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9/2021 | 성탄 메시지2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들 (Those With Whom God Is Pleased)
김태환 목사
누가복음 2:8-20
8 그 근처 들판에서 목자들이 밤에 양 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9 주님의 천사가 갑자기 이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주님의 영광이 그들을 둘러 비추자, 이들은 몹시 두려워하였습니다. 10 천사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 마라. 보아라. 모든 백성을 위한 큰 기쁨의 소식을 가지고 왔다. 11 오늘 다윗의 마을에 너희를 위하여 구세주께서 태어나셨다.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12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볼 것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증거이다.” 13 갑자기 그 천사와 함께 많은 하늘 군대가 나타나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14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땅에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15 천사들이 목자들에게서 떠나 하늘로 사라지자, 목자들이 서로 말했습니다. “베들레헴으로 어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합시다.” 16 이들은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았습니다. 17 목자들이 확인하고 이 아이에 대하여 자기들이 들은 것을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18 목자들의 말을 듣고 사람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19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 속에 소중히 간직하였습니다. 20 목자들은 돌아가면서 천사들이 일러준 대로 자기들이 듣고 보았으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을 드렸습니다. (쉬운성경)
8 And in the same region there were [some] shepherds staying out in the fields, and keeping watch over their flock by night. 9 And an angel of the Lord suddenly stood before them, and the glory of the Lord shone around them; and they were terribly frightened. 10 And the angel said to them, "Do not be afraid; for behold, I bring you good news of a great joy which shall be for all the people; 11 for today in the city of David there has been born for you a Savior, who is Christ the Lord. 12 "And this [will be] a sign for you: you will find a baby wrapped in cloths, and lying in a manger." 13 And suddenly there appeared with the angel a multitude of the heavenly host praising God, and saying, 14 "Glory to God in the highest, And on earth peace among men with whom He is pleased." 15 And it came about when the angels had gone away from them into heaven, that the shepherds [began] saying to one another, "Let us go straight to Bethlehem then, and see this thing that has happened which the Lord has made known to us." 16 And they came in haste and found their way to Mary and Joseph, and the baby as He lay in the manger. 17 And when they had seen this, they made known the statement which had been told them about this Child. 18 And all who heard it wondered at the things which were told them by the shepherds. 19 But Mary treasured up all these things, pondering them in her heart. 20 And the shepherds went back, glorifying and praising God for all that they had heard and seen, just as had been told them. (New American Standard Bible)
누가(Luke)가 어떤 경로를 통하여 복음을 듣게 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전승(傳承)에 의하면 누가는 그리스 사람으로 시리아의 안디옥 출신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이 안디옥에 교회를 세우고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서 일년 동안 가르친 적이 있는데(사도행전 11:26), 그 때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한 것으로 보입니다. 직업이 의사였던 누가는(골로새서 4:14) 바울이 로마로 호송될 때 바울을 수행합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바울이 순교할 때까지 신실하게 바울 곁을 지킵니다. 누가는 역사 의식이 뛰어난 사람이어서 자료를 수집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누가복음 1:3). 그는 예수님에 대한 자료를 모아 누가복음을 기록했고, 바울을 수행하면서 복음이 전파되는 행적을 꼼꼼하게 기록해 자료를 모아두었다가 사도행전을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누가복음의 기록은 역사가로서의 누가의 진면목(眞面目)을 한껏 드러낸 값진 기록입니다. 한번 그 말씀을 보실까요? “그 때에 아구스도(Augustus) 황제가 내린 칙령에 따라 온 나라가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구레뇨(Quirinius)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 행한 첫 번째 호적 등록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호적을 등록하러 고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요셉도 다윗 가문의 자손이었으므로 갈릴리 나사렛을 떠나 유대 지방에 있는 다윗의 마을로 갔습니다. 이 마을은 베들레헴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는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을 등록하러 갔습니다. 마리아는 그 때에 임신 중이었습니다. 이들이 베들레헴에 있는 동안 아기를 낳을 때가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마구간에서 첫아들을 낳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습니다. 그것은 여관에 이들이 들어갈 빈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1-7)
