눈을 떼게 해 주시고, 주의 말씀으로 나를 보호해 주소서. 38 주의 종에게 주의 약속을 이루어 주소서. 내가 주를 존경하겠습니다. 39 나는 수치를 두려워하오니 나에게서 수치를 제거해 주소서. 주의 법은 선하고 완전합니다. 40 나는 주의 교훈들을 너무도 갈망합니다 주의 의로움으로 나의 영혼을 새롭게 하소서.
[바브]
41 여호와여, 주의 변치 않는 사랑을 내게 주소서. 주의 말씀대로 주의 구원이 내게 임하게 하소서. 42 그러면 내가 나를 비웃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입니다. 내가 주의 말씀을 믿습니다. 43 진리의 말씀을 나의 입에서 빼앗아 가지 마소서. 내가 나의 소망을 주의 규례에 두었습니다. 44 나는 언제나 주의 법을 지킬 것입니다. 영원토록 순종할 것입니다. 45 내가 자유롭게 걸어 다닐 것입니다. 이는 내가 주의 교훈들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46 내가 왕들 앞에서 주의 법규들에 대해 말할 것입니다. 내가 그 곳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47 이는 내가 주의 명령들을 기뻐하고, 내가 그것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48 나의 손을 들어 내가 사랑하는 주의 명령들을 찬양합니다. 내가 주의 법령들을 깊이 생각합니다. (쉬운성경)
33 [He] Teach me your decrees, O Lord; I will keep them to the end. 34 Give me understanding and I will obey your instructions; I will put them into practice with all my heart. 35 Make me walk along the path of your commands, for that is where my happiness is found. 36 Give me an eagerness for your laws rather than a love for money! 37 Turn my eyes from worthless things, and give me life through your word①. / ①Some manuscripts read in your ways 38 Reassure me of your promise, made to those who fear you. 39 Help me abandon my shameful ways; for your regulations are good. 40 I long to obey your commandments! Renew my life with your goodness.
41 [Waw] Lord, give me your unfailing love, the salvation that you promised me. 42 Then I can answer those who taunt me, for I trust in your word. 43 Do not snatch your word of truth from me, for your regulations are my only hope. 44 I will keep on obeying your instructions forever and ever. 45 I will walk in freedom, for I have devoted myself to your commandments. 46 I will speak to kings about your laws, and I will not be ashamed. 47 How I delight in your commands! How I love them! 48 I honor and love your commands. I meditate on your decrees. (New Living Translation)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 영국)라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이 분은 정말 성경을 사랑했던 분입니다. 옥스포드 대학에 다닐 때부터 ‘홀리 클럽(Holy Club)’을 만들어서 친구들과 함께 경건생활에 힘썼습니다. 새벽 네 시가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 성경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My ground is the Bible, Yea, I am a Bible-bigot. I follow it in all things, both great and small(나의 근거는 성경입니다. 예, 나는 성경만 고집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모든 일에 성경을 따릅니다).” Wesley는 ‘Bible-bigot’이라는 말 대신 ‘Bible-moth(성경 벌레)’라는 말도 썼습니다. 옥스포드 시절 Wesley의 별명이 ‘성경 벌레’였다고 합니다.
그가 또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번 화면을 보시지요. “I want to know one thing, the way to heaven-- how to land safe on that happy shore. God himself has condescended to teach the way: for this very end he came from heaven. He hath written it down in a book. O give me that book! At any price give me the Book of God! I have it! Here is knowledge enough for me. Let me be homo unius libri(나는 천국에 이르는 길을, 천국의 해안에 안전하게 도착하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이 길을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천국에서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길을 한 책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오, 나에게 그 책을 주십시오. 어떤 대가를 치러도 좋으니 그 하나님의 책을 주십시오! 나는 그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 속에 충분한 지식이 있습니다. 나로 하여금 한 책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homo unius libri’는 라틴어로 ‘한 책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모두 ‘한 책의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이 여러분의 근거(ground)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사람이 왜 저런 말을 하지?” “아하,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었구나!” “저 사람이 왜 저런 행동을 하지?” “아하,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었구나!”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중요한 일이나 사소한 일이나, 모든 일에 성경이 판단의 근거(根據)가 되고, 성경이 결정의 이유(理由)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이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에 그런 말씀이 있지만, 어떻게 우리가 그 말 대로 할 수 있겠어요?”
오늘 시편 119편 본문 말씀에서 세 가지 여러분과 함께 나눌 말씀이 있습니다. 첫째로, 34-35절 말씀입니다. “나에게 깨달음을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지킬 것입니다. 내가 마음을 다하여 주의 법에 순종할 것입니다. 내가 주께서 명령하신 길로 가기를 원합니다. 이는 내가 그 길에서 기쁨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깨달음’이라는 말은 ‘understanding’ 혹은 ‘perception’이라는 뜻입니다. 이 시편의 저자는 왜 하나님께 ‘깨달음’을 달라고 간구하고 있을까요? 전 주에도 똑 같은 말씀이 나왔습니다. “나의 눈을 열어 주셔서 내가 볼 수 있게 하소서.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깨닫게 해 주소서.” (18절) 이 시편 저자는 왜 깨달음을 달라고 할까요? 왜 눈을 열어 달라고 할까요? 진리를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웬만한 크리스천들에게는 적어도 한 두 권씩 과거에 했던 성경공부 교재가 있습니다. 그 성경공부를 하면서 많이 배웠고, 모르는 것들을 많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지식으로 끝나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것을 ‘지적유희(知的遊戱)’라고 합니다. 아는 것으로, 지식을 갖는 것으로 만족(滿足)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시편 119편의 저자는 ‘지적유희’를 목적으로 깨달음을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Give me understand¬ing and I will obey your instructions; I will put them into practice with all my heart. Make me walk along the path of your commands”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눈을 열어 주시고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면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 말씀을 실천으로 옮겨 그 말씀을 따라 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여자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을 낳은 어머니는 참 복이 많으신 분입니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신 줄 압니까? “But even more blessed are all who hear the word of God and put it into practice(그러나 더 복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누가복음 11:28) 성경에는 이렇게 행복한 삶의 비결(秘訣)이 나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행복의 비결과 다릅니다. 어느 말이 맞을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행복의 비결이 맞을까요?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까요?
둘째로, 36-37절 말씀입니다. “나의 마음이 주의 법규들로 향하게 하시고, 이기적인 이익들로 향하지 않게 해 주소서. 내가 무가치한 것들에게서 눈을 떼게 해 주시고, 주의 말씀으로 나를 보호해 주소서.” ‘이기적인 이익’이라는 말을 NLT 성경에는 ‘a love for money’라고 번역했습니다. NIV 성경에는 ‘selfish gain’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무가치한 것들’은 ‘worthless things’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참 불행한 것은 우리 마음이 끊임없이 ‘이기적인 이익’을 향하고 있고, 우리 눈이 끊임없이 ‘무가치한 일들’을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무 가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이것이 나의 이기적인 이익을 구하는 일인지 모르고 그것을 얻기 위해 모든 힘과 정력을 쏟습니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이것이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일들이 아무 가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전도서를 쓴 솔로몬이 그랬습니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Meaningless! Meaningless! Utterly meaningless! Eve-rything is meaningless!)” (전도서 1:2) 지금 우리가 가치 있는 삶에 눈을 돌리지 않으면 틀림없이 우리 입에서도 이런 후회의 말들이 나올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보세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복음 10:45) 이 말씀에서 여러분의 마음에 와 닿는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이렇게 질문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이라는 말을 주목해서 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가치 있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을 보면 모두 자기 자신에게 눈을 돌리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돌렸습니다. 공부 많이 해서 학위 받고, 결혼하고, 좋은 집 장만하고,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성공적인 삶의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서는 절대로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selfish gain(이기적인 이익)’은 얻을 수 있을지 몰라요.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생각하고 살아갈 때 우리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시편 119편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마음이 주의 법규들을 향하게 하시고(Turn my heart toward your statutes, NIV)” 내 마음이 하나님의 법규들을 바라보고 살아갈 때 나는 더 이상 ‘이기적인 이익’을 생각하지 않게 되고, 내가 하나님의 법을 열심히 사모하는 이상 나는 ‘쓸데없는 무가치한 일들’을 생각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는 훈련이 된 사람들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산사회복지재단’에서 해마다 소외된 이웃을 위해 봉사와 나눔, 효행을 실천하여 사회의 귀감이 된 분들을 표창합니다. 총 다섯 개 부문에서 수상자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이번 2021년 사회봉사 부문에서 권순영 장로님이 선정되었습니다. 권순영 장로님은 여러 번 ReNEW 세미나 강사로 오셨던 분입니다. 올해도 세미나를 두 번이나 인도하셨습니다.