만일 누가의 이 기록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의 역사적인, 정치적인, 사회적인 상황이 어떠했는지 잘 몰랐을 뻔했습니다. 그리고 왜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는지도 이유를 알 수 없을 뻔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세상은 참 시끄럽고 요란했습니다. 그 때 유대나라는 로마제국의 지배 밑에 있었습니다. 그 때 로마 황제는 아우구스투스였습니다. 그의 본명은 옥타비아누스(Octavianus, BC 63-AD 14))로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 BC 100-BC 44)가 죽은 후 정적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 BC 83-BC 30)를 물리치고 로마제국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이 칭호에는 ‘숭고한 자’ ‘고귀한 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신적인 존재로 추앙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아우구스투스’가 시리아의 총독 ‘구레뇨(Quirinius)’의 지휘 아래 호적 등록을 하도록 칙령을 내렸습니다. 그 때 유대나라는 행정적으로는 시리아에 속해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아우구스투스’는 세금을 더 거둬들이기 위해 그런 칙령을 내렸을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유대인들은 각자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호적을 등록하라고 했으니 그 일대에 많은 사람들의 이동이 있었을 것입니다. 베들레헴 같이 작은 마을에 갑자기 외지(外地)에 나가 살던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오니까 막상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는 여관에 빈 방이 없어서 마구간에서 예수님을 낳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유대인들은 저항심이 강한 민족입니다. 유대인들은 끊임없이 로마인들에게 저항했습니다. 그 중에 과격한 민족주의자들은 살인과 방화(放火)를 서슴치 않았습니다. ‘바라바(Barabbas)’같은 유명한 죄수(a notorious prisoner)가 있었습니다(마태복음 27:16). ‘바라바’가 이렇게 유명했던 이유는 이 사람이 단순한 살인자가 아니라 민족주의자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중에도 많은 사람들은 메시아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짜 메시아들이 끊임없이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암하레츠(Am-ha' aretz)’라고 불리는 민중들 사이에는 조용히 기도하면서 메시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38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all those who were looking forward to the redemption of Jerusalem)’이 바로 ‘암하레츠(Am-ha' aretz)’들입니다.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는 형식적인 예식이 되어 버렸고(요한복음 2:12-17), 헤롯 왕은 무리하게 성전을 증축하여 백성들에게 세금을 거두어 46년째 공사 중이었습니다(요한복음 2:20). 마태가 그의 복음서에 기록한 대로 백성들은 목자를 잃은 양처럼 유리하며 방황하고 있었습니다(마가복음 6:34, 마태복음 9:36).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때는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 소란하던 때였습니다. 결코 아무 일도 없었던, 평화로운 때가 아니었습니다. 민족의 대 이동이 있었고, 유대 민족들은 로마의 지배 밑에서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크고 작은 반란들이 일어났습니다. 성전 예배는 백성들의 삶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금방이라도 뭔가 터질 것만 같은 긴장감이 돌고 있던 때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것입니다. 찬송가 가사가 생각납니다. “그 맑고 환한 밤중에 뭇 천사 내려와 그 손에 비파 들고서 다 찬송하기를 평강의 왕이 오시니 다 평안하여라. 그 소란하던 세상이 다 고요하도다. 이 괴롬 많은 세상에 짐 지고 가는 자 그 험산 준령 넘느라 온 몸이 곤하나 이 죄악 세상 살 동안 새 소망 가지고 저 천사 기쁜 찬송을 들으며 쉬어라.” (112장 그 맑고 환한 밤중에) 예수님의 탄생으로 소란하던 세상이 고요하게 되었고 이 세상에 새 소망이 주어졌다는 찬송가 가사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탄생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때가 무르익어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But when the time had fully come, God sent his Son).” (갈라디아서 4:4)
누가는 놀랍게도 예수님의 탄생의 소식을 제일 먼저 들은 사람들이 한 밤중에 들판에서 양떼를 지키고 있던 목자들이었다고 합니다. 왜 메시아가 탄생했다는 그 기쁜 소식이 제일 먼저 목자들에게 들렸을까요?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까지는 불과 8.8km 밖에 되지 않는 짧은 거리입니다. 차로 가면 20분 거리 밖에 안 되고, 걸어가도 2시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입니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고, 산헤드린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정치, 종교 지도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살았습니다. 왜 그런 사람들에게 성탄의 기쁜 소식이 들리지 않고 밤 중에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먼저 들렸을까요?