권순영 장로님은 유명한 식품회사 네슬리(Nestlé Nutrition)에서 수석 연구원을 지낸 분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이 무슨 이유로 아프가니스탄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려고 뛰어들었을까요? 오랜 내전(內戰)으로 치안이 불안한 그 나라에 말입니다. 2002년에 이 장로님이 우연히 아프가니스탄의 뉴스를 듣게 됩니다.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면서 수많은 부녀자들과 어린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간다는 뉴스였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가 어린 아이들의 사망률이 세계에서 최고로 높다는 뉴스를 듣고 충격을 받습니다. 네슬리에서 의료영양식품 개발 디렉터로 일하고 있던 권순영 장로님은 그 뉴스를 듣고 이 사람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강한 소명의식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합니다. 거기서 ‘희망의 콩 프로젝트’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프가니스탄에 가장 값싼 방법으로 단백질을 공급할 수 있는 콩을 재배해서 이들의 영양실조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에 완전히 뛰어들게 됩니다. 지금은 아프가니스탄 34개 주 전체에 콩을 재배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연히 아프가니스탄 뉴스를 듣고 그들을 향한 마음을 품게 되면서,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안전한 직장, 어려움이 없는 삶을 살다가 자기 자신만 바라보는 ‘selfish gain’을 위해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전에 알지 못했던 더 큰 보람과 행복을 발견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살았던 삶의 방식이고, 우리 모두가 살아야 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셋째로, 45절 말씀입니다. “내가 자유롭게 걸어 다닐 것입니다. 이는 내가 주의 교훈들을 따랐기 때문입니다(I will walk in freedom, for I have devoted myself to your commandments).” 이 말씀에서 자유롭게 걸어 다닌다는 말은 자유함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 시편 저자는 자유함은 하나님의 ‘교훈’을 따른 결과라고 합니다. 우리 생각하고 많이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면 여러가지가 불편하고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시편 119편을 쓴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다 보니 내가 자유롭게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여러분, 이 말씀을 한번 보세요.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You are truly my disciples if you remain faithful to my teachings. And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요한복음 8:31-32) 이 예수님의 말씀 속에 자유함과 말씀 안에 거하는 삶이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까?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인간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발견하고 그 길을 따라 살아갈 때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고, 자유함이 있습니다.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독일)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If we answer the call to discipleship, where will it lead us? What decisions and partings will it demand? To answer this question, we shall have to go to him, for only he knows the answer. Only Jesus Christ, who bids us follow him, knows the journey’s end. But we do know that it will be a road of boundless mercy. Discipleship means joy(그리고 우리가 제자가 되라는 부름에 응답한다면, 그 부름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는 것일까요? 또 그것은 어떤 결정과 이별을 요구할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그에게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직 그 분만이 답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그를 따르라고 명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여정의 끝을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무한한 자비의 길이라는 것을 압니다. 제자도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제자도는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크리스천이라면 당연히 누구나 그 길을 걸어야 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걸어갈 때 우리는 그 길에서 기쁨과 자유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습니다. 맞습니까? 그 말씀을 존중하고, 그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은 가치 있는 삶을 살게 되고,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고, 이런 사람이 성공한 사람 아닙니까? 부디 하나님의 말씀을 지적유희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사랑과 순종과 실천의 대상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모두 함께 36-37절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마음이 주의 법규들을 향하게 하시고, 이기적인 이익들로 향하지 않게 해 주소서. 내가 무가치한 것들에게서 눈을 떼게 해 주시고, 주의 말씀으로 나를 보호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