어떤 사이트에서 본 것입니다만, 직업 중에 ‘극한 직업(extreme jobs)’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벌목공, 원양어선 선원, 광부, 지뢰 제거반, 환경 미화원, 수색 구조원, 용접공, 정비공, 트럭 운전사, 택배 기사, 화상병원 의료진, 말벌 채집꾼, 해양 폐기물 수거반, 동물 사체 제거반, 하수도 맨홀 청소원, 버킹엄 궁전 근위병, 브라질 연구용 모기 채집가, 이런 직업들이 극한 직업들입니다. 일은 힘들고, 위험하고, 월급은 적은 직업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태어난 당시에도 ‘극한 직업들’이 있었습니다. 요아킴 예레미야스(Joachim Jeremias, 1900-1979, 독일)가 쓴 ‘예수 시대의 예루살렘(Jerusalem in the Time of Jesus, 1969)’이라는 책에 보면, 당시 천한 직업으로 취급받은 직업들이 등장합니다. 낙타몰이꾼, 당나귀몰이꾼, 마부, 뱃사공, 의사, 푸줏간 주인, 어부, 목자 등이 천직으로 취급받았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목자는 부정직하다는 사회 인식 때문에 법정에 증인으로도 세울 수 없었다고 합니다. 목자들은 그 사회에서 쓸모없는 존재들이었고, 구덩이에 빠져있어도 유대인들은 그를 구해주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이런 목자들에게 부여된 사회적 신분은 ‘죄인’이었습니다. 당시 세리들이 ‘죄인’ 취급당했듯이, 목자들도 ‘죄인’ 취급을 당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목자들을 어떻게 보셨을까요? 성경에 보면 목자로 살았던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모세입니다. 이집트의 궁전에서 공주의 아들로 살았던 모세는 여차여차하여 도망자가 되어 ‘미디안’이라는 땅으로 피신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목자로 40년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이 기간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지도자로 훈련시킨 기간이었습니다. 또 이스라엘에서 가장 훌륭한 왕이었던 다윗도 어린 시절을 목자로 보냈습니다. 사울 왕에게 어린 다윗이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참 인상 깊습니다. “저는 제 아버지의 양 떼를 지키던 사람입니다. 사자나 곰이 나타나서 양을 물어 가면, 저는 그 놈을 공격하여 그 입에서 양을 구해 냈습니다. 그 놈이 저를 공격하면, 저는 그 놈의 턱을 잡고 때려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사무엘상 17:34-35) 다윗은 아버지의 양을 지키는 목자로 살면서 양 한 마리의 생명이 내 목숨을 걸고 지킬 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장차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될 훈련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목자는 가난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목자를 잘 표현하는 말은 ‘humble’ ‘humbleness’ 혹은 ‘humility’라는 말입니다. 목자는 직업상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기가 지키고 있는 양에게 눈길을 떼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목자를 겸손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누가복음 본문 말씀이 이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근처 들판에서 목자들이 밤에 양 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And there were shepherds living out in the fields nearby, keeping watch over their flocks at night).” (8절) 어떻습니까? 목자들이 있는 곳은 동네에서 떨어진 외딴 ‘들판’입니다. 모두가 잠자는 이 시간에도 목자는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으면서 양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도둑들이 와서 양을 훔쳐갈까 봐, 혹시라도 사나운 짐승이 양을 해칠까 봐 양들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갑자기 주님의 영광이 목자들을 둘러 비추면서 천사들의 음성이 들려왔다고 합니다. “두려워 마라. 보아라. 모든 백성을 위한 큰 기쁨의 소식을 가지고 왔다. 오늘 다윗의 마을에 너희를 위하여 구세주께서 태어나셨다.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볼 것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증거이다.” (10-12절) 천사들의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구세주가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메시아가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천사는 그 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다고 하면서 메시아를 알아볼 수 있는 증거까지 목자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포대기에 싸여 있는 아기는 많이 있겠지만, 포대기에 싸여 구유(manger)에 누워 있는 아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천사들은 그 아기가 메시아임을 부인할 수 없는 빼박 증거를 보여주었습니다.
천사들의 메시지가 끝나자 다시 천사들과 하늘의 천군(天軍)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Glory to God in the highest, And on earth peace among men with whom He is pleased, NASB).” (14절) 메시아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메시아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잘 읽어보면 메시아의 탄생이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임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람들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메시아가 탄생했다는 ‘기쁜 소식’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이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이 베들레헴의 목자들이었습니다. 목자들은 사회적인 평판(評判)이 좋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목자들은 법정에 증인으로도 설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편견을 버리고 목자들이 전하는 성탄 소식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 맞습니까?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평화를, 하나님의 ‘살롬’을 선물로 주십니다.
우리는 다시 이 말씀을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사람들은 목자들처럼 마음이 겸손한 사람들이라고요. 마음이 겸손한 사람들이 성탄의 소식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교만한 사람들은 성탄의 소식을 믿지 않습니다. 마음이 겸손한 사람들이 성탄의 소식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메시아 탄생의 기쁜 소식이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에게 전해지지 않고 먼저 겸손한 목자들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God opposes the proud but gives grace to the humble, 야고보서 4:6, 잠언 3:34)”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 대로입니다.
겸손한 사람들에게 성탄의 소식이 들립니다. 겸손한 사람들이 성탄의 소식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겸손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임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늘 겸손하십시오.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버리십시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높여 주십니다